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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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개의 날』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하나의 현상(개 한 마리가 고속도로글 질주하는)에 대한 여섯 사람의 느낌을 각각 소설로 써 한데 묶었다. 이 소설집에 대해 김연수 소설가는 "개 한 마리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순간 삶의 실상이 문득 드러났다. 그것을 본 여섯 사람의 독백은 삶의 진실이란 바로 고통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고통에는 의미가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독백하리라. 우리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의미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 라고 적었다.

이 책의 각 단편은 선사(禪師)가 들려주는 깨달음에 관한 우화들처럼 느껴진다는 김연수 작가는 "그렇지만 이 우화들은 매우 선명하고 날카로워 금방이라도 시(詩)의 세계로 넘어갈 듯한 독백들이다."고 표현한다. 작가는 또 "그것이 아무리 시적이라고 해도 일인칭 독백은 엄연히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전제하고 "카롤린 라마르슈가 보여주는 이 유장한 언어의 리듬, 이 구체적인 내면세계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고 토로한다.

 


 

이 소설엔 여섯 명의 각기 다른 화자(話者)가 등장한다. 지어낸 가족 이야기로 신문 잡지에 사연을 보내는 트럭 운전사(「트럭 운전사 이야기」),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 여신도를 찾아 헤매는 노신부(「천사와의 싸움」), 상처받기 전에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려는 미녀(「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 집에서 쫓겨나 직장과 친구도 잃고 매일 밤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동성애자 남성(「자전거를 타고」),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스스로 버려졌다고 여기는 과부(「별수 없음」)와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 아버지를 잃고 폭식증에 걸린 딸(「영원한 휴식」)···.

위험한 고속도로 위 각기 다른 사연의 여섯 인물은 “그 동물의 불가피한 죽음을 생각”하면서 불쑥 튀어나오는 연민의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울거나, 땅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추스르며 달리는 차들을 세우고, 구조 전화를 걸고, 무심코 서로를 붙들거나 끝내 쓰러져 울기도 한다. 소란 속에도 “미친 듯이 계속 달리기만” 하던 개는 이미 모습도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녀석의 질주를 응원한다. 그것만이 “고통스러운 고독과 엄청난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인 듯이.

 


 

인물들은 “미친 개, 길 잃은 개, 질주하는 개”에게서 “죽음의 기회를 보”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독백은 오로지 ‘삶’만을 되뇌고 있다. 그 개는 “아직 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열심히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미친 듯이 질주하는 모습은 매일” 그들의 머릿속에 살아 있다. “누군가 나를 버렸다”는 가깝고도 아득한 고통의 기억. 인물들은 달리는 개를 보며 쫓기듯이 삶의 ‘안정’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씁쓸한 초상을 발견하게 된다. “우발적 사고”와 같은 상실과 헤어짐에 늘 예비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쫓기는 사냥감”, “버려진 한 마리의 개” 같다. 누구도 쫓지 않지만 미친 듯이 달아나는 도로 위의 질주.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달리”는가.

트럭 운전사의 머릿속은 "모든 것이 다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지 않고 아내는 떠났기 때문에, 나에게는 창조하는 것조차도 일이다. 어쩌면 그 개도 내가 창조해낸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트럭을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려서 사람들에게 큰 몸짓으로 속도를 늦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시속 백이십 내지 백사십 킬로미터로 달려오다가 순순히 속도를 줄였다. 그들은 무슨 사고라도 났는 줄 알았나 보다. 더구나 그들은 트럭 운전사들이 트럭에 타고 있거나 트럭 옆에 있을 때 트럭 운전사들을 존중한다. 따라서 그들은 개라고 상상하든, 아니면 사고라고 생각하든 간에 속도를 늦췄다. 그러나 나는 중앙분리지대를 따라 미친 듯이 달려가는 개를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지붕 위에서 본 베갯잇처럼 하나의 관찰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트럭을 세웠던 것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모종의 관계에서 남겨진 혹은 버려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불안한 현재를 벗어나는 절박한 임의의 탈주.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가족을 상상하고, 떠나간 사람이 나타날 만한 곳을 샅샅이 뒤지고,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 찬물에 수영하며 비참한 추위에 시달리고, 나를 배제시키는 사회의 요구로부터 벗어나 “지쳐 죽을 때까지 달리”는 것. 이런 ‘질주’는 단순한 도주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무언가를 철저하게 건설하는 행위다.”

