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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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은 다소 충격적이다. 세 사람이 한날 한시에 엽총으로 자살을 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데다 평범한 일상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라 충격을 더한다. 다만 세 사람이 모두 여든 살 넘은 노인이고, 세밑의 죽음이라 계획적인 죽음(자살)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 이 소설은 세 노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과, 그들의 일상에서 가족이나 친구, 동료, 지인을 중심으로 갑작스런 죽음의 이유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다.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 등 수많은 작품으로 국내 480만 독자(번역본 판매부수)들에게 사랑받아온 저자 에쿠니 가오리가 기존 전작들과 사뭇 결이 다른 장편소설을 썼다.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매력을 선사하는 저자는 이 작품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발생하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엮어 전개한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는 여전하다. 저자를 통해 세 명의 노인들과 여러 인물들의 삶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특히 이번 신간은 팬데믹 시대를 반영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생생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의 이유가 고독사인지 아닌지는 이 소설의 논점이 아니다. 다만 여든 살이 넘은 노인 세 사람의 동반 죽음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 사회(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의 문제를 가감없이 따라가는 것뿐이다. 쉽게 표현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저자는 엄격히 객관적 시각으로 일관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노인과 죽음의 문제를 사회에 던지는 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 호텔에 모인 세 명의 노인. 그들은 함께했던 시간을 더듬으며 회상하고, 엽총으로 함께 목숨을 끊는다.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는 노인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가까운 가족이어도, 친구여도, 지인이어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이들 가까운 사람과의 만남이나 일상이 이들의 죽음에 직간접 작용을 했는지 여부에 집중돼 있다.

‘나는’ 하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돈은 있지만, 돈이 있어도 갖고 싶은 게 없어져 버렸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더없이 쓸쓸하고 공허한 이 말 속에 묘한 해방감이 엿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이 책의 역자 신유희는 밝히지만 독자로서는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심경을 읽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저자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읽힌다고 썼다. "현실 속에서 벌어졌다면 그저 세상 떠들썩한 참극으로 치달았을 사건임에도, 함께한 과거를 추억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담담히 맞이하는 세 노인의 모습을 빌려 우리가 겪어 온 혹은 맞이할 수많은 상실과 종언을 이야기하고 있다."((p.274)

 


 

소설의 흐름을 잠시 따라가 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을 계기로 남겨진 자들의 평범했던 일상이 뜻하지 않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에 혼란이 찾아들고, 살아 있는 자들의 일상이 세 노인의 죽음 위에 켜켜이 쌓인다. 연락이 끊겼던 가족들이 다시 이어지고, 낯선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하는 등 각자의 등장인물들에게 낯섦의 순간들이 파고든다. 이 소설은 이렇게 본인의 죽음 앞에 선 세 노인들과 타인의 죽음 뒤에 선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번째 소개되는 사람의 이름이 치사코는 여자라는 걸 알 수 있다.

"바 라운지에는 피아노가 있고 촉촉한 곡이 연주되고 있다. 부스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세 사람은 각자 마실 거리를 주문했다. 여위고 키가 크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시노다 간지는 여든여섯 살, 대머리에 몸집이 작은 시게모리 츠토무가 여든 살이고, 축 늘어진 뺨이 불도그를 연상시키는 데다 숏 보브 스타일의 백발이 남의 이목을 끄는 미야시타 치사코는 여든 두 살이었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두 달 만으로, 그전에도 그다지 띄엄띄엄 만나지는 않았기에 예전과 같다고 세 사람 다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간단히 옛날로 돌아와 버린 것 같다고, 실제로는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p.7)

 

 

세 노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떤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내린 것일까. 책에서는 그 모든 게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그려진다.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명확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글 중 가장 큰 특징은 딱 정해진 교훈이 없다는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이야기한다. 그 말을 들어서인지 이 소설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이,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 미리 정해 두고 독자들에게 알리는 글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에쿠니 가오리의 글에는 불륜, 나이차가 큰 사랑 등 ‘평범’하지 않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주제가 많이 등장한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런 주제를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않고 그저 다양한 사람들의 명확하지 않은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독자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말로도 들리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사건 전개나 과정이 중요한 것은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통해 소설가로서의 저자을 읽기 위해서이니까.

 


 

"마당에 심은 구근 하나가 올해 처음 꽃을 피운 것을 발견했을 때라든지 슈퍼마켓에서 장을 다 보고 바깥에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을 때 혹은 우연히 탄 택시의 운전기사의 느낌이 좋지 않았을 때 갑자기 세상이 아버지의 부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감각에 휩싸인다."

이 소설은 죽은 세 노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아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각 세 노인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의 죽음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쾌했던 고인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고인이 살아 있다는 듯이 마음속으로 말을 걸고, 누군가는 집 안에서의 고인과 집 밖에서의 고인의 차이점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또한 고인의 유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족의 이야기도 작품에서 그려진다. 에쿠니 가오리는 남겨진 사람들이 마땅히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우지 않는다. 타인의 죽음 앞에 선 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방식이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룬 이번 에쿠니 가오리의 장편 소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는 과연 나의 죽음 앞에서, 타인의 죽음 앞에서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고찰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 : 에쿠니 가오리(Kaori Ekuni,えくに かおり,江國 香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1992), 『나의 작은 새』로 로보노이시 문학상(1999),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2004), 『잡동사니』로 시마세 연애문학상(2007), 『한낮인데 어두운 방』으로 중앙공론문예상(2010)을 받았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서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 1·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벌거숭이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개와 하모니카』, 『별사탕 내리는 밤』, 『집 떠난 뒤 맑음』 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역자 : 신유희

 

동덕여대를 졸업하고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호텔 선인장』, 『도쿄타워』, 『마미야 형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벌거숭이들』, 『별사탕 내리는 밤』, 『집 떠난 뒤 맑음』,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 『태양을 기다리며』, 노자와 히사시의 『연애시대 1, 2』, 가쿠다 미쓰요의 『그녀의 메뉴첩』, 『가족 방랑기』, 오기와라 히로시의 『내일의 기억』, 『벽장 속의 치요』, 가와이 간지의 『단델라이언』 외에 『금단의 팬더』, 『콜드게임』, 『이게 다 베개 때문이다』, 『암 체질을 바꾸는 기적의 식습관』,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112일간의 엄마』, 『밥 빵 면』, 『은하 식당의 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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