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박소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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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는 중견작가 박소현의 수필집이다. 등단 20년 세월 동안 그만의 맛과 향으로 숙성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온 저자의 그동안의 많은 글들처럼 담담한 언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 수필집 제목에 쓰인 '윤슬'처럼 그의 글들은 2022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고향의 풍경 같은 그들로 문학적 향기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다하며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저자의 고향(남해) 바다 해녀들이 물숨을 참아내며 삶을 이어가듯, 그 역시 기나긴 시간 속 “한 줄 문장을 찾아 문학의 숲을 유영”하며 수필의 씨앗을 건져내었다. 문학과 철학, 인문학과 예술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견고한 문장에서 삶의 깊이를 엿볼 수 있어서 그의 글은 우리의 가슴에 깊이 적셔든다.

 

 

저자는 이번 두 번째 수필집의 끝을 시인과의 대담 두 편으로 마무리했다. 첫 번째는 세상에 와서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을 위한 헌화가를 부르는 ‘시대의 무당’이 되길 자청한 강은교 시인과의 대담, 두 번째는 제주 4·3의 슬픈 역사를 알리는 부드러운 전사 허영선 시인과의 대담이다.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꺼이 글로써 담아내는 두 시인과의 대담을 통해 저자는 윤슬처럼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에 대한 사랑을 보낸다.

저자의 이야기는 늘 그렇듯 ‘특별’하지 않다. 누구나 탐낼 만한 부나 명예, 쉽게 겪어볼 수 없는 경험을 자랑하듯 늘어놓는 이야기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평범한 순간을 포착해 그만의 시선으로 문학을 빚어낸다. 그래서 그의 글은 삶과 밀착해 있으며 읽는 이의 마음에 쉽게 다가간다.

 


 

누구의 삶이든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바로 문학은 되지 않는다는 박상률 작가의 추천사처럼, 박소현의 수필은 흔하디흔해 미처 소중한 것인 줄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 물결에 빛나는 윤슬로 탄생시킨다. 거기서 함께 빛나는 것이 저자의 “그 사랑의 마음"이다. 앞으로도 ‘작가 박소현’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 에너지”가 될 것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에 번아웃을 겪는 이들, 평범한 일상 속 빛나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이 수필집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는 담담한 사랑의 언어로 위로의 손길을 뻗는다.

한껏 취해 읽다보니 바둑 이야기가 나온다. 독자도 취미로 바둑을 즐기는 편이라 눈이 더 커진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가로 19줄, 세로 19줄, 361개 교차점의 바둑판 위에서는 흑과 백의 치열한 진검승부가 벌어진다. 수많은 묘수와 전략으로 공격과 방어가 난무한다. 하지만 바둑에서는 신의와 절개는 있어도 배신이나 변절은 없다고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정해진 시간 안에 자신에게 주어진 바둑돌을 놓아야 하듯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았을까. 그 선택이 성공이든 실패든 자기 앞에 놓인 삶의 한 부분임에야···."

 


 

여기까지는 바둑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음의 글은 "지난날들을 복기(復棋)한다면 성공을 백으로, 실패를 흑으로 봤을 때 우리네 인생은 흑일까 백일까? 남편과 함께 바둑 삼매에 빠졌던 오빠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때 당시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던 서른 살의 남편은 얼마 전 퇴직을 하고는 인생 2막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앙증맞은 얼굴로 엄마 아빠를 부르며 아장아장 걷던 아들은 모자란 잠에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얼마 전 입사한 직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다.(p.31~32)

남편과 바둑 사랑이야기가 뒤따른다. 남편이 바둑대회에서 상으로 받아온 바둑판을 애지중지하던 아끼는 물품인데 그 바둑판에 어린 아들이 이마를 찧어 스무 바늘이나 꿰매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 후 남편이 말없이 바둑판을 말없이 다용도실로 옮겼을 때를 회상한다. "화려한 월계관을 쓰고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왔던 그 바둑판은 아들의 이마에 상처를 냈다는 불명예를 쓴 채 그렇게 방치됐다" 친정오빠도 바둑을 좋아해 두 분이 만나면 곧잘 바둑을 즐겼는데 사건 이후 휴대용 바둑판을 이용한다니 남편의 속마음을 궁금해 한다. 그러던 남편이 이제는 정년 퇴직을 하고, 아들은 얼마 전 입사한 직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다는 보통의 가정의 일상사로 담담하지만 애틋한 정감이 솟아나온다.

