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의 새 - 나는 잠이 들면 살인자를 만난다
김은채 지음 / 델피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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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지하실의 새』의 소설 작품이다. 표지화엔 새 한 마리가 덜렁 그려져 있다. 새 한 마리로 표현하기엔 부적절하다. 머리와 부리, 목까지만 그림 안에 들어 있는 모습이다. 그것도 옆모습이다. 약간 벌어진 부리도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모습이다. 검은색 새다. 인상적인 것은 새의 눈이다. 빨간색이 동그랗게 자리하고 있다. 잠시 '새의 눈알이 빨갛던가?' 하는 착각을 가져본다. 소설에선 흔하지 않지만 이 소설은 표제어 아래 부제도 붙어 있다. 「나는 잠이 들면 살인자를 만난다」. 섬찟하다. 표제어보다 훨씬 강렬하다. 10장(章)으로 이루어진 목차의 제목을 훑어보고 첫 장을 넘긴다. 첫 장의 제목은 「쥐도 새도 모를 새」다. '감쪽같이'란 의미로 쓰이는 관용어다. 앞의 새는 하늘을 나는 동물 '새'이지만 뒷 부분의 새는 '사이'의 준말이다. "가장 선두에 서는 새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새 박사'쯤 되는 사색인가? 뒷 문장은 주인공 김하진의 생각이 이어진다. "회색 빌딩 사이로 새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 인위적이고 정갈한 'ㅅ'을 그리는 비행, 가장 맨 뒤에 있는 새가 눈에 들어왔다. 뒤쳐져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도 아무도 모를 새. 거기에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새. 나는 꽤 자주 그런 새가 되는 꿈을 꾼다.(p.9)

주인공인 하진은 스물아홉 살의 소설가다. 최근 놀라운 스릴러물이 독자들의 큰 호평에 힘입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랐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 부제로 쓰였던 '잠이 들면 살인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하진은 매번 누군가가 참혹하게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목격자는 새가 된 하진 자신이다. 더 꿈 같은 이야기는 새이자 목격자일 뿐이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의 시체를 먹는 느낌조차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가해자와 일심동체인 듯한 감정이고 감각이다. 꿈에서 깨어나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꿈속의 상황이나 느꼈던 감각 등이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진은 꿈속의 이야기를 모두 다 소설로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처음엔 악몽이라고 치부했던 사건들이지만 점점 이상한 것들이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 꿈속에 봤던 사건들이 어디선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본 사건을 소설로 썼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하진은 유명 인사가 됐다. 그런데 소설 속 사건과 실제 일어난 사건이 놀랍게도 정확하게 일치한다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이 사실은 범인으로 하진을 지목할 수밖에 없다. 사건 현장에서 채집된 단서 등이 소설 속 내용과 일치한다면 우선 의심이 될 것이다. 거기다 범인만이 알 수 있는 것을 소설 내용에 담겼다면 혐의자가 아니라 용의자 혹은 범죄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터다.



