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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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를 울게 두오!: 괴테 시 필사집』은 세계의 대문호 괴테의 시를 한 자 한 자 눌러 써가며 익히도록 한다. 시집 필사는 문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작가 수업 시절에 해본 경험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글과 문체를 갈고 닦아야 할 귀중한 시간에 왜 남의 싯귀나 문장을 필사했을까. 

아침 저녁 기온으로 봐선 딱 겨울이다. 지구 북반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겨울은 움츠리고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계절이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 지나고 기온도 영하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얼마 전 붉디 붉었던 잎파리들이 낙엽져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마침내 가지만 남긴 채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를 온몸의 받아 안으며 계절을 버틴다. 동물들은 물론 사람들도 따뜻한 곳을 찾아들면 밖에서의 하루 활동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날씨가 춥다고 자연의 이치가 냉혹한 계절만은 아니다. 겨울만 이겨낸다면 나무들은 새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고 무성한 잎파리들을 다시 키워내 저마다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것은 아름다운 새봄이 온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후 변화로 이상 기온이 우리의 일상을 흐트려 놓기는 하지만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인간은 이미 터득했다. 가을에 수확한 풍요로운 먹거리로 저장해 놓고 오손도손 가족이 함께 먹는 즐거움은 부푼 행복감을 안겨준다. 

겨울에 아랫목에 누워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은 시처럼 아름답게 변한다. 대체로 그렇다. 감명 받은 시에서도,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시를 읽는 마음은 순수함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시에서 받은 감동은 오래 지속되나보다. 이 책의 표제어가 된 「나를 울게 두오!」는 대문호 괴테의 시의 제목이다. 시에 쓴 싯구로 제목이 되었고 책의 표제어가 되었다. 이 제목으로 인해 아름다운 싯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감동하고,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지 충분히 추정할 만하다.

나를 울게 두오!

끝없는 사막에서 밤에 에워싸여 울게 두오.

낙타들이 쉬고, 몰이꾼도 쉬고

아르메니아인 조용히 앉아 돈을 헤아릴 때

나, 그 곁에서 먼 길을 헤아리네.

나와 줄라이카를 갈라놓는 먼 길,

그 길을 더 길게 늘리는 야속한 굽이굽이 자꾸 되풀이되네

나를 울게 두오!(P.276, 이하 생략)


책의 〈추천사〉를 쓴 장석주 시인은 이 시를 읽으면 언젠가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는 한 디자인 회사 건물의 '울기 좋은 방'을 떠올린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그 건물에 있는 방 이름이란다. 천창으로 파란 하늘이 보이는 그 작은 방은 장식도 기물도 없이 텅 빈 채로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 단순 소박한 그 방에 들어선 순간 시인은 울고 피어졌다. 무릎을 꿇은 채 엉엉 울고 나면 가슴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씻겨 나갈 것만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괴테의 말처럼 울고 싶을 때 우는 건 수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자기감정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선량한 사람일 것이라고 시인은 읊조린다. 밤의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우는 사람이 그렇듯이. 시인은 그렇게 어느 호젓한 저녁, '울기 좋은 방'을 떠올리며 「나를 울게 두오!」를 읽는다. 쓰러진 자에게 일어설 용기를, 복잡한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 영감을 주는 시에 진실로 감사하며!

이 책은 괴테의 시 100편이 독자들의 필사를 기다리며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괴테가 누구인가. 우리 독자들은 그의 시를 한두 편 읽어보지 않은 이들은 드물다. 그만큼 괴테의 명성이 자자해서겠지만 그의 싯구는 격언으로도 많이 쓰이는 아포리즘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심코 쓰는 격언이나 싯귀가 괴테의 시에서 인용한 아포리즘이란 걸 발견하면 슬며시 입가에 웃음을 짓는다. 이를테면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라인강과 마인강」),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서 그럴 것이다. 

역자 배명자도 여담이라고 가벼운 말을 건넨다. "눈물 젖은 빵"을 "눈물 젖은 밥"으로 바꿔야 하낟. 잠깐 고민했었다고 고백한다. 아마 번역자로서 더 적합한 단어 찾기, 혹은 독자에게 더 적절한 단어로 바꿔 전달해야 하는 번역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역자의 고민도 잠깐 '눈물 젖은 빵'은 이미 관용구로 굳어졌다고 그대로 쓰기로 했단다.

역자는 이 책의 시 중에는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고 귀띔한다. 시 「보물 찾는 이」에는 "내 영혼을 가져가라! 피로 계약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면서 피로 서명하는 장면과 연결된다고 독자들에게 슬쩍 내민다.


텅 빈 주머니와 병든 가슴으로 

긴 세월 힘들게 버텨왔다네

가난은 가장 큰 고난

부유는 가장 큰 재산

나, 고난을 끝내려 보물을 찾아 떠났지

"내 영혼을 가져가라!"