 


 

남해 출신의 한 작가가 해녀 이야기를 안 쓸 리 없다. 해녀는 우리 어머니의 삶이고 우리들의 삶이고 우리 아이들의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우리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문학 소재다. 저자는 자신의 문학 방정식으로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상징적·은유적으로 풀어낸다. "어느 험준한 골짜기를 헤매다 온 바람처럼 해녀들의 몸에 새겨진 거친 생존의 무늬들. 그녀들이 토해낸 설움들을 껴안아주느라 바다는 저렇게도 울부짖고 있는 것일까? 포구엔 먹이를 찾아 모여든 갈매기들의 군무가 황홀하다. 저들도 생존의 한가운데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이 바다를 찾았으리라.

삶은 고해라고 했던가. 얼마나 많은 시름들이 그녀들의 가슴에 머물다 간 것일까. 힘겨운 삶의 파도를 헤쳐 온 그녀들의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 내면의 상처가 깊은 사람은 더 깊은 동굴 속으로 침잠한다. 우리는 손 안에 그 무언가를 더 많이 움켜쥐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숨을 참으며 견뎌냈을까. 어떻게 해야만 그것들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삶이란 어쩜 모범답안을 찾지 못한 시험 같은 게 아닐까? 나는 오늘 이 바다의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다.(p.75~76)

 


 

「달려라 장 여사」에서는 어머니의 삶을, 자식 사랑을 표현해 내면서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기도 한다. 누구나 공감하는 어머니의 사랑과 삶을 담담하게 표현한 것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어머니도 여자란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살았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홀로되신 어머니에게 행복은 자식들이 무탈하게 살아가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자기 몸속에서 자라던 새끼들에게 몸을 다 파 먹히고 빈껍데기가 되어 생을 마감하는 다슬기처럼 자식을 위해 온 생을 다 바친 내 어머니 장채란 여사. 어쩌다 한 번이라도 안아드릴라 치면 삭정이 같은 몸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어머니에게도 행복했던 봄날이 있었을까? 오늘따라 거친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 삶의 궤적들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옛날처럼 힘찬 달음질로 달리고 달려서, 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머니 심장 같은 하얀 봉투를 가만히 만져본다. 어머니 따스한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오는 듯하다. 나는 어쩜, 아주 오랫동안 이 봉투 속의 돈을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눈물 같은 이 소중한 사랑을.(p.170~171)

 


 

얼마 전 읽었다는 소설 『웨이 백』을 통한 사색은 자유, 민주주의, 전쟁, 탈북자 등으로 확대되며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훌륭하게 솎아낸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향한 투쟁의 역사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향한 외침이다. ‘티베트의 자유’를 요구하며 분신하는 티베트의 젊은이들, 시리아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극한 투쟁, 4 · 19 때 우리 젊은이들의 피 흘림,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자들. 이 모든 것은 자유라는 종착역을 쟁취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도 알고 보면 결국은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종교개혁은 신앙의 자유를, 르네상스는 예술에서의 자유를."(p.110~111)

 

저자 : 박소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바다를 놀이터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 했으며 2002년 『책과 인생』에 수필 「가지 않는 길」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수혜자로 2회 선정되었으며(2008, 2020년)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 대상, 해인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국제PEN,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종합문예지 『에세이 문예』에 ‘박소현의 명작 산책’을 연재하고 있다. 수필집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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