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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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존 작가 중 가장 많은 추리소설을 쓴 '추리소설계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분이 이 책 『조인계획』의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는 상대적으로 추리소설이 많지 않은 국내에도 추리소설 붐을 일으킬 정도로 한국의 독자도 많다. 전 세계 누적 판매 1300만 부를 기록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비롯해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된 작가'라고도 불리울 정도다. 독자는 추리소설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았다. 범죄와 연루된 소설을 읽는다는 게 범죄 많은 시대에 신문이나 TV, 영화를 통해 보이는 범죄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소설로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뭐 사회 정의에 반하기 때문에 멀리 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사회가 흉포화해가는 범죄로 골치가 아픈데 책으로까지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숙명』을 읽고 추리소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불과 1년 여 전의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서 보낼 시간이 많아 무료해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우리 집으로 배달됐다. 제목이나 책 생김새가 멋졌다. 읽기 시작했다. 오후 식사 후 읽기 시작했는데 저녁을 먹지도 않고 빠져들었다. 그리고 조금 급하게 새벽까지 단숨에 모두 읽어치웠다. 이후 추리소설은 신간이 나올 때마다 다시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되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출판사가 가끔은 바뀌지만 꾸준히 출판되었다.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팬이 될 만큼 읽었다.

 


 

이 작품 『조인계획』은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과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등 두 차례의 동계올림픽을 치른 일본은 동계올림픽 강국이다. 이 소설은 그 사이 어느 때쯤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특히 스키 종목에서도 뛰어난 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등 강세 종목으로 스키점프를 들고 있다. '조인(鳥人)'이라는 말도 스키점프 선수가 내닫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최대한 멀리 날기 위해 몸과 스키를 평행선으로 만들어 바람의 저항을 덜 받고 멀리 날기 위해 하는 동작을 두고 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다.

이 소설은 ‘동계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스키점프를 소재로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과 승리를 향한 광기를 그렸다. 스포츠와 과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놀라운 트릭과 반전을 선사하는 한편, ‘인간성과 맞바꾼 승리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패배보다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현대문학〉에서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조인계획』은 지난 2007년부터 15년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요 작품들을 우리말로 옮겨온 양윤옥이 번역을 맡았다.

 


 

‘조인(鳥人)’이라 불리는 스물두 살의 천재 스키점프 선수 니레이 아키라가 합숙 훈련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며칠 뒤 경찰에 익명으로 날아든 한 통의 밀고장. ‘범인은 스키점프팀의 미네기시 코치다. 즉시 체포하시오.’ 미네기시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지만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고, 동료 선수와 스태프 모두는 충격에 빠진다. 살해 동기와 결정적 물증을 찾지 못해 수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네기시는 자신을 지목한 탐정, 즉 밀고자를 알아내기 위해 유치장에서 혼자만의 추리를 시작하는데……. 이제 니레이 살인 사건 이면에 숨겨져 있던 끔찍한 ‘계획’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낸다.

『조인계획』에서는 압도적 기량을 자랑하던 천재 선수의 죽음을 둘러싸고 날카로운 직감을 가진 형사와 그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범인이 팽팽하게 대결하는 가운데, 니레이에 밀려 만년 2인자를 면치 못하던 사와무라, 이전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으나 니레이가 죽은 후 그와 꼭 닮은 점프를 선보이며 단숨에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스기에 쇼, 그리고 절대적 1위가 사라진 상황에서 자신의 유불리를 계산하며 신경전을 주고받는 동료 선수들의 미묘한 심리와 갈등이 입체적으로 그려지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달리 단순히 범인을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니레이를 독살한 범인의 정체는 비교적 이른 시점에 밝혀진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누구보다 니레이를 아꼈던 코치가 왜 그를 죽였는가? 어떻게 아무 의심도 받지 않고 독을 먹일 수 있었는가? 그리고 범인을 폭로한 밀고자는 누구인가? 이 소설은 살해 동기를 수사하는 경찰과, 범행 과정에 허점은 없었는지 되짚으며 밀고자를 뒤쫓는 범인의 시점을 중첩시켜 양방향에서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그러다 결말에 이르면 사건에 얽힌 모든 갈등과 비밀이 한꺼번에 폭발하며 상상력의 K점(임계점)을 훌쩍 넘어 충격적 반전을 선사한다. 과학과 추리의 절묘한 조화, 새하얀 설원을 내달리는 듯한 속도감과 짜릿한 반전, 끝없이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 본성과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까지, 신인 작가(집필 당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미스터리 제왕’의 탄생을 예고한 『조인계획』.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작품으로 평가된다.

