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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태양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평점 :
2056년. 지구 평균 기온 50도. 지구에서의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기후 재앙이 닥쳐 왔다. 세상은 지구 재앙이 현실로 닥쳐 마지막 상황에 이른 듯하다. 침묵만이 지구를 감싸고 있다. 마지막 남은 인간들은 태양의 저주를 피하려는 듯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미 폐허가 된 2056년 지구의 처참한 모습에 독자들은 첫 페이지부터 디스토피아와 맞닥뜨린다. 이 소설 작품 『붉은 태양의 저주』는 기후 재앙에 노출돼 폐허화된 지구에서 얼마 남지 않은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가 그려진다. 저자 김정금은 숨 막히는 살아남으려는 본성만 남은 인간 심리의 깊숙한 곳으로 시선을 들이댄다. 아직 한 가닥 남은 이성의 한쪽 끝을 잡고 절규하듯 살 만한 곳을 찾는 사람들의 인내심이나 투지도 서서히 꺼져가는 느낌이다.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되는 한반도 서울 한복판에는 좀비 바이러스까지 창궐한다. 지구에는 더 이상 쉴 곳도, 살 곳도 없다. 표제어대로 '태양의 저주'를 받은 인간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마지막 생존을 확인하는 숨을 깔딱이는 모습이다. 사람은커녕 식물도 살 수 없는 최후의 상황에서 인류애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할 상황이다. 이 끔찍한 상황은 예고된 지 수십 년을 논쟁만 하다 허송세월 한 인간에게 태양은 저주라도 내리듯 뜨겁게 지구를 달구고 있다.
이미 봉쇄된 도시, 좀비떼로 가득 찬 서울, 그리고 절망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섬뜩한 현실감을 준다.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 넘치는 서스펜스는 책장을 넘기는 손마저 멈추게 할 것 같다. SF 공포 소설 같은 현실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자 김정금은 노련한 표현력을 더해 가며 독자들의 손길을 붙잡는다. 이미 전작 『은하수의 저주』(판타지 로맨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범죄 미스터리), 『고잉홈』(역사 판타지) 등을 펴낸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SF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히려 작품 세계를 넓혀가면서 표현력도 확장된 느낌을 준다. 이번 작품은 기후 재앙과 좀비가 활보하는 한반도 서울의 근미래를 그리고 있다.
AI 개발자인 박기범은 뇌에 AI 칩을 삽입하는 수술을 하고 한 달만에 눈을 떴다. 그사이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11월 14일인데도 기온 50도의 서울, 이상기후로 발생한 기후 난민들,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버린 아내 영희, 봉쇄된 아파트, 기범이 사는 스마트 아파트 밖은 이미 고온건조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 있다. 사람 뇌에 침투해 뇌 기능을 변형시켜 좀비를 만드는 바이러스도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이미 감염된 좀비들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가득 찼고, 남은 사람은 봉쇄된 아파트 주민 몇몇 뿐. 그때 느닷없이 기범의 집에 방문한 아파트 보안 요원은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영희가 아닌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남자는 나를 보자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누, 누군데 남의 집에 마음대로, 아니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명색이 첨단 보안 시스템 아파트인데 낯선 남자가 무단으로 침입하다니, 보안요원들은 대체 뭣들 하는 거지.
"아,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살아계셨군요."
남자가 턱을 문지르며 집안을 둘러봤다.
"살, 살아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죽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뭐지, 눈이 부리부리한 이 남자는? 윤 박사가 보낸 사람인가.
"아, 그게 저는 아파트 보안팀 직원입니다."(p.19)
책에 따르면 2036년 90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가 불과 20년 만에 45억 명으로 줄었다. 절반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망자 수가 전 세계 출생아 수를 빠르게 앞지르고 있다. 이제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이다. 어디서 기원한 바이러스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영구동토층이 녹은 곳에서 유출된, 수만 년 전에 묻힌 고대 바이러스와 병원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각 나라에서 모인 대표들이 UN에서 세계보건기구 회의에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난민들에 의해 퍼져나간 바이러스가 유력하다고 주장한다. 일본 환경성 대신의 말도 나온다. "당장 내 나라 국민이 식량부족으로 죽어 나가는 와중에 난민까지 수용하는 바람에 많은 나라가 더는 버텨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임계점에 도달했다고요."
