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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의 저주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2년 7월
평점 :
오랜만에 잘 구성된 소설 한 편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 소설 『은하수의 저주』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장르소설이긴 하지만 상상력에만 의지해 소설을 끌어가진 않는다. 아날로그 세대인 독자에게도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다. 소설의 소재가 다소 종교적 색채가 있긴 하지만 소설에서 늘상 차용하는 심리 묘사 수준의 이상은 아니기 때문에 소설 전개가 순탄하다. 소설 전개가 순탄하니만큼 결코 무리한 우연이 없고 상황과 상황이 유기적인 결합을 가질 수 있는 점이 돋보인다.
이 소설의 저자 김정금은 『고잉홈』의 작가이기도 하다. 『고잉홈』은 2021년의 20대 남녀 주인공이 1930년대로 돌아가 독립운동을 펼치는 이야기다. 저자는 『고잉홈』을 통해 이미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선보인 바 있다.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는 전래동화를 내용을 일부 차입해 더욱더 강력해진 판타지 요소로 무장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소설 『은하수의 저주』가 약간의 판타지, 종교적 믿음, 민간 신앙의 교훈 등을 잘 버무려 유기적 구성을 통해 훌륭한 소설을 한 권 창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환자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인 의사 강해수의 사연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견우와 직녀』, 『선녀와 나무꾼』 모티프를 결합하고, ‘이무기’, ‘저승’과 같은 판타지적 요소까지 보태어 한층 흥미진진한 재미를 더한다. 모두가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옛날이야기에서 작가가 끌어내는 반전과 예상치 못한 결말이 잠시도 독자가 『은하수의 저주』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소설 『은하수의 저주』에는 아름다운 제목에서 환기되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순히 전래동화의 해피엔딩이나 판타지를 차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독자들이 주인공 ‘해수’와 ‘연화’의 달콤한 사랑에 정신없이 빠져들 즈음 난데없이 19년 전 ‘인생호 화재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이 사건은 독자들에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하며, 두 사건은 데칼코마니처럼 교묘하고도 완벽하게 오버랩된다. 저자는 등장인물들 각각의 시선에서 그날의 트라우마를 낱낱이 꺼내 보여주며 사건의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깊숙이 독자를 데려간다. 독자의 마음이 심연에 닿아 먹먹해질 때까지.
어린 시절을 기억에서 덮은 채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살아왔던 해수의 지난날들이야말로 그에게는 운명이자 온전히 저주였던 셈이다. ‘인간의 생사는 인간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없는 법. 반면에 사는 동안만큼은 인간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처럼, 저자는 소설 『은하수의 저주』를 통해 독자에게 뻔하지만 심오한 메시지를 전한다.
가혹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치열하게 살아간다면, 모두 건널 수 없다고 믿었던 ‘은하수’가 ‘강’으로 변하는 기적을 독자들도 맛보게 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전래동화, 멜로 드라마와 추리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저자의 엄청난 스토리텔링을 따라오던 독자들은 소설의 종착지에 다다를 즈음, 쉽게 잊히지 않을 묵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옥황상제와 선녀까지 등장하는 종횡무진 스펙타클 판타지로 얻어지는 재미는 덤이다.
작품 속에는 인간의 운명은 선택에 의해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상황이 많다. 삶의 매 순간 선택하는 그 순간이 자신의 운명의 길로 안내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져 온다. 또 윤회사상을 가진 불교의 스님이 등장하면서 해수와 연화에게 얽힌 이야기를 해준다. 해수와 연화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함일까? 기억도 못하는 전생을 가진 해수와 연화가 알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들 앞에 나타난 스님의 정체는 무엇일까? 해수에와 연화에게는 '인생호 화재 사건'이라는 가슴 아픈 일에 연관되어 있다.
