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위대한 자유 아포리즘 시리즈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 엮음, 홍성광 옮김 / 열림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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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고등학교 이후로 철학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도 학과목 이름이 '국민윤리'였던 것 같다. 오로지 대입만을 위해 준비하던 고등학교에서는 철학은 아무 소용이 없는 과목이었다. 교과서 안에 서양 철학자와 동양 철학자가 나온 것을 보고서야 '철학' 과목인 줄 인식했을 정도다. 고등학교 필수과목이었지만 입시에는 들어가지 않은 과목이었던 듯싶다. 고등학교 1학년 때만 수업이 있었다. 그렇게 '철학'이란 단어만 듣고 이후 철학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철학과는 먼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인간의 본질과 삶을 배우는 학문이라는 철학이 사회 생활에서는 필요했을까? 생각할 틈도 없었고, 일에만 매달리기에도 개인적 시간을 갖기는 어려웠다. 졸업 이후, 자충수를 두는 말이겠지만, 진지하게 철학 책 한 권 오롯이 읽지 못했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코로나 팬데믹 때 재택 근무를 권장할 때 출퇴근에 사용된 시간 등 아무래도 시간이 여느 때와 비해 훨씬 여유가 있었다. 때로는 여유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될 지경이었다. 이때 머리를 번쩍 스친 생각이 '책을 읽자'였다. 우선 온라인 서점을 뒤지다가 니체의 책과 니체와 관한 우리 작가들이 쓴 책이 굉장히 많아 깜짝 놀랐다. 전 세계를 휩쓴 감염병과 니체는 무슨 관계가 있어서 이렇게 많은 책이 지금 이 시기에 줄지어 출간됐을까? 궁금해서 조금 더 읽다보니 '열풍'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되고 기승을 부리다보니 대면 소통이 불가능해지자 정신적인 우울한 환자들이 많아졌다(코로나 블루라고 표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니체의 철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있었다. 니체 철학은 삶의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통상적인 이야기지만 독자에게는 가슴속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한 권을 골라 구입했다. 책을 읽은 지 오래된 데다 어렵다는 니체의 책을 읽으려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니체의 저서를 번역한 책이 아니라, 니체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 작가가 쓴 칼럼 등을 모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 쓴 책이었는데도 어려웠다. 며칠에 걸쳐 한 번씩 펼쳐보다 결국은 끝까지 읽는 데는 실패했다.

기왕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낯설기는 하지만 쉽게 읽히는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서는 소설도 읽고, 간혹 전문서적에 가까운 책도 읽었다. 조금씩 옛날 학창 시절 때 열심히 책 읽던 기억도 되살아나며 독서를 다시 시작하고자 결심도 했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책에 한 번 관심을 가지게 되자 이후엔 온라인 서점을 수시로 기웃거리게 되었다. 생활의 변화를 가져온 명백한 계기가 된 것이다. 이 무렵 신문에 난, 이른바 '니체 열풍'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한 서평 기사를 읽었다. 지난 번 실패를 경험한 적 있었지만 묘하게도 신문 기사는 관심이 더 갔다. 니체 철학이 어려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니체를 연구하는 학자나 후배 철학자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일반인들이 니체 철학을 어렵다고 하는 것은 철학을 조금 알다 말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책 한 권을 추천하고 있다. 

