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년여 전 우리는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을 떠나보냈다. 평생을 우리와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던 고(故) 이어령 선생은 아직도 우리 가슴속을 떠나지 않은 듯 수많은 저서들이 재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생이 평생 쓴 저서나 논문, 글들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듯 몇 권의 책을 냈는지, 몇 편의 논문을 남겼는지도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끊임없이 재출간되는 그의 저서들은 아직 그가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많은 기억들을 소환해 준다. 그리고 그의 글들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을, 또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성찰하게 해준다. 이 때문에 타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란 것은 자연스럽다. 

이 책 『만남』은 선생의 배우자로 70년을 해로한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이 남편인 고 이어령 선생에 관해 쓴 에세이다.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독자는 이어령 선생의 책은 많이 읽었지만 한 번도 그의 얼굴을 직접 뵌 적은 없다. 배우자인 강인숙 관장은 책으로도 만난 적이 없다. 독자보다 한 세대 윗분들인 데다 이어령 선생이 대학 교수직을 여대에서 했기 때문일까? 책으로, 혹은 공직에 있을 때 영상 등으로 만난 이어령 선생의 이미지는 단정하고 조금은 고지식한 듯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문인이고 학자인 이어령 선생을 직접 뵌 분들은 모습 그대로의 인연에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는 아무래도 글로써, 책으로써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났으리라 본다. 배우자가 본 이어령 선생의 모습은 어땠을까? 사뭇 궁금하다. 부부는 대학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고 70년을 함께 살았다. 주위에서 70년을 해로한 부부를 찾기란 쉽지 않아서인지 부부 사이가 살갑고 애정이 깊었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동갑내기 부부이자 친구이자 연인으로 일평생을 함께해왔다. 이 책의 저자인 강인숙 관장은 남편에 대해 사적인 글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저자 역시 문학평론가이자 교수이기도 하다. 독자가 과문한 탓이리라 생각하지만 강인숙 관장도, 남편 이어령 선생도 부부나 가족 관계의 사적인 이야기는 책으로 쓴 적이 없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이 점도 부부가 닮았다. 이어령 선생의 글은 많이 접했고, 책도 적잖게 읽었지만 강인숙 관장의 책은 읽은 적이 없으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와의 70년 역사(사생활)를 정리해 보기로” 결심하고 이 책을 썼다고 〈머리말〉을 통해 밝힌다. 이어령 선생과 동갑내기인 저자 역시 이미 고령이다. 평생 쓰지 않던 신상과 그와의 만남 등 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낸 것은 아마도 저자의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이어령 선생과의 70년의 삶에서 알려지지 않은 모습들을 담아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훗날 누군가가 이어령 선생의 평전을 쓰거나 회고할 때 정확하게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부부가 모두 사생활에 대해 글을 잘 남기지 않았으니 사적인 이야기는 부부 아니면 알 수 없을 터, 부인인 강인숙 관장의 기억의 끝머리에서 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 책은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표제어에 쓰인 '만남'을 설명하고, 이 책의 성격을 압축한 문장을 첫 면에 실었다. “까까머리를 막 기르고 있는 대학 신입생의 모습으로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이름을 안 것은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던 것 같다. 머리가 짧아 얼굴이 네모로 보였다. 무언가가 안에 꽉꽉 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모습······. 호기심에 빛나는 눈이 눈부셨다." 

저자는 이어령 선생이 스무 살 때 처음 자신 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아흔 무렵의 그가 투병 끝에 운신하지 못하게 된 모습이 안쓰러워 “마주 잡고 큰 소리로 통곡했”던 이별의 시기까지, 함께 울고 웃었던 70년의 세월을 이 책에 담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 〈부록〉에는 특별히 이어령 선생의 넷째 형과 외사촌 누나가 쓴 글을 함께 수록하여, 저자가 잘 알지 못하는 이어령 선생의 어린 시절과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보충하기도 했다. 또한 이어령 선생이 부인 강인숙 관장에 대해 쓴 글 한 편도 수록했다. 이 글은 「정복되지 않는 네모꼴의 신비」란 제목의 글이다. 이 글 한 편이 유일하게 아내 강인숙에 대한 글이라고 이 책에 끼워넣었다. 이 글은 사실 경기여고 100회 졸업생 축사의 글이라고 한다. '경기 졸업생을 아내로 둔 모든 이들에게'란 작은 글씨의 부제가 붙어 있다.(저자는 이 글이 아내에게 점수를 가장 후하게 주었다고 말한다. 일상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은 타입이어서 아내에 대해 쓴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가장 가까이에서 산 사람”으로서 보고 느낀 이어령 선생을 최대한 윤색하지 않고 충실히 기록하고자 한 노력의 기록이자, 그만큼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자 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70년이 농축된 기록은 진한 사랑이 느껴지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라기보다는 차분하고 담담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함께한 삶의 무게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감의 깊이만큼, 담담한 문장에도 진한 사랑과 감동이 우러나오는 것은 독자의 감정이 이입된 데 따른 것일 터다. 저자는 그 자연스러운 여운이 독자들에게도 가닿기를 바랄 뿐이다. "이어령 선생을 미화하거나 영웅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였지 행정가나 정치가나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창조하는 부분만 빼면 그냥 보통 사람이죠. 결점과 장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인간mortal 말입니다. 다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창조의 붓을 놓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 속에 이어령이라는 한 인간의 온 무게가 다 실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기 일만 외곬으로 하다가 떠난 한 예술가를,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윤색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인간의 약점은 뒤집어보면 장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스러운 점이기도 하지 않습니까."(p.9~10)

