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상자
김정용 지음 / 델피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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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출근하는데 집 앞에 내 이름이 적힌 붉은 상자가 놓여 있다면 상자를 열어 볼까? 이 책 『붉은 상자』는 아주 단순한 질문을 시작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 주인공 최도익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상자를 받는다. 보낸 이가 쓰여 있지 않은 작은 붉은 상자에는 의문의 쪽지만 하나 덜렁 들어있을 뿐. 발신인은 물론 주소도 없고, 심지어는 송장도 없이 택배 상자의 모습으로 덩그러니 문 앞에 놓인 상자. 별 생각 없이 열어본 상자 안에는 밑도 끝도 없이 쪽지만 달랑 놓여 있다. 최도익은 내용은 찜찜했지만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기에 시험장으로 출발한다. 그때부터 그의 앞에 이상한 일들이 자꾸 펼쳐지며 미스터리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넘보는, 작가 김정용이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상자’를 출간했다. ‘붉은 상자’는 택배 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미스터리의 한복판으로 이끌며, 종횡무진 펼쳐지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대한민국은 택배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음식부터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택배로 못 받는 물건이 없다. 원래 우리 사회에서 '배달'이란 음식 정도만 집 앞 혹은 집 안까지 배달해주는 일을 의미했다. 음식은 집 안까지 배달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 배달도 지금처럼 모르는 음식점보다는 믿을 수 있는 음식점, 자신이 직접 가봤던 음식점을 배달해 달라고 했던 일이다. 다른 물건은 우체국을 통해 '소포'를 전달해주고, 수령했다는 수령 증명서에 사인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 점이 가능한 것은 소포 배달은 우체국이란 국가 기관에서 공무를 담당하는 우체국 직원이 배달하는 것이어서 믿을 수 있어 비싼 요금을 치러야만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것이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음식점에 직접 가서 주문하고 그곳에서 먹는 음식을 사람 밀집 지역의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소포 배달과 음식 배달이 택배업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금 우리 민족이 배달(倍達)이라는 용어로 지칭되었기에 여러 단어와 합성되어 근대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이때 배달의 연원은 단군(檀君)의 단을 박달 혹은 배달로 부르는데 기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달'이란 단어도 '배달의 민족'이란 말도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러던 것이 우리의 산업화 시대에 점심 시간도 아껴 일해야 하는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신조어로 음식 배달이란 '배달(配達)'과 동음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때까지 배달이란 우리 민족의 또 다른 별칭으로 사용되었었다. 이 용어와 똑같은 발음인 '배달(配達)'로 전환시킨 사람이 있다. 중국음식은 빨리 만들어 싸고, 양도 많아 우리나라에서 특화돼 발전된 '짜장면'의 배달로 매우 적합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대부분의 소규모 업체나 가난한 학생, 현장 노동자들이 밥 먹으러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아끼려고 중국집 짜장면 등 배달 주문을 시작했다. 배달의 민족이란 용어를 통째로 빌려다가 택배 전문업체로 발전시켜 업계 1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배달의 민족'의 사장도 입지전적 인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는 외국인이 많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노동 임금이 싸기에 음식점은 음식값만 받고 배달해주는 제도가 정착될 수 있었다. 이런 서비스가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자 특수 호황을 맞았다. 사람과의 접촉이나 대화 등을 통해 감염되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서 생활의 모든 물품을 배달해주는 제도로 확대된 것이다. 이제 택배는 큰 시장을 형성한 산업군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살다 보면 아파트에는 문 앞에 택배 상자가 늘 하나둘쯤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이든 내 이름이 쓰인 상자가 놓여있으면 으레 누구나 집안으로 들고 들어와 뜯어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상자에 섬뜩한 쪽지 한 장뿐이라면? 이 책 『붉은 상자』는 조건반사적으로 상자를 열어보는 요즘 같은 비대면 시대를 날카로운 미스터리로 풀어내 독자들의 머리칼을 쭈뼛 서게 만든다. 한국식 미스터리에 매우 적합한 소재가 될 가능성에 공감한다. 저자는 이런 사회 문화에 익숙한 시대에 “그때 그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더라면···.”이란 여운을 남기는 멘트로 독자들을 미스터리 세계로 안내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알게 되지만 붉은 상자를 받은 것은 단지 도익만이 아니다. 소설이 전개될수록 다른 곳에서도 붉은 상자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그 존재를 드러낸다. 붉은 상자를 받은 것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공시생 최도익, 체대 준비생 민정희, 순댓국집 아줌마처럼 보통 사람들을 통해, 운명에 저항한다고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운명의 상흔을 처참하리만큼 날카롭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시에 지금 눈앞에 펼쳐진 사건들을 추적하면서 그것이 단순히 운명적으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얼키설키 얽힌 또 다른 사건이 숨겨 있음을 슬며시 내비친다. 저자가 미스터리 소설을 작정하고 구상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상자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려 애써보지만 의문의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더욱이 형사는 도익을 강력한 사건 용의자로 지목하고 그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이 소설을 위해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독자를 오리무중의 세상으로 이끈다. 즉 꿈의 세계다. 단순히 악몽도 아니지만, 깨고 나면 개운하지 않은 꿈. 그것도 깨면 다행이지만 깬 것인지, 꿈속의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생생한 꿈. 그마저도 한두 번이 아니라 꿈을 꿀 때마다 똑같은 상황이 나타난다면... 꿈속의 상황이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여기서 저자가 쓰는 방법은 꿈속에서의 '가위 바위 보 게임'이다. "도대체 언제 시작된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이 무의미한 듯 보이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모두들 계속해서 주먹만 내고 있다는 점이다. 보자기를 내면 이긴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나조차도 계속해서 주먹만을 내고 있다. 이기는 게 두려운 걸까? 아니면 언제 시작된지조차 모르는 이 미친 가위바위보가 끝나버리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그러는 사이, 이들 중 한 명이 보자기를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상상만으로도 침이 마르고 등골이 시큰해졌다. 뇌에서는 보자기를 내라고 다급하게 신경 세포들을 자극해댔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주먹만을 내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자기를 내려 해도 꽉 쥐어진 주먹이 펴지질 않았다."(p.9~10)



