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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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던 독자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에 앞서, 책의 소개글을 보려 대형 온라인 서점을 찾았다. 제호에 쓰인 문구를 입력하고 나서야 이 책의 초판본이 1993년 출간된 사실을 알았다. 저자 역시 독자에게는 낯설어서 약력을 찾아 읽었다. 저자 오세영은 이제 70세 가까운 오랜 작가 생활을 해온 분이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직장 생활을 한, 지난 30년 간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지냈다. 읽은 책이라고는 업무와 관련되거나 베스트셀러로 널리 알려진 책 10권(일년 기준) 미만이었지 싶다. 이 책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나 저자에 대해 무지했던 이유다. 이젠 직장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이유로 학창 시절 많이 읽었던 책을 중심으로 다시 독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나마 그때의 열정에는 못 미치지만 조금씩은 회복되는 기분에 마음도 편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와 왕래가 없었던 프랑스와 우리 조선시대의 한 장면을 연결시켜 당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보려는 저자의 의도가 새롭고 신선하다. 출판계의 관례는 잘 모르지만 이번 출판사 측에서는 '신간'으로 소개된 점은 어쩌면 저자가 다시 썼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1789)'과 조선 순조 때 '홍경래의 난(1811)'이다. 또 인물로 보자면 나폴레옹과 홍경래라고 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조선시대 '홍경래의 난'은 실패했기에 '난'으로 기록되고, 프랑스의 '대혁명'은 성공과 함께 세계적 영향을 미친, 세계사를 바꾼 사건이다. 저자는 두 사건의 성격이 '민중 봉기'라는 점에서 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시점 역시 두 사건의 차이가 불과 32년에 불과하다. 거의 동시대로 엮자면 대혁명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과 조선시대 '난'의 주역 홍경래가 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건을 하나의 연결선상에 놓고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홍경래와 나폴레옹이 직접 만난 적은 없을 듯하다. 수교도 없던 시절 홍경래는 어떻게 나폴레옹을 만날 수 있었을까?

 


 

저자가 택한 방법은 실패한 민란에서 홍경래 수하에서 그의 사상과 봉기에 뜻을 같이한, 믿을 만한 인물 '안지경'을 내세운다. 역사에 실패한 민란으로 기록된 ‘홍경래의 난’이 결코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면?이란 상상력은 프랑스 대혁명과의 관련으로 쓰여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르적 결단은 대단한 저자의 실험 정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안지경은 조선 말 '세도 정치'로 정국과 사회가 혼란스러운 시점 민중 봉기로 혁명을 일으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해야 한다는 혁명 정신의 홍경래를 곁에서 보필한 사람이다. 홍경래의 책사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민중 봉기를 준비했던 주인공 ‘안지경’은 역사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관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관군을 피하다 다다른 곳은 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세인트 헬레나 섬’. 그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운명이 ‘안지경’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조선 청년 ‘안지경’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소설은 앞서 언급한 대로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각기 다른 지역, 각기 다른 인물들의 만남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간 '팩션[Faction : Fact+Fiction'이다. 특히 19세기 초 조선과 주변 국가들, 유럽의 정세까지 상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저자의 대학 때의 전공이 역사인 점을 안다면(약력) 쉽게 추정 가능하다. 저자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역사 전공자로서 역사에 대한 지식과 흐름을 잘 짚어내고, 작가로서의 역사 기록 틈새를 상상력으로 엮는다면 의미 있고, 재미 있는 작품의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실현해 낸 작품으로 독자는 판단된다. 역사소설로서의 탄탄한 재미는 주인공의 통쾌한 '복수'와 절절한 '로맨스'까지··· 이 소설은 독자들이 한 번 손에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할 여러 요소들이 잘 버무러져 있다.

