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슬 수집사, 묘연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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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밤이슬 수집사, 묘연』은 몽환적이며 교훈적이다. 저자 루하서는 우리의 전래동화 같은 순수한 감정으로 소설을 끌어간다. 삶과 죽음의 세계를 드나드는 인물로서 신비롭고 몽환적 분위기의 세상을 오가는 동물이라면 단연 고양이가 으뜸이다. 더욱이 고양이는 야생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람과는 친숙하다. 요즘 반려동물 붐에 고양이가 1위를 다투는 이유다. 묘연은 낮에는 고양이,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인물로 천사 같은 이미지로 저자가 창조한 캐릭터다. 묘연이 하는 일 역시 신비롭다. 고양이는 낯선 이에게 살갑지는 않지만 유연하고 악의적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기에 반려 동물에 안성맞춤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야생성을 잃지 않은 것이 신비로운 인물을 의인화할 때 적합한 이미지다. 밤에 하는 일은 '밤이슬 수집사'다. 조금은 엉뚱한 직업이지만 하는 일은 신비감과 교훈을 준다.

묘연은 죽음에 처한 인간들을 찾아가 그들에게서 밤이슬을 모은다. ‘밤이슬'은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과거와 내밀한 사연의 상징물이다. 묘연이 하는 일은 그것을 수집하는 일이다. '수집사'라는 직업 또한 저자의 해석이 붙는다. 모은다는 의미의 집(集), 집사 등 직업에 붙이는 사(士)면 '집사'다. 집사는 대체적으로 집안 일을 거드는 사람들이다. 외국의 귀족들은 큰 집안 일을 담당하는 '집사'라는 직업을 따로 두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일부 양반집에 집사가 있었던 것으로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대체로 문자를 조금 알고, 계산 등에 밝은 중인계급에서 뽑힌다고 들었다. 묘연은 집사들이 모여 사는 미다스 대저택의 우두머리 '수'(首) 집사이다.

 


 

이 작품은 저자의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주인공 이안은 아버지의 행방불명 이후 어려워진 생활로 비뚤어진 채 살아오다 홀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빚과 우울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노신사. 그는 이안에게 3개월의 집사직을 조건으로 30억 원이라는 거금을 제안한다. 느닷없는 노신사의 출현과 사기인지 횡재인지 모를 수상한 거래를 자살을 시도했던 이안으로서는 미심쩍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을 터, 수락한다. 이렇게 이안은 자살하려다 말고 미다스 저택의 신입 집사가 된다. 이안이 맡은 특별한 일은 묘연을 보필하는 것. 낮에는 고양이로 지내다 밤이 되면 묘령의 여인으로 변하는 ‘묘연’의 일을 수행하며 도울 것을 제안받았다.

간단한 일에 거금을 준다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저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사유한 결과라고 생각되면 문제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이젠 당초 제안한 대로 수집사 묘연의 일만 열심히 도우면 될 일이다.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인간은 살아 있을 때는 미처 모르다가 죽음이 목전에 닥쳤을 때에야 느낄 수 있는 귀한 감정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한 인간의 죽음을 앞두고 과연 어떤 감정이 들까? 어떤 생각을 할까?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면 결코 가볍거나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공감이 간다. 많은 이들이 회환의 눈물도 흘릴 것이다. 잘못 살아온 후회도 할 것이다. 또 아직 못다 이룬 일에 대해 안타까운 감정의 회한도 있으리라. 그들의 눈물의 의미는?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로 무장하여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몽환적 판타지 소설로서 낮에는 고양이,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묘연’이란 신묘한 인물이 중심이 된다. 표제어가 압축적이다. 책을 드는 순간부터 독자들은 삶과 죽음이 중첩되는 새로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게서 잠시도 떨어지기 힘들다. ‘밤이슬 수집사’들이 만나는 인물들은 이제 곧 저 세상으로 옮겨갈 사람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게 뭘까? 궁금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것이다. 기발하면서도 감동적인 이 책이 탄생한 이유다. 기발한 직업뿐만 아니라 저자는 새로운 장치들도 개발했다. ‘미다스 대저택’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부자로 이름난 프리지아의 왕에서 빌려온 용어인 듯하다. 손 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화시킨다는 내용을 차용한 것 같다. 상징적 의미로. 또 이와 반대로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가는 ‘백로 징벌소’와 같은 설정은 저자가 이 소설을 구상할 때 많은 고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만들어낸 단어들이 꽤 있다. 상징적이지만 '이슬'은 맑고 곱다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노신사(할아버지)가 이슬에 대해 이안에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생은 때론 길고, 때론 짧기도 하지. 생이 길어서 후회가 되는 일도 있고, 짧은 생이라서 후회가 남기도 해. 그래서 사람들은 끝이라 생각한 순간에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 떠오르게 되는 거야.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후회의 눈물, 그것을 우리 집사들은 '이슬'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이슬을 얻어 오는 것이 '미다시 대저택' 집사의 일이다."(p.47)

 

 

'루인'이란 단어도 등장한다. 눈물 루(淚), 사람 인(人)'이라는 의미다. 글자 그대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뜻한다. 왜 루인이 등장할까? 당연히 이슬을 얻어 오는 집사들이 만날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2장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 눈물 ‘루’, 사람 ‘인」에서 친절한 설명이 있다. 묘연을 따라나선 이안과 대화 중이다.

