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골드러시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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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평양골드러시』의 저자 고호는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노비 종친회』 등 사회 풍자적 시각을 견지하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부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소설 작품을 주로 쓰는 작가다. 특히 추리·미스터리와 SF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저자의 작품에서는 작가 특유의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소설을 읽음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창의적 능력이 높은 것으로 독자는 생각하고 있다. 저자의 전작들은 독창적 시각으로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 『악플러 수용소』는 인터넷에서 악플(악성 댓글, 악의적 댓글)로 사회적 문제가 자주 일어나는 바람에 이들 악플러를 가두어 두는 '악플러 수용소'라는 기상천외한 장치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을 가했다. 또 조선시대까지 우리 사회에 존속했던 '노비'의 후손들이 종친회를 가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쓴 소설 『노비 종친회』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왕조 시대의 유물인 노비 의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아직 노비 의식이나 노비 트라우마로부터 일부 시민들의 의식에서 존속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 『평양골드러시』는 특히 우리 현대사에 가장 아픈 부분이며, 한국전쟁 휴전(정전) 70년이 지나도록 금기시되는 북한 관련 이야기 중 단편적으로 보고 들은 소재들을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유기적으로 구성해냄으로써 구성 능력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가보지도 않은 평양이나 북한 소식은 일반 독자들의 경우 대부분 TV나 신문 등에 출연한 탈북자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한 단계 걸러진 내용으로 특히 탈북민 자신이 개인적으로 겪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탈북 이전의 북한에서의 생활, 탈북 과정, 그리고 대한민국에서의 정착의 어려움 등이다. 이런 단편적 사실은 엄청 힘든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북한 사회의 흐름이나 그들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설 작가라 해서 특별히 북한 관련 정보나 에피소드를 특별히 전해주는 곳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이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필요하다고 북한에 직접 가서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설로 옮겨 쓰기에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자칫 무리한 욕심을 냈다가는 본의 아닌 구설수나 필화 사건도 일어날 수 있다. 실제 이 소설에 나오는 소재나 에피소드는 일반 독자도 TV나 신문, 또는 탈북민 등을 통해 이미 밝혀진 내용이 주로 등장한다. 정치적 접근을 해야 할 때는 남북한 정상 회담이나 양쪽의 문화 교류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충분히 활용한다. 이처럼 취득한 단편적 소재들을 작가가 소설 상상력으로 그들의 의식이나 생활 방식에 접근한다.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 지식을 활용한다. 특히 평양을 가야 해소될 궁금증은 다행히 지금까지 남북 정상 회담 3차례, 양측 문화 교류(스포츠, 공연 등) 때 많이 밝혀져 그것을 이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을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내느냐이다. 그것이 소설 상상력이다. 저자 고호는 그 점에 탁월함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경우 일제 강점기 이전인 조선시대부터 평양 지역 지주였던 아버지(주인공의 증조부)가 묻어놓은 금괴를 피난 오느라 챙겨오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라던 할머니가 등장한다. 더욱이 주인공 인찬은 경찰 공무원의 신분이다. 북한 평양에 묻어놓은 직접 북한으로 잠입하는 결심을 할 있는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돈(금괴)를 매개로 이용한다. 그것도 얼핏 계산해도 110억 원이 넘는 가치라고 추산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부모를 대신해 우리 남매를 길러주신 할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손자인 인찬에게 당부를 한다. “니 증조부가 묻어둔 금괴를 찾아오너라.” 허황된 얘기라 생각했는데 웬걸? 장례를 치르면서 인찬은 금괴가 묻힌 정확한 주소를 발견한다. 그것은 흙수저 인찬에게 하늘이 주신, 아니 할머니가 주신 ‘기회’였다.

 


 

쥐꼬리만 한 월급, 은행 대출금,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본 인찬은 동생 인지에게 함께 금괴를 찾으러 가자고 제안하고. 그렇게 남매는 현대판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 북한 땅에 잠입한다. 땅에 떨어진 과자가 아니라 땅에 묻힌 금괴를 찾으러 간다. 살 떨리는 검열과 감시 속에서 시작된 게임. 아니 게임이라기보다 모험이고 목숨을 담보로 한 극한의 모험이 아니겠는가? 더욱이 북한 사회는 폐쇄 사회라 마음대로 이주하거나 거주지를 옮길 수도 없고, 특히 평양 내로 잠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은 목숨을 걸고 모험을 감행한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동생과 함께다. 정식으로 허가받을 수 없으니 중국을 통해 들어가는 일을 모색한다. 제한시간은 단 3일.

