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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2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평점 :
2권은 다혜의 대학 졸업 이후로 들어간다. 민우는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출소 후 이모가 운영하는 술집 〈나이아가라〉에서 일하며 지낸다. 이미 순수한 청년 민우는 악에 물들어가고, 자신의 자존감과 내면이 무너지는 것을 알아챈다. 그럴 때마다 술과 담배는 늘어만 간다.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혜와의 함께 산다는 것도 아련한 꿈이었을 뿐 기억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술과 마약, 방탕한 생활은 계속되니 일상이 없다. 일상이 없으니 내일도 없다. 하루하루 그저 생물학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젊은 나이의 청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간다. 그러나 작가는 다혜와 민우의 마음속 사랑은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채 시도 때도 없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기억이라는 것이 아름다울수록, 현실이 힘들수록 슬픔으로 다가오는 법. 두 사람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친구가 바로 현태다. 민우는 한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현태를 도와줬고 현태는 그런 민우에게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친구니까 빚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사라진 민우를 현태가 가장 적극적으로 찾는다. 그를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현태의 마음속은 그렇다고 믿어지지만 사실 작가의 표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민우와 다혜의 사랑을 방해한 사람은 다름아닌 현태와 은영(제니)이다.
현태는 친구의 연인인 다혜를 사랑하게 됐다. 친구의 연인을 가로채는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현태의 사랑의 마음까지 빛이 바래게 할 수는 없었을까? 저자의 마음을 짐작할 만한 단서를 소설 속에서 찾아내지 못한 독자의 속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다혜를 의정부 기지촌으로 데리고 간 사람이 현태다. 민우의 망가진 민낯을 보게 해서 첫사랑의 환상을 깬 것도 현태다. 반면 다른 방해꾼 제니(은영)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민우를 바란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자해하고, 상상임신으로 민우를 자기 곁에 옭아매려고 한다. 결국 성적으로 유혹해서 아이를 가짐으로써 민우를 옭아매는 데까지 성공한다.
또 민우의 성격도 요즘 청년 같지 않다. 매우 유약하다. 다혜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혜 앞에서 유약해진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순수함을 지녔으니 당시 시대상으로는 '좋은 남자'였을지 모르겠다. 독자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 심정을 잘 안다. 이런 사람이 연애에 실패하면 오히려 스스로 타락하고 자신을 더럽힘으로써 연인을 보내려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민우를 '피리부는 소년'이라고 부르던 현태는 사랑 앞에 친구를 걷어찬 꼴이 아닌가. 민우는 다혜와의 만남을 현태를 통해 완강히 거절한다.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진 민우가 자신감도, 자존감도 모두 잃었다는 증거다. 이제 이야기는 민우는 순수한 다혜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로 흘러간다. 고민하고 멀어져가게 된다.
다행히 소설은 '다혜의 예감'을 통해 하나의 복선을 드러낸다. 다혜는 민우의 내면이 어두워서 왠지 선뜻 그와 사랑한 만큼 맺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친구인 현태가 방해가 될지는 생각하지 못한 다혜. 예감일까, 아니면 작가 최인호의 소설 구성의 스킬일까. 현태의 배신적 행위가 당시 사랑의 모습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돈과 여자를 위해서는 '친구'는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당시는 사회 분위기 상 전혀 아니고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는 다혜는 영리하지 못한 것이다. 젊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우리(아날로그 세대)가 꿈꾸던 사랑 이야기을 어떻게 들을까? 미련하거나 혹은 바보이거나? 민우의 죽음은 '다혜와 현태의 결혼' 이후에 발생한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보다 이 소설을 지금 젊은 세대가 읽는다면 감동할까? 아날로그 독자로서는 그것이 더 궁금하다. 독자는 아날로그 세대로서 소설의 끝이 '해피 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경험과 그때의 사회 분위기, 연애 감정을 안다면 대부분 독자와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이 책이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삽화가 너무 현대적이라는 것. 물론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읽히기를 원하는 출판사 측의 결정이겠지만 삽화의 그림이 남녀 주인공 모두 현대적 감각이어서 소설의 내용과 조금 덜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애절하고 비극적 연애, 사랑의 느낌을 주기 위해 갸날픈 느낌의 '청순가련형'을 묘사하려는 의도인 줄 알지만 너무 만화 같은 느낌의 삽화가 이때의 느낌을 아는 아날로그 독자에게는 오히려 낯설다.
