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퉁이 집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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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 모퉁이 집』은 장르 소설로 분류되지만 역사 소설에 가깝다. 표제어로 쓰인 '그 모퉁이 집'은 일제 강점기 불에 타 80년째 버려진 폐가이다. 어느 날 신비한 분위기의 두 남자가 이사를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 꽃집에 3만 원짜리 꽃다발을 주문하고, 꽃잎 향과 맛이 나는 쿠키를 구워내는 남자들. 꽃집의 딸이자 아쟁 연주자인 ‘한마디’가 그 모퉁이 집에 꽃 배달을 간다. 저자 이영희는 일제 강점기 때로 모퉁이 집의 기원을 끌어올린다. 일제 강점기-여성(소녀)-위안부란 상상적 공식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소재의 연결이다. 주인공 한마디는 어릴 적 기억을 잃었지만 신비한 능력을 지녔다. 독특한 인물 설정으로 독자들을 신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솜씨는 중견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꽃 전문가로서 다양한 꽃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역사적 상상력을 보태어 새로운 장르인 〈플라워 판타지〉를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빠져나올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한마디가 매일 아침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는 모퉁이 집에서는 두 남자가 살며, 꽃잎 향과 맛이 나는 쿠키를 구워낸다. 생계인 셈이다.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그 모퉁이 집에 홀려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비밀로 가득한 집의 베일이 차츰 벗겨진다. 저자는 마치 한 잎 한 잎 꽃잎을 떼어내듯 특유의 몽환적이고 섬세한 문장들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공간의 배경도 80년을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종횡무진 오고 간다.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매력적 인물들을 통해 씨줄과 날줄로 엮듯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환상적인 세계를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 책 『그 모퉁이 집』은 책을 읽는 내내 향긋한 꽃 향기에 휩싸인 듯한 환상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1944년 12월, 짓밟혀 누운 경성 위로 눈발이 흩날렸다. 차디찬 싸리꽃 송이들이 목조건물을 스쳐 날리는 밤 풍경은 동화 같았다. 하지만 상복을 입은 나라는 눈이 동화와 직결된다는 것이 서글펐다. 혀가 잘려 버린 말(語)이나 겁탈을 당한 인간의 존엄은 서글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p.11)

소설의 도입 부분이다. 80년 전 우리나라 서울의 모습을 설명한다. 눈발이 날리지만 싸리꽃이 등장하며 분위기를 완화시킨다. 그러나 '혀가 잘리고',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힌 서울이 온전한 모습일 리 없다. 1944년 12월의 겨울이면 사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로 치달을 때다. 이미 독일군은 항복 직전이고 일본 역시 오키나와를 넘어 일본 본토에 폭격을 당하는 파국 직전이다. 그 서울의 한 기생집에서 조선 총독부 관리들이 〈매화실〉에 앉아 술자리를 갖고 있다. 매화실은 이 기생집에서 최고의 예인들이 매일 공연을 펼치는 곳이다. 그들은 이미 거나하게 술기운이 도는 상태다. 예인이 등장한다. 아쟁을 연주하는 악사다. 여인은 고개를 숙였지만 눈썹부터 콧날을 지나 입술까지 흐르는 선이 참으로 처연한 미색이라고 저자는 표현하고 있다.

여인은 곧바로 연주를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열려있던 방문으로 창포 꽃이 심긴 토분 몇 개가 따라 들어왔다. 봉오리만 맺힌 꽃대들이었다. 비록 꽃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12월에 창포 꽃을 본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였다. 이어 활대를 잡아 쥐는 여인의 손가락은 창포 꽃대처럼 길고도 희었다. 그제야 관리들과 윤송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채(異彩)란 낯선 단어지만 큰 뜻은 없다. 사전식 풀이로는 이상한 광채나 색다른 빛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겨울에 등장하는 창포 꽃과 예인으로 등장해 연주하는 악기가 아쟁 등에 관심이 쏠린다. 윤송이란 인물이 등장하지만 아직은 총독부 관리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조선인 하급 관리쯤으로 생각해도 괜찮을 듯하다.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꽃마다 창조주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뜻으로 모든 꽃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각각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직접 말이나 편지로 전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의 뜻을 가진 꽃을 상대에게 보내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하니 하루 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미의 꽃말은 낭만적인 사랑, 해바라기의 꽃말은 숭배이다. 예로부터 꽃은 각 민족·종교·민속 등에서 여러 가지 상징·표장(標章)으로 사용되었다. 꽃의 특징·성질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 말인데 이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페르시아·아라비아 등의 풍습을 받아들였다는 설(說), 이것을 영국에 전했다는 설 등이 있으나 유행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라고 두산백과는 밝히고 있다. 많이 아는 꽃말로 장미는 '사랑' '아름다움', 백합은 '순결', 제비꽃은 '겸손', 월계수는 '영광', 올리브는 '평화' 등이 있다. 이들 꽃은 특질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로 붙인 말이다. 앞서 언급한 노랑꽃창포의 꽃말은 '우아한 심정', '당신을 믿는다', '그대는 정숙하다'라고 한다. 이 책의 뒷 부분에 「그 이름 은. 조.」란 일곱 번째 장(章)에서 '노랑창포꽃' 이야기를 다룬다.