인간의 욕망은 간첩도 어렵다는 북한 사회 잠입을 통해 평양 모처에 있는 금괴를 찾아 무사히 빼내 올 수 있을까? 일반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금괴를 묻었다는 시점으로부터 70년이 넘게 흘렀다. 그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70년간 일반인 왕래가 없던 곳이다. 더욱이 옛 평양(일제 강점기에는 '평양부') 시내에 있던 집. 아무리 경제발전이 뒤진 북한이라 해도 70년 동안 평양이 옛 모습 그대로일 리 없다. 더욱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갈 때마다 가는 곳이 평양 시내 한가운데 있다는 주석궁, 인민궁전 등이 새로 들어선 곳이다. 절대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는 사람이라면 대여섯 살 아이도 아는 사실 아닌가. 돈에 대한 욕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감행하는 자체가 무리다. 고호 저자는 ‘보물찾기’라고 가볍게 처리한다. 으레 어린이들이 소풍 가서 선물이 적힌 쪽지를 찾는 것부터 떠올리듯이, ‘보물’을 찾는 모티프는 아주 고전적이며 스테디하다. 아이든 해적이든 ‘보물’을 찾는 행위 자체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본능적 도전의식과 원초적 모험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라도 먼저 보물을 찾는 사람이 보물을 차지할 수 있기에 엄청난 속도전과 위험이 수반되는 것도 당연지사다. 저자는 주인공이 금괴를 손에 넣기 위해 겪어야 하는 스펙타클하고 급박한 여정을 지금의 ‘북한’이라는 다소 생소한 배경을 토대로 박진감 넘치게 풀어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언제나 거기엔 협상과 배신이 있다. 평양의 보물찾기, 과연 남매는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책 『평양 골드러시』는 광복 직후 공산화되던 북한을 배경으로 증조부 세대, 피난 실향민이던 할머니 세대와 요즘 30대인 인찬의 세대까지를 아우르며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을 배경으로 한다. 동시에 서울에서 강릉, 신의주, 평양을 오가며 자유로운 시공간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금을 쫓는 남매의 탐욕과 모험 너머로 작품 곳곳에 나타난 북한의 모습은 가히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 책은 실제 북한의 상황을 묘사한 듯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북한의 어둡고도 힘겨운 상황을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한다. 역시 '북한 전문 소설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어쩌면 전문가답게 북한 사투리(평양 사투리, 북한은 문화어라고 한다던가?)나 북한의 언어를 어느 정도 연구한 흔적이 보인다. 이런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자칫 내용이나 구성에 신경 쓰고, 표현에는 우리 표준어를 사용해도 되겠지만, 현장성을 강조하려면 아무래도 평양과 북한 표준어를 따로 공부했을 성싶다. 이 사투리와 언어들은 현장성과 생생한 표현을 위해 크게 한몫하지 않겠는가. 실제 책에 쓰인 북한 말의 풀이를 책 뒷 부분에 부록으로 따로 실어놓았다.

이 책은 3부 1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작품에서 부나 장의 구별이 별 의미가 없이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에서는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고, 이해를 돕기 위해 평양말뿐 아니라 한 장 한 장 매우 간결한 문체의 글들이 독서 속도를 높이도록 간결하고, 때로는 대화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자칫 느슨하고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해 단숨에 읽어내리도록 저자의 고도의 기법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이에 따라 금괴를 향한 주인공의 골드러시는 숨 가쁘게 전개되며, 평양행 기차에 올라탄 독자들은 보물찾기의 매력 속으로 쉴 새 없이 빨려들 수 있다.

 


 

"네놈 아비에게 첩으로 팔려 가는 순간에까지 널 마음속 깊이 좋아했으니까."

뜬금없는 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나를 좋아했단다. 놈의 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종종 마주치던 삼태의 누이가 떠올랐다. 허리께까지 닿은 긴 댕기 머리를 살랑이며 물 양동이를 이고 가던 그이가, 내 쪽을 힐끔힐끔 보던 그이가. 나는 뭘 보냐며 쏘아붙이기도 하고, 때론 무심코 지나가기도 했다. 아버지의 첩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날엔 그이가 내 방 책상 위에 올려놓은 아카시아 꽃다발을 마당에 내동댕이쳐서 기어이 울리기도 했다. 그런데···

"널···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

"그러니 평생 죽은 내 누이에게 고마워해라. 이 반동분자 새끼야."

삼태는 내 코앞까지 갖다 대던 주먹을 맨땅에 내리쳤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그대로 돌아섰다. 마당을 나가면서 미친개처럼 고래고래 질러댔다.

그런데 왜 지금 손향의 얼굴에서 놈의 누이가 떠오르는 걸까? 오랜 시간 잊고 살았던 그 얼글이 왜 이토록 선명하게 그려지는 걸까. (중략)

"날래 드시래두요. 이러다 쓰러지시갔어요."

"참으로 고맙소. 우리 손자도 굶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 있었더라면 동무 또래가 됐을 텐데···"

"손녀라고 생각하십쇼. 저두 할아바지라 여기갔슴다."(p.260~261)

 

 

이 책의 17장 「아주 오래된 이야기」는 북한 실정에 어두운 우리 독자들을 위한 마지막 장이자 서비스 장이기도 하다. 속도전처럼 전개되는 3일간의 일련의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할머니가 유언처럼 남겨 놓은 말의 실제와 평양 현장의 시간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얽히고설킨 문제의 풀이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남겨 놓은 것이다. 소설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 독자들은 이 장을 읽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장의 필요성에 공감하리라고 본다. 할머니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기까지의 과정을 크게 건너 뛴 내용이 속사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6장까지 모두 읽고 나서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얽힌 것이지?"라고 생각한다면 이 장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해방과 남북 분단, 전쟁 후 냉전, 철조망으로 갈라진 채 따로 산 한반도의 한 민족.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꿰뚫은 분단 시대의 한민족. 100년의 한 많은 시기가 이 책 한 권에 담기에는 벅찼을까. 아니면 끊어져서는 안 될 한 민족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을까? 가느다란 인연의 끈들이 다시 얽힌다. 사건의 무대가 평양이기에 주로 북한의 실정이 많이 담겨 있는 이 소설 작품에는 청봉노래단의 최고 가수 손향, 그리고 그의 아버지, 손향의 할아버지인 혁명전사 리삼태, 남북 간의 화해 무드에서 북한 공연단의 남한방문 공연 등. 독자들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엮을 수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독자의 능력으로는 표현해 낼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사상과 이념의 갈등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한을 어떻게 풀까?"

 

저자 : 고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기다렸던 먹잇감이 제 발로 왔구나』, 『노비 종친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황토현 문학상, 의정부전국문학상, DMZ문학상 등에서 수상한 바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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