출판계는 지금 니체에서 '쇼펜하우어'로 관심이 바뀐 것 같다. 독자는 최근 쇼펜하우어에 관한 책도 몇 권 선택해 읽었다. 독자는 사실 쇼펜하우어를 의식적으로 싫어했었다. 염세주의자란 말 때문이었다. 그것도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선생님이 한 말이었으니 그대로 믿었다. 어쩌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선생님 말씀이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으로 전제하고, 염세적 세계관을 가진 철학자였다"는 말을 했다. 거기에 부연한 내용은 학생들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주목을 하지 않자, 농담을 섞어 한 말이었으리라. 그런데 독자가 듣기에는 철학자의 말 한마디에 삶을 끝낸다고? 하는 의문이었다. 선생님이 들려 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세상과 인간의 삶을 이야기했던 그는 유럽의 수많은 청년들을 자살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90살까지 살았다"는 말이었다. 선생님의 말이었기에 더욱 놀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읽은 몇 권의 철학 책을 통해 지금은 '철학'에 대해 기본적 소양은 갖추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 『니체의 위대한 자유』에도 나오지만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고, 책에서도 감명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학자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은 니체가 신을 부정했던 것은 아니라고 역자 홍성광은 이 책에서 말한다. 니체가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주창한 말이며, 니체는 본능적으로 무신론자라고 주장한다. 역자에 따르면 니체는 젊었을 때 신의 힘을 확신해서 신이야말로 선뿐 아니라 악의 기원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말은 불경하고 때로는 독설적이기까지 한 것은 사실이다. 그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신앙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기독교의 신보다 그리스의 신들에 더 호의적이다. 그가 보기에 신은 약자들의 버팀목으로, 원한에 찬 사람들을 위한 힘으로 봉사한다. 그러나 그는 신성을 거부한다는 의미의 전형적인 무신론자는 아니었다고 역자는 강조한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가장 유명한 저서다. 니체는 이 책에 「모두를 위한 책이면서 그 누구도 위한 것이 아닌 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고 역자는 귀띔한다. 『차라투스트라~』는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신약성서를 참조한 많은 패러디를 담고 있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다가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소크라테스나 그리스도에 가깝다. 니체가 사도 바울은 싫어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한 것은 사실이다. 니체는 또한 종교적 삶을 추구한 몇몇 기독교인에게 개별적인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차라투스트라는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태양 숭배 종교인 조로아스터교 교조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니체는 전작 『즐거운 지식』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미 차라투스트라를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 예언가처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어떤 전언을 지닌 현인이다. 그런데 선과 악, 신과 악마라는 이원론을 주창한 조로아스터와는 달리 차라투스르라는 일원론의 주창자이다. 

책에 따르면 1883년 2월 3일부터 13일까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 제1부를 집필했는데, 이렇게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작품이 단숨에 쓰여지던 신성한 시각에 바그너가 베네치아에서 사망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한때 숭배하던 스승이 사망한 날 그의 초인, 즉 '위버멘쉬'가 탄생한 것이다. 천재 숭배의 시기, 부정의 시기에 이어 니체 만년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책 『니체의 위대한 자유』는 니체의 본고장 독일에서 직접 대중을 위해 기획하고 엮은 열림원의 아포리즘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의 편저자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는 브레히트, 아도르노, 벤야민 등 세계적인 지성들의 책을 소개해온 독일의 유명 출판사 〈주어캄프〉 편집자 출신으로, 니체의 전체 사상을 간추려 8장으로 묶고 저작에서 352문장을 엄선했다. ‘자아·행복·사랑·재능·정치·사유·평판·자유’로 각 장을 포괄하는 8개의 키워드는 삶에서 떨어트릴 수 없는 뼈대와 같은 요소로, 니체는 위와 관련한 문장들을 관통해 자신으로부터 끊임없이 탈피하고 새로워짐으로써 자유롭고 위대한 ‘나’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번역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비극의 탄생』 등을 포함한 다수의 니체 원전과 독일 철학서를 번역한 홍성광이 맡았다. 니체의 저작에서 핵심만을 추출한 짧고 굵은 아포리즘에 이어 역자 홍성광의 구체적이고도 심도 있는 「니체와 초인은 누구인가」란 제목의 〈해설〉은 ‘위대함’과 ‘자유로움’에 대한 니체의 독창적인 사유를 더욱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니체의 위대한 자유』는 편역자에 의해 임의로 수정되지 않고 철학자 본연의 문장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스무여 권에 이르는 니체의 저작과 유고, 편지까지 방대하게 선별해내어 그의 세계관을 낱낱이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편저자 우르줄라 미헬스 벤츠는 원제를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을 위한 니체’로 지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느낄 필요 없는 과도한 스트레스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는 스트레스에 빠진 일반 대중을 위해 니체의 말을 빌려 “삶의 상황이 주는 부담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자신을 강한 인격으로 키우”고 “자신을 편하게 만들려는 습관적인 충동”을 이겨내 지속적으로 단련하라고 요구한다. 그와 동시에 니체처럼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모든 불만을 버리고, 더 잘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한다. 니체가 “위대한 문제는 모두 위대한 사랑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듯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이러한 ‘아모르 파티’ 정신과 끝없는 자기 극복을 통해 우리는 ‘내가 나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움, 그리고 나만의 재능과 주체적인 노력을 통한 진정한 위대함을 얻을 수 있다.