읽는 순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가슴 아픈 일 말이다. 어린 꽃들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 일은 모든 이들을 안타깝게 했고, 매년 그들의 넋을 기리며 추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 사건이라는 듯 기억 속에 생생하다. 단순한 사고라고 여기기엔 의심스러운 점들이 너무나 많은 그 사고는 해수와 연화가 겪은 인생호 화재 사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알고 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엄청난 사건이었고 사고였다.
천명대학교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강해수가 CPR(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도중 우연히 환자의 과거가 보이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이후에도 환자에게 CPR을 하는 도중에 환자의 과거가 보이는 일이 잦아지자 응급처치에 어려움이 생기고, 결국 그는 병원을 사직하기에 이른다. 마지막 근무를 하던 날, 한 스님이 그를 찾아온다. 해수는 스님으로부터 자신이 과거를 보는 능력은 신이 내린 저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가져서는 안 되는 물건을 가졌기에 그 물건으로 인해 과거를 보는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스님의 말에도 해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저주를 내린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해수가 본 환자들의 과거의 기억속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19년 전 남하도에서 일어난 사고가 관련되어 있다. 강해수와 연인 관계의 연화의 과거도 ‘인생호 화재 사건’과 관련이 있다. 엄마는 하늘나라로 날아가고 아버지는 자신의 눈앞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일을 겪으며 연화는 고아가 됐다. 아홉 살에 고아가 된 연화는 삼촌에게도 버려지고 외로운 삶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 만난 친구 천희의 도움으로 살 곳을 마련하고 살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죽어라 공부에 매달려 의대에 입학을 한다. 지금은 의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연화 역시 우연히 마주친 스님에게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이 세상에 이치이니 원래 있던 곳, 바로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는 스님의 말을 듣는다. 그곳으로 갈 방법은 해수에게 있다는 말을 더하며 사라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해수와 연화, 그리고 해수의 동생인 해인, 해수의 동료인 재하로 이어지는 네 명의 운명을 풀어가는 일도 이 소설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이 네 명의 운명은 기구하다. 이 기구한 인연은 19년 전에 벌어졌던 남하도 앞바다의 크루즈 사고(‘인생호 화재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는 원인 제공자가, 또 누군가는 희생자가 되어 저주를 받기도,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도 한다. 희생되었던 이들에게는 기구하기는 하지만 큰 사건을 만든 원인을 제공한 자들을 보면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그렇게 큰 사건을 통해 꼬인 운명의 실을 풀어내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얼개다. 연민과 분노가 교차한다. 전체적으로 아무래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이라는 배경을 가진 소설이면서 네 명의 인연을 다루고 있기에 운명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온다. 물론 저자의 설정이겠지만.
의사들은 종교, 국적, 성별 등에 차별없이 치료를 해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이를 어기는 모습도 있다. 이무기와 염라대왕들은 선녀와 인간들의 선택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등장한다. 독자는 무종교자이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보다 운명에 대한 말을 더 쉽게 설득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을 읽다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운명은 신의 뜻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태어난 것은 죽는다. 또 살아 있는 동안 병이 들기도 하고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 생로병사를 인간 스스로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할 때 '운명'을 믿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갖게 한다.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다. 이 소설은 문학적 요소가 이야기를 아름답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 재미를 주며, SF 요소가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있게 빠져들게 한다.
"환자의 과거를 보는 것은 저주다. 인간이 신의 물건을 가지면, 저주가 깃드는 법이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신의 물건을 찾으러 온 아이에게 신의 물건을 돌려줘라.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는 죽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명(命)을 받아, 주어진 운(運)대로 살아가오. 하지만 똑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건, 자신의 운명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과 의지가 다르기 때문이오.”
저자 : 김정금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꿈 많던 시절, 글을 잘 쓴다는 국어 선생님의 칭찬을 흘려들었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 작가가 되리란 걸 은연중에 깨달았다. 그 후로 평범한 이십 대를 지나며 언젠가는 작가가 될 거라고 다짐했고, 그 꿈을 소설<고잉홈> 출간으로 이뤘다. 이제는 다음 꿈으로 도약하기 위해 ‘쓰는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