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 탐정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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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틈나는 대로 읽는 이유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범죄 소설이 훨씬 많은 인기를 얻어서이다. 독자가 추리소설에 맛을 들인 게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이니 현황과 우리 독서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추리소설로 입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었고 크게 몰입됐다. 읽다 보니 그들의 추리문학은 번역돼 국내 서점에 나오는 책으로는 압도적이다. 우리도 요즘 대세인 판타지 소설로 결합된 추리소설이 많이 나오지만 아직 귀에 익을 정도로 많이 들어본 작가 이름은 없다. 물론 개인적 취향에 따른 독서량으로는 차이가 있겠지만 독자 개인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일본 추리소설은 혹시 서양, 그 중에서도 영국의 추리소설에 기인한다는 느낌마저 있다. 다른 많은 것들을 영국에서 배워온 일본이니까 추리소설도 그런 이유로 본격 도입되고 널리 확산된 것은 아닌가 하는 독자만의 생각이다.

이 책 『안락 탐정』은 추리소설, 블랙코미디로 불리는 단편 소설 여섯 작품이 실려 있다. 저자 고바야시 야스미는 『앨리스 죽이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라고 한다. 독자는 저자의 이름을 잘 모르고 있었지만 작품 『앨리스~』는 읽지는 않았지만 작품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앨리스~』는 세계적 고전과의 접목을 시도한 작품으로 저자의 미스터리 소설 역량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호러와 SF, 미스터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특한 색깔을 가진 ‘고바야시 월드’를 구축한 작가로 이미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일본 평단에서 고바야시 야스미는 세심한 규칙과 논리적 설정으로 미스터리의 틀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면서도 호러소설의 실력자다운 잔혹 묘사를 더해 일반적인 미스터리와 다른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장르적 특성을 하나의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고바야시 미스터리만의 강점이다. 이 책 『안락 탐정』은 의뢰인과의 대화만으로 기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의 기막힌 추리와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책에서는 최고의 명탐정으로 소문난 '안락 탐정'에게 하나같이 이상한 의뢰인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탐정은 사무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진상을 밝혀 낸다는데. 전편에 숨겨진 교묘한 함정과 블랙 코미디가 일품인, 『앨리스 죽이기』 작가가 펼치는 기묘하고 기발한 연작 미스터리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에는 스토커 팬이 편지 속에 이상한 사진을 넣어서 보낸다는 한 여자 모델의 이야기인 「아이돌 스토커」, 사람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한 회사원의 이야기인 「소거법」, 다이어트 제품만 먹었는데 살이 쪘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다이어트」, 독특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딸을 잃어버린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식재료」, 자신이 한 기부가 사기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생명의 가벼움」, 명탐정의 숙적은 누구인가? 지금까지의 사건을 돌아보면서 그 답을 찾는 이야기로 구성된 「모리아티」 등 6편이 실려 있다.

 


 

『앨리스 죽이기』의 작가로 유명한 고바야시 야스미는 데뷔 전에 소설 쓰기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채롭다. 이공계 전공으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투고한 소설이 일본 호러 대상을 수상하였고, 이어서 발표한 작품들이 SF 대상을 수상하는 등 천재적 필력을 인정받았다. 물론 누구나 가능한 건 아니지만, 별도의 소설 쓰기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으로 오히려 고정관념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을 쓴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앨리스~』로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스타일이 빛났듯이 『안락 탐정』 역시 마찬가지다. 범죄 현장 방문이나 탐문 등, 행동적 수사를 하지 않고 의뢰인과의 대화나 관련 자료만 보고 사건을 추리하는 탐정을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한다. 영어로 ‘암체어 디텍티브(Armchair Detective)’라고 하는 안락의자 탐정은, 소설 속 최초의 탐정이라는 에드거 앨런 포의 오귀스트 뒤팽, 그리고 오르치 남작 부인의 소설 『구석의 노인』 속의 노인,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의 마플이 대표적이란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속에서 안락의자 탐정이 등장하는데, 이 책 『안락 탐정』에 등장하는 탐정은 그 어느 탐정과도 닮지 않았다. 권선징악이나 기발한 트릭, 멋진 추리는『안락 탐정』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작품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긴 시니컬한 블랙 코미디로 색다른 재미를 주는 연작 소설이다. 탐정을 찾아온 의뢰인들의 사건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다. 의뢰인도 수상하고 그들을 상대하는 탐정은 더 수상하다. 수상한 연작 소설집 『안락 탐정』에서 그 수상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이 소설 읽기의 목적이다. 첫 작품 「아이돌 스토커」는 패션 잡지 모델로 데뷔한 연예인이 받은 팬레터에 대한 이야기이다. 검은색 봉투라고 생각했던 것이 쌀알보다 작은 글씨들을 빽빽하게 적어 놓은 것이다. 처음엔 의뢰인을 응원하다가, 뒤로 갈수록 자신에게 답을 하지 않는다는 원망으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공격적인 글로 욕하면서 저주하는 내용이다.