〈해설〉은 독자들이 니체의 핵심적인 철학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니체가 지나온 삶의 자취와 태도, 그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들과의 관계, 니체의 주요 저작들이 집필 당시 그의 삶과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맥락, 시기에 따라 그가 중요시한 철학 세계의 변천 등을 깊고 구체적으로 풀어내어 우리를 니체의 삶과 철학에 더욱 가까이 인도한다. 「들어가며」에서 편저자 벤츠는 묻는다. “니체가 바로 일반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초인’을 향한 엄청난 노력을 요구함으로써 스트레스에 빠뜨리는 요인들을 더욱 강화하지 않았는가?” 이에 덧붙여 역자는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초인’은 “슈퍼맨 같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 인물이나 독재적 영웅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주체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여 같지만 조금씩 바뀐 모습으로 힘차게 자꾸 되돌아오는, 자유정신을 가진 인간이 바로 초인이다.”라고 정의한다. 자신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탈바꿈하는 ‘위대함’과 오직 나만의 가치를 세울 줄 아는 ‘자유로운’ 정신이 결국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라고 역설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니체 본연의 목소리를 읽고 스스로 삶을 쟁취하는 법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앞서 설명한 대로 8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자신의 삶만을 읽으라-삶의 이유를 오롯이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 2장 「웃음을 발명하라-비통함 속에서 만들어낸 행복으로 인간은 시간을 잊는다」, 3장 「자애로운 열정을 지녀라-타자를 향한 사랑이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든다」, 4장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여 오르지 마라-자신만의 참된 재능과 노력으로 위대함에 이를 수 있다」, 5장 「정치권력의 쳇바퀴가 되지 말아라-국가적 우상이 아닌 개개인의 인간성이 중요하다」, 6장 「뇌의 주인임을 믿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라-생각하는 것은 뇌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7장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고난을 무릅쓰고도 자신의 경험과 열정만을 따라야 한다」, 8장 「그대 자신의 스승이자 창조자가 되어라-인생이란 숙명도 사기도 아닌 끝없는 깨달음을 위한 실험이다」 등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은 두 가지다. 바로 빠른 죽음과 오랜 사랑이다.(p.93)


사랑에 실패한 니체는 고통스러운 운명에 스스로 기쁨의 축복을 내리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으로 아픔과 우울증을 극복한다. 그것은 가장 낯설고 가혹한 삶의 문제들과 직면해 있으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몰락마저 사랑할 줄 안다. 그에게 사랑이란 삶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노래 부르고 춤추고 웃을 줄 아는 것이다. 니체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운명이란 동일한 것, 자신의 삶에 영원히 회귀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탈주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p.180~181)


천민이란 신분적 의미에서의 천민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 창출을 못하는 인간, 즉 권력, 명예, 돈, 쾌락을 좇는 노예가 된 현대인을 말한다.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강자나 고귀한 자는 스스로 사물과 행동에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지 귀족이나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센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p.219)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편역 : 홍성광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책 읽기와 글쓰기』, 니체의 『니체의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헤세의 『헤세의 여행』, 『잠 못 이루는 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카프카의 『성』, 『소송』, 『변신 외』,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헬렌 켈러 평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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