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 단 하나의 나로 살게 하는 인생의 문장들
최진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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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최진석의 글을 읽으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발견한 느낌에 늘 기분이 좋다. 그의 철학은 언제나 '나' 와 '우리', 그리고 '세상'에 있다. 그는 이 책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단 하나의 나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우리에겐 정해진 ‘답’이 아닌, 꾸준하고 성실한 ‘질문’이 필요하다. 대답은 나아가기를 멈추는 소극적 활동이고, 질문은 전에 알던 세계 너머로 건너가고자 하는 적극적 시도다.

저자는 책 읽기를 ‘마법의 양탄자’를 타는 일에 비유한다. 하늘을 나는 융단에 몸을 싣고 ‘다음’을 향해 가는 일이 책 읽기를 통해 가능해진다. 책으로 쌓은 높은 지혜는 인간을 ‘다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인간은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는 존재이기에 멈추면 부패하지만 건너가면 생동한다. 건너가기를 멈추면 양심도 딱딱하게 권력화된다. 건너가기를 멈추고 자기 확신에 빠진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건너가기의 힘은 책 읽기로 가장 잘 길러진다. 건너가기를 하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며, 책 읽는 습관을 쌓으면 그 내공을 더 키울 수 있다. 저자는 마사 누스바움의 책 『역량의 창조』를 인용하며 파키스탄 경제학자 고(故) 마붑 울 하크가 주장한 말을 떠올린다. "한 국가의 진정한 부는 국민이다. 국민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창의적인 삶을 누릴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개발의 진정한 목적이다. 이 간단하지만 강력한 진실은 물질적-금전적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잊히곤 한다."

 


 

마붑 울 하크는 국가를 놓고 말했지만, 인간 삶의 근본 토대를 '건강'과 '창의력'으로 보는 것은 매우 옳고 정확한 시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몸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와 달리 '창의력'은 단순히 여러 기능적 능력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진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 조건임은 쉽게 잊어버린다. 인간은 가장 근본적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이다. 문화적 존재라 함은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변화를 야기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변화를 딛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건너가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그 힘'을 우리는 창의력이라고 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대답'은 건너가기를 멈춘 상태에서의 소극적 활동이고, '질문'은 전에 알던 세계 너머로 건너가고자 하는 적극적 시도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자에는 창의의 기풍이 없지만 후자에는 창의의 기풍이 꽉 차 있다. 세계는 대답하는 습관으로 닫히고 질문하는 도전으로 열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 읽기는 정보 수집이 아니라 일종의 수련이다. 낱말과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독서의 전부가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낱말과 낱말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텐트를 치고 남몰래 머무는 곳이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남몰래'이다. 문장들 사이에 자기만의 처소를 다지는 것이 책 읽기의 핵심이다."(p.8)

 


 

이 책은 2020년 7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돈키호테』 『어린왕자』 『페스트』 『데미안』 『노인과 바다』 『동물농장』 『걸리버 여행기』 『이솝 우화』 『아Q정전』 『징비록』 등 열 편의 문학을 함께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독서운동 ‘책 읽고 건너가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모두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며 탐험하는 인물의 이야기거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자신을 향해 걷지 못하는 미련한 인물의 이야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죽기 전에 완수해야만 하는 내 소명은 무엇인가.” 나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게 하는, 열 편의 문학에 숨어 있는 인생 문장들을 통해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진심을 다해 묻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이 책은 발간됐다.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의 이야기가 있다. 85일째 되는 날 아침, 바다로 나가기 전 노인은 “오늘은 자신이 있다” 라고 중얼거리며 또 배를 탄다. 그리고, 고기잡이는 아니더라도 긴 시간 자신의 삶이 팍팍하고 이룬 것 하나 없다는 느낌에 허탈한 맴을 매일 도는 우리가 있다. 팍팍하게 지쳐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노인처럼 “오늘은 자신이 있다”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가?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부산하다. 어디론가 향해 가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모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찾는 나의 마음은 어디로 갔나. 『노인과 바다』는 '나' 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이솝 우화』의 「암사자와 여우」 편에서, 여우가 암사자에게 새끼를 고작 한 마리밖에 낳지 못했다고 면박을 주자 사자가 말한다. “한 마리이긴 하지. 하지만 사자야.” 「독수리와 갈까마귀와 목자」 편에서, 독수리가 높은 바위에서 날아 내려와 새끼 양 한 마리를 낚아채는 것을 보고 시샘이 난 갈까마귀가 자신도 따라 숫양을 내리 덮쳤다. 하지만 숫양의 폭신한 털에 발톱이 박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목자에게 잡히고 만다. 저자는 남들처럼 잡다한 이것저것을 바라거나 남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유일한 꿈과 소명 하나만 가지고 이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교는 오직 자신과 하는 것만이 정당화되며 그렇지 않은 것은 전부 자기를 망가뜨린다는 것이다.

