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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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소설 독자들도 다 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그들은 많은 작품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인연을 맺고 굉장한 작품들을 선뵈며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물론 최근(?)엔 히가시노 게이고가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당연히 그의 작품들이 워낙 출중한 데다 추리소설 미스터리 분야에서 단연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소설의 흐름은 SF 판타지와 미스터리 소설로 옮겨가고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통적 문학의 중심에서 탁월한 작가로 평가받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 부문에서 놀라운 작품을 쉴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 발표를 보면 놀랍기만 하다. 독자가 문학평론가도 아니기에 정확하게 책 발간 일자를 순서별로 집계한 것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저자 소개에 따르면 첫 작품 출간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을 발표했다. 1년에 두 권 가까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그를 가리켜 '미스터리의 제왕'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놀랍지만 작품의 소재가 매번 새로운 것이란 점도 독자들에게 어필할 요인이다. 이책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는 장편소설이라기보다 중단편 연작에 더 가까울 듯하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중·단편, 혹은 장편 등의 갈림은 이미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작품의 길이에 매달리지 않는 작가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전작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 이은 〈블랙 쇼맨〉 시리즈 후속작으로 사건 전개나 대화, 심리묘사 등이 더 압축적으로 스피드하게 전개된다. 어쩌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SF에 비해 시간 제약을 거부하는 아날로그 작가로서의 의사 표현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본다. 물론 독자 혼자서.

 


 

이 작품은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맨션의 여자」, 「위기의 여자」, 「환상의 여자」. 이 작품은 전작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에서 새롭게 선보인 히어로 블랙 쇼맨, 그리고 사건이 해결되는 공간 〈트랩 핸드〉가 또다시 등장해 마술 같은 재미를 더한다. 도쿄의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 간판도 없이 운영되는 바 〈트랩 핸드〉, 공통으로 나오는 장소, 〈트랩 핸드〉(TRAPHAND)는 칵테일바다. 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여자들은 트랩핸드의 주인인 다케시의 도움을 받거나 다케시가 그들의 사건에 조금씩 개입하면서 해결된다.

줄거리를 다 말하면 스포로서 독자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다. 〈트랩 핸드〉 그곳에는 눈썰미부터 말솜씨까지 남다른 마스터 가미오 다케시가 있다. 그가 고객의 사연에 맞춰 만들어주는 한잔의 술을 들이켜며 손님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으면서 하루의 찌꺼기를 씻어내기도 한다. 부족한 것 없는 귀부인이 이사할 집의 리모델링을 위해 젊은 건축사에게 의뢰를 맡긴다. 코로나19로 입은 실적의 타격을 단숨에 만회할 기회인 만큼 그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갖은 애를 쓴다. 이 여성은 막대한 돈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는데, 대체 왜 이리 안목이 형편없는 걸까?

가미오 마요가 그녀의 리모델링 상담을 맡게 되는데 그녀의 삼촌이 운영하는 트랩핸드에서 그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삼촌과 마요는 수상한 사실을 알아내고 그와 더불어 불청객이 중간에 사사건건 간섭하며 무언가 요구하며 우에마쓰 가즈미를 괴롭힌다. 이 책은 〈트랩 핸드〉 주인인 다케시의 능청스러움과 뻔뻔함이 이야기 전개의 핵심이다. 어느 이야기에서든 그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 「맨션의 여자」

 


 

「위기의 여자」는 세 가지 이야기 중 가장 짧다. 결혼 사이트에서 만난 남녀가 다케시의 〈트랩 핸드〉에 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트랩 핸드〉에서 첫 데이트를 하는 남녀 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귈까 말까 아슬아슬한 순간에 진실이 드러난다.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마스터, 다케시의 색다른 추리가 돋보이는 단편이 이어진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나이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거든요.”