피로 계약했네(p.134, 이하 생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판에 붙인 시」는 '2판'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1판이 큰 인기를 끌면서 자살하는 젊은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2판 앞머리에 이런 시를 넣은 것이다.

보라, 그의 정신이 무덤에서 그대에게 손짓한다

사내답게 살라고, 나를 따르지 말라고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판에 붙인 시」 중에서


인류의 스승으로 꼽을 만한 독일 문학의 거장은 누구인가? 우리는 가장 먼저 괴테를 떠올릴 수 있다. 아마도 그와 견줄 만한 위대한 작가는 찾기 힘들 테다. "우리들의 정신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 존재, 영원에서 영원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활동"이라고 굳게 믿은 작가! 괴테에게 문학이란 창공에서 빛나는 태양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문단은 시인 장석주가 〈추천사〉에 쓴 첫 단락의 문장들이다. 장석주 시인에 따르면 괴테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족함이 없은 환경 속에서 모국어는 물론이거니와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익히며 성장했다. 더 큰 행운은 성서와 히브리어, 이디시어를 익히면서 더 너른 교양과 지식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대대로 물려받은 집안의 장서들과 다양한 언어 습득은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세련된 취향과 예술적 영감을 얻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부러운 마음을 전한다.

괴테에겐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향한 열정과 호기심, 명석한 분별력, 좋은 영향력을 제 것으로 취하는 재능이 넘쳤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가 명석함에 더해서 예술의 소양을 키우는 데 보탬이 되는 천혜의 환경을 만난 것은 그의 축복이라고 한다. 일찍이 철학, 음악, 미술 등에 걸쳐 고루 교양과 지식을 갈고닦으며 천부적 재능을 꽃피울 날을 기다렸다. 그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25세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써내며 유럽 전체에 명성을 떨친 뒤, 반세기가 넘는 세월에 걸친 노력 끝에 『파우스트』라는 대작을 완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그의 약력을 소개한다.

시인은 소년 시절에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괴테의 시는 「휴식」이란 시라고 밝힌다. 아쉽게도 이 책에는 빠져서 여기 소개하지 못한다. 시인은 괴테의 시에서 심장 떨리는 벅찬 기쁨을 맛보고, 고전의 향기와 웅장한 영혼의 울림을 느끼며, 비로소 괴테를 소설가로만 알던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괴테는 타고난 직관과 상상력으로 만물에서 시적인 영감을 구한 사람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일곱 살에서 인생의 만년까지 겪은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시에 온전하게 녹여내는 창작을 쉰 적이 없었다. 괴테의 서정성 짙은 시들을 가사로 삼은 슈베르트와 모차르트의 가곡들이 당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시성(詩聖)이라는 면류관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입증한다고 강조한다. 시인은 괴테의 "당신이 그리워/한밤중에 흐느껴 울었지요"(「헛된 위안」 p.212)이라는 시 구절을 읽으며 깔짝 놀란다. 인간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존재라는 것, 괴테같이 위대한 인간조차 한밤중에 흐느낀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놀라움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리움이란 아무 조건을 붙이지 않은 자기 증여의 내밀한 형식일 터다. 아울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증거,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무작정 보낸 상태. 마음이 상대에게 가닿았는지 아닌지를 모르는 상태일 때 생기는 아스라한 감정이다. 

사랑하지 않은 자에겐 그리움이 깃들 여지도, 사랑의 상처가 생길 까닭도 없다. 그리움은 막막하고 마음에 고통의 자취를 남긴다. 그래서 괴테는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나의 아픔을 알리라!"(「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p.160)라고 썼을 거라고 말하며 탄식한다. 나는 언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울었던가?

이 책 『나를 울게 두오!: 괴테 시 필사집』은 바이마르 초창기부터 생애 끝자락까지 쓴 괴테의 시 가운데 100편을 선별하여 수록했다. 시마다 더욱 깊이 있게 숙독할 수 있도록 필사란을 마련하였기에 음미하고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산다는 것에 대한 찬미, 첫사랑을 위한 노래, 고전의 아취, 인생 경험에서 길어낸 자양분을 머금은 아포리즘들로 이루어진 괴테 시집을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필사하는 시간, 자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멋진 투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어떤 운명이라도 좋다! 오라, 운명이여, 몇 번이라도 좋다!” 괴테는 시를 통해 자칫 무르고 약해지기 쉬운 우리에게 운명에서 도망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권한다. 이런 의연함이 더욱 간절한 요즘이라면, 무의식적인 정신의 풍부함을 만끽하면서도 그 자발성을 파괴하지 않고 거기에 성찰의 빛을 부여한, 독일 최고의 지성, 대문호 괴테의 시를 추천한다.


저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는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자 : 배명자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8년간 근무했다. 이후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져 독일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사범학교에서 유학했다. 현재 바른번역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비투스』, 『호르몬과 건강의 비밀』, 『밤의 사색』 등 8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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