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오피스
말러리안 지음 / 델피노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부시게 뜨거운 태양을 가진 초여름의 오후였다.

쟃빛 도시를 이리저리 떠돌던 여름 바람은, 어느새 지쳐 마천루 건물 옥상에 발을 간신히 내디뎠다. 빼곡히 들어서서 무표정한 표정을 쏟아내는 콘크리트 건물들의 냉담함에 질려버린 듯,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잠시 숨을 고른다."(p.8)

 

평범하고 익숙하던 사무실이 심상치 않다. 고성과 갑질이 난무하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서 숨조차 쉴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다. 일상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블러드 오피스』는 우리 주변의 흔하디흔한 보통 회사, 평범한 회사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는 예기치 않은 상황의 발생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조용하던 사무실에서는 온갖 소동이 벌어지고, 자유로운 의견을 주고받던 회의 시간에는 욕설과 폭언, 갑질만 난무한다. 때마침 세상을 강타한 팬데믹. 이 때문에 직원들은 회사를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워지고, 점점 모두를 끝없이 검은 터널로 몰아가며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만든다.

이미 사무실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이 계속되지만, 이 상황에 언론은 냉담하고 공권력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은밀한 저항이 시작되며 이야기는 점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의 실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말쑥하게 슈트를 차려입고, 교양있는 말투를 쓰는 직장인의 모습. 아니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거친 털을 세우며 다른 이를 겁박하는 모습. 어떤 것이 실체에 더 가까운 모습일까? 『블러드 오피스』는 우리가 평범하다고 느끼는 일상은 실상 수많은 폭력과 파쇼에 잠재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고 나아가 송두리째 바꿔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모두가 공감하는 ‘사무실’, ‘회사’라는 소재에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치고 흥미진진한 ‘오피스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또한 현재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 저자의 시선을 통해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현장감 있는 필력으로 묘사하면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회사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둡고 부조리한 사건들, 거기에 더해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 '오피스 아포칼립스'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타났다. 이 소설은 직장인들이 흔하게 접하는 소재들로 시작한다. 야근, 보고서, 직장상사, 그런 가운데 발생하는 파벌과 갈등까지 회사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다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흔한 소재들이다. 어느 조직이 그렇듯 어김없이 회사에도 권력과 부조리가 등장하고, 그런 회사 내 권력은 속성상 폐쇄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폐쇄적인 권력이 부조리, 불합리 등의 부정적인 요인과 결합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저자는 그런 속성적 요인으로 회사에 널리 만연되어 있는 몰상식, 부도덕, 폭력성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여전히 전근대적이며 폐쇄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으며, 거대자본이 집중된 오너 경영 기업집단일수록 그런 성향은 더욱 강하다. 또한 그 권력의 정점에서는 일반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불합리한 사건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 특유의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오피스 아포칼립스라는 흥미로운 장르가 새롭게 탄생했다.

 


 