회의장은 각 나라별로 자국의 상황을 설명하며 바이러스의 출처를 밝혀야 할 자리에서 자국의 상황이 나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뾰족한 대안도 없고, 바이러스 원인은 안개속으로 묻혀간다. 이때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눈썹을 들썩이며 발언한다.
"미국이나 한국 등 기후 위기에 대응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여력이 있는 나라들은 해변도시 이주민을 자국의 타도시로 이주시켰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은 이주민을 감당해 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선진국이 이들 개발도상국을 도와 난민을 수용해야 합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이 조금은 건설적인 발언을 하지만 사실 알맹이는 없는, 현상 설명에 불과하다.
"인류는 지금껏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지구 생태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지금 지구에 닥친 재앙은 인류가 지구 생태계를 파괴한 대가입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며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킨 것도 모자라 이젠 우리, 인간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인류는 모두가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극복하리라 믿습니다."(p.18)
AI 개발자 기범은 극한 상황 속에서 우연히 결성된 아파트 주민들과 부산으로 향하는 탈출을 감행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 희생, 연대 그리고 잔혹함까지 다채로운 인간 본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2056년 지구의 근미래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이나 바이러스 대책 등은 지금에서 뚜렷하게 발전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상태지만 행성 기지 건설도 아직 이루지 못했고, 그렇다고 기후 재앙을 줄이지도 못하는 등 진전을 보여주지 못해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다행스럽게 한국이나 미국 등 일부 국가만이 나름대로 꾸준한 노력으로 일시 대책을 실시하지만 그렇다고 몰려드는 이주민에는 별 대책이 없이 최선을 다해 막는 데 오히려 주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서 좀비들이 설치고 다녀도 막을 수도 없고, 이들을 모두 없앨 수도 없다. 모든 무력은 필요가 없고 또 사용해봐야 자신들에게 되돌아오는 많은 부담을 나서서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개인별로 고도로 발달한 AI 등 일부 과학기술이 집약된 첨단 아파트 안에 칩거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미 2020년 대 사용했던 방법의 연장일 뿐이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선 순간,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통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새하얀 바닥 타일이 반짝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잠시 후, 슬며시 눈을 떠보니 텅 빈 거실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거실과 마주한 주방으로 가서 컵에 물을 가득 따른 다음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 폭설이 내린 것처럼 하나같이 새하얀 타일을 붙인 100층 넘는 아파트와 빌딩이 뜨거운 태양을 조금이나마 막아주었다. 그나저나 이상하다.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p.11)
난민을 막아내기 위해 소집된 대한민국의 국무회의에서는 이미 일어난 난민의 유입을 막지 못한 자책성 발언만 난무할 뿐 특별한 대책이 없이 공전한다. 국민안전처 장관이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하늘길과 바닷길만 막았어도 불법 입국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가정 하에 왜 난민 입국을 허용했느냐는 추궁에 국방부 장관의 "···우리도 언젠가는 난민이 될 테니까요."란 자조 섞인 푸념이 이어진다. 회의장인 상황실에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회의를 주재하던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을 향해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완전 붕괴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질병관리청장의 발언이 이어지고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하··· 대한민국이 지도에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이 작품은 소설이지만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뜨거운 세상」, 2장 「출발 혹은 탈출」, 3장 「혼자가 아닌 함께」, 4장 「떠날 수 있을까?」 등이다. 2024년 현재를 기준으로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지만 여전히 한반도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다.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미군을 철수할 계획임을 알려온다. 2056년 북한은 인민들이 세계 문화를 접하면서 비밀리에 민주당을 설립하려고 하는 등 체제 전복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을 때여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장은 이를 반대하는 강력한 항의를 미국 국방장관에게 전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상황에서 한국의 형편을 봐줄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거절한다. 양국의 정상과 안보 관계자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미군 철수 계획을 논의한다. 체제를 지키려는 세력이 주축이 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위협이 존재하는 한 미군 철수를 찬성할 수 없는 한국과 미군 철수를 통보하고 사후 일을 협의하려는 미국 측의 만남은 협의할 내용이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형식상 만남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한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입장만을 간단하게 설명할 뿐이다.
