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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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 년 만에 한 번 나올 만한 위대한 소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라는 엄청난 찬사를 받은 작가와 그의 소설에 누구나가 눈길이 갈 것이다. 심사위원 평가에 걸맞은 '일본 3대 문학상을 동시 수상한 전대미문의 걸작'이라는 출판사 측의 광고 문구도 일반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한데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작품이리라는 기대를 독자들은 완독한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을까? 일본의 문학 수준은 모든 독자들이 알다시피 꽤 높다고 독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 『류(流)』를 읽는 순간 다소의 아쉬움과 독자의 '문학 읽기'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는 엇갈린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독자의 기대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 문학을 대하는 독자의 수준이 멀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어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독자의 기대와의 차이점은 소설의 내용이 생각보다는 큰 스케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대 소설이니만큼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 의식, 시대 의식이 일부 인물들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에 따른 반성도 크다. 독자가 당시의 시대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또 번역 문학이란 차이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문학적 평가를 할 입장은 아니라는 점도 성찰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일본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가 쓴 추리소설이자 판타지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1968년 대만 태생. 다섯 살까지 타이베이에서 지낸 후 아홉 살 때 일본으로 왔다. 그때부터 후쿠오카 현에 거주하고 있다. 대만 출신의 일본 귀화 작가라는 이야기다. 이 점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소설이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할아버지 예준린의 죽음을 목격한 예치우성이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이자, 역사, 시대물이다.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 범인을 쫓는 과정과 전혀 의외의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치밀한 반전의 설계는 훌륭한 장르물의 면모를 보인다. 소설이 삼고 있는 시대적·역사적 배경과 삼대에 걸친 세대의 중첩은 장르물의 범주를 한참이나 벗어나 대하소설의 영역까지 가 닿는 스케일을 구축했다고 문학평론가들은 평가한다.

저자는 혼돈과 활력이 공존하는 대만 사회를 배경으로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이라는 피 튀기는 현장, 조직폭력단의 항쟁, 군사훈련이 강제되는 독재사회를 그리고 있다. 더불어 애절한 첫사랑과 실연, 일본과 중국을 나아가 온 세상을 누비는 인물들의 모험을 다각적, 중층적으로 그려냈다. 여기에 유령, 분신사바, 도깨비불이라는 초현실적인 요소마저 등장해 저자가 너무 영역과 시대 범위를 오가며 혼란을 겪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저자가 창조해낸 『류』의 세계관이 미스터리를 넘어 어디까지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소설 속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거리를 활보하는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필력”, “독자를 혼돈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와 같은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 『류』에 등장하는 작중 인물들은 꽤나 흥미롭고, 개성이 넘치며, 끊임없이 우리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작가가 창조해낸 가공할 만한 혼돈의 역사 속으로 훌쩍 뛰어들어 본다. 소설의 주인공 예치우성은 보통의 소년이 겪는 보통의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의 단서가 삐죽 머리를 내밀 때마다 급류에 휘말리듯 사건의 중심으로 빨려들어 간다. 마치 현실세계에 사는 평범한 남자가 사차원 또는 ‘이세계’로 넘어가 믿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듯, 예치우성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할아버지가 세운 ‘모래언덕’을 조금씩 조금씩 오른다.

할아버지가 만든 세계는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낼 때마다 ‘파국’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예치우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들은 적당히 이해하고, 적당히 부정하며 그가 만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 노력은 개인이 아닌, 전체 또는 국가가 자행한 일방의 역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속한 자들의 숙명’일 것이다. 이 소설이 특별함을 갖추는 순간이 바로, 예치우성을 통해 그 ‘숙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일탈이 보편적 공명을 일으키는 바로 그 ‘순간들’이다. 이 찰나의 서사가 만든 무구한 역사의 영원을 목도한 히가시노 게이고이기에 “내가 나오키상 심사를 맡은 이래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라는 찬사를 남겼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다양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도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할아버지와 그의 친구들, 공산당임에도 국민당 친구들과 평생 교류하는 대륙의 할아버지까지 그 도도한 물길 같은 삶은 우리를 압도한다. 여기에 고도 성장기를 살아내는 경쟁의 화신인 아버지 세대, 학교 선생이면서 아들에게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는 인물, 입만 열면 허풍인 삼촌과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선원 삼촌, 기가 센 엘리트 고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숨에 제압하는 힘을 지닌 어머니가 있다. 사회 밑바닥에서 인생의 쓴맛을 직접 경험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천차만별의 상황에서도 같은 깨달음을 얻어가는 청년 세대까지 세대와 계층을 녹이는 장대한 이야기가 이 소설 한 편에 담겨 있다는 출판사 측의 평가도 그리 어긋나지 않는다.

“왕커창이라고. 자네, 잊은 거야? 다들 검은 개라고 불렀잖아.”

“검은 개, 검은 개!” 리 할아버지는 자기 머리를 탁탁 치고 “머리가 늙었어! 이름이 일본어로 강아지를 가리키는 왕코짱이랑 발음이 비슷해서 일본인들은 그를 ‘왕코’라고 불렀지. 어쨌든 그 매국노의 술수로 여러 마을이 완전히 망했지. 그게 1943년 7월이었어. 얘야, 나와 네 할아버지는 말이야, 거리로 식용유를 팔러 나왔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인에게 들키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니까 한밤중에 몰래 나왔는데, 다음 날 돌아와 보니 마을 사람들이 다 죽어 있더구나. 이 세상이 끝날 듯 더운 날이었지. 구오 씨, 안 그래?”

구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담배를 물었다.