이 모든 내용은 하나의 봉투에 적혀 있고 안에는 의뢰인이 실렸던 잡지와 비슷한 옷과 포즈를 취한 채 찍은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의 사진이 있었다. 매니저에게 말했으나 실제 피해가 없어서 경찰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후 외뢰인은 그라비아 아이돌로 영역을 넓혔고, 같은 봉투와 의뢰인을 따라 한 사진도 계속 온다. 일이 많아지며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잡지가 발매된 당일 오후 똑같이 따라 한 사진을 보낸다. 매니저에게 말했으나 매니저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일을 거부했다. 반년이 지난 후 우편함에 전날 그녀가 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찍은 남자의 사진이 들어있다. 이 소설은 탐정 추리보다 기획사까지 서로간의 계약에서 일어날 수 있는 관계,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연예인이 대중에게 보여야 하는 모습과 달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기획사에만 의존, 연예인 외의 모습을 노출불가)에 무력함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작품 「다이어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살이 찌고 있다며 의뢰한다. 자신의 모습 말고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외뢰인 여성은 다이어트 마니아로 SNS 상에서 유명하다. 다이어트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전화로 회사에 휴직한다고 말했고, 인간관계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아 친구가 없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사람도 처음엔 인사했는데 나중엔 완전히 무시한다. 의뢰인의 블로그엔 생긴 지 얼마 안 된 다이어트 운동, 다이어트 식품, 다이어트 기구 등을 직접 사용해 보고 솔직하게 후기를 남기는데, 요즘은 하이퍼마나 다이어트를 체험하고 있다고 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 「생명의 가벼움」은 월급 석 달치를 기부한 돈의 사용처를 확인하기 위해 NPO 법인을 찾아간다. 장부 열람을 요청해 보았고 복사본도 받았다. 세무사에게 상담료를 지불해 제대로 된 것임을 알았으나 그것으로 납득이 안 돼서 일을 그만두고 대표를 뒷조사한다. 대표의 자산과 직원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다. 아무 문제도 없었으나 의뢰인은 자신이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가 관심사라 만족이 안 되어 더 조사를 한다. 각각의 작품은 저자의 의도대로 쓰여지지만 결과에 대해서 서평자는 말하기 어렵다. 스포일러로 서평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상과 시대상을 반영해 작품을 쓴 블랙코미디에 가깝다는 점만을 귀띔한다. 독자들의 탐독을 권유한다. 다만 한 가지 덧붙여 독서의 팁을 준다면 소설 속 의뢰인이 항상 진실을 말한다는 보장은 없다.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안락의자 탐정은 의뢰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섯 개의 사건을 잘 해결한다. 그에 의문을 가진 조수 겸 작가는 마지막 이야기 「모리아티」에서 셜록 홈스를 예로 들며 자신의 의문을 해결한다는 점이다.

 


 

저자 : 고바야시 야스미(Yasumi Kobayashi,こばやし やすみ,小林 泰三)

 

1962년 일본 교토 출생. 오사카대학원을 수료하고 1995년 데뷔작 「장난감 수리공」으로 제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수상, 이 작품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98년 「바다를 보는 사람」으로 제10회 SF매거진 독자상을, 2012년 『천국과 지옥』, 2017년 『울트라맨F』로 SF문학상인 세이운 상을, 2014년 『앨리스 죽이기』로 게이분도 대상을 수상했으며 『알파·오메가』(2001)와 『바다를 보는 사람』(2002)으로 2년 연속 일본 SF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한 『앨리스 죽이기』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등 일본 주요 미스터리 랭킹에 이름을 올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E. T. A.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을 바탕으로 『앨리스 죽이기』의 세계관을 확장시킨 『클라라 죽이기』와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재생산되고 있는 L.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 J. M. 배리의 『피터 팬』을 바탕으로 한 『도로시 죽이기』, 『팅커벨 죽이기』를 연이어 발표, 그만의 스타일을 확고히 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밀실·살인』,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 『완전·범죄』, 『분리된 기억의 세계』, 『인외 서커스』 등이 있다. 2020년 11월 23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주자덕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캐나다와 일본 유학을 거쳐 컴퓨터그래픽 영상 제작 일에 종사하던 중 영상화되는 장르 문학 작품들의 매력에 빠져 대중성 있는 장르 소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출판사를 설립, 기획과 작품 선택은 물론 직접 번역과 감수에도 참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일본 SF 소설의 아버지 운노 주자의 단편 걸작선인 『18시의 음악욕』, 나오키상 수상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단편집『동그라미』, 요미사키 유지의 SF 미스터리 장편 소설『전기인간』, 마츠오 유미의 SF 장편 소설『스파이크』, 에도가와 란포의 장편 소설 『악마의 문장』, 아키요시 리키코의 『절대정의』, 니시자와 야스히코 『끝없는 살인』, 나카타 에이이치 『나는 존재가 공기』,『오늘 너를 다시 만난다』등이 있다. 아울러 한국 장르 소설을 기획하고 출간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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