소설이 마지막으로 치달으면서 독자의 감정은 오히려 푹 내려앉았다가 알 수 없는 슬픔이 깃든다. 민우의 아들(제니와의 사이에 낳은)을 안고 현태와 다혜 부부가 안고 무덤을 찾는 일에서다.
현태가 무덤 위를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처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민우야. 너무 늦었다. 너무 네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용서해다오."
현태는 무덤가에 앉아서 손으로 무성한 잡초를 쓸어내렸다. 그리고 무덤 주위를 돌면서 봉분 주위로 웃자란 잡초들을 뜯어냈다. 마치 그렇게 함으로써 옛 친구에 대해 속죄라도 하는 듯이.
소년은 소나무숲에 앉아서 물끄러미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중략)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하고 그토록 생각하고 그토록 기도하던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그 사람이 저 무덤 속에 있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 아름답던 젊음은 저 무덤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헛간 속에 채집되어 있다.
그 사라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옛날을 말하던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2권 p.324~325)
저자 : 최인호(崔仁浩)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근대와 현대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시기의 왜곡된 삶을 조명한 그의 작품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으로서, 청년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한 시대를 담당해 왔다.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소설 『가족』을 연재하여 자신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앙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가족』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연작소설이지만 우리 인생의 길고 긴 사연들이 켜켜이 녹아있는 한국의 ‘현대생활사’이다. 1990년대 들어서부터는 우리의 역사에 천착하며 한민족의 원대한 이상에 접목하는 날카로운 상상력과 탐구로 풍성한 이야기 잔치를 열어왔다. 197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화제가 되더니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또 얼마 뒤에는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인기를 모은다. 이후 「술꾼」, 「모범동화」, 「타인의 방」, 「병정놀이」, 「죽은 사람」 등을 통해 산업화의 과정에 접어들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변동 속에서 왜곡된 개인의 삶을 묘사한 최인호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 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스티스 작가’, ‘퇴폐주의 작가’, ‘상업주의 작가’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간지와 여성지 등을 통해 『적도의 꽃』, 『고래 사냥』, 『물 위의 사막』, 『겨울 나그네』, 『잃어버린 왕국』, 『불새』, 『왕도의 비밀』, 『길 없는 길』과 같은 장편을 선보이며 지칠 줄 모르는 생산력과 대중적인 장악력을 보여준 최인호는 2001년 『상도』의 대성공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으며 거듭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르인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가져 『바보들의 행진』『병태와 영자』『고래 사냥』 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희극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그 만의 독특한 시나리오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렇게 꾸준한 관심의 결실로 1986년엔 영화 「깊고 푸른 밤」으로 아시아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분야들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길을 보여주었다.
〈샘터〉지에 34년 6개월 간 연재한 '가족'을 건강상의 이유(2008년 발병한 침샘암 투병중)로 2010년 2월을 기해 연재중단을 선언하였다. 2010년 1월에는 죽음과 인생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을 담은 에세이집 『인연』을 출간하였고, 2010년 2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투병 중 집필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하며 등단 이후 왕성하게 활동을 했던 ‘제1기의 문학’과, 종교·역사소설에 천착했던 ‘제2기의 문학’을 넘어, ‘제3기의 문학’으로 귀착되는 시작을 알렸다. 이 소설로 2011년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암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되어 2013년 9월 25일 오후 7시 10분에 향년 68세로 사망하였다.
소설집으로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개미의 탑』, 『위대한 유산』 등이 있으며,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해신』, 『유림』,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수필집으로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의 인생』 등이 있다. 작고 이후 유고집 『눈물』, 1주기 추모집 『나의 딸의 딸』, 법정스님과의 대담집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문학적 자서전이자 최인호 문학의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작품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세 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 네 번째의 유고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와 5주기 추모작 『고래사냥』이 재간행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출판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 ‘아름다운 예술인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