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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작별
이한칸 지음 / 델피노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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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完全)하다'는 사전적 의미로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이며, '완벽(完璧)하다' '결함이 없이 완전하다'이다. 완벽은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할 때는 구별 없이 흔히 사용한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학문과 기술의 세계로 가서 사용하기에는 조금은 조심스럽다. 과학에서는 완전, 완벽이란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의 이치가 그런 것일까. 숫자를 사용하는 수학에서조차 완전하게 구현해낸 숫자는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예를 들어 소숫점이라로 무한대 반복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무한대란 단어도 과학이나 수학에서 구현된 숫자나 개념이 아닐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하나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문학에서는 앞서 언급한 두 단어가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완전'과 '완벽'은 차이가 있다는 인식은 이 소설 제목 『완벽한 작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은 병으로 죽기 직전의 사람을 냉동 보관해서 치료법이 생기면 다시 부활(?)시킨다는 단순한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미 40년이 넘은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실험할 수 있는가?라는 의학 윤리에 어긋나고 '사망' 판단이 안 된 사람을 다시 죽이는 방법이라고 법에서 규정했다고 한다. 윤리와 법의 합작으로 이미 냉동인간 프로젝트는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 이한칸은 『완벽한 작별』은 ‘소멸도 탄생만큼 박수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의 조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몇 년 간 초고를 여러 번 수정하며 탄생한 작품이라고 저자가 밝히고 있다. 작중 시점은 약 10년 후 미래. 극저온 냉동 수면센터에서 시작되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는 드이노브Re2라는 생활보조로봇의 등장으로 독자에게 재미와 상상력을 제공하며 이 로봇의 활약이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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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엔 작품의 발단 부분에 들어가기 전 프롤로그 성격의 문장이 먼저 흑색바탕에 흰글씨로 쓰여 있다.
그 남자는 오래된 정원의 미동 없는 석상을 닮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동자에 혜성이 날아들고 파릇한 기운이 돌더니 남청색의 긴 꼬리가 하늘을 둘로 가르려는 듯 곤두박질친다. 그는 그 찰나를 지켜본다.
태고(太古)로부터 밤과 새벽을, 그 무수한 시간을 긴 꼬리 빛이 가르며 시작된 것처럼. 혜성의 꼬리가 떨어진 지평선 너머로 아득하게 여명이 밝아왔다.
가느다란 빛이 그의 망막에 달라붙듯이 모여들었다. 그는 극저온 냉동 체임버에서 2년 7개월 만에 깨어난 후 이틀을 잠들지 못했다. 선잠이 들려는 찰나, 낯선 진동음과 함께 등 뒤에서 기척이 들렸다.
오래 기다려 온 순간이지만 그는 서두르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난 왜 다시 살아났습니까"
예상을 비껴간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척한 얼굴이 그제야 빛과 어둠에 번갈아 드러났다.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짙은 그림자가 편한 듯 모습을 감췄다.
"아니, 넌 그 말을 할 수 없어. 어떻게···." 모든 긴장이 풀어지자 짧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눈꺼풀이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빛과 함께 의식을 덮어버렸다. 이제 아주 달콤한 꿈을 꿔야 할 때였다.
“나는 왜 다시 살아났습니까.”
강렬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서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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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되었던 7년이 아닌 2년 7개월 만에 극저온 냉동 체임버(임의의 냉각온도를 설정·유지하기 위한 특수 장치: 저자 주)에서 깨어난 주인공 류요엘. 그를 중심으로 읽어도 믿기지 않을 기상천외한 세상이 전개된다. 3,000억 사기 사건에 그가 연루되어 있음을 알아챈 탈북브로커 백한기, 이제 12살이 된 요엘의 동생 김산(어머니가 같은데 성이 다르다), 그리고 저명한 생태조류학자 류한조가 소설을 이끌어간다. 이들 간의 숨막히는 두뇌 싸움. 가쁜 호흡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베일이 하나씩 벗겨지는데. 치밀하게 구성된 베일을 벗길 때마다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점은 2032년, 가까운 미래다. 장소는 대한민국이다. 탈북자가 끼어들어 당연히 북한도 등장한다. 주인공 류요엘은 극저온 냉동 수면센터의 책임연구원이다. 그는 냉동 체임버에서 7년 후 깨어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2년 7개월 만에 냉동 체임버에서 눈을 뜬다. 미래의 의학 기술에 대한 기대로 7년이란 냉동 수면 기간을 설정하고 이미 거액을 지급한 상태였지만, 너무나 일찍 깨어나 버린 것이다. 게다가 탈북브로커까지 고용하며 우여곡절 끝에 남한으로 데려 온 12살 남동생 역시 실종 상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극비의 공간, 베드퍼드홀에서 잠들어 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서남권 거대 복합물류에서 사라진 화물을 추적하던 이들이 발견한 미스테리한 상황, 류요엘과의 접점은 무엇인가? 3,000억 사기 사건의 전말과 함께 그가 깨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시시각각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촬영한 영상과 실종된 동생의 생활보조로봇밖에 없다. 녹화된 영상 속에 나타난 ‘내’가 말한 “선택”은 무엇일까? 턱 끝까지 쫓아온 죽음 앞에서 행방불명된 동생, 김산을 찾아야 그도 살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저명한 생태조류학자였던 아버지 류한조의 죽음 이후 우연히 발견한 지하실에서 시작된다. 요엘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연구를 이어가려던 것뿐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절실하게 갖고자 했던 것이 없던 그가 왜 광기 어린 집착에 빠지게 된 것일까.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앞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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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한칸은 책의 뒷 부분 「작가의 말」을 통해 2020년 여름, 한 달간의 장마에 게릴라성 폭우가 오래 이어졌다고 기억해낸다. 저자는 한강공원에서 빗물이 나무 밑둥까지 잠겼고, 그 빗물에 나뭇잎들이 속절없이 떠밀려가고 이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렸는지 모르겠다" "한 해의 중반이 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저 지나가 버린 사건 같지만, 아무도 시간에 떠밀리지 않고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쌓인다면 소멸마저도 탄생만큼 박수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구상한 소설이라고 털어놓았다. "삶은 고난의 상황에서 빙글빙글 돌다가도 결국 중심을 잡아간다. 그러한 삶의 모든 순간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래서 유한의 삶이지만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쩌면 이 소설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은꼴이며, 그래서 이 소설은 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이다"고 말한다.
