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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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학은 떨어질 수 없다고 흔히 말한다. 특히 문학인들은 여행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작가들 대부분은 문학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영감을 여행에서 얻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졌던(지금은 바뀌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 『오디세이야』에서도 여행의 유래를 찾는다. 『오디세이야』는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략 후의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해상표류의 모험과 귀국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를 40일간의 사건으로 처리한 것이다. 즉 사건의 전개 자체가 여행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여행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은 세계 문학기행이다.

“소설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고,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소설과 여행을 사랑하는 작가 함정임의 에세이다. 세계적 문학 거장들의 문학적 고향을 두루 돌아다니며 문학기행을 적어 놓았다. 프루스트의 파리,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 카뮈의 루르마랭과 박완서의 아치울 마을, 한강과 박솔뫼의 광주까지 대상이다. 저자는 “밤낮없이” 작가들의 공간을 기웃거리며 불후의 작품을 써낸 그들을 평생 사로잡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누군가의 문학이 비롯되는 원형들, 삶이 문학이 되는 진실한 힘들”을 발견하기 위해 그는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떠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이 끝나는 부분에 「에필로그」를 통해 자신의 어렸을 적을 기억해낸다. "소설을 알기 훨씬 전부터 지도와 함께 살았다. 처음 지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한글을 막 깨쳤던 예닐곱 살 무렵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숙제를 마친 오빠와 지도를 펼쳐놓고 지명 찾기 놀이에 열중했다. 지도는 광활한 우주였고, 지명은 셀 수 없이 퍼져 반짝이는 창공의 별이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별들을 훗날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낯선 세상 속으로 떠나는 것이 삶이 되어버린 것은 지도 찾기의 설렘과 황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는 내게 미지의 언어이고, 소설이고, 삶이다."(p.335)

저자가 왜 어렸을 적 기억까지 끄집어내 여기에 적었을까. 독자가 단박에 알아채기에는 무리겠지만, 지금 작가의 삶을 사는 저자의 어린 꿈이 현실이 되는 것처럼 문학에서도 그런 점이 반영된다고 믿어서일 것 아닐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는 노르망디 시골 의사 아내다. 엠마는 한 번도 파리에 간 적이 없지만, 파리를 향한 꿈을 과도하게 앓다가 죽어버린다. 엠마에게 파리를 꿈꾸게 한 것은 소설이고, 수도 파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알려준 것은 파리 지도다. 엠마는 손가락 끝으로 지도 위를 더듬으면서 수도의 여기저기를 가고 또 가본다." 플로베르는 지도를 향한 지리학자의 사명감과 사랑을 품었던 작가임에 틀림없다. 저자 함정임의 추정이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그의 상상력은 설득력을 가진다.

 


 

프루스트를 생각하며 파리로 향하는,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를 꿈꾸며 작가와 작품을 쫓는 마음이 자신에게는 일종의 불치병이나 다름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옛날 나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소설이든, 막 작가의 손을 떠나 아직 인쇄소의 잉크 냄새가 나는 소설이든” 그에게는 “모두 노벨라 파라디소, 소설로 만나는 천국이다.” 시, 소설 가릴 것 없이 탐독하는 문학 애호가 함정임은 '밤낮없이' 여러 창작 현장을 기웃거리며 불후의 작품을 써낸 ‘그들’을 평생 사로잡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센강의 미라보 다리에서는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의 사랑의 추억과 실연의 아픔을, 시카고와 파리에서는 헤밍웨이 소설의 단서를, 그레이트넥에서는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를 둘러싼 비극적 운명을, 파리, 카프리, 산레모를 거쳐 포르부에서는 벤야민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상상하고 그리워한다.

현장의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분위기(아우라)”에 압도된 저자는, 시간을 초월해 나타나는 작품의 “구체적 장면들”에 붙들려 꼼짝하지 못한다. 책장 너머 생동하는 작가의 숨결을, “누군가의 문학이 비롯되는 원형들, 삶이 문학이 되는 진실한 힘들”을 발견하기 위해 그는 태양의 저쪽과 밤의 이쪽을 숨 가쁘게 가로지른다. 이 책은 목차만 보아도 황홀할 만큼 다양한, 특히 위대한 문학 속의 장소가 열거돼 있다. 독자들은 가본 곳이라면 아름다운 기억을 꺼내볼 수 있고, 미처 가보지 못한 곳은 동경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그때나 지금이나 문학적인 분위기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가끔은 격정적으로 끌어 올리기도 한다.

