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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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우린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작가 이동건이 쓴 『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의 전작에서 벌어진 사건의 뒷 이야기를 다룬다. 제목만 비슷한 게 아니고, 주요 등장인물 역시 같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히 살인을 완수하는 박종혁이 전작에 이어 이 작품에 등장한다. 전작은 단순 범죄 소설처럼 시작했지만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박종혁 범인을 추적하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종혁의 범행을 모두 알고 있지만 이를 빌미로 종혁을 쥐락펴락하며 그를 자신의 살인 병기로 이용하는 검사 이진수도 나온다. 박종혁은 이진수에게 벗어나고자 최창길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급하게 거사를 도모하지만, 이 또한 모두 누군가가 파놓은 완벽한 함정이다.

전작 『~생기지 않는다』는 연쇄 살인범 박종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지만 이번 『~보이지 않는다』는 검사 이진수가 전개되는 스토리의 중심인물이다. 말하자면 후속작인 셈이다. 검사 이진수는 일 잘하고 치밀한 계획을 갖고 일을 추진한다. 책 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그의 계획을 넘어서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또 같이 일을 한 사람들은 그의 대한 평가는 좋다. "(···) 내가 이진수 그놈을 밑에 두고 일 좀 시켜봤는데, 일은 잘해! 그것도 기똥차게. 근데 그걸로는 안 돼. 여기 일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 한둘인가? 그쪽 사람들도 순순히 허리 굽힐 사람 하나 없고 저희 같은 사람이 위낙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p.32) 그럼에도 작은 균열 하나가 결국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이 작품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과연 그 균열은 무엇일까?

 


 

“지금 엎질러진 물을 담을 방법이 있어요. 그러니까 도와주겠다는 이야기예요.” 이진수는 정치에 뜻이 있었나보다. 이번 『~보이지 않는다』에서는 정치검사로서의 이진수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다. 정치판에 들어서며 존재감을 높이려는 것인지, 사전 공작된 범행(살인 등)은 여전히 박종혁을 통해 시키며 그의 전 범법 행위에 대해 눈감아 준다. 이런 관계는 사실 일반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대부분 배신이 시작되면 공멸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 검사 이진수도 몰락해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서 정치와 검찰, 재계 등의 연결고리에 속사정이 소설 속에서 많이 등장한다. 세태 풍자 소설처럼도 느껴진다. 다만 살인이나 정치 공작 등이 끼어들어 단순 세태 풍자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 같다.

배신 속에서 찾아온 또 다른 배신.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이 상투적인 표현에서 잘 적용되는 곳이 어디일까? 범죄와 정치권에서의 배신은 공멸의 신호탄이다. 주변에는 다른 이가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자신의 눈과 입을 닫는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두고 슬퍼하는 척을 하며 뒤에서는 웃음 짓는 사람들뿐이다. 철저하게 계획된 죽음과 그것을 이용하려 기다리는 사람들. 이 소설의 스토리가 복잡해지고 확대되는 일은 검찰과 정치권에 맡긴 듯하다. 점점 더 큰 권력을 욕심내는 이진수를 주변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거대한 그림자는 이진수를 향하고 그 그림자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거 깔끔히 치우고 조용히 꺼져라. 다 포기하고 사라지라는 협박이다.” 몰아치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뒤에서 피 냄새를 맡은 사람들, 돈과 거래. 이기적으로 연결된 얄팍한 관계, 선거와 음모.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더러운 판 위를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편 완전 범죄가 가능한 살인 병기 박종혁은 여전히 절대 그림자를 만드는 법이 없는 완벽한 킬러다. 하지만 이제 자신은 검사 이진수에게 약점 잡혀 아무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지내는 신세로 전락하자 결국 이진수를 배신하는 막다른 상황으로까지 몰린다. 수십 억원의 돈까지 걸려 있지만 박종혁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모든 게 이진수의 조종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돌아올 것도 없다. 영원히 이진수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이진수를 죽이거나 감옥에 보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에 종혁은 이진수의 비리를 목숨 내놓고 폭로한다. 설령 공멸의 수순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종혁은 이 단계에서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린 함정. 빠져나오지 못한 나의 죽음 주위에는 온통 시체를 파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정치와 돈 그리고 각기 다른 내밀한 욕망을 위해 얽힌 관계들. 이 작품 『우린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작에서 다룬 살인자 박종혁에서 확장되어 살인자 박종혁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와 그를 이용하는 또 다른 이들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저자 이동건은 박종혁이란 괴물을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성역, 정치와 범죄를 정면으로 독자들 앞에 꺼내놓는다.

