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강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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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 고 이어령 선생이 타계한 지 2년이 넘었다.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순 없지만 그가 남긴 책이나 육성 강연을 통해 여전히 우리는 그를 만나기를 원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 외에도 그가 평생 책을 쓰고 강연을 해온 덕분이다. 이번에 독자가 선택한 책은 『이어령의 강의』다. 독자는 선생이 남긴 책은 여러 권 읽었지만 강의나 강연에 참석한 일은 한 번도 없기에 이 책은 더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선생의 힘찬 강연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선생은 평생 인문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가르치며 인문학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것을 발굴해 가르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혔다. 선생의 생전 모습을 그리며 우리는 여전히 그의 지혜를 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생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지적 유영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까지 세상에 남을 이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생명 자본주의, 디지로그 등을 제시하며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와 이 사회가 살아남을 방법을 가르쳤다. 독자로서는 다소 낯선 단어들이지만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알고자 한다. 이 책은 이어령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다. 선생의 수많은 강연 중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10편을 가려 모았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떴다 떴다 비행기”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서울대학교 입학식 축사(2008)부터 ‘생명 자본주의’를 이야기한 한국선진화포럼 월례 토론회(2010), 그리고 “검은 카메라 렌즈” 앞에서 비대면으로 치러진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 축사(2021)까지, “전 세기의 모순과 문제를 떠안은” 채 “새 패러다임을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이어령 선생이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역시 독자에게는 처음 들어본 강의 내용이다. 선생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강연의 주제와 가르침의 본뜻을 헤아려본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장은 다른 시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청중들에게 지혜를 전달한다. 1장 〈마스크 한 장〉, 2장 〈‘뜨다’에서 ‘날다’로〉, 3장 〈여기, 즐거운 대학이 탄생한다〉, 4장 〈학문의 수원지가 마르고 있다〉, 5장 〈대학생의 창발력, 그리고 새로운 길〉, 6장 〈젊은이들의 생명 의식〉, 7장 〈가슴 뛰는 창조의 힘, 세종〉, 8장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의 공간〉, 9장 〈삶을 이끄는 컴퓨팅과 신체성의 법칙〉, 10장 〈닫고 열고 넘어서는 디지로그 세상〉 등이다. 이 가운데 첫 장 〈마스크 한 장〉이라는 제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1년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 수여식 축사」이다. 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집회나 대중이 모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전 세계가 공포에 떨며 나날을 숨 죽이며 보내던 때이다. 졸업식 축사라면 당연히 현장에 가서 해야겠지만 엄혹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대신했다. 

이날 축사를 통해 선생은 "좋든 궂든 여러분은 비대면 강의를 듣고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그룹에 속한 졸업생입니다. 역설적으로 디지털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앞당겨 학습하게 되었고, 동시에 살결 냄새 나는 오프라인의 아날로그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을 겁니다"라고 말머리를 꺼낸다.

그는 이어 "여러분은 디지털 공간의 '접속'과 아날로그 현실의 '접촉'이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로 '융합'하는 '디지로그(Digitak+Analog) 시대'를 살아갈 주역이 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청중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더욱이 대학 졸업식 청중들은 누가 뭐래도 자신은 물론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이기에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을 실현시킬 도전 정신과 위기 극복 의지력을 갖추기를 강조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여기에 선생은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기침 하나가 내 일상을 뒤집어놓는 상황도 겪었다"고 전제하고 그 영향으로 어떤 물질적 가치보다 생명의 내재적 가치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순간 물질 자본으로 전환하는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 이어령은 늘 '창조'의 세상을 동경했다. 또 창조의 세상에서 살았다. 누구나 창조를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실제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청년들을 가르쳤다. 지(知)의 최전선에서도 언제나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선생은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당부했다. “배운 것을 취합해서 묻는 것”이라는 학문의 본질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끝없이 질문”하며 학문을 갈고 닦았고, 제자들과 이 시대 청년들에게 꾸준히 강조했다. 저자는 “이 물음이 창조의 하나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종래의 패러다임을 바꿔” 뜨는 것에 그쳤던 우리의 삶을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도, “지혜는 지식 속에서, 지식은 정보 속에서” 죽어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창조의 공간〉이란 제목의 「2009 동아방송예술대학 석좌교수 특별강연」에서 저자는 '창조'의 정의부터 차분하게 말을 꺼낸다. "창조란 뭐냐. 그것은 넘버원이 되는 게 아닙니다. 창조에는 넘버원이 없어요. 창조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중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항상 창조는 하나예요. 즉, 온리원(only one).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원이 돼야 한다는 거죠."라며 창조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이들을 격려한다. 

