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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
류팅 지음, 동덕한중문화번역학회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3월
평점 :
독자는 이 책을 손에 잡는 순간까지 단순한 중국의 판타지 소설로 생각했다. 요즘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판타지 소설이 강세인 데다 '영혼이 뒤바뀐다'는 설정으로 미루어 현실을 뛰어넘는 사후 세계까지 포함해 쓴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류팅이라는 작가의 이름만 들어봤지, 한 번도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그가 어떤 작가인 줄 잘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 책은 제목 『뒤바뀐 영혼』처럼 피폐한 정신세계를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묘사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중국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피폐해진 정신세계를 그려내는 단편소설을 모았다.
생활의 곤경 때문에 타인과 영혼을 바꾼 천재 시인, 타락한 현실을 피해 당나라로 돌아간 대학 교수,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된 남자 등 열두 편의 기묘한 환상곡을 선보인다. 이 소설의 저자 류팅은 중국 ‘80후(80후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그의 작품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고 한다. 『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에 담긴 열두 편의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열두 작품이 모두 소설에서나 가능한 '허구'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거나 완전히 현실과는 동떨어진 먼 미래의 세계나 아주 먼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재가 아니다. 물론 정신세계를 다루는 소설이라 저자의 상상력에 의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시공을 초월하는 것도 맞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뒤바뀐 영혼」에서 천재 시인인 야거는 자신의 시적 영감과도 같은 연인 샤셩을 만나 가정을 이루지만, 현실적인 곤경에 직면하고 만다. “야거는 생존에 관해서 가장 본질적인 진리만 알고 있을 뿐, 두 사람이 처한 곤경에 대해 어떠한 실질적인 해결책도 내놓지 못한다”(p.12~13) 이 때문에 그 어떤 위대한 ‘시’로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낀 야거는 화장터에서 일하다가 가족을 위해 유골함을 훔친다. 결국 감옥에 갇힌 야거는 어느 날 밤, 신비한 목소리로부터 “내일 감옥에서 나가면 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우리 바꿉시다’라고 말해봐. 너의 시재를 전부 그에게 주고 그의 모든 삶의 지혜를 달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되고, 감옥을 나서는 순간 타인과 영혼을 바꾸기에 이른다.
다른 작품 「당나라로 돌아가다」 역시 중국 현대인의 욕망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폐함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대학 교수인 ‘나’는 당위원회 부서기이자 학교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자신의 아내가 총장과 부적절한 관계인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수의 시처럼 아름다운 당나라 시대로”(p.85)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우연히 당시(唐詩) 한 편에서 이런 비밀을 발견하게 된 ‘나’는 천둥 번개가 치는 날 시계탑 꼭대기에 올라가 번개를 맞고 당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가난과 전쟁으로 인해 그곳에서 ‘나’의 삶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류팅은 “현실과 비현실, 상상과 관념이 빈틈없이 긴밀하게 연결된” 방식으로 중국 현대인들의 실상을 기록한다. 정부의 토지개발사업의 보상 문제에 맞서다가 굴착기에 머리를 맞아 온몸이 마비된 채 오로지 귀로서만 세상을 감각할 수 있는 비참한 상황을 그린 「귀」,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두려움을 먹고 살아왔던”(p.120) ‘죽음의 신’이 더 이상 인간의 죽음이 순수한 두려움이 아니라 욕망과 쾌감, 분노와 증오 같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굶주림을 겪게 된다는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되다」, 야간버스 운전기사인 ‘라오훙’이 단골 승객인 한 아가씨의 권유로 처음으로 경로를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지만 단 한 번의 일탈로 인해 그 아가씨를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아이러니함을 다룬 「낮과 밤」이 그렇다.
또 제복이 가진 권력에 매료된 경찰이 그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제복에 집착하다가 결국 감옥에 가서 죄수복을 입게 된다는 「제복」, 현실에서 아주 작은 것조차 꿈꾸지 못하게 된 주인공의 영혼이 노인처럼 늙어버려, 실제로 죽어 화장을 했을 때도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는 「영혼의 무게」 등은 저자 류팅의 소설관과 소재로 삼는 것들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제공한다. 『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는 가장 환상적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열두 편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현대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곤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가장 파격적인 문제작이다.
열두 작품 모두 신선하고 문제 제기의 성격으로 무척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열두 작품이 끝난 뒤 책 마지막 부분에 쓴 「작가 후기」다. 저자는 "우리는 더 이상 고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타인, 사람과 자신이 일치된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직접 인식할 수 없다. 모든 인식은 문학의 기법인 은유와 상징, 우화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우리 자신은 매체를 통해서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 문학 혹은 예술이 현대생활의 종교의식이라면, 허구는 이 의식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허구는 소설이 소설일 수 있는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독자는 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는 편이지만 문학이론이나 소설론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라 작가 후기를 읽고서도 쉽게 이해하지 못해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굉장히 중요한 말인 것 같아 두 번, 세 번 거듭 읽었다. 대강의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지만 워낙 소설 이론에 문외한이어서인지 글로 정리하기에는 벅차다.