꿈과 현실이 분간이 안 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실제 경험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문학 작품, 특히 스릴러나 미스터리에서는 단골 소재다. 꿈은 현실일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은 꿈은 현실과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꿈에 대해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대단히 많다고 한다. 고대 학자나 철학자들도 꿈에 관심이 많았고 학문적으로 연구도 했지만 과학적 근거를 찾을 때까지는 수백~수천 년을 기다려야 했다. 최초로 과학적 토대 위에서 연구한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프로이트 이전의 학자들은 대부분 꿈의 형상들은 그저 외부 자극들의 흔적이거나 무의미한 연상작용일 뿐 그 자체가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과학 의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꿈꿀 때의 표상활동 역시 각성시의 표상활동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인간의 정신활동이며,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규칙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프로이트가 신경질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연구 분석한 결과 히스테리 환자들의 자유연상 과정에서 꿈에 관한 이야기가 집요하게 반복되어 나타난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마치 최면에 빠진 것처럼 자신의 꿈을 말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의 꿈 이야기 속에 그들의 억압된 기억이 섞여 나오는 것을 알아챘다. 굳이 최면을 통해 환자를 몽유 상태에 빠지게 하지 않고도 환자의 억압된 심리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를 찾은 것이다. 『꿈의 해석』은 프로이트 연구의 결정판이다. 이는 고대부터 계속되어온 '해몽서'의 현대적 판본에 불과하다는 폄훼를 받기도 했다. 도대체 과학을 뭘로 아느냐는 과학주의자들의 비웃음과, 광인의 세계를 이성의 세계로 식민화했다는 탈근대주의자들의 비판 사이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과학'은 어정쩡한 곳에 위치한 것처럼 보였다. 제목에 명확히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프로이트는 꿈을 '해석해야 할 텍스트'로 간주한다. 마치 성서에 숨겨진 신의 뜻을 해석하듯이 꿈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태고로부터 유전되거나 관습적으로 굳어진 상징을 분석할 때도 결코 꿈을 꾼 사람에게 떠오르는 연상을 무시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프로이트의 꿈 해석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이 여기에 있다. 꿈을 꾼 사람의 말, 연상, 자기 해석과 분리해서 '저기'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꿈 텍스트란 없다는 것. 거기다가 분석하는 사람의 해석과 현재의 분석 상황까지 포함하여 구성되는 것이 바로 꿈 텍스트라는 것이다. 당시 프로이트의 과학관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물리학적 과학관을 선취한 것이다. 『꿈의 해석』은 1900년이라는 출판 연도가 상징하는 것처럼, 19세기 실증과학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20세기의 과학정신을 가진 책이다.(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이 책 『지하실의 새』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뿐만 아니라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란 소설도 생각나게 한다. 『변신』은 세일즈맨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자신의 몸이 이상하게 변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몸이 어느 사이에 무수한 다리를 지닌 한 마리 커다란 벌레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분명히 꿈은 아니었다. 그가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알고자 찾아온 가게 지배인은 그 이상스러운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가고, 어머니는 졸도하고, 아버지는 방안으로 쫓아 버리고 문을 닫았다. 가족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그레고르였으나 이제는 가족들한테 미움을 받고,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등을 맞아 그 상처 때문에 식욕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누이동생이 켜는 바이올린 소리에 끌려 옆 방으로 기어갔다. 그 결과 이상스러운 그의 존재가 하숙인에게 알려져 그는 방안에 갇혀야만 했고, 식사는 누이동생이 날라다 주게 되었다. 그는 천장에 매달리는 것으로 겨우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가족들도 이제 그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상처가 더욱 악화된 것과 이제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어느 이른 아침,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죽어 갔다. 가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랜만의 화사한 봄볕을 받으며 교외로 소풍을 나갔다. 성숙한 딸의 몸짓을 보며 아버지는 이제 좋은 사윗감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하실의 새』와 『변신』의 차이점은 분명해 보인다. 전자는 꿈속의 '나'와 현실의 '나'는 육체적 외양이 다르다. 꿈에선 새이고 현실에선 멀쩡한 스물아홉 살의 작가이다. 후자는 꿈속 인물처럼 주인공의 신체가 현실로 변한다. 그래서 카프카는 현실의 부조리와 관념 속 이상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비해 김은채의 『지하실의 새』는 현실의 '하진'이 꾸는 꿈속의 주체는 '새'이며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감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꿈속에서 목격한 모든 것을 현실에서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하진은 10살 이전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럼 하진의 10살 이전의 기억의 망각, 꿈속의 새, 그리고 현실의 나의 관계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진 것일까? 



하진의 기억으로는 보육원에 들어간 것도 10살, 떠난 것도 10살이었다. 기억의 첫 줄은 보육원 수녀가 하진의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가던 그때부터이다. 10살 이전의 기억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면서 보육원에서의 짧은 생활은 기억하고 있다. 기억이 시작한 당시 하진은 온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났고, 수녀는 그런 하진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복도를 걸었다. 수녀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하진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수녀는 하진을 곧장 욕실로 데리고 갔다. 욕실은 넓고 또 샤워기도 여러 개 있었다. 욕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진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추운 게 아니었다. 기억 없이 몸만 알고 있는 공포감이 몸에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벙어리처럼 단순한 표현조차도 못하는 상태였다. 얼추 목욕 준비가 되자, 수녀가 하진의 옷을 벗겼다. 그제야 하진이 입던 옷이 얼마나 낡고 지저분한지 또 얼마나 앙상했는지가 알게 됐다는 점을 기억해 낸다. 수녀는 회색 수녀복이 진하게 물들어 가는 것도 무시한 채 묵묵히 하진의 몸을 닦았다. 수녀는 앙상한 하진의 몸 위로 샤워 타월을 문대며 말한다.

"하진아, 이제부터 여기서 지내는 거야."

"······."

수녀가 '하진'이라고 부른다. 자신도 모르는 이름을 수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름을 아느냐고 묻진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당분간 밖에는 나가지 말고 여기에 있거라. 여기엔 네 친구들도 있고 또 필요한 건 다 있어."

"······."

역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수녀의 움직임에 맞춰 찰랑거리는 십자가만 빤히 바라봤다. 수녀도 딱히 하진의 대답을 바란 것 같지는 않았다.