기요카와는 자조하듯 웃었다. 마흔다섯 살, 결혼 이 력 없음. 그의 프로필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마스터가 셰이커를 흔들기 시작했다. 셱셱, 기분 좋은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기요카와가 겉옷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손으로 몇 번 조작하더니 나미 쪽으로 화면을 내밀었다. “대충 찍은 거라 별로 잘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입니다.”

도로에 인접한 건물을 대각선 방향에서 찍은 사진이 화면에 떴다. 직사각형의 하얀 이층집이었는데 길에서 현관까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건물을 둘러싼 화단이 푸르렀다.(p.131)

 

"원래 파란 빛깔을 띤 음료라면 섞어도 알아채기 어렵죠. 블루 하와이는 그런 음료의 대표격이고요."(p,145)

 


 

마지막 단편 「환상의 여자」는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사진 속 여자가 책 제목으로 채택된 것 같다. 다카토 도모야는 치과 의사지만 재즈를 사랑한다. 재즈를 사랑해 밤에는 뮤지션으로 활동하지만 아내는 그것을 못마땅해하고 결국은 별거를 하게 된다. 도모야는 그렇게 유즈키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지만 어느 날 뜻밖의 교통사고로 죽어버린다. 하지만 유즈키는 그를 잊지 못하고 하루하루 절망 속에서 살아가던 중 그녀는 도모야와 어떤 여자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유즈키가 그녀가 누군지 알아내려고 하면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스토리 전개는 잔잔하지만 긴장감과 스릴은 팽팽하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간결한 필치가 긴장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건 개요를 짐작할 수 있는 일들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손 안에 있으면 미스터리 스릴러로 바뀌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큰 그림을 저자가 이미 그려놓고 어디에서 긴장감을 주고, 어디에서 슬쩍 풀어주고... 자유자재로 밀당을 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구성력과 한 문장도 버릴 수 없는 글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돼 조금의 틈도 없는 잘 짜여진 미스터리 극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미스터리 제왕'이란 별칭도 가능하리라.

 

"블러디 메리. 야마모토 씨가 이 칵테일을 주문한 이유를 저는 알 것 같습니다. 피를 흘릴 각오가 돼 있던 거죠. 친구를 위해서라면, 설령 자신이 상처받는다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아닙니까?"

뭉클한 뭔가가 유즈키의 가슴에 솟아올랐다(p.228)

 

 

「환상의 여자」는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할 수 있는 신기술 ‘딥페이크’가 돋보이는 미스터리다. 짐짓 치정극을 예측했던 독자들은 허를 찔릴지도 모르니 결말을 단정 짓지 말 것을 독자들에게 미리 당부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전매특허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책은 저자의 제안에 따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 독자들에게 선보인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그를 안 지 불과 3년밖에 안 되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 된 독자로서는 영광이고, 한국 팬들의 마음마저 뿌듯하다.

가족의 스토킹을 멈추고 싶은 미망인, 평생을 함께할 상대로 오늘 저녁 처음 만난 사람을 감별해달라는 손님, 죽어버린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죽은 남편의 유산을 물 쓰듯 한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돈만 밝히는 속내를 간파당할까 봐,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했었다는 과거가 들춰질까 봐 이들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 실상 자신을 갉아먹는 현실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해 돈에 의해서든, 사랑을 이뤄서든 각자의 인생에 새로운 출구를 찾지만, 주위 시선이 여전히 매서워 번번이 망설일 뿐이다. 견딜 수 없다면 태세를 전환하는 게 상책. 다시 태어나고 싶을 만큼 간절한 이들의 열망에 화답하기 위해 다케시가 등판한다.

짐짓 타인의 사정에는 관심 없다는 듯 손님을 응대하지만, 절망에 빠진 이들이 보내는 SOS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물심양면 도와준다. 그는 각종 칵테일을 능숙하게 만들어 이들에게 내어주며 위로하는 것은 물론, 화려한 손짓 하나로 결말을 바꿔치기하고, 생면부지의 사람이 꾸민 음모를 밝혀낼 정도로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 속도감 있게 수수께끼를 해결하며 속임수는 속임수로 갚아주는 다케시의 일침에 이야기의 재미는 한껏 달아오른다.