“네 할아버지의 부모, 형제들도 죄다 마을회관에 갇혀 독가스로 살해당했어. 마을 외곽에 있는 작은 절에 몇 명은 숨었는데, 그 녀석들이 검은 개가 일본인을 데리고 왔다더라고.(p.45)

 


 

당시의 대만에 대한 역사나 시대적 인식 없이 여기에 적기는 어렵지만 중국은 모택동과 장개석과의 내전을 치른 후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장개석이 패전 후 밀려 내려간 대만에서 당시 중국과의 더 이상의 무력 대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아마 임시 정부 식의 대만 독립을 주도한다. 이에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미국 등 2차대전 승전국들을 등에 업고 민주주의 대만의 효시가 된다. 이때부터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2국 체제로 들어간다.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던 대만은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한다. 중국 본토의 공산당과 대치하는 입장이니 국민당의 대만 정부는 중국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이후 중국의 국정이 안정되고 국력이 커지면서 대만은 입지가 굉장히 좁아지기 시작한다. 미중 수교(1979), 대만의 국가명 사용 박탈 등의 수난을 겪게 된다. 사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나 갈등은 1969년 미국 닉슨 정부가 중국과의 대화채널을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미·중 두 나라는 차츰 교류의 횟수를 늘려간다. 이때부터 대만은 서서히 국가로서의 자격과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베트남전으로 골치를 앓던 미국이 현실적 필요에 의해 공산권 국가인 중국과의 관계 개선 시도했고, 중국 역시 소련과 관계가 악화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이런 흐름을 타고 미국은 1971년, 중국의 국제적 경제적 고립을 가져왔던 대중국 금수조치를 해제한다. 1972년에는 대만이 중국의 속국이며 중국이 공식 국가임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점점 중국의 국제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대만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UN 등에서 자격을 박탈당하며 외교적 고립을 겪어야했다.

 


 

국제무대에서 중화권을 대표하는 모든 권한이 대만에서 중국으로 넘어갔으며, 이때부터 대만은 더 이상 국가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때의 대만의 상황과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등 역사에 대해 더 이해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좀 더 넓은 시야로 이 책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와 역사라는 거대한 이야기에 더 이상의 확대는 어려웠는지 이 소설에는 도깨비불, 유령, 분신사바 등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비과학적인) 면도 녹아 있다. 위기 때마다 도깨비불을 만나서 목숨을 부지했다는 할아버지, 사고 현장에서 발견한 미스터리한 빨간 옷의 여인의 한을 풀어주는 에피소드 등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면까지 함께 하는 느낌이다.

물론 당시 대만인들이 민간 신앙에 의존하는 태도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지나치게 미신적이거나 비과학을 통한 소설 전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판타지 역시 마찬가지다. 상상력에 의존해 소설을 쓰는 것은 작가의 자유다. 그러나 과학적인 면이 조금도 없이 단순히 상상력에 의존한다면 '신화'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소설의 문체와 유머러스한 표현은 돋보인다. 작가의 개인적 글쓰기 능력은 탁월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처음 시작은 할아버지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찾아갔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 똥을 싸고 있는데 수상한 사람과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하는 등 우연이 남발되거나 비과학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일은 삼가야 할 텐데. 그러나 이 소설은 거대하게는 시대를 관통하면서 대만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한 남자가 가족 안에서 겪는 갈등, 첫사랑과 겪는 아픈 사랑, 그 외에 친구들과의 갈등 등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돋보인다.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시대극보다는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단순 추리소설로 끝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저자 : 히가시야마 아키라

1968년 대만 태생. 다섯 살까지 타이베이에서 지낸 후 아홉 살 때 일본으로 왔다. 그때부터 후쿠오카 현에 거주하고 있다. 2002년 〈터드 온 더 런〉으로 제1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은상과 독자상을 수상했고, 2003년 이 작품을 고쳐 쓴 《도망작법TURD ON THE RUN》으로 데뷔했다. 이후 2009년 《길가路傍》가 제11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블랙 라이더》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014년’ 3위와 제5회 ‘AXN 미스터리 싸우는 베스트 텐’ 1위를 동시에 차지하며 일본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2015년, 《류流》로 “20년만에 한 번 나올 만한 걸작”이라는 최고의 호평와 함께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하며 “지금 일본에서 가장 세계에 근접한 작가”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 밖에, 2016년에 《죄의 끝》으로 제11회 중앙공론문예상, 2017~2018년에 거쳐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으로 오다사쿠노스케상, 요미우리문학상, 와타나베준이치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현재에도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역자 : 민경욱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IT회사에 일본 문화 콘텐츠 기획을 담당하며 1998년부터 일본문화포털 ‘일본으로 가는 길’을 운영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전문번역가의 길을 걷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내가 죽인 사람 나를 죽인 사람》,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등록자》, 《몽환화》, 《브루투스의 심장》, 《11문자 살인사건》, 요시다 슈이치의 《여자는 두 번 떠난다》, 《첫사랑 온천》, 《거짓말의 거짓말》, 이시모치 아사미의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구로카와 히로유키의 《니노미야 기획사무소》, 《국경》, 요코야마 히데오의 《종신 검시관》, 《얼굴》, 《그늘의 계절》, 이케이도 준의 《하늘을 나는 타이어》,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누마타 마호카루의 《유리고코로》,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고양이 울음》, 기타무라 가호루의 《8월의 6일간》, 미우라 시온의 《천국여행》, 시즈쿠이 슈스케의 《클로즈드 노트》, 가쿠다 미쓰요의 《삼면기사》, 《전학생 모임》,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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