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외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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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과 나무에 대한 시인들의 사유가 담겼다. 독자는 시와 꽃을 모두 좋아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꽃을 예찬한 시는 모든 시인이 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시인은 꽃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독자들에게 '꽃의 말'을 전해준다. 어쩌면 꽃은 시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매개체일지도 모른다. 이 시집의 표제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도 미선나무의 꽃말이라고 한다. 미선나무는 열매의 모양이 부채를 닮아 미선(美扇)나무로 불리운다는 설도 있다. 191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후 유럽과 일본으로 건너가서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훌륭한 조경수로 귀한 대접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나무라고 한다. 현재 미선나무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충북 괴산의 송덕리·추점리와 영동읍 외곽지대인 용두봉이며, 최초 발견된 진천군 초평리 자생지는 지난한 한국현대사와 함께 많이 훼손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준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미선나무는 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서 자란다. 높이는 1m에 관목이고, 가지는 끝이 처지며 자줏빛이 돌고, 어린 가지는 네모진다. 잎은 마주나고 2줄로 배열하며 달걀 모양 또는 타원 모양의 달걀형이고 길이가 3∼8cm, 폭이 5∼30mm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둥글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전년에에 형성되었다가 3월에 잎보다 먼저 개나리 꽃모양의 흰색 꽃이 총상꽃차례로 수북하게 달린다. 연분홍색의 꽃이 달리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않다. 노란색의 개나리꽃은 향기가 없지만 미선나무의 꽃은 향기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미선나무의 종류는 흰색 꽃이 피는 것이 기본종이다.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을 분홍미선(for. lilacinum), 상아색 꽃이 피는 것을 상아미선(for. eburneum),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것을 푸른미선(for. viridicalycinum), 열매 끝이 패지 않고 둥글게 피는 것을 둥근미선(var. rotundicarpum)이라고 한다.<사진 아래 참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꽃과 나무를 모티프로 희망과 사랑을 노래한 국내외 유수한 시인들의 명시를 엄선한 시선집이다. 김승희 시인의 「미선나무에게」를 비롯하여 서른세 명의 시인들이 각양각색으로 변주한 꽃과 나무들이 독자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미선나무에게」를 쓴 김승희는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는 시인이다. “시인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에 감응하는 존재”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시는 위안부 할머니, 밀양 덕천댁 할머니와 김말해 할머니, 5·18과 4·16 엄마들 등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을 기억한다. 시인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사랑의 봄을 안다”고 하며 이 “봄은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 앞에 봄꽃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끝이 없다”는 말에서 우리는 기억하는 행위를 간파한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미선나무에게」는 각별한 울림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기억해야 할 것이 무언지 일깨워 준다.


이 봄에 나는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누구에게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처럼

1인분의 사랑의 말을 누군가에게 하려는 것이다

동백에게 못한 말을 매화에게

매화에게 못한 말을 생강나무에게

생강나무에게 못한 말을 산수유에게

산수유에게 못한 말을 산벚나무에게

앵두나무,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철쭉에게

이 봄에 나는 누군가에게 해야 할 사랑의 고백을

어딘가에게 고백해야 한다(p.15)


- 김승희 「미선나무에게」 중에서



토머스 무어의 「아몬드꽃」을 읊조리다 보면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생각난다. 평생 정신질환으로 불운한 삶이지만 예술에의 열정은 누구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했던 화가다. 그의 그림은 당대에 팔리지 않아 가난하게 살았지만 현재 그의 그림은 수천억 원을 웃돌 정도로 높게 평가받는다. 토머스 무어(1779~1852)는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이국적 정서가 넘치는 페르시아의 설화시 〈랄라루크〉로 유명해졌다. 정치적 풍자시와 애국적인 시집을 남겼고, 〈잉글랜드의 파지가(家) 사람들〉 등 영국인에 대한 유머러스한 풍자시로도 유명하다.


불행할 때

행복한 때를 꿈꾸면 희망은 

잎 없는 가지에 피는 

은빛 아몬드처럼 싹튼다네(p.37)


- 토머스 무어 「아몬드꽃」 전문



비운의 시인 로르카는 시인에게 꽃이 없다면 아픔과 희망을 무엇에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시인으로 재판도 없이 사살당한 로르카는 아카시아, 달리아, 장미, 백합, 재스민, 석류나무, 인동덩굴 등 각양각색의 식물을 모티프로 삼아 죽음이 그것으로 끝이라면, 그래서 그 죽음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하면서 슬픔 속에 희망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소련의 스파이”라는 죄목이었다.(그의 친구들 몇 명이 공산주의자들이었다는 것) 로르카는 이상하리만큼 인기가 있었다. 특히 그가 『집시 이야기 민요집』을 내고 스페인 국가 문학상을 받으면서부터 인기가 대폭발하였다. 로르카의 비극적 죽음은 그의 시를 미국에서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의 위치로 올려는 데, 그리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막상 로르카의 좋은 시들은 시인의 설명처럼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향기로운 아카시아는 질투하고 