 

“우쨌든 그 천녀님은 그대로 마을에 머물게 댔는데, 이 천녀님이 참말 하늘에서 온 사람인 게, 꽃을 피우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누만.”

“꽃을 피우는 재주요?”

“암. 그 천녀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믄 그라고 꽃들이 피어났다고 하제.”(p.283)

 


 

이 소설은 이런 꽃말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묘하게 신비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는 ‘꽃’들을 소재로 펼쳐지는 판타지라 더욱 아름답고 흥미롭다. 버튼 하나면 자극적인 영상물들이 주르륵 쏟아지는 요즘 같은 때에 이렇게 잔잔하고 신비하리만큼 환상적인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드물고 귀하다. 물론 주인공인 ‘한마디’가 국악원의 아쟁 연주자인 설정도 예사롭지 않다. 다른 악기들과 달리 아쟁 연주가 갖는 처연한 느낌은 이 작품의 또 다른 배경인 일제 강점기를 넘나들며 이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한마디가 다루는 아쟁(牙箏)이란 악기는 아시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아시아 금쟁(琴箏, 치터)류 악기 중 유일한 찰현(擦絃 또는 궁현弓絃, 줄비빔)악기로, 안족(雁足, 기러기발) 위에 음높이 순으로 얹은 7~10개의 줄을 막대기나 말총활로 문질러 연주한다. 정악에 쓰이는 대아쟁과 민속악용 소아쟁(산조아쟁) 외에, 창작곡 연주를 위해 개량된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아쟁이 있다고 한다. 대아쟁(大牙箏)은 한국 전통 선율악기 중에서 음역이 가장 낮은 악기이며, 현악기 중 크기가 가장 큰 악기이기도 하다. 아쟁은 현악기이지만, 전통음악에서 아쟁 파트는 해금과 함께 흔히 관악으로 취급한다. 이는 전통음악에서 현악기 하면 주로 거문고나 가야금처럼 줄을 뜯어 연주하는 치터(flucked zither)를 가리키고, 아쟁이나 해금과 같은 찰현악기는 지속음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 특성이 관악기와 유사하다 보기 때문이라고 두산백과는 전하고 있다.

 

"흰 장미를 닮은 여자가 사의 찬미를 아쟁의 선율로 만들어 흘려보내는 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꽃들이, 나무들이, 그 남자가, 그 선율 때문에 숨죽여 흐느끼는 밤. 누군가는 덜컹 박자를 놓치고 누군가의 꽃마차는 덜컹 바퀴가 걸렸다."(p.157)

 

 

소설을 읽다 보면 백과사전을 찾아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꽃은 물론 악기나 일제 강점기 막바지의 모습 등이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찮지 않다.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읽는 재미가 한 번에 죽 읽어내리는 소설보다 더하다. 특히 저자의 꽃에 대한 해박한 저자의 지식은 한 번 읽고 지나쳐 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다. 또 일제 강점기에 대한 인식과 현재의 우리나라로 80년을 뛰어넘어 사건을 전개시키는 저자의 상상력과 그것을 그려내는 필치는 가히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누군가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순간을 글로 옮긴다면 이런 느낌일까? 주인공 ‘한마디’가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다 모퉁이 집의 새 주인 ‘모도유’를 만나고 마음을 여는 과정은 마치 꽃잎을 하나씩 세는 듯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저자는 섬세하고도 가녀린 그렇지만 강인한 한 떨기 꽃과 같은 문장으로 한마디를 비롯한 인물들을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쟁 산조를 함께 들어보기를 권한다.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하고 구슬픈 아쟁의 선율은 한 여성의 기구하고도 애절한 삶을 넘어 독자가 1945년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한마디’가 연주하는 아쟁의 선율 〈사의 찬미〉에 깨어나는 80여 년 전 그 사건은 대체 무엇일까? 이 소설은 구슬프고 아련하게 귓가에 울리는 아쟁 연주와 주위를 가득 채우는 창포꽃 향기의 몽환 속으로 독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전한다. 누구든 모퉁이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꽃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플라워 판타지’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아입니더. 지는 나리께 목숨을 끊어 바쳐야 할 죄인입니더. 그래도 우짜믄 죄값은 쪼끔은 치렀십니더. 지가, 이 한 많은 목숨이, 아들 내외, 손자 내외 다 먼저 잡아묵고 이리 추악하게 혼자 늙었십니더.”

“그리 말씀하시 마세요. 저 또한 아들 내외를 한날한시에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걸 어찌 누군가의 죗값이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인생의 우거진 수풀 속에 놓여 있던 덫에 걸렸던 것뿐이지요.”(p.323)

 

〈어제도 말씀드렸죠? 저는 다 감사한 일뿐이라고요. 해서 더 이상의 바람은 제게 없어요.〉

”그 바람이 어디 너의 언덕에만 불고 있었더냐? 나는? 도유는? 마디 양은? 우리의 언덕에서는 여전히 그치지 않은 이 바람은 이제 누구를 향해 불어야 하는 건데?”(p.346)

 

저자 : 이영희

 

경남 진주시 하대동 거주.

꽃을 사랑해서 꽃으로 글을 쓰는 글쟁이.

<영남문학> 중편소설 등단.

통일부 통일창작동화 수상.

대한민국 e작가상 수상.

제 7회 진주시 북 페스티벌 초청 강연.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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