 


 

전혀 관련 없는 두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려면 역사 기록으로는 쉽지 않다.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을 쓰고 기록하는 일이기에 기록에 남지 않았다면 다른 사건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학적 상상력은 역사 기록에 남지 않은 부분에 집중하면 틈새에서 얼마든지 새로운 연결고리를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어떻게 구성해서 '사실인 것처럼 꾸민 허구'라는 소설적 특성 때문이다. 많은 역사 소설이 이렇게 탄생한다. ‘홍경래의 난’과 ‘프랑스 대혁명’, ‘홍경래’와 ‘나폴레옹’은 역사 기록으로 볼 때는 아무 관련이 없다. 물론 실존 인물이기에 이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데 둘 사이를 엮는 매개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연결이 되는지, 되지 못하는지가 결정된다. 이 소설은 실존 인물 틈에 ‘안지경’이란 소설 속 인물을 저자가 창조해냄으로써 자연스럽고 지역의 다른 점을 오히려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약력에 따르면 저자는 『베니스의 개성상인』, 『자산어보』 등으로 우리에게 ‘팩션(Faction, Fact+Fiction)'이란 장르를 본격적으로 알린 작가로 이 소설에서 팩션의 정점에 오른다. 이 소설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의 설명으로 꽤 합리적으로 수식하고 있다. 소설 속 안지경이 쫒겨 다니다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며 가까스로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아프리카 서부, 해안에서도 멀리 떨어진 영어 이름으로 들리는 ‘세인트 헬레나 섬’이다. 서아프리카 바다는 대서양으로 불리운다. 아프리카 대륙이 대부분 적도 아래에 있으니 굳이 나누자면 '남대서양'이다. 이곳의 섬이 왜 이 소설에 등장할까? 더욱이 조선시대 사건을 다루는 이 소설에서 어쩌면 가장 멀리 있는 세인트 헬레나라는 지명이 등장하는가? '세인트 헬레나'라면 일부 독자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이다. 바로 프랑스의 영웅으로 받들여지고 '프랑스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친 인물이지만 영국과의 해전을 끝으로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나폴레옹이 갇혀 있던 섬이다. 세인트 헬레나 섬은 사실 나폴레옹 때문에 세계사에 등장한다고 봐야 할 정도로 이름 없는 섬이다. 이 섬의 기록 상의 첫 정착자는 포르투갈인 페르난도 로페즈라고 〈위키백과〉는 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엘바 섬을 탈출한 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자, 빈 회의는 그의 신변 처리를 영국에 일임하였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망명 수용을 거부하고 보호를 명목으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가두기로 하였다. 나폴레옹은 1815년 10월 세인트 헬레나에 도착, 1821년 5월에 사망할 때까지 섬 중앙의 롱우드 하우스에서 살았다.

 


 

역사를 공부했던 저자가 세인트 헬레나 섬의 존재를 나폴레옹을 통해 알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영웅이 비참한 말로를 그려봤을지도 모른다. 이 섬에서 죽었을 정도의 위치에 있지 않은 인물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만들어낸 프랑스 공화정의 공포 정치를 되집어 결국 자신이 다시 황제에 오른 한낱 장교 출신 군인이었지 프랑스의 힘을 드높인 공로로 당시 프랑스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물론 러시아로 진군해 실패하고 엘바 섬에 잠시 유배됐다가 탈출해 다시 재기한 나폴레옹은 지금도 '프랑스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이름 없던 섬, 세인트 헬레나는 왜 영어이름일까?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독자 역시 이 섬이 대서양이라는 사실만 알았고 당연히 프랑스 인근이나 영국 인근이었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를 읽으며 백과사전이라도 다시 찾아보자고 들춰본 이후 대영제국 식민지였던 것을 알게 됐다. 워털루 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결국 나폴레옹은 재판도 없이(불법으로) 이곳에 유배했고, 영국은 당시 이 섬 행정관에게 철저한 감시를 명령했다.

