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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평점 :
일본은 '추리소설 강국'으로 이름 나 있다. 지금처럼 애니메이션(만화)이나 영상물이 없던 시대부터 추리소설은 일본 문학의 한 장르로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독자는 예전에 추리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았기에 일본의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읽지 못했던 책을 최근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추리소설을 몇 편 읽게 됐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지금도 예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도 추리소설이 최근 대세로 자리 잡은 판타지물과 함께 본격 출간되기 시작함으로써 어쩌면 일본 못지 않은 추리소설 붐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하는 바람도 갖고 있다.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일본의 추리소설과 우리의 추리소설을 최근 몇 편씩 읽었다.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양에서 일본의 추리소설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만 해도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것을 넘어설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우리의 추리소설도 예전에 비해 엄청 늘어난 느낌이다. 신간 안내를 통해 살펴 보아도 추리소설 범주에 들어간 것이 매일 들어가 있을 정도다.
이 책 『속임수의 섬』은 일본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특히 저자는 '유머 미스터리' 소설의 1인자라고 알려져 있다. 추리소설 초보 독자로서는 '유머 미스터리'란 단어조차도 낯설다. 추리든 미스터리든 모두 극적 긴장감이 굉장히 중요한 요건인데 '유머'라니···. 유머는 긴장히 해소된 상태에서 제대로 이해가능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유머와 추리소설은 '모순적' 단어 조합이 아닐까? 이에 답이라도 하듯 이 책은 히가시가와 도쿠야 특유의 유머 미스터리 소설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일본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지만 이 작품 『속임수의 섬』은 한국에서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라고 하니 독자들의 기대가 더욱 클 듯하다. 이 소설 작품은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흥행하기 전부터 저자가 구상한 작품으로, 여러 개의 트릭을 사용했다는 점과 모순이 없는 미스터리를 쓰고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로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출판사(북다) 측은 전한다.
일본은 알다시피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큰 섬 4개 외에 그에 딸린 섬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무대인 외딴섬과 독특한 모양의 저택, 거액의 유산과 관련된 유언장 개봉으로 오랜만에 모인 가족, 기이한 살인사건, 폭풍우로 고립된 섬, 마침내 하나둘 밝혀지는 진실까지 극적 요소를 충분히 갖춘 전형적 추리소설의 요인들로 꽉 차 있다. 노련한 저자의 추리소설 능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저자가 오랫동안 구상한 이 소설 『속임수의 섬』에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많아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일본 최대 서평 사이트인 〈독서미터〉에 1,000개가 넘는 리뷰가 올라오는 등 현지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특유의 유머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화가 빛나는 소설로, 오랫동안 그의 소설을 즐겨 온 독자는 물론 이 책으로 처음 도쿠야 월드에 발을 내딛는 독자도 모두 감탄하며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소설 외적인 부분, 즉 활자를 좌우로 배치하는 등의 기교와 저택의 설계도 같은 그림을 자세히 소개하는 등 의외의 그림도 동원한다. 모두 독자들의 이해와 추리를 돕는 데 사용하고 있지만 꼭 그림이나 활자를 이용한 추리를 하는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 기법도 선보인다. 사실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이 글(문자)로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서 사건에 접근하게 독자들을 유도하고 추리하게 해야 하는데 저자의 기법은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할 불가피한 요인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제시하고 추리력과 기억력 등을 동원해 범죄 등 미스터리 사건을 풀어가는 소설도 이미 일본에서는 선보였다. 