「천사와의 싸움」에서 노신부는 "우리 교회에서는 덕망 있는 사람, 속물 근성이 있는 사람들, 즉 비열한 사람들, 평범하고 미지근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날, 미온적인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정열적인 사람들의 열정은 히스테리와 유사하다. 거세된 인간성. 아무튼 내게는 교구의 신도들이 있고, 그들은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롭기만 하다. 그의 생각은 "인간의 영혼은 무게가 얼마나 될까? '내 짐은 가볍다'라고 그리스도가 말했다. 짐승의 영혼, 나는 교회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짐승도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혼처럼, 어린아이의 영혼처럼 가벼울 것이다."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에서 상처받기 전에 남자와 헤어지려는 미녀는 '달리자, 달려'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독백한다. "우리의 만남에는 항상 쾌락이 있었다. 우리가 원할 때면 어김없이, 그것도 총천연색으로 폭발했다. 우리는 언제든 쾌락을 얻을 수 있었다. 벽에 기댄 채 옷을 걷어 올리고서. 또는 그것을 십오 분씩 지연시켰고 침대는 점점 흐트러졌다. 그것은 손과 혀와 성기의 부드러운 동작, 은밀하고 점진적인 동작을 정지시키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지시키기, 후퇴하기,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 그런 식으로 점차 거대한 무언가가 나의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이 끓어오르면서 몸뚱이의 구석구석까지 힘이 뻗치면, 손가락과 발끝까지 경련을 일으키고, 바다 밑바닥에서 숨이 멎는다. 거기에서는 모든 동작이 사라진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부활했다.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처럼 한껏 부풀었다. 고속촬영한 어느 봄, 천사의 외침에 눈뜬 모든 무덤, 일격에 산산조각 나는 장애물, 도시의 성채와 집의 담장과 방 사이의 칸막이 벽들, 장롱 서랍들을 모두 파괴하는 폭탄, 가장 소중한 물건들인 보석과 말린 꽃과 향수를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폭탄, 사진을 검은색으로 변화시키고 편지와 책들을 불사르고 모든 것을 양피지 상태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부스러져버리는 종이 상태로, 어떤 목소리의 메아리에도 먼지가 되어버릴 것 같은 낙엽으로 만들어버리는 폭탄"이 있을 뿐이다.

 


 

목걸이를 뒤집으면 우리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만 같은 동병상련의 개. “그 개를 위해 차를 멈춘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어떤 활기”. 그것은 “버려진 충격과 공포”로 멈춰버렸던 “일상적 무기력상태를 벗어나”게 한다. 죽음과도 같은 철저한 고립 속에 인물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삶에 대한 여지를 이 차가운 도로 위에 내려놓는다. 극에 달한 고통을 기점으로 뒤집히는 삶과 죽음, 어쩌면 “인생은 그런 부활의 연속일 뿐”일지도. 이 소설을 번역한 용경식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엄청난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는 죽음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영원한 휴식」은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해준 아버지를 잃고 폭식증에 걸린 딸의 이야기다. 「별수 없음」이 어머니의 시선에서 바라본 독백이라면, 「영원한 휴식」은 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독백으로 이채롭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삶과 죽음은 한가지다. "이따금, 나는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나의 죽음을 상상한다. 그녀 앞에서 식사를 하거나 그녀와 함께 아우디를 타고 있을 때 나는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나의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엄마조차도, 어쩌면 그녀는 만족할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나의 죽음이 사소한 물제일 테니까."(p.153)

 


 

“한번 궤도를 벗어나면 영원히 그 모양이라고요. 누군가 당신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을 거라고 믿어봤자 소용없어요. 얼마 안 가서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사람들, 즉 루프 부인 같은 사람에게 걸려들고 말아요. 그리고 당신들도, 당신들도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나 역시 아무도 필요없어요, 아무도!”(p.107) - 「자전거를 타고」 중에서

 

저자 : 카롤린 라마르슈

1955년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났다. 로망어문헌학을 공부한 뒤, 벨기에와 나이지리아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1990년대 초 글쓰기에 전념했으며, 1996년 첫 장편소설 『개의 날』을 출간하여 벨기에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빅토르로셀상을 수상했다. 데뷔와 함께 큰 주목을 받은 그는 1998년 장편소설 『밤 오후』, 1999년 단편소설집 『나는 백 살이다』 등을 출간하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2021년 장편소설 『아스투리안 여자』를 출간했다.

 

역자 : 용경식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6년 『동서문학』 제정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소설 『야간비행』 『자기 앞의 생』 『투쟁 영역의 확장』 『고문하는 요리사』 『어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전기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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