"···한국이 미군의 도움 없이는 자국을 지킬 수도, 존립할 수도 없을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오랜 동맹 관계를 고려해 미국 입국을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미국이 한국을 도울 유일한 방법입니다."(p.65~66)
대한민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군 철수 계획을 돌려 세우려 했으나 이미 결정된 미국의 방침을 바꿀 힘은 없었다. 앞으로 상황은 더욱 세계의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미국은 자국 안보상 조금도 물러설 뜻이 없었다. 어쩌면 그들 말대로 '내 코가 석 자'인 형국일지도 모른다. 미국 입국은 허가해 주겠다고 한 말은 마지막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에 미국 대통령은 단호하게 한마디를 남긴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습니다. 출생률 감소를 우려했던 우리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무너질 위험에 처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의 결심에 따라 서울의 사정이 계속 악화되거나 이를 노린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 쳐들어 온다면 막아낼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여전히 북한은 핵을 가진 나라이고, 대한민국은 미국의 핵우산에서 빠져야 할 상황이라면 서로 완전이 파괴하면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지속하다 결국 동시에 무너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런 사실은 모르지만 박기범은 아내가 미국으로 이미 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자신이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며 준비를 하고 있는 차에 보안요원이 찾아온다. 여행용 가방 등 준비하는 모습을 본 보안요원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디 가느냐는 질문과 함께 그는 갑자기 아내의 거처를 묻는다. "미국에 있습니다." 남의 사생활까지 캐묻는 듯한 주제 넘은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의 답변은 생략한다. 갑자기 보안요원은 뜬금없는 제안을 한다. "잘 됐네요. 저도 같이 갑시다." "네? 뭐, 뭐라고요? 제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요?" "아뇨, 미국까지 함께 갑시다." "괜찮습니다. 저는 혼자가 편해서요. 미국에 가실 일이 있다면 잘 다녀오십시오."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보안요원은 쉽게 단념하지 않는다.
갑자기 보안요원은 박기범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함께 가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아뇨, 저는 혼자 가겠습니다." 기범도 보안요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고집이 세시군요. 박사님으로 인해 아파트 입주민들이 위험에 처했습니다. 박사님이 주차장 문을 여는 바람에 좀비들이 아파트를 점령했다고요. 감시카메라로 지켜보다 셔터를 내리긴 했지만, 일부 좀비들이 빈집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그 후로 주민 오십여 명이 사망하셨고요."
이젠 협박이다. 무엇 때문에 함께 갈 것을 요구하는지 모르지만 내키지 않은 제안을 하다 먹히지 않자 이젠 협박으로 작전을 바꾼 셈일다. 불쾌하지만 결정해야 했다. 더욱이 현실적 약점을 파고들어오는 보안요원은 왜 기범과 동행하려는지 이유를 모르고서야 함께 가기에는 미심쩍고 내키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서 1장은 막을 내린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2056년 11월 26일로 돼 있다. 약 열이틀 간 벌어지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소설 소재로 삼았다. 기후재앙과 좀비, 바이러스와 북한의 위협 등이 한데 묶여 흐트러질 뻔한 분위기를 저자 김정금은 한 곳으로 몰리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을 발휘한다. 독자들은 읽어가면서 차츰 느낄 수 있다. 스포를 염려해 사건의 흐름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 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저자 : 김정금
어릴 적부터 소설가를 꿈꿔왔지만, 삶에 쫓겨 꿈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 속에서도 가슴속엔 언젠가 이룰 꿈을 품고 살았고, 그 꿈을 2021년 소설 『고잉홈』 출간으로 이뤘다. 그 후로 『은하수의 저주(드라마 계약 체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영화 계약 체결)』를 연이어 출간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이야기로 세상과 함께할 것이다.
인스타그램 주소 @j_gold_writer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