처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독자도 얼마 전 일본 추리소설 작가 우케쓰의 『이상한 그림』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분명 추리소설의 새로운 형식이다. 독자로서 새로울 뿐이지 저자 우케쓰는 이번 책이 두 번째 '그림 소설'이라고 했다. 일본어로 출간한 일본 소설이지만 세계 공용어인 그림이 추리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 추리소설 독자들의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원래 추리소설이 범인이나 용의자의 심리, 제스처 등 세밀한 부분의 묘사가 많기 때문에 번역할 경우 맛이 좀 떨어지는 것을 독자들은 감안하고 읽는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이나 오류를 줄이는 데는 전 세계 공용 언어가 더 호소력이 클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 우케쓰는 『이상한 그림』이라는 추리소설로 출판계는 물론 독서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실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란 짐작도 독자로서 해본다. 크게 틀린 짐작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이에 비해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유머 미스터리’라는 특출한 영역을 개발하여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 아리스가와 아리스로부터 “저도 모르게 빙긋 미소를 짓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했고, 시리즈 통상 380만 부가 판매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졌지만 『밀실을 향해 쏴라』, 『살의는 반드시 세 번 느낀다』, 『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교환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여 온 작가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 『속임수의 섬』은 작가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그동안 그가 쓴 작품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고 분량도 길다. 외딴섬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2008년에 발표한 『저택섬』과 연결되지만, 기본 설정만 같을 뿐 모든 면에서 전작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기묘한 건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고립된 섬이라는 배경은 범인의 범행 및 은둔 공간을 섬 전체로 만들면서 ‘밀실’의 범위를 넓혔다. 자연 환경마저 트릭의 요소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겨 준다. 유언장 개봉을 위해 모인 열네 명의 등장인물이 선보이는 캐릭터 쇼도 소설의 커다란 재미다. ‘유머’가 장기인 작가인 만큼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마구 터지는 실소는 오직 히가시가와 도쿠야만이 펼칠 수 있는 무기다.
주요 등장인물은 유언장 개봉을 위해 외딴섬에 모인 출판 명문 사이다이지가(家) 사람들이다. 섬의 유일한 건축물이자 돔 모양 전망실을 갖춘 별장에서의 하룻밤이 지난 다음 날, 이들은 오랫동안 행방불명되었다가 20여년 만에 다시 만난 쓰루오카의 시체와 마주한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온 태풍으로 꼼짝없이 섬에 갇히고 만다. 이후 섬에 ‘공중에 떠 있는 빨간 귀신’, ‘도깨비 가면을 쓴 수상한 인물’이 차례로 나타나 혼란이 가중된다. 이에 유언장 개봉을 담당한 변호사 야노, 그리고 쓰루오카를 찾아 섬에 데려온 사립탐정 고바야카와가 경찰 대신 사건을 수사하지만 난항을 거듭할 뿐이다. 그러던 중 오래전 이 섬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섬과 가족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진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살인사건이 23년이란 시간 차이를 두고 발생한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듯 보였던 토막 이야기들, 여기 얽힌 인물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 등이 하나둘 쌓이더니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어 마구 휘몰아친다. 작가는 이 모두를 영리하게 배치해 둠으로써 독자를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얼떨결에 사건 해결을 맡은 야노와 고바야카와 콤비는 혼란이 가중되는 와중에서도 조금씩 진실에 다가서고, 마침내 한 지점에서 두 사건이 완전히 겹쳐진다.
“그, 그 빨간 도깨비는 도깨비 가면을 벗고 벼랑에서 바다에 떨어졌다. 아까 우리가 들은 비명은 그자가 떨어질 때 지른 거였다. 그런 거겠죠?"