"여러분은 사실상 어렸을 때 전부 천재들이었어요. 왜? 끝없이 물었어요. 어머니한테 묻고, 아버지한테 묻고, 사람들한테 물었는데 그 물음을 누가 죽였나요? 어른들이 다 죽여버린 거예요. 내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그 학생들이 주부가 되어서 아이를 낳았지요. 그 학생들이 가끔 저를 찾아와서 서로 아이 키우는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얘, 너희 애도 그렇게 묻냐?'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물어. 귀찮아 죽겠다.'"(p.276) 저자는 자신의 제자들도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아이의 호기심과 관심을 모두 외면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창조 행위, 즉 예술을 하기 위해 예술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저자의 귀중한 한마디는 결코 지나쳐버려서는 안 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여러분이 나이가 들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질문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어른들은 새가 왜 우냐고 어린애들이 물으면 답변을 못 하면서도 부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인간의 모든 창조는 질문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저자는 이와 함께 '문화의 힘', '언어의 힘', '예술의 힘'이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앞서 나갈 수 있는 창조의 비밀을 밝히기도 한다. 창조는 바로 ‘눈물’과 ‘외로움’을 딛고 일어선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가슴 뛰는 창조의 힘, 세종〉이라는 제목의 이 강연(「2009 세종대학교 특별강연」)에서 세종대왕도, 아인슈타인도, 퀴리 부인도 울부짖음과 상처가 있었기에 위대한 발명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통과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우리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임을 강조한다.

"세종대왕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퀴리 부인, 이러한 천재들을 죽여왔느냐를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게 창조적인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창조적인 사람을 따돌리고 못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결국에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에 창조적인 발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p.236) 


배움과 창조를 통해 젊음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전하지만, 결국에는 ‘생명’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선생의 '생명 의식'이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창조해도 그 안에 '생명의 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세대의 젊은이들을 ‘생태 교류’를 통해 교감하는 종족이라고 표현한다. 신체감각을 활용해 개발된 아이폰(iPhone), 위(Wii) 등을 사용하고, 영화 〈아바타〉를 보며 지구인보다는 '나비족'의 편을 드는 세대. 선생은 이 세대가 기계와 산업이 '당연시된 현 문명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생명 중심으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물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주장한다. 선생은 현대 사회를 생명 중심의 사회가 아닌 생명 경시의 사회로 보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생명에 굶주려 있습니다. 살고는 있는데 사는 게 아닙니다. (…) 자기가 살아 있다는 걸 체감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입니다. 피가 분출되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 존재를 느낍니다. 그들의 일상에서는 자아가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게 아날로그 결핍증이 낳은 병폐입니다." - 「젊은이들의 생명 의식」 중에서



마지막 장 〈닫고 열고 넘어서는 디지로그 세상〉은 「2009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융합포럼」에서의 발제이다. 선생은 생명으로 가득한 세상을 꿈꿨다. “리빙(living)을 라이프(life)로” 바꾸고 “산업 기술이나 기계 기술의 패러다임, 금융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생명 시스템으로 바꾸”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선생은 “평범한 생명의 생동력을 사랑하고, 울고 환호하는 생생함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을 만들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모든 것은 계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컴퓨터나 과학이라는 이름 밑에” 의존하지 말고 “38억 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 축적된” 자연의 지혜를 배우며, 이를 인간의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함을 역설한다.


과학을 맹신하는 사람이 인간의 지혜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만들고 나서 보니 그 결과는 괴물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자연이 만든 생명체는 아름다움과 조화가 있는데 인간이 만든 생명체는 괴물에 불과했던 것이죠. 1백 년, 2백 년밖에 안 되는 인간의 과학기술로 만든 생명이 신이 만든, 적어도 38억 년 동안의 긴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생명과 비교가 됩니까. - 「닫고 열고 넘어서는 디지로그 세상」 중에서


마지막까지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남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삶을 살기 바랐던,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 이 책 『이어령의 강의』를 읽으면서 그의 지식의 방대함에 놀랐고, 세부적이고 꼼꼼하게 거의 전 학문을 엮어내는 솜씨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리고 단편적인 단어에 숨어 있는 뜻과 그 말을 어떻게 살려내는지에 대한 영감도 받았다. 이 책은 언제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나아갈 방향을 잘 잡아 열정적 노력으로 잘 살아가기를 소원했던 그의 진심이 전해져 독서의 보람도 느꼈다.

이어령 선생이 강연 중에 했던 "아마도 10년 후, 20년 후 나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 여러분은 필록테테스처럼 마지막 영광의 승리를 가지는, 상처와 함께 당당하게 트로이전을 승리로 이끄는 그런 숨은 활의 재능들을 꽃 피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을 기대하면서, 그것이 실현되리라 생각하면서 여기에서 오늘 이 이야기를 마칩니다."가 오늘 독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된다.



앞으로는 생명 자본주의가 온다는 겁니다. 금융자본주의는 돈 넣고 돈 버는 것이고, 산업자본주의는 기술 넣고 기술 버는 것이죠. 이제는 감동을 넣고 감동 상품을 만들어내는 생명 자본주의가 온다는 겁니다. 이 생명 자본주의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컴퓨팅이 바로 생명 자본주의에 이바지할 때에 컴퓨터와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게 신체성입니다. (중략) 이런 지구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물이 자연과 함께 지내려면 원폭이 떨어져도 살아남는, 공룡보다도 더 오래 산, 지구의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바퀴벌레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 이런 것들이 바로 앞으로 산업이나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는 것이 컴퓨터와 신체성을 관심, 관계, 관찰의 마지막 항목으로 삼아달라는 이유입니다.(p.334) - 「삶을 이끄는 컴퓨팅과 신체성의 법칙」 중에서


저자 : 이어령(李御寧)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성의 오솔길』 『젊음의 탄생』 『한국인 이야기』, 문학평론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문명론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가위바위보 문명론』 『생명이 자본이다』 등 16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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