이후 보육원 측에서 하진을 서둘러 입양시킨다. 입양된 곳에서의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처음 입양되었을 때는 그래도 비교적 편안한 느낌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꿈속인지 현실인지 기억도 어슴푸레한 '안 좋은 기억'들 뿐이다. 20살 성인이 되던 해 양부모가 죽었다. 금실이 좋았던 양부모는 자신들의 결혼기념일을 꼬박꼬박 챙겼다. 그 기념으로 여행을 갔다가 덤프트럭과 충돌하여 길에서 즉사했다. 즐거운 시작과 다르게 허망한 끝. 비록 잉크와 종이 쪼가리로 맺어진 부모 자식 사이였지만, 슬펐다. 내 겉모습에 쉽게 애정을 주고 또 쉽게 외면하기도 했지만, 쉬웠던 애정처럼 쉽게 버리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슬펐다. 하진이 길바닥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덕분인 것은 분명했다. 그들이 하진의 울타리였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인지했다. 그것마저 완전히 없어지자 울타리 안에 망아지는 고삐가 풀렸다.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뱃사공이 돌려 보냈다. 그렇게 죽음의 코앞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내가 살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승의 뱃사공 대신 정신과 의사를 마주했다. 의사는 좋게는 유쾌한 사람이었고, 나쁘게는 가벼웠다. 

"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운동만한 게 없어요."

하진은 이번에는 살해범 의혹을 받고 있다. 분명 하진은 사람을 살해한 적은 없지만 자신이 그 살해 현장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독자들은 알고 있다. 꿈속에서 새가 되어 범행을 목격했고, 그것을 그대로 소설로 옮겼을 뿐이라고. 그러나 그러나 사건의 수사가 시작되자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이를 테면 시체 유기 장소 등)을 정확하게 소설에 쓰고 있으니 수사관이나 일부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가 사람을 살해하고 그 장면을 소설로 써서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빠져 나올 수 없는 용의자이다. 여론의 비난마저 높게 일자 하진은 변호사에게 의뢰한다. 이 소설의 첫 머리 부분에서 새에 대한 단상은 변호사 사무실에서다. 자신의 변호를 의뢰한 최강운 변호사. 그는 살인자 변호로 유명세를 탄 사람이다.



수상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지겹도록 눈에 거슬리는 스티커 한 장. 소설가 김하진에게 보이는 것과 새가 된 하진의 시선으로 목격하는 장면 사이의 부조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부른다. 『지하실의 새』는 꿈과 현실이 뒤엉켜 아이러니하게 조합되며 답답하면서도 숨 막히는 조용한 스릴러의 미묘한 세계를 창조하고, 묵묵히 끌어간다. 누군가 이 악몽의 날개를 꺾어 주길 바랄 뿐이다. 소설 작품이니만큼 더 이상의 줄거리나 대화 등에서 언급은 어렵다. 다만 힌트를 말한다면 '꿈의 해석'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하느냐와 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범죄나 수사와 아무 관련이 없다 등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의사도, 형사도, 변호사도 모두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자신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관한 주인공 하진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이다. 물론 그것은 저자 김은채의 몫이고 독자들은 읽기만 하면 된다. 단 상징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10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에는 제목이 있다. 대부분 새와 관련되어 있다. ① 쥐도 새도 모를 새 ② 현실과 꿈, 사이에 올빼미 ③ 예정된 조우 ④ 처음 만난 오래된 친구 ⑤ 얌전한 뻐꾸기의 울음 ⑥ 낮게 나는 새 ⑦ 올빼미의 낮 활동 ⑧ 새장 ⑨ 마지막 의례 ⑩ 날지 않는 새 등이다. 


꿈을 꿨다. 새가 되지도 않았고, 새장에 갇히지도 않았다. 나는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호수 근처를 걸었다. 그렇게 얼마간 걷다가 자리를 잡고 호수에 발을 담갔다. 호수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아래는 죽은 사람도 걸쭉한 피도 흐르지 않았다. 그저 맗고 투명한 물 속에 내가 비쳐 보였다.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 사이에서 피비린내 대신 기분 좋은 새소리와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생애 처음으로 꾸는 '평범한 꿈'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팔 안쪽에 딱지가 앉았다. 비행은 끝났다. 새는 더 이상 날지 않는다.(p.248)


저자 : 김은채


필름 영사기가 돌아가는 영화관에서 자랐다. 연령 제한 영화도 제한 없이 마음껏 보며 키와 함께 이야기에 대한 애정도 키워 나갔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성장하고 연결되는 힘을 몸소 경험하고 방송작가로 일찍이 업을 정했다.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퇴근 후 영화 시나리오, 문학, 에세이 등 분야를 불문하고 글을 쓰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 질경이 같은 성격 덕에 스토리 작가로 스릴러 웹툰 「홀더」를 연재했다. ‘이야기를 기획’하는 사람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기분 좋은 흔적을 남기고 싶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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