 


 

1989년, 일본 최고의 스키점프 선수 니레이 아키라가 사망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사인은 독극물 중독. 부검 결과 독극물은 아코니틴, 맹독이다. 니레이가 평소 복용하는 비타민제 중 다섯개의 캡슐에서 독극물이 검출되면서 이 죽음은 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으로 규정되어 수사가 시작된다. 형사들이 탐문한 결과 니레이의 부탁으로 비타민제를 보관하고 있던 레스토랑은 오전 9시부터 9시 40분 동안 직원이 없는 상태이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두기 때문에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매끄럽지 않다. 독극물이 검출된 비타민 캡슐은 총 여섯 개. 니레이를 빨리 죽이고 싶었다면 어떤 캡슐을 먹을지 모르니 전부 독극물을 섞어놓아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독극물을 섞어놓은 시각을 확정하기 쉬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독극물 캡슐을 이렇게 어정쩡한 갯수로 만들었을까?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은 중반이 되기도 전에 범인을 확정해 놓고 서술한다. 다른 추리 소설에서 보기 힘든 구조다. 범죄가 발생하고 범인을 잡기 위한 과정을 그리는 게 추리소설의 일반적 경향인데 이 소설은 그런 구조를 과감히 깬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독창성에서 기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에 독자가 추론해야 할 것은 범인이 아닌 범인의 살해 동기와 범인의 트릭에 속아 넘어가지 않은 밀고자가 된다.

 


 

소설 속 범인은 독자와 함께 그 밀고자를 찾고자 추리를 시작하는데, 소설은 형사의 수사, 범인의 추리,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 새롭게 대두되는 제3의 밀고자 등 마지막까지 물음표를 놓지 않는다. 또 소설에서는 스포츠계의 다양한 형태의 '킹메이커'들이 등장한다. 스키점프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부모를 여읜 니레이를 훈련시키고 돌봤던 당숙 후지무라,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니레이에게 모두 쏟아부으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절대 일인자로 만들고 싶어했던 미네기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 인간성 따위는 서슴없이 버릴 수 있기에 아들 쇼의 개성은 무시해버리는 스기에 다이스케 등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독창성 있고 합리적이다.

이렇듯 자기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허위의 욕망덩어리들 앞에, 도대체 판단이 서지 앉는 순수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 등장했으니 그가 니레이다. 그는 1등도, 명예도, 돈도 관심없다. 오로지 하늘을 나는 그 순간을, 더 멀리 더 높이 나는 것을 욕망할 뿐이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니레이의 욕망을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다만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공동체 사회에서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악의는 없으나 동료의 상실감을 공감할 줄 모르고, 상대의 성취에 축하해 줄지도 모르는 공감능력의 결여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미숙한 차원을 넘어선다. 그가 자신이 실질적, 감정적 대용품이 되어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등 지상주의'에 대한 작가의 일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운동 선수에게 도핑은 끊임없는 유혹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추리소설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추리소설 분야에서 특히 인정받고 있는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대담한 상상력,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독자를 잠시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첫 작품 발표 이후 20년이 조금 넘는 작가 생활 동안 35편이라는 많은 작품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소재,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문장으로 매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1958년 2월 4일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곧바로 일본 전자회사인 '덴소사'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틈틈이 소설을 쓴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85년 『방과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전업작가가 되었다. 이공계 출신이라는 그의 특이한 이력은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도 인터넷의 무료메일, 게시판, 불법 휴대전화, FAX, 비디오 카메라 등 하이테크 장비를 이용해 무사히 몸값을 받아내고 유괴를 성공해내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과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발한 트릭과 반전이 빛나는 본격 추리소설부터 서스펜스, 미스터리 색채가 강한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 중 상당수의 작품이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칼날』, 『흑소소설』, 『독소소설』, 『괴소소설』, 『레몬』, 『환야』, 『11문자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호숫가 살인사건』, 『브루투스의 심장』, 『한여름의 방정식』, 『몽환화』, 『그 무렵 누군가』,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인어가 잠든 집』, 『살인의 문』, 『백야행』, 『기린의 날개』, 『한여름의 방정식』, 『신참자』,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다잉 아이』,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학생가의 살인』, 『오사카 소년 탐정단』, 『천공의 벌』, 『붉은 손가락』 등이 있다. 『방과 후』, 『쿄코의 꿈』, 『거울의 안』, 『기묘한 이야기』, 『숙명』, 『백야행』, 『갈릴레오』등 지금까지 20편이 넘는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비밀』, 『변신』, 『편지』,『용의자 X의 헌신』, 『더 시크릿』등 10여편이 영화로 제작되는 등,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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