저자가 「신(新)허구 : 내가 상상하는 소설의 가능성」이란 후기를 간략하게 여기에 인용해 적는다. 이 서평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이 소설의 성격과 작가의 소설관을 미리 아는 게 독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짧은 논문처럼 전개되는 이 후기는 소설을 쓰는 분들이나 소설을 연구하는 학자에게도 읽어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독자의 판단이다. 소설은 모든 둑자들이 알고 있듯이 '허구'다. 실제 일어난 일을 쓰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신문기사는 로포, 다큐멘터리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허구이지만 '일어날 법한 허구'다. 그것이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상관없이 말이앋. 이 허구를 그럴 듯하게(독자들이 읽기에 사실성을 부여해) '지어내는' 일이 소설 쓰기인 것이다.
'진실' 혹은 '거짓'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말이다. 이 점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터, 저자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허구'라는 주제에 관한 담론에서 나는 먼저 그동안 배웠던 관련 이론이나 그 위대한 인물들의 논조를 버리고 싶다. 제대로 정리할 수도 없고 오히려 혼란만 일으키게 되는 터라 차라리 철저히 외면해버리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허구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인류는 허구를 통해 세상을 재인식하고 배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서두를 꺼낸다.
이어 저자는 "그러나 허구의 디테일이 탄생했을 때, 설사 그것이 최초의 서사의 거짓말이라 해도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고 인류의 의식 세계도 달라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허구로 인해 틈이 벌어졌고 마침내 2차원적 관념에 세 번째 차원이 생기게 되었다. 허구는 사람이 자연 세계에서 독립해 나오는 중요한 단계를 상징한다. 허구의 최종 결과 또한 가장 중요한 결과물 가운데 하나이다. 다름 아니라 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소설이 안정적인 가공 방식이 되어야만 인간은 어는 정도 신을 모방할 수 있게 된다. 서사를 통해 인간 세상에 비와 바람을 부르고 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허구는 우리의 관념 세계를 구축하는 본질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소설과 관련된 문제는 모두 '허구'를 줄거리로 한 인류 발전사와 문명사로 돌아가서 논의되어야 한다. '허구의 역사' 한 편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어 저자는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소설의 근본적인 특징은 허구이고 소설가는 허공에서 현실을 움켜쥐는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을 점차 잊어가고 있다. (중략) 허구가 기본 요소가 되어 수백 년 동안 소설 작품을 지배하고 난 뒤에 사람들은 그 반대편으로 가서 진실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진실이 절대로 명확한 어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택적으로 망각하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인간의 관념과 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더 확실하게 자신의 소설론을 설명한다. "몇 년 전에 내가 또 다른 글에서 거론한 바 있지만, 비허구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도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그저 그 바탕일 뿐이다. 비허구 작품의 '허구' 부분 역시 문학적 서사 기법으로 구성하고 묘사하고 재현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고층빌딩의 최종 모습은 자채가 아닌 설계 도면에 따라 결정된다. 자재는 진실이지만 허구만이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의 영역에서 진실에 대한 추구 또한 나날이 응당히 유지되어야 할 범위를 벗어나고 있고, '서민들의 삶에 광범위하게 접촉하는 것'이 많은 소설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표준이 됨녀서 점점 더 많은 작가들이 단순한 현실적 작법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렇다. 깊은 물속에는 소재가 풍부하지만 빛이 흐릿하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그 위에 둥둥 떠다니기만 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항상 무수한 현실 생활이 글쓰기의 소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중략)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은, 현실을 작품으로 쓰느 데는 반드시 서민들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이는 생활 속의 사람 사는 냄새와 구별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간과되고 있다. 이 점은 소설은 물론이고 시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의 시에 서사의 유령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저자의 글은 계속 이어지지만 독자의 정리가 부실하다는 생각에 이만 줄인다. 관심이 가는 독자들은 책을 통해 한 번 읽어보시길 권유한다.
“나이가 많다니요…… 딸꾹…… 우리 남편은 삼십대인 데다 몸무게도…… 딸꾹…… 거의 1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사람이라고요…….”
직원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삼십대라고요? 영혼이 늙으면 마찬가지예요. 다 태우고 보니 팔십대 노인처럼 바싹 마르고 기름기가 없어 꼭 철사 같았거든요.”(p.208, 「영혼의 무게」 중에서)
그 후에 경찰국에 도둑이 들었다. 이 도둑은 배짱이 하늘을 찔렀다. 잃어버린 물건은 제복이었다. 각 부서마다 전부 제복을 잃어버렸다. 운동실에 있는 제복도 잃어버리고 사무실에 걸어놓은 제복도 잃어버렸다. 사건은 아주 빨리 해결되었다. 그가 바로 범인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사물함에서 서른 벌에 가까운 다양한 유형의 제복을 발견했다. 직장에서 일괄적으로 배급한 것이면 남녀 가리지 않고 속옷이건 겉옷이건 따지지 않고 전부 훔쳤다.(p.234, 「제복」 중에서)
저자 : 류팅(劉汀)
중국 ‘80후’를 대표하는 청년 작가로 소설가와 시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중국 최고의 문예지인 『인민문학』의 수석 에디터를 맡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 장편소설 『부커 마을의 편지』 『청춘약사(略史)』, 산문집 『타인의 생활』 『고향집』 등이 있으며 『인민문학』 『10월』 『산화(山花)』 『청년문학』 『시간(詩刊)』 등 유수의 문예지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신소설가경선’ 신예상과 제39회 홍콩문학상 소설 부분 우수상, 제2회 중국청년작가상 비허구제명상 등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