"혹시 자살 예정이라는 거 말고 자살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 수 있나요?"

"그건 왜 묻지?"

"여기까지 왔는데 루인이 죽는 건 말려야죠."

"이안 집사, 혹시 계약서 제대로 숙지 못했나?"

묘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읽긴 제도로 읽었는데···."

 

"그 정도의 나약한 의지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

묘연은 냉철한 눈빛으로 엄격하게 말했다.

"우리는 매번 이렇게 죽음과 삶을 마주하게 될 거야. 그 경계선에서 삶을 선택하든, 죽음을 선택하든, 그건 오롯이 루인의 몫이다. 모든 사람을 우리가 살릴 순 없어. 사자들의 업무를 우리가 가로채는 건 저승과 이승의 암묵적인 협의를 깨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집사들은 더 이상 이슬 수집 임무를 할 수 없게 된다."(p.87~88)

 


 

'천수록'도 재미 있는 표현이다. 원래 있는 단어인지, 저자가 만들어낸 말인지 독자는 알 수 없지만 뜻은 짐작이 간다. 특히 제목에 들어 있어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뜻이다. 네 번째 장(章)의 제목이다.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지막 말 - 천수록」. 이안의 궁금증을 묘연이 설명해준다. 책에 따르면 세상에 있는 병은 수만 가지도 넘는다. 생각보다 병이란 건 예측이 어렵다. 2달 정도밖에 못 산다고 했던 시한부 환자가 2년이 넘도록 살기도 하고, 반대로 가볍게만 생각했던 병 때문에 하루아침에 돌연사하기도 한다. 병사 같은 경우에는 저승사자가 아닌 천수 선생님이 루인의 죽음을 관리한다.

"천수 선생님이요? 생전 처음 들어봐요. 저승사자는 워낙 많이 들어봤지만."

"예로부터 신선은 고통이나 질병이 없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전해 오지. 천수는 하늘 '천', 목숨 '수' 하늘이 부여한 수명이라는 뜻이다. 그 하늘이 부여한 수명을 정해 주시는 분이 천수 선생님이시고."(p.154)

묘연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중간에 변수만 없다면 정해진 수명대로 삶을 살다가 떠난다. '천수를 누린다'는 말은 하늘이 정해준 만큼 생을 다하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병은 저승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운명에 예기치 않게 끼어든 불청객 같은 것이라고 묘연은 설명한다. 죽을병에 걸리는 것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발병을 하는 것이라서 다른 누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피하기 어렵다. 저승에서도 이 부분을 제일 난감하게 생각한다는 말도 묘연은 덧붙인다. 천수 선생님도 병은 이승에서의 돌발 상황이기에 모두 다 완치시킬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천수 선생님이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친다고도 한다. 환자의 기준은 '살고자 하는 의지'와 약간의 '운'임도 말해준다. 즉, 병에 걸려 자신의 삶을 더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와, 또 하나 운은 이승의 '의사'라고 표현한다. 의사를 '이승의 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말한다.

 


 

새로운 단어가 하나 더 눈에 띈다. '백로 징벌소'다. 이안을 여기 데려온 할아버지 집사인 노신사가 백로 징벌소에 들어갔다. 업무 중 과실이어든지 중대 죄는 아니라고 한다. 그곳을 할아버지를 구하러 묘연과 이안이 간다. 책의 7장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 백로 징벌소」이다. 이곳은 죄를 지은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다. 백로 어른이란 묘연의 부탁이라 특별히 지나갈 수 있는 혜택을 준다고 생색을 내듯 통과를 허락한다. 백로는 그곳의 지키는 총책임자인 것 같다. 분위기가 감옥인 만큼 안과 밖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부로 들어서면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처럼 생긴 길이 나온다. 음산한 비명이 아우성처럼 계속해서 들린다. 처음 들어간 사람은 혼이 나갈 지경이다. 길 양쪽으로 방들이 이어져 있는데 모두 죄수들이 갇혀 있다. 할아버지가 갇혀 있는 곳은 10739번 방. 무려 10000번이 넘은 방까지 걸어들어갔다. 저자의 묘사 능력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결국은 묘연의 재능과 이안의 순수함이 합쳐져 탈출에 묘연이 크게 다쳤지만 성공한다. 이 대목에선 이안과 묘연의 인간적 감정, 사랑이 엿보인다.

 

긴 시간이 흘러서 묘연이 겨우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용히 처소를 나섰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실은… 너까지 잃게 될까 봐… 겁이 났어.”(p.259)

 

저자 : 루하서

 

하늘빛 바다가 보이는 고즈넉한 동네에서 태어났다. 현실에 순응하느라 천성에 맞지 않은 회계를 전공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이끄는 건 여전히 글이 전부라 늦게나마 작가가 되었다. 무수한 감정, 무한한 상상, 그리고 영원한 꿈을 담아 글을 쓴다. 필명은 일상에서 만나는 다정한 위로를 담았다.

가족, 글, 고양이. 가족 이름의 ‘하’, 글 ‘서’, 고양이 이름의 ‘루’ 또 하나는 눈물 ‘루’와 축하하는 글 ‘하서’라는 뜻도 있다.

소중한 추억 상자 속, 고이 담겨 있던 눈물의 페이지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축복을 전하는 한 권의 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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