저자가 집필을 결심하고 가족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면서 가장 기술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이어령 선생의 어머니에 관한 부분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어령의 세계를 해독하려면 어머니를 알아야 하는데, 저자는 한 번도 어머니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해 이어령 선생의 집에 들어가기 14년 전에 어머니는 이미 타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어령 선생은 가족의 일상을 전혀 글로 적지 않았지만 유독 어머니에 관한 글은 많이 남기셨다. 이어령 선생이 한국의 전통이나 민족성, 문화적 독창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여러 표현과 묘사를 독자도 자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어령 선생의 글에 나타나 있는 어머니상과, 집안에 내려오는 에피소드를 통해 어머님의 인품을 가늠해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충분한 시간도, 체력도 없어지면서 이젠 이마저도 불가능해지는 세월이 곧 올 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모든 힘을 다잡아 기력을 다해 글을 썼다고 말한다. 자신마저 세상을 뜬다면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에서 증언을 남긴다는 의미로 집필을 했다고 밝힌다. 또 이 과정에서 부부란 '나눌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실감했다고도 고백한다.



이 책은 모두 3부와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에는 2~5장(章)으로 나누어 모두 14장으로 구성됐다. 1부에는 「이어령을 기른 흙과 바람」, 「네오필리아와 김치」, 「이어령과 어머니」, 「아버지 이어령의 두 가지 소원」, 「이어령과의 만남」, 2부에는 「모놀로그와 다이얼로그」, 「장관 이어령의 희한한 이벤트들」, 「이어령과 골프」라는 제목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이어 3부에는 「1955년과 '이상론(李箱論)」, 「문학사상」, 「『축소지향의 일본인』 태동기」가 게재됐고, 마지막 〈부록〉에 「어린 날의 기억들」, 「나의 자랑스러운 고종사촌」, 「정복되지 않는 네모꼴의 신비」 등이 각각 각각 담겨 있다. 

저자는 우선 자신과의 ‘만남’ 이전의 이어령의 시간부터 살펴나간다. 생전에 이어령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뿌리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조심스레 조명한다. 집안과 지역적 환경, “행복한 막내 도령”으로 자랐던 어린 시절, 열한 살 무렵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몰아친 불행, 고독과 설움 속에서 견딘 사춘기 등 ‘이어령의 세계’를 이룬 축과 토대가 된 삶의 궤적들을 정리했다.

부부는 사실 대학 시절 만나 인연을 맺고 70년을 해로했다. 저자는 대학 시절 그와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전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보았던 그에 대한 첫인상. “‘작품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사무적인 말로 끝나는 평범한 글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건 아우성이고 함성”이었던,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그때 비로소 하게 되었”던 그의 첫 편지를 받았다고 회고한다. 다방을 아지트 삼아 종일 온갖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던 연애 시절. 너무나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결혼 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셋방이라도 자기 집이 생기니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기뻐했”던 그의 모습의 이야기도 담았다. 그리고 그가 많이 아플 무렵엔 “저녁때마다 ‘오늘도 살아 있어 고마워요’ 하고 감사 기도를 하면서 하루치씩 견”디던 세월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부부 사이를 가로지르는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먹먹했던 삶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밖에 이어령 선생이 창간한 기념비적 문예지인 『문학사상』의 탄생과 운영 비화, 한국 학자가 쓴 일본에 대한 책으로서 일본 열도에 큰 돌풍을 일으킨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집필 과정, 문화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창의적 퍼포먼스를 기획했던 이어령 선생의 예술가적 집념을 담은 일화 등 이어령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겨 있다. '연인의 자리, 아내의 자리'는 1부 마지막 장(章) 「이어령과의 만남」의 작은 항목의 제목이다. 이 글에서 저자와 이어령 선생과의 서울 셋방살이 시절을 회고한다. 이에 따르면 극장과 다방을 돌면서 5년이라는 밀착된 세월을 공유했는데, 내가 야간에 나가고 있어서 밤에만 같이 있으면서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선생은 주말에도 원고가 밀려서 느긋하게 쉴 시간도 많지 않았다. 바빠서 밤에 나를 데리러 오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도 나도 생활인이 된 것이어서, 바쁜 것은 당연했다. 놀 시간이 주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는 이제 한 가정을 끌고 나갈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는 곧 임신을 했고, 현대평론가협회가 활성화되어 그는 강연과 미팅을 하느라고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드디어 혼자 나다니는 '바깥사람'다워진 것이다. (중략) 