 


 

저자는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런던이나 뉴욕, 더블린이나 파리에 갈 때, 그곳을 무대로 쓴 소설 한 권씩을 품고 가라고 권유하고는 한다. 예를 들면, 더블린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뉴욕에는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과 『브루클린 풍자극』을, 런던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나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또는 『두 도시 이야기』를.” 어떤 작가와 작품을 대상으로 하든 “적어도 한 달 이상은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보고 듣고 읽고 품어야 한다.” “소설 따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세상”에서 자칫 헛되게 보이는 이 황홀한 여정은 그에게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힘이 되어준다.

“소설 따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세상”이라지만, 함정임은 “소설을 쓰는 일이, 그것으로 살아가는 일이, 비록 천 개의 바늘 끝이 머리 한쪽을 수없이 찔러대는 고통에 시달리는 일이라 해도, 황홀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다. 아니, 나아가 “문장을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축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소설이 줄 수 있는 것. 소설이라는 장르가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맑고 투명한데, 찌르듯 아프고, 아프면서 아름다움에 몸을 떨게 만드는 힘.”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으로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유년의 우주가 깨어 일어”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나’, 고적한 작은 마을에서 파리 귀부인의 삶을 꿈꾸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마담 보바리』의 ‘엠마’, 번화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습한 뒷골목을 배회하며 살인을 저지르는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 휴양지에서 만난 소년의 치명적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죽음으로 치닫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센바흐’ 등 끝없이 이어지는 문학 속의 장소에 매료된다. 그리고 저자는 그리워지면 꼭 찾아간다.

“소설 덕분에,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매번 새롭게 지금 이곳에 태어나거나 도착하는 인물이 되고, 독자에게 영원히 사랑받는 불멸의 이름이 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 없이 행동에 옮긴다. “현실이 수많은 소설을 낳지만, 때로는 소설이 현실을 보완하며 풍요롭게 이끌어가기도 한다.” 앞서 호명한 이름들이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 저자 함정임의 문학관(觀)이자 여행관인가 보다. 소설을 읽기에 이보다 더 충분한 이유가 있을까. “읽고 쓰다보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게 된다. 작가와 작품이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그곳, 현장 속으로.”

 


 

아차산 자락 아치울 마을에 새로 지은 선생님 댁을 생각하면, 나는 제일 먼저 박하차가 떠올랐다. 박완서 선생님은 새로 가꾼 뜰에 박하를 심었고, 손님들에게 그 박하잎을 우려낸 차를 내주었다. 선생님은 이사한 뒤 한동안 매일 아침 거실 창가에서 목도하는 일출 장면을 경이롭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흥분한 목소리로 들려주던 그 장관을 내가 직접 본 적이 없기에 일출보다는 박하차의 향기가 뇌리에 박혔다.(p.189)

 

저자 : 함정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장으로 가는 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화여대 불문과와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동아대 한국어문학과에 재직중이다. 대학에서 프랑스 시와 현대 부조리극에 경도되었고, 거리와 광장보다는 도서관과 지하 소극장을 전전했다. 그때 대학 문학상에 시가 가작으로 뽑히는 바람에 제도권 문학지의 청탁을 받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그 문학지의 기자가 되었다.그 후 계간지 편집장과 출판사 편집부장으로 일하며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문 편집했고, 프랑스 대사관 도서과에 다년간 협력했다. 2003년 계간 [동서문학]에 장편소설을, 인터넷 서점 예스24 웹진 '북키앙'에 미술 에세이를 연재했다. 2004년 한신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밤은 말한다』, 『동행』, 『행복』, 『당신의 물고기』, 『아주 사소한 중독』,『버스, 지나가다』,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당신의 물고기』, 『네 마음의 푸른 눈』, 『춘하추동』,『저녁식사가 끝난 뒤』, 번역서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실베스트르』를 펴냈고,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하찮음에 관하여』를 냈다. 그리고 유럽묘지예술기행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파리기행 『인생의 사용』, 미술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에세이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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