현대의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는 서로 대립되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의 조직처럼 운명을 같이한다. 개인이 땀흘려 버는 돈의 일부를 '세금'이란 명목으로 국민들의 돈의 일부로 운영된다. 대신 국가로서는 국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 등 많은 책임을 진다. 국가든 개인이든 서로 대립적이지만 서로 협력적인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유기적 관련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징수한다거나, 국민의 신변 안전과 재산 보호를 등한시할 경우 유기적 관계는 깨지고 개인은 국가를 등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체제의 국가는 법에 의해 다음 선거에서 국가 최고 책임자를 바꿀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법적으로 체계를 완비해 놓았다. 더 작은 집단으로 하나의 회사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회사원은 노동을 제공하고 회사는 일정 수익이 발생해 직원들에게 봉급의 형태로 주어진다. 그것은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사는 가능하다. 그러나 대개의 회사는 개인이 설립한다.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회사는 개인에게 더 적게 주려 하고 개인은 당연히 더 받기를 바란다. 회사는 국가와 달리 더 결속력이 강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유롭게 회사를 옮길 수 있고, 그 점에 기초한다면 결속력은 국가에 비해 떨어진다. 결속력이 떨어지는 만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가 지급된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특히 회사는 조금은 엉성한 결속력 때문에 권위적인 권력 구조가 부조리와 불합리하게 작용한다면 늘 피해자는 불만과 불평이 많아질 수 있다. 수직적인 권력구조에서 일방향성을 가진 채 강요되는 부조리들은 하위로 내려갈수록 그에 대한 저항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적으로 불합리를 누적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말러리안은 「작가의 말」을 통해 소설 속에서 이 같은 회사 시스템이 붕괴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을 통해 형상화했다는 점을 밝힌다. 즉 사실 현대 사회의 우리 기업의 구조가 그다지 튼튼한 결속력을 갖추지 못한 데서 나오는 불만들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는 회사 생활과 관련된 키워드만큼 익숙하지만 낯설고, 긍정적인 것 같으면서 또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 있을까요?라고 되묻고 있다. 저자는 단어들 하나가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회사 생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이를 통해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도 하지만, 절망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기업 문화를 몇 개의 핵심 단어로 표현한다.

 

"입사, 이직, 워라밸, 칼퇴, 야근, 특근, 근속년수, 퇴사, 회식, 연봉, 진급, 회의, 스펙···.(p.320)

 

그런 불합리는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객관화하거나 공론화되기 어려우며, 이는 결국 조직 전체에 누적되면서 일반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쉽게 벌어지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 만연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장르적인 소재로 끄집어냈으며, 그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소설적 실험을 시도하면서 독자들이 보다 쉽고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그런 가운데 작가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징들이 소설 곳곳에 흥미롭게 반영이 되어있으며, 소설이 전개될수록 그 끝을 알 수 없는 반전과 긴장감으로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두게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도 평범한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오래전부터 직장,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 돌아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세 명 중 한 명 이상은 임금 근로자이고,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동료들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공간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여러 일들이 벌어진다. 대부분 긍정적인 일들이겠지만, 미디어나 뉴스에 등장하는 것처럼 폭언, 복종, 감정 등의 부정적인 이슈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때론 보다 극단적인 사례로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회사라는 조직에서, 부정적인 요인들이 압도해 나갈 때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질까? 이 소설은 그런 질문을 통해 기획이 되었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아주 사소한 사건들로부터 출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결국 모든 이슈의 중심이 되는 리더십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어쩌면 더욱 부각되는 이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의 문제는 단지 회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여전히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또 한 가지는 우리의 한정된 감각을 통해 세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1부 이후 판타지 형태로 구성을 변화시킨 것도 그런 판단에서였고, 세상을 실제의 모습과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담아보고자 하는 저자의 작품 구성을 설명한다.

 


 

저자는 실체의 본질에 대해 한가지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주 작은 희망을 갖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양성은 그래서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과정은 특별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하나의 일방적 의견이 아닌 다양하고 자유로운 의견이 넘치는 세상을 꿈꾼다고도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쉽게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과정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올바른 상식을 가지며 더 풍성하고 윤택해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자기 말이 맞긴 해. 하지만 그 욕망이 고통을 주기도 하니까. 그걸로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걸 수도 없이 봤어. 욕망 앞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그건 결국 자신을 넘어 상대방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그걸로 고통을 받게 하는 악순환이야.”(p.310)

 

저자 : 말러리안

 

구차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치졸한 전투와 시뻘건 피, 시체로 넘치는 마천루 사무실 한가운데서 어느 날 문득 작가로서 각성하기 시작하다. 그래 봤자 거리에 나오면 수많은 인파들과 섞여 거리 곳곳을 배회하며 어지럽히는 망령된 존재에 불과했다는 부끄러운 절망감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구도자로서 작가의 길을 찾아 나서다.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 권력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