이어령 씨는 본래 추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게 안 되는 사람을 만나면 입을 봉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결혼을 하니 나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곧 임신을 했고, 그는 차차 혼자 나다녔다. 그러면서 임신한 아내를 위해 네이블오렌지 같은 것을 사 나르는 소시민적 남편이 되어갔고, 나는 서투른 솜씨로 김치를 담그는 초보 주부가 되어갔으니, 우리의 대화에는 지상적 요소가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정은 일상적인 장소여서 저기에서는 아이의 배탈, 지붕의 누수, 집안의 경조사 같은 것들이 대화의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내 지상적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그는 장난으로 '인생고'라고 이름 지었다. 하지만 '새것 주고받기' 부분은 그때도 남아 있었다. 새 책을 읽을 때라든가 새 영화를 볼 때면 우리는 다시 토향 다방 시절처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문화의 모든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괴테의 광물학이나 색채학에 대한 관심이 깊은가 하면, 최근에는 『파이 이야기』(얀 마텔)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공자님의 노년에도 관심이 많아서, 화제의 폭이 엄청나게 넓다.(p.138~139)



『문학사상』 장(章)은 독자가 가장 재밌게 읽었다. 『문학사상』은 독자도 많이 사본 잡지이기도 하고, 당시 제정한 〈이상문학상〉은 올해로 47회를 맞는 것 같다. 첫 수상자가 1977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이란 작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무진기행』이란 작품에서 얻은 정보이다. 순 문학잡지라고는 〈현대문학상〉 정도였을 때이니 인기도 높았을 터다. 이 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이다. 이청준 〈잔인한 도시〉, 박완서 〈엄마의 말뚝〉,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은희경 〈아내의 상자〉, 신경숙 〈부석사〉, 김훈 〈화장〉,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등 전후 한국문학을 다진 쟁쟁한 작가들이 총망라됐다. 『문학사상』은 한국문학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주간이 이어령이었다는 사실은 이 책 『만남』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문학사상』과 관계를 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굉장한 이목을 끌었던 잡지다. 창간 당시 주간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창간사를 썼다고 한다. 

특히 저자 강인숙은 창간호 표지화가 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였다고 한다. 구본웅이 그린 그 그림은 이상을 그린 것이라는 사실이 그 무렵에 밝혀져서, 세인을 놀라게 했다는 에피소드는 우리 문단의 에피소드로 길이 기억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문학사상』 창간호는 무려 5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당시 잡지가 5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사실은 우리 국내 뉴스로만 그칠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문단에서도, 학계에서도 어떤 그룹이나 파(派)에 나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은 성격이어서 문학지의 성격이나 문학상 수상작 결정에서도 『문학사상』의 성격에 따라 엄격하게 추구되고 관리된 데서 최고의 인기 잡지로 단숨에 뛰어올랐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 문학에의 열정 그리고 올곧은 심성에 감사드리고 싶은 생각이다. 


저자 : 강인숙


문학평론가, 국문학자. 1933년 10월 15일(음력 윤 5월 16일) 사업가의 1남 5녀 중 3녀로 함경북도 갑산에서 태어나 이원군에서 살다가 1945년 11월에 월남했다. 경기여자 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으며, 1958년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퇴임 후 영인문학관을 설립했다.

저서로는 논문집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도시와 모성』『김동인』『자연주의 문학론 1 · 2』, 수필집 『언어로 그린 연륜』『생과 만나는 저녁과 아침』『겨울의 해시계』『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아버지와의 만남』『어느 고양이의 꿈』『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문명기행 내 안의 이집트』 『셋째 딸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의 『25시』『키랄레사의 학살』과 에밀 아자르의『가면의 생』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영인문학관 관장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