달리아는 거드름 부리고

감송은 한숨지으며 사랑을 말하고

축일의 장미는 웃음을 말하고

노란색 꽃은 미움이고

빨간색 꽃은 분노이고

흰색 꽃은 결혼을 뜻하고

자줏빛 꽃은 수의를 뜻한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아카시아꽃」 전문



“데이지꽃을 믿듯 세상을 믿는다”라는 페르난두 페소아, “죽음을 거부하는” 오월의 꽃 전령사 에밀리 디킨슨,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의 빨강 카네이션을 찬미하는 엘라 윌러 윌콕스까지, 서른세 명의 시인들이 읊는 50편의 시를 담은 이 시집은 우리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은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뜻깊은 기회를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국내 처음 소개되는 여성작가 안나 마골린은 절망의 아스팔트에서 백합처럼 온화한 꽃을 피우는 자신을 상상하며 희망을 살린다. 그리고 엘라 윌러 윌콕스는 희망이 있어야 성실할 수 있고, 성실해야 헬리오트로프의 꽃말처럼 헌신할 수 있다고 노래한다. 그에게 꽃은 바라보아야 시들지 않으며, 카네이션에는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이 잠들어 있다. 이 또한 애도를 거친 기억의 흔적이다.

'장미'는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인 향으로 손꼽힌다. 이미지 때문일까, 화려함 때문일까 장미는 '꽃 중의 꽃'인가 보다. 이 시집에도 장미를 소재로한 시가 많다. 일리엄 셰익스피어의 「장미꽃에 관한 소네트 구절 모음」(p.44), 노자영의 「장미」(p.55), 로르카의 「가을의 노래」(p.73), 아틸라 요제프의 「어른거리는 장미」(p.76), 윌리엄 블레이크의 「병든 장미꽃」 등이 등장한다. 


모든 장미꽃들이 희다.

내 아픔만큼 희다,

눈이 내렸을 때만 희다.

전에는 장미꽃들이 

무지개를 입고 있었다.

영혼에도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가을의 노래」 중에서



꽃과 나무가 필요하지 않은 때가 없지만 지금은 특히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꽃은 “인생의 서리를 지기엔 너무 약하다”고 하지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의 시인들은 꽃을 가슴에 품고 시를 통해 위로를 주는 힘이 있는 매개체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슬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더욱 그런 시가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을 읽다 시대 정신을 가다듬기에 더 없이 좋은 시 한 편이 이 시집에 들어 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이 시인을 가장 좋아한다. 일제 강점기 한국시사에 영원히 기억될 만큼 절개를 보인 시인다. 윤동주만큼이나 좋다. 


항상 앓은 나의 숨결이 오늘은

해월(海月)처럼 게을러 은빛 물결에 뜨나니

파초 너의 푸른 옷길을 들어

이닷 타는 입술을 축여 주렴

그 옛적 사라센의 마지막 날엔

기약 없이 흩어진 두 날 넋이었어라

젊은 여인들의 잡아 못논 소매 끝엔 

고운 손금조차 아직 꿈을 짜는데

먼 성좌와 새로운 꽃들을 볼 때마다

잊었던 계절을 몇 번 눈 위에 그렸느뇨(p.53)


- 이육사 「파초」 중에서



저자 : 김승희(金勝熙)

1952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됐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작가프로그램 (IWP),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포스카리 대학교의 체류 작가를 지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어바인 캠퍼스 등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고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등이 있고,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과, 산문집 『33세의 팡세』,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등을 썼다. 연구서로 『이상 시 연구』, 『현대시 텍스트 읽기』, 『코라 기호학과 한국시』, 『애도와 우울(증)의 현대시』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저자 : 이육사(李陸史, 이원록, 이활)

본명은 ‘원록’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독립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7년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 「교목」, 「절정」, 「광야」 등을 발표했다. 1943년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저자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년 그라나다 지방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대지주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이 되던 1918년 로르카는 그라나다를 떠나 마드리드로 간다. 그는 그 후 10년 동안 마드리드 국립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같은 해에 첫 작품이자 시적 산문집인 『풍경과 인상들(Paisajes y Impresiones)』을 출간한다. 1920년에 희곡 〈나비의 저주〉를 무대에 올렸으나 청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1921년에는 『시집(Libro de poemas)』을 출간함으로써 공식적인 시인이 되었다. 1927년에는 역사극 〈마리아나 피네다(Mariana Pineda)〉를 무대에 올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로르카를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로르카로 인식시킨 작품은 시집 『집시 로만세(Romancero Gitano)』(1928)였다. 1929∼1931년 시기에 그는 뉴욕에서 몇 달을 보내며 현대 도시의 날카로움을 경험했다. 유럽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신세계의 도시 분위기는 로르카의 내면에 초현실주의에 대한 강한 욕구를 불어넣었다. 시집 『뉴욕의 시인(Poeta en Nueva York)』과 〈관객〉은 거의 같은 시기에 뉴욕과 쿠바에서 초현실주의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써내려 간 것이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은 시민전쟁에 돌입했다. 로르카는 시인이자 고향 친구인 루이스 로살레스의 집에 피신했다가 그라나다 국민전선 사령관에게 체포되었다. 1936년 8월 20일 새벽, 청색 하늘 아래 로르카는 임시감옥에서 끌려 나와 비스나르와 알파카르 사이에 있는 벼랑에서 재판도 없이 처형당했다.


역자 : 이루카

서울에서 태어나 브루클린과 마드리드에서 성장했다.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여성과 소수자 문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는 옮긴이의 첫 번역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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