사야카의 질문에 다카오는 벌떡 일어나서 벼랑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게 볼 수 있는 상황이군. 발이 미끄러져서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내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23년 전 사건 때와 완전히 똑같은 전개인데. 정말로 그럴까?”(p.274)
이 작품 『속임수의 섬』에는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요소가 꽤 많이 있다. 특히 소설의 무대가 되는 외딴섬과 기묘한 저택은 클로즈드서클 미스터리의 스케일과 품격을 한층 높인다. 여문 것은 미스터리만이 아니다. 때로는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 주고, 가끔은 사건의 정곡을 찌르는 역할을 하는 유머가 절정에 도달한다. 삼중, 사중의 복선을 빠짐없이 회수해 가는 작가의 노련함이야말로 놓쳐서는 안 되는 이 소설의 묘미다.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지금껏 40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지만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다. 이 소설 『속임수의 섬』에서는 드디어 그만의 매력이 절정에 달해 보인다.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저자의 신작이 유독 반가운 것은 한층 견고하고 두터워진 히가시가와 도쿠야 월드의 진면목을 읽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독자들은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에 대해 많이 알겠지만 우리 독자들은 그의 책이 많이 번역되지 않아 비교적 적은 수의 독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출판사 측은 파악하고 있다. 출판사는 저자의 이번 신작 발표를 통해 그와 그의 작품을 더 널리 알리고 한국 독자과 추리소설 지망생들에게도 즐겁게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번 책 번역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의 역자 김은모에 따르면 저자 히가시와 도쿠야는 장편 미스터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었으나, 어느 날 카파-원(Kappa-One) 등용문'이라는 콘테스트에 참가해 보라는 출판사 관계자의 권유를 받고 장편을 썼다. 미스터리 장편의 저작에 능통하지 못한 저자는 살인사건과 단서를 찾는 과정 사이사이에 '유머'를 섞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장편 데뷔작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이다. 그의 '유머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행로는 그때 이미 정해진 것으로 역자는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후 2010년 발표한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가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면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간간이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는 했다. 그중 『저택섬』(현대문학, 2011)은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외딴섬에 있는 기묘한 저택(육각형)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마다 소지의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시공사, 2009)에 영향 받았다고 한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든 이 작품은 『속임수의 섬』의 전편에 해당될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
"아야츠지 유키토는 자신에게 본격 미스터리란 '분위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고 역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히가시가와 도쿠야에게 본격 미스터리란 '유머'다고 단언한다. 미소, 폭소, 실소와 함께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깜짝 놀랄 트릭과 진상이 독자의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중요한 복선과 단서는 '유머' 속에 담겨 있다.(p.477)
사야카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시선 끝에 인간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구체 전망실이 보였다. 불이 켜진 전망실에서 누군가가 움직였다.
틀림없다. 누군가 전망실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
사야카는 입술을 떨며 탐정에게 물었다.
“고, 고바야카와 씨…… 버, 범인은…… 대체 누구예요?”(p.381)
저자 : 히가시가와 도쿠야(ひがしがわや, 東川 篤哉)
1968년 히로시마 현 오노미치 시에서 태어났다. 오카야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카메라 제조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지만 26세가 되던 해에 그만두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면서 틈틈이 단편소설을 쓰던 중, 2002년 『밀실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작품으로 데뷔했고, 많은 독자들에게 완성도 높은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이카가와 시를 무대로 한 미스터리 소설을 연이어 선보이며 ‘유머 본격 미스터리’라는 그만의 독특한 작풍을 완성했다.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 등장인물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소설은 아슬아슬한 엇갈림, 대담한 트릭 등의 촘촘하고 탄탄한 구성으로 예상치 못한 결말에 이르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저서로는『밀실을 향해 쏴라』『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여기에 시체를 버리지 마세요』 『어중간한 밀실』등이 있다.
역자 : 김은모
일본 문학 번역가. 1982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도중 일본 미스터리의 깊은 바다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테후테후장에 어서 오세요』,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여자 친구』를 비롯하여 아시베 다쿠의 고바야시 히로키의 『Q&A』, 미치오 슈스케의 『투명 카멜레온』, 『달과 게』, 『기담을 파는 가게』, 이사카 고타로의 『화이트 래빗』, 『후가는 유가』 야쿠마루 가쿠의 『우죄』, 고바야시 야스미의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지넨 미키토의 병동 시리즈 『가면병동』, 『시한병동』,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 『프리즘』, 미야베 미유키의 『비탄의 문 1, 2』,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 『마안갑의 살인』을 비롯하여,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지나가는 녹색 바람』, 『검찰 측 죄인』, 『달과 게』, 『성스러운 검은 밤』, 『열대야』, 『밀실살인게임』, 『사이언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