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명령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얀마(당시 버마) 아웅산 테러(암살폭파사건)이란 수도 랭군(현재의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북한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폭파사건을 말한다. 1983년 10월 9일에 발생했으며, 이 사건으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서석준, 외무부장관 이범석, 상공부장관 김동휘, 동자부장관 서상철, 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심상우,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김재익 등 대통령 공식 수행원과 수행 보도진 17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묘소에 도착하기 전이어서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서남아시아 및 대양주 6개국을 순방중이었으며, 첫 방문지에서의 이같은 사건에 따라 나머지 순방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였다. 귀국 즉시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는 비상경계태세를 결정했으며 10월 13일 희생된 17위에 대한 국민장 거행 후 연일 벌어진 북한만행규탄대회를 고비로 대북보복론까지 대두되었다. 그러나 10월 20일 대통령 특별담화를 통한 대북한 경고와 더불어 자제론이 천명됨으로써 고조되었던 남북한간의 위기국면은 진정되었다. 미얀마 정부는 사건발생 즉시 5인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암살범 추적수사에 총력을 기울여 10월 11일과 12일 사이에 북한에서 온 강민철과 진 모 등 2명을 체포하고 1명을 사살하였다.

미얀마 정부는 외무장관을 진사조문사절로 파한했으며, 10월 17일 이 사건이 북한의 특수공작원에 의해 저질러진 것임을 공식발표하고, 11월 4일 북한에 대한 외교단절 및 정권승인 취소조처를 취하였다. 이 조처에 따라 미얀마 주재 북한공관원들이 이틀 뒤 미얀마를 떠났으며, 다음날인 11월 7일 일본 정부가 대북한 제재조처를 취했으며 잇따라 미국 등 우방국들의 대북한 제재조처가 이어졌다. 한편 북한은 이 암살사건과 무관함을 강변했으나 11월 22일 미얀마 검찰당국에 체포된 범인들이 죄상을 밝힘으로써 북한에서 전대통령과 수행원들을 살해하기 위해 인민군 장교들로 구성된 암살단을 애국동건호에 탑승, 밀파했다는 사건전모가 공개되었다. 그 뒤 12월 9일 랭군지구 인민법원 제8특별재판부에서 두 테러범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아웅산 테러에 대해서 이 책 『마지막 명령』은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통성 없는 정권과 국제 관계 등에 대해 12·12 쿠데타부터 이어지는 전두환 정권의 불안정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어서다. 쿠데타로 잡은 정권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이런 가운데 암살테러 시도가 잇따랐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독자가 임의로 사건 개요를 추가한 것이다.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대한민국 특전사 팀장 한태형 대위와 그의 육사 동기 장재원이다. 그들은 12·12 사태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한태형은 신군부 쿠데타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명예제대를 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나지만 장재원은 안기부 실세 보좌관이 되어 집요하게 그를 쫓는다. 전두환 정권의 출범은 한태형뿐 아니라 반정부인사들과 북한 정찰국 최정예 멤버까지 대통령을 노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북한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저격하도록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대한민국 법정에 세우기 전까지는 그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 과연 스나이퍼가 된 한태형의 총구가 겨누는 곳은?

저자 오세영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책 "『마지막 명령』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한 팩션(Fact+Fiction=Faction)이다."고 발히고 있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은 스토리 골격이 정해져 있다는 면에서는 편하지만, 시간이라는 날줄과 공간이라는 씨줄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제약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사학 전공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치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거쳐 그 어떤 작품보다 생생하게 독자들을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 데리고 간다. 동시에 잘 짜여진 플롯과 담박한 필체로 책장을 펼친 독자들이 도무지 작품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10·26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12·12 때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아웅산까지 이어지는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 계획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도 모르고,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역사는 현실이고,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주어진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게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고 말한다. 역사를 전공한 저자의 역사관 한쪽을 읽는 것 같아 독자에게는 귀중한 삶의 지헤로 들리기도 한다.

저자는 조심스럽게 역사와 우리 대한민국의 현대사 한 부분을 함께 되새겨봄으로써 우리 삶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다는 교훈적 의미가 이 책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법치국가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군 최고통수권자며 군인은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고, 나라를 수호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복잡한 상황과 혼란한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에 의해 암살당하는 것을 막고, 대한민국의 법정에 세운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일에는 선과 후, 경과중이 있는 것이다."

역사는 거울이라고 한다. 20세기 말, 격동의 역사를 돌이켜봄으로써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위기에 대처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순간인 격동의 80년대 안팎을 배경으로 한다. 1979년 10월 26일,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수 발의 총성, 최측근이 현직 대통령을 살해함으로써 18년간의 독재정권이 종지부를 찍은 바로 그 사건의 시점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대통령 저격. 결코 트렌디하거나 가볍지 않은 소재이지만, 뉴욕, 앙골라, 모나코, 홍콩, 필리핀, 가봉 등을 오가며 쫒고 쫒기는 최정예 스나이퍼의 이야기가 그 어떤 액션 영화보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소설 『마지막 명령』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하지만 절대로 단순 역사 기록에서 맛볼 수 없는 상상력과 스케일이 보태진 긴장감의 연속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는 소신파 한태형과 그의 육사 동기이지만 당시 안기부 보좌관이 된 장재원이 각기 다른 신념을 갖고 서로를 쫒고 또 서로에게 쫒기는 추격전을 스펙타클하게 담아내었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암울한 시긴인 10·26부터 전두환 집권, 아웅산 테러에 이르는 현대사의 흐름을 씨실로 뉴욕,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국제적으로 펼쳐지는 스나이퍼의 사투를 날실로 하여 촘촘하게 구성됐다. 이에 따라 이 소설은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첩보물에 비견될 만큼 역사와 흥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이 소설은 철저한 사료 검증과 특히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들에 대한 방문 조사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독자들이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백미로 꼽힌다.