모든 이들에게 경이를 보내고자 집필을 시작한 저자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아내는 나날에 대한 감격스러운 환희를 보다 세련된 방법으로-속도감 있는 전개, 깊이 있는 질문과 다양한 서사를 통한 플롯 구조로-우리가 원해온 ‘가장 완벽한 작별’을 안겨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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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류요엘은 처음 등장할 때는 마치 지금의 우리처럼 죽음에 대한 인식, 두려움조차 거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중반에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며, 죽음을 생각하며 울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닿아갈 그곳은 지나온 삶으로써 두렵지 않게 되었다.”(233쪽)고 선언한다. 류요엘은 결국 이 말을 되뇌이며 그는 영원한 삶 대신, 나에게 작별을 고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결코 소멸이 아닌, ‘완벽한 작별’이기에 그는 웃을 수 있었고 우리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비로소 미소 지을 수 있다.
시작부터 궁금증을 유발한다. 수도권 외곽 거대 복합물류센터 안. 몇 명의 인물들이 무언가를 찾으며 소설은 시작한다. 찾는 물건이 무엇인지 왜 찾는 건지는 밝혀지 않은 첫 번째 장은 마무리된다. 그리고 장소를 바꿔 주인공 류요엘은 베드퍼드 홀의 냉동 체임버안에서 서서히 눈을 뜨고 깨어난다. 류요엘은 부계에서 물려받은 희귀 유전성 심장실환을 앓고 있었다. 현재의 의학으로는 자신을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냉동인간이 되기로 한다. 후배인 이을유에게 선금으로 7억원. 깨어난 뒤 3억원을 주는 조건으로 10년 뒤에 깨어나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2년 7개월만에 눈을 뜬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세상 밖으로 나간 류요엘은 이을유가 사기에 연류되어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찍 깨어난 것도 문제지만 또 하나 문제가 더 있다. 류요엘에게는 20살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이 있었다. 동생까지 보살펴 달라고 이을유에게 부탁했지만 이을유는 교도소 안에 있고 동생 김산은 실종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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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박쥐 동굴」, 2장 「베드퍼드 홀」, 3장 「나의 아버지 류한조」, 4장 「잊었던, 있었던 이야기」, 5장 「그 장소, 그 시각, 그 사람」이며 마지막 6장은 이 소설의 표제어인 「완벽한 작별」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수도권 외곽의 거대 복합물류센터 안이다. 몇명의 인물들이 무언가를 찾는다. 찾는 물건이 무엇인지, 왜 찾는 건지는 명확하게 기술하지 않는다. 다만 단초를 몇 가지 제시하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의 두 남자는 건물 기둥의 숫자판을 확인하며 어려움 없이 걸음을 옮겼다. 암흑 속에 몸을 숨긴 수백의 눈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시선에 젊은 남자는 발소리를 죽였다. 앞선 목소리의 남자는 목적지를 확인한 듯 90도 각도로 발목을 꺾어 화물과 정면으로 섰고 걸음을 멈췄다."(p.10)
저자 : 이한칸
책과 글을 늘 가까이 두고자 했고 독립서점-슈뢰딩거에서 우겨서 얻어낸 본부장 직함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꿈꿔왔다. 허름한 공장 한구석, 독서실 한 칸, 고시원 한 평, 내 꿈이 담기지 않은 사무실, 교실의 비좁은 책상과 그 모든 한 칸 남짓한 공간에서 우주만큼 큰 꿈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흰 눈은 모든 것을 덮는다』, 『홀리파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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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