대우 또한 나폴레옹과 그의 유배를 시중 든 사람들에게도 참혹한 대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섬은 122km2. 인구 약 6,000(1991)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어쩌면 1,000명도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업과 항로의 기지로만 쓰였을 듯하다. 이 섬은 화산성의 섬으로 해안에는 벼랑이 많고, 열대에 위치하면서도 무역풍과 해류의 영향으로 기후는 쾌적하다. 1502년 포르투갈인 항해가 주앙 다 노바가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처음 발견하여 포르투갈령-네덜란드령 등을 거쳐 1673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소유가 되었고, 1834년 영국 국왕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세인트헬레나라는 이름은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역사에 기록됨으로써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은 1815년 10월 영국 군함에 호송되어 1821년 5월 사망하기까지 섬의 동쪽 해안에서 유배생활을 보냈다. 그는 독서와, 측근자이며 프랑스 역사가인 E. 라스카즈에게 회상록을 구술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라스카즈가 발표한 『세인트헬레나 회상록』(1823)은 ‘나폴레옹 전설’을 낳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이 섬은 유럽의 아시아 항로가 희망봉을 돌았던 시대에는 기항지·보급항으로서 중요시되었으나, 수에즈 운하의 개통으로 그 가치를 상실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의 해군기지가 되었고 현재는 어센션섬과 함께 원거리통신의 중계지 구실을 하고 있다. 어센션섬은 1922년에 고프·인익세서블·나이팅게일·트리스탄다쿠냐섬 등을 포함하는 트리스탄다쿠냐제도는 1938년에 세인트헬레나 섬의 속령이 되었다.(두산백과) 저자가 소설을 통해 그 섬으로 독자들을 안내한 셈이다. 독자들을 저 멀리 남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 섬’ 한복판에 있는 낯선 이름과 섬에서 일어난 사건 등을 알게 된다. 저자는 책 뒷 부분에 〈작가의 말〉을 통해 프랑스대혁명과 홍경래의 난에 대한 언급이 있다. "조선사에서 제일 큰 민란인 홍경래의 난과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프랑스대혁명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발생했다. 둘 다 독재 왕정과 신분 차별에 따른 억압에 반발해서 민중이 봉기를 한 사건이다."(p.345) 저자는 그러나 홍경래의 난은 불과 수개월 만에 진압이 된 데 비해서 프랑스대혁명은 세계사의 큰 영향을 미쳤고 민주와 인권의 상징이 되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왜 홍경래의 난과 프랑스대혁명은 비슷한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다른 결과를 낳았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이 소설이 비롯됐음을 저자는 털어놓는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진심으로 관심을 둔 것은 홍경래의 난이 왜 실패했을까라는 말과 등치된다. 사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홍경래의 난에 맞춰져 있다. 짧은 기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민중 봉기였다는 점을 저자는 더 부각시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독자의 생각도 덧댈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 곳곳에서 폐해가 드러나고 있었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무너졌고, 탐관오리가 날뛰면서 백성들의 삶이 점점 황폐해지고 있었다. 여기에 지역 차별이 더해지면서 홍경래 등 몰락한 양반과 평안도 농민들이 봉기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홍경래가 꿈꾼 세상에 대해 관심을 드러낸다. 그는 역성혁명을 꿈꾸었을까, 아니면 세도 정치를 몰아내고 탐관오리를 징치하는 것에 만족했을까.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을까. 그와 관련해서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역모와 관련된 기록이라 관에 의해 말살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애초부터 홍경래가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속내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굵직한 역사적 장면에 빠진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을 환상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채워나가며 팩션 장르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소설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는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혁명과 지배, 평등과 차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혁명을 이끌고 나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어려움과 새로운 인물들과의 만남, 그리고 복수와 로맨스 등 흥미의 요소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예상치 못한 반전도 묘미가 있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적 상상력도 함께 키워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혁명을 힘있게 이끌고 나갈 세력을 양성해야 한다. 농투산이들이나 시정잡배들을 가지고 혁명을 지속적으로 이끌 수는 없다. 또한 노쇠한 유학자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불만 세력들이 새로운 세상을 이끌 수 없다.(p.19)

 

과연 모든 백성이 똑같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할까. 차별 철폐의 횃불을 들고 봉기를 단행한 지금도 솔직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어느 시대, 어느 왕조에서건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나뉘어 존재하고 있었다.(p.74)

 

저자 : 오세영

 

195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경희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서의 행간을 채우는 일을 즐겼던 오세영에게 역사를 이야기로 꾸미는 역사 작가는 잘 어울리는 직업인 셈이다. 오세영에게 역사는 내일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소설은 역사를 쉽게 풀어쓰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그는 역사학계에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문단에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러나 시대와 삶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소재를 발굴해서 독자들을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베니스의 개성상인』,『구텐베르크의 조선』, 『원행』, 『만파식적』, 『타임 레이더스』, 『화랑서유기』, 『포세이돈 어드벤처』, 『창공의 투사』, 『소설 자산어보』, 『콜럼버스와 신대륙 발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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