 

“무슨 이유로 남조선 동무가 앙골라에서 싸우는지 궁금하군. 그런데 어째 동무는 어디서 본 듯하오?”(p.110)

 


 

이 책의 표제어인 '마지막 명령'은 무엇일까? 책 속의 인물 석 사령관으로부터 받는 명령을 '마지막 명령'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이나 저격 등이 아닌 방법, 즉 법에 의해 법정에 새워 법의 심판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석 사령관은 강제 예편 당한 10·26 이후 전두환 측근으로부터 각종 핍박과 박해로 결국 강제 예편된, 실재한 인물을 생각나게 한다. 소설 속에서는 청빈한 인물로 혼란을 수습할 강력한 인물이었으나 더 강력한 군부의 실권자인 전두환에게 밀려 10·26 가담자로 누명을 쓰고 수모를 당한 끝에 강제 예편된 인물이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한국에 다시 돌아온 한재형이 물어물어 그를 찾는다. 서울 월계동 허름한 아파트에서 홀로 살던 석 사령관은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 그간 어떻게 지냈나"

"이것저것 하며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한재형은 미국으로 쫒겨간 일부터, 용병이 되어 아프리카에서 싸웠던 일, 그리고 필리핀에서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석 사령관은 한태형이 홍콩에서 북한 대외조사부 간부를 만났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저도 뒤에 북한이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지만, 그 전에 이미 마음을 굳혔기에, 그리고 차라리 내 손으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대로 결행했습니다."

(중략)

"사령관으로서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다! 전두환을 대한민국 법정에 세워라! 그게 정당한 응징이다! 방법은 귀관의 재량에 일임하겠다."(p.231~232)

 


 

소설 속의 한재형은 한국 현대사를 환기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만 독자들을 역사 소설의 새로운 장르인 팩션(Faction)의 매력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한재형이라는 인물이 실제 있었던 인물인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한재형은 동기이자 신군부에 밀착된 장재원과의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친구 사이에서 대립 갈등 구조로 바뀐다. 일반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이때 갈라선 육사 출신 군 관계자들은 억울한 옥살이, 예편, 심지어 목숨까지 위태로운 이들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두 주인공은 우나연이란 여인을 두고 연적 관계로도 대립된다. 우나연은 미국 양부모들에 입양된 후 대학은 물론 미국 CIA 출신으로 한국 보안사에서 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다. 우나연으로서는 한재형에게 더 마음이 있었지만 한국의 현실은 두 사람 사이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한다. 한재형이 미국으로 추방된 이후 소식이 끊긴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재형은 미국에서 일당직 잡일을 하며 겨우 끼니를 이어가고 1년쯤 지난 후엔 우연한 기회로 용병으로 입대하기로 한다. 돈 때문이겠지만 특수부대 출신인 자신에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프리카 앙골라 내전에 참여하고 꽤 잘 나가기 시작할 무렵 우나연의 생각해서 한국으로 다시 가거나 그녀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있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현실적 판단 속에 그리움만 쌓인다. 그러나 우나연도 자신의 신분이나 미국의 양부모를 통해 그를 수소문하지만 '사망'으로 확인될 뿐 다른 행적을 찾을 수 없다. 당연히 우나연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는 장재원의 승리가 된다. 두 사람은 결혼한다.

 


 

전두환대통령 암살 기도가 확인된 아웅산 테러 이전에도 이미 여러 번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정당성 인정받지 못한 전두환 정권은 국내에서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국민 정서보다 외교를 통해 외부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으려 했다. 미국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아웅산 테러 이전 외교적 각국 순방에 힘을 쏟았다. 아웅산 테러 이후 붙잡혀 미얀마 정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된 북한공작원의 진술에 따르면 해외에서 암살 시도가 실제로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아프리카 순방 때 암살 시도가 계획대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단순한 공작원의 실수가 있었고, 이때의 암살 계획이 아웅산 테러 때까지 연기된 셈이다.

 

전두환을 대한민국 법정에 세우려면 우선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에 테러를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p.274)

 

저자 : 오세영

 

195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으며, 경희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흩어진 기록을 모으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서의 행간을 채우는 일을 즐겼던 오세영에게 역사를 이야기로 꾸미는 역사 작가는 잘 어울리는 직업인 셈이다. 오세영에게 역사는 내일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소설은 역사를 쉽게 풀어쓰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그는 역사학계에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문단에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러나 시대와 삶에 커다란 의미가 있는 소재를 발굴해서 독자들을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베니스의 개성상인』,『구텐베르크의 조선』, 『원행』, 『만파식적』, 『타임 레이더스』, 『화랑서유기』, 『포세이돈 어드벤처』, 『창공의 투사』, 『소설 자산어보』, 『콜럼버스와 신대륙 발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