현실이 어쩌면 운명이라고 저자는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이 일련의 꿈속 현실을 꿈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롤로그〉 속의 화자인 '나'는 이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보자기를 내는 법 또한 알지 못한다고 표현한다. 운명인가? 꿈인가? 아니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인가? 독자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갑자기 무리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동요가 일어난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여러 개의 눈동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모여 있는 손과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여러 개의 주먹 사이로 보란 듯이 쫙 펴져 있는 손바닥이 보인다. 재빨리 누가 보자기를 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누가 보자기를 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자는 다시 강조한다. 이것은 꿈이다. 재빨리 손의 감각을 느껴보려 애써봤지만,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내가 낸 건 주먹일까? 보자기일까? 아니면···. 모두들 나와 같은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무슨 수를 쓰든,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운명은 운명적으로 작동한다. 최도익이 아무리 발버둥친들 운명은 그 버둥거림조차 운명이라 비웃는 듯하다. 자신의 운명을 걸고 붉은 상자에 얽힌 운명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운명적 이야기, 그것이 바로 미스터리 소설 『붉은 상자』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붉은 상자 속의 쪽지에 적힌 내용은 무언인가? 송장이 없어 보낸 이도 주소도 없다. 다만 최도익이란 이름과 주소만 적혀 있을 뿐이다. '시험 날 아침부터 참···' 속으로만 되뇌이고 쪽지를 읽어본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와 절대로 대화하지 말 것>. 쪽지를 보자마자 최도익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절친인 영운이 녀석이다. 이런 짓을 하고도 남을 놈이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난다. 괘씸한 생각해 전화를 걸어 따지려다가, 그렇게 하면 결국 녀석의 장난에 놀아나는 꼴이니 아무런 반응도 않기로 하고 최도익은 상자째 분리수거함에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선다.