 


 

1985년 데뷔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를 지켜온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가 구축해온 입지는 독보적이다. 그의 공식 출간 기록을 보면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서너 편의 책을 써왔다고 할 정도의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그의 새 원고를 받기 위해 일본 출판계 담당자들은 지금도 순서를 정해 기다리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그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판권 경쟁이 치열하다. 매년 스스로 전성기를 갱신한다고 할 만큼 변함없이 독자들의 성원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본격 미스터리를 비롯해 서스펜스, SF 심지어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에도 능통한 그는 ‘과연 한 사람이 쓰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색다른 방식으로 집필해왔다. 문장은 명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되, 절대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끔 촘촘히 조형해온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각종 촌극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선과 악을 엄정한 도덕적 잣대로 판별하는 데서 벗어나,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비극의 원형을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는 데에 능통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분량은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주제 의식을 담아 살인이 일어나지 않아도 크고 작은 일들에 휘말리는 인간의 일상사를 특별하게 풀어내는 그의 필력에 독자들은 어김없이 탄복하게 될 것이다.

 

"블러디 메리."

"오늘 밤은 나도 피를 흘리자. 그리고 이걸로 끝은 내자. 내일부터 다시 태어나는 거다."

"알겠습니다."

가미오가 정중히 대답했다.(p.229)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ひがしの けいご, 東野 圭吾)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를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첫 작품 발표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이라는 많은 작품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1958년 2월 4일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과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발한 트릭과 반전이 빛나는 본격 추리소설부터 서스펜스, 미스터리 색채가 강한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 중 상당수의 작품이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에도가와 란포 상은 그 해의 가장 우수한 추리 작품에 수여되는 상으로 데뷔작이자 수상작인 『방과후』로 화려하게 등단한 그는 일본 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지만, 유독 한국에서 그 명성과 실력에 맞는 인지도를 쌓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비밀』을 계기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엄마의 영혼이 딸에게 빙의된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이 작품은 청순한 이미지로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히로스에 료코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소설은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독자를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빙의나 의료 사고 등 녹록치 않은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당대 첨예한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추리소설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소설을 쓰고 있다. 늘 새로운 소재와 치밀한 구성, 생생한 문장으로 매번 높은 평가를 받는 저력 있는 작가인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답게 작품 중 19편이 영화와 드라마로 다시 독자들과 관객들을 만났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며, 전세계적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칼날』,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레몬』, 『환야』, 『11문자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한여름의 방정식』, 『몽환화』, 『그 무렵 누군가』,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인어가 잠든 집』, 『살인의 문』, 『백야행』, 『기린의 날개』, 『한여름의 방정식』, 『신참자』,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다잉 아이』,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학생가의 살인』, 『오사카 소년 탐정단』, 『천공의 벌』, 『붉은 손가락』 등이 있다. 『방과 후』, 『쿄코의 꿈』, 『거울의 안』, 『기묘한 이야기』, 『숙명』, 『백야행』, 『갈릴레오』등 지금까지 20편이 넘는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비밀』, 『변신』, 『편지』,『용의자 X의 헌신』, 『더 시크릿』등 10여편이 영화로 제작되는 등,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최고은

 

도쿄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동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일본 전후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무라타 사야카의 『소멸세계』, 기리노 나쓰오의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인형 탐정』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의 『서브머린』, 『칠드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미치오 슈스케의 『스켈리튼 키』,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그림자밟기』,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 시리즈를 비롯해 『인사이트 밀』, 『절규성 살인사건』, 『46번째 밀실』 『도미노』, 『덧없는 양들의 축연』, 『거대 투자 은행』, 『소녀지옥』, 『침묵의 거리에서 1, 2』, 『말레이 철도의 비밀』, 『백년법 상,하』, 『골든애플』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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