이야기가 이쯤 되자 제목의 한 단어만 바꾼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본다는 것은 양심을 전제로 한 가치 판단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사회의 양극단에 위치한 두 남자, 박종혁과 이진수를 통해 저자는 단순히 스릴러와 미스터리만을 그리고 있진 않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지위나 부에 대한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 소설은 드디어 우리 사회가 경제 성장의 미명하에 애써 어두운 부분을 간과하고 또 외면하고 살아왔음을 아프게 꼬집는다. 정녕 우리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을 인식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 모두가 눈을 감고 있어 그 누구에게도 어둠이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를 날카롭게 묻는다. 그렇다면, 그들의 그림자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전작과 '보이지' 않는 이번 작품은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잡아낼 수 있다.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내기에는 독자가 그의 작품 성향을 알거나, 최소한 그의 개인적 성격이나 일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전작에서 종혁이 첫 살인 때, 범행 동기가 없는 '미성년자'의 살인을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특출한 장치를 이용했고, 이후 연쇄 살인에 대해서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한 살인을 수행하는 종혁을 탄생시켜 소설 구성의 묘미를 더해주었다. 이번 후속작에서 종혁은 자신의 위험한 능력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가며 종혁을 사건에 투입시킬까 고민하던 저자는 '배신'과 '정치'의 키워드를 배치시키는 기민함을 보여준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사람은 '범죄자'를, 그것도 완전범죄의 흔적도 찾지 못할 정도의 연쇄 살인범에 그림자가 없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종혁을 투입했다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로서는 범죄를 눈감아주는 검찰이나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암시마저 주지 않은가. 이 소설이 얼마나 구성에 힘을 기울였는지, 단어나 어휘 선택에 고심을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가 전작에서 "그의 위험한 능력을 탐내는 이들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져든다"고 표현했다. 종혁이 청부 살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폐해지는 모습과 동시에 그를 매수하여 살인을 청탁하는 사람들에게 독자의 시선이 쏠리도록 한 것이다. 이미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들의 끝없는 탐욕과 위선, 배신과 살인을 저지를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 같지 않은가? 저자는 전작에서 종혁의 눈을 통해 그들의 추악함을 독자에게 낱낱이 고해바쳤다. 전작에서는 살인자 종혁을 쫓는 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 뿐이다. 과연 완전 범죄를 꿈꾸는 종혁은 끝까지 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종혁이 잡힌다 하더라도 종혁을 고용한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살인 병기 종혁을 통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독자는 종혁의 첫 번째 살인을 제외하고는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점을 인정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왜 소년 종혁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질렀을까에 대한 답은 후편으로 미뤘다. 다음 네 개의 문장은 책 속에 실린 저자의 감정의 흐름을 잡아낼 수 있어 여기에 적는다.

"역겹고 치사한 냄새를 풍긴다."

"오물과 살인의 냄새가 난다."

"배신과 공포의 냄새가 느껴진다."

 


 

이런 범죄와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곳이 우리 사회의 어느 부분인가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저자의 작품에 대한 애정마저 느껴진다. 전작에서 "소년은 살인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고, 이번 후속작에서 역으로 죽음을 당하는 종혁의 인생에서 우리 독자들이 무엇을 느낄 것인가, 그리고 그 책임을 오롯이 범죄자 종혁 혼자의 것으로 끝날 일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이유가 이 책 속에 있다. 다음의 책 속 문장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인이 누구이고, 그 피해자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일을 더 키우지 말고 여기서 끝내자는 제안과 나를 조용히 풀어주겠다는 조건이었다.(p.125)

연락을 할 사람도 연락이 오는 사람도 없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커녕 걱정하는 사람도 없다.(p.135)

다들 슬픔에 잠긴 표정이지만, 그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p.146)

 

저자 : 이동건

 

언제나 좋아하는 책을 쌓아두고 상상에 파묻혀 살았다. 학창시절 홀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걸 좋아하는 2000년생 천상 이야기꾼.언제나 좋아하는 책을 쌓아두고 상상에 파묻혀 살았다. 학창시절 홀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걸 좋아하는 2000년생 천상 이야기꾼. 출간 장편소설 『죽음의 꽃』, 『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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