이 소설 작품 『붉은 상자』는 짧은 〈프롤로그〉 외에 15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험의 날」 「폭우」 「173」 「연결 고리」 「만남」 「악연, 혹은 인연」 「막다른 길」 「엄습하는 그림자」 「약한 고리」 「지독한 안개의 밤」 「거미줄」 「벼랑 끝에서」 「방향 전환」 「그리고」 「다시」 15개의 제목을 열거해놓고 쭈욱 살펴도 제목간 연결 고리가 별로 없다. 그냥 각 장의 핵심어를 나열한 것일까? 마지막에 〈에필로그〉가 짧게 첨부돼 있다. 긴 사건을 돌아와 마지막에 쓴 〈에필로그〉에도 다서가 될 만한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주먹만 내는 가위바위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따. 이 게임의 끝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허깨비처럼 흘러갔다. 그러다 누군가 보자기를 냈고, 그것으로 작은 동요가 일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보자기를 낸 것이 나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보자기를 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핵심은 우리를 가둔 이 운명이라는 ㄲ무을 부수고 나갈 수 있는 첫 번째 꿈틀거림이 시작됐다는 데 있다. 보자기는 그 출발점이다. // 확실한 것 하나는 언제나 보자기는 주먹을 이긴다는 사실이다. // 붉은 상자는 다시 돌아온다."(p.285)

이 소설은 작중 '나'가 현실인가 꿈속인가를 헛갈리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최도익은 물론 등장하는 많은 인물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건 속에서 해결하려 해도, 무시하려 해도 결국은 휘말리게 되고 급기야 최도식은 살해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저자의 말대로 꿈속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의 일을 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꿔지지 않고 정해진 대로 진행되기 마련이다는 점은 '운명'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현실적 현실을 부딪쳐 이겨내고 극복하는 자체가 우리의 삶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위해 독자들은 저자가 마련한 장치와 복선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모든 것을 포기하면 결국 아무것도 얻어내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듯.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특수한 임무를 갖거나 특별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극히 평범한 우리들 삶과 비숫하게 사는 것에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에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저자의 집필 취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심지어는 저자가 깔아놓은 복선도 찾아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는 순간부터 독자는 저자와 추리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붉은 상자 때문에 평생을 숨어다녔다. 가족은 부서졌고,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면서 도망자처럼 살아온 인생이었다.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이 생기면 도망쳤고, 정들면 아반도주했다. 운명이라 생각했고, 사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전부 쓸데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다. 운명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충돌해왔다.(p.158))


말이 공개수사지 진행 과정, 수색 범위, 그리고 수사 대책까지 전부 매스컴을 통해 납치범에게 낱낱이 알려주는 바보짓이다. 어리숙한 유괴범이면 조여 오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조급해지겠지만, 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는 놈이라면 상황이 얼마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지 알고서 만세를 부를 것이다.(p.180)


전부 운명이라면 제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는 일 아닐까? 게다가 발버둥 치는 것까지 정해져있다면, 그런 거라면…… 이렇게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p.255)


“아무리 애를 써도 정해진 것은 바뀌지 않아. 물론 바뀐 것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언제나 같지. 그러니 헛심 쓰지 말라는 말이네.”(p.272)


저자 : 김정용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이후 소설가, 희곡작가, 작사가, 연출가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재주의 소유자.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문득, 멈춰 서서 이야기하다]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뮤지컬 [사이드 미러]의 대본을, [라이팅 핸즈], [만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덩굴져 펼쳐지는 이야기] 등의 대본과 연출을 담당하였다. 또한 [그대로 머물다], [난민] 등의 가사를 작사하고 다수의 독립영화와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2023년 장편소설 [서커스 물개]를 출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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