자기를 궁금해하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묻고, 진실하고 철저하게 생각하며 자기를 향해 가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아Q정전』의 아Q는 스스로 바라는 것이 없어 생각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다가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아Q는 자신의 사형을 결정짓는 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동그라미를 동그랗게 그리지 못한 것”을 더 신경쓰며 자신의 이력에 오점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향해 걸을 줄 모르는 사람은 일의 대소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큰일이 벌어지는 중에도 작은 일에 빠져 있다.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에 대해 적은 『징비록』에는, 동인과 서인 각 붕당의 대표로 김성일과 황윤길이 통신사가 되어 일본에 간 이야기가 전해진다. 일본의 정세를 돌아보고 온 황윤길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 같다고 보고하고, 김성일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한다. 사람들이 혹세무민하고 불안해할까 봐 중요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판단한 김성일의 보고 때문에 나라는 결국 전쟁의 참화 속으로 빠지게 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반성과 경계로 삼고자 당시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유성룡이 후세를 위해 남긴 책이다. '열 권'의 책에 『징비록』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면 잘못한 후에 그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써서 반성한다.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마음을 써서 반성하지 못하므로 잘못을 반복한다. 반성한 후에 남긴 기록물은 귀하다.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환란을 겪었는가보다 환란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가 더 중요하다. 치욕을 또 당하지 않으려면, 환란의 진실을 마주하려는 자기를 잘 살필 일이다. 환란 속에서도 사적 이익에 눈이 먼 벼슬아치들에 싸인 채 제일 높은 자리의 선조가 국가 경영의 길을 잃고 정치 공학에만 빠져 있을 때, 우리에게는 그래도 유성룡과 이순신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선조인가 유성룡인가 이순신인가. 나는 누구인가."(p.304)

 


 

저자가 선정한 열 권의 책이 모두 이유가 있고, 저자가 자신의 책 읽기의 이유에 알맞다는 점에서 강하게 동의하고 공감한다. 독자 개인으로서는 이 가운데 『걸리버 여행기』가 가장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독자 개인의 입장인 점을 분명 먼저 밝힌다. 이 소설 『걸리버 여행기』는 어렸을 적부터 나중에 영화로 보기까지 적어도 열 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우선 스토리가 재밌고, 어렸을 적 독자의 상상력에도 무척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저자가 선정한 열 권의 책은 모두 '고전'으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당연히 시대를 초월해 읽어도 감동은 여전하고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걸리버 여행기』를 선정한 이유가 저자는 정치와 나라를 걱정하는 글 모음집인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생각난다. 그 책에서 저자의 진심과 진정성을 읽게 되었고 이제 우리가 정치를 대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게끔 독자를 유도했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 최진석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진석을 느낄 수 있었고 정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책의 의의를 두었다. 『걸리버 여행기』도 정치적 풍자 소설이라는 점을 각인시켜 주어서 좋다. "순수하고 정의로운 '각자의 자기들'이 보는 사회는 썩을 대로 썩었고 '다른 사람들'의 행태는 짐승보다 못하다. 한탄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탄의 대상인 '다른 사람들'과 한탄하는 '각자의 자기들'은 입장만 바꾸면 서로 같은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골적인 부패와 타락이 사실은 인간 본성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에도 충분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가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고전 열 편에 나오는 여러 인물을 통해 자기를 향해 걷는 자들의 모습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현명하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우리는 언제나 한 세계를 깨뜨리면서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 자기를 향해 부단히 걷고 자기에게 도달하려는 지적 욕구를 가질 때 우리는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다. 더불어 자기 삶을 이야기로, 자신만의 신화로 구축해나갈 때 우리의 인생은 보다 탁월해질 수 있다.

 

“어떤 분들은 굳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하냐고 물으시지만, 생각하지 않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자기로도 살아보고 자기가 아니게도 살아보고, 자유롭게도 살아보고 종속적으로도 살아볼 정도로 인생이 길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에 내가 나로 사는 이 일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과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알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p.323)

 

저자 : 최진석

 

1959년 음력 정월에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나고, 유년에 함평으로 옮겨 와 그곳에서 줄곧 자랐다. 함평의 손불동국민학교와 향교국민학교, 광주의 월산국민학교, 사레지오중학교, 대동고등학교를 나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헤이룽장대학교를 거쳐 베이징대학교에서 「성현영의 ‘장자소’연구(成玄英的‘莊子疏’硏究)」(巴蜀書社, 2010)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에 가르침을 받은 모든 선생님께 감사해 한다. 지금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퇴임하고,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으로 있다. 쓴 책으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2001), 『인간이 그리는 무늬』(2013),『경계에 흐르다』(2017)가 있고, 『노자의소老子義疏』(공역, 2007), 『개념과 시대로 읽는 중국사상 명강의』(2004) 등의 책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聞老子之聲, 聽道德經解』(齊魯書社, 2013)로 중국에서 번역·출판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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