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크리스마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3
쥬느비에브 브리작 지음, 조현실 옮김 / 열림원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엄마의 크리스마스』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아동문학 작가인 쥬느비에브 브리삭의 소설 작품을로 1996년 페미나상 수상작이다. 출판사 열림원의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세 번째 작품이다. 12월 23일에서 26일까지 나흘 동안 엄마의 아들, 둘이 겪은 고독을 소름 끼치도록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나흘 간의 일상을 그려낸다.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엄마와 영악해질대로 영악해진 아들 간의 나날일 뿐이다.

기승전결을 갖추거나 잔잔하게 시작되어 클라이맥스로 치달아가는 내용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이 모자의 일상 속에서 이 나흘 간만을 뚝 떼어 내어 그대로 서술한 듯한 소설이다. 소설의 흡인력은 예리한 관찰자이며 이야기꾼인 누크로부터 나온다. 예술가로서의 끼를 억지로 누르고 사는 그녀는 지나친 자의식 때문에 주변의 사소한 것들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한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집요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누크의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선 속에선 어떤 공간, 어떤 인물이든 음울하고 몽환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마치 세상 전체가 누크를 더 쓸쓸하고 더 초라하게 만들기 위한 무대장치로 변해버린 듯.

 


 

도시 전체가 휘황찬란해지는 크리스마스. 그 들뜬 분위기를 마치 전투하듯 '통과해야만 하는' 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있다. 저명한 화가로서의 경력을 한순간에 내팽개쳐버리고 남편과도 이혼한 채 도서관 사서로 쓸쓸히 살아가는 엄마 누크.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영악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고 있는 아들 으제니오. 찾아와줄 손님 하나 없이, 그들 둘이서만 크리스마스 축제를 즐겨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장난감 가게, 잡화점, 공원, 워터파크, 백화점 등을 쏘다니지만, 가는 곳마다 그들은 희한한 사람들과 마주친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 마주할 때마다 상처받을 일이 또다시 생길까봐 잔뜩 긴장한 채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둘의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하다. 엄마의 좌절과 아들의 고통은 점점 더해간다. 마침내 친구의 별장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난 모자를 기다리는 것은, 속물적이고 괴팍한 친구의 가족들과 누크의 전 남편이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이것이 자신이 엄마로서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모자의 나흘을 따라가다보면 한 사람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사람의 헌신과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성이라는 이 맹목적인 사랑의 실체가 실은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 안간힘으로 지속된다는 사실도.” 소설가 김혜진의 평이다. 김혜진 소설가는 이 소설 속의 엄마 누크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일상이 행복하거나 평화롭지만은 않다”며 “그것은 자비 없는 세상과 싸우는 일이며 수시로 들이닥치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이겨내야 하는 일”임을 확인시켜 준다고 말한다.

누크는 어린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외로움과 좌절뿐인 현실을 이겨내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오히려 아이를 망쳐놓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픔을 주지 않는 엄마, 한없이 자애롭기만 한 엄마, 완벽한 엄마는 오로지 죽은 엄마밖엔 없을 거라고.” 소용 없는 사랑이 타고 남은 자리에는까만 그을음만 남는다. “어떻게든 잊어버리고 싶은” “사랑으로 베풀었지만 전혀 기쁨을 주지 못한 선물” 같은 크리스마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우리는 과연 알고 있을까?” 이 물음에 확신을 찾아가는 날들이 언젠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이번 크리스마스는 완전히 망쳤다.” 애쓴다고 모든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다. 카나리아는 죽고, 워터파크의 인파는 불쾌하고, 백화점은 을씨년스럽다. 초대받은 친구네 집에서는 불청객 취급을 받아 기가 죽는다. “알지, 너의 그 대단한 희생, 그 엄청난 사랑이 아이한텐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는걸?” 친구, 전 남편, 심지어 당사자인 아들까지 모두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누크가 그의 곁을 떠나야 한다고 속을 긁어댄다. 화가로서의 은퇴, 남편과의 이혼, 아이의 양육······ 행복을 위한 누크의 선택은 모두 좌절된다.

매사 냉담한 그녀는 이제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별로 없는 사람 같다. “그림의 떡일 뿐”인 행복은 꼭 “원수 같다고 되뇌인다. “억지로라도 행복해져야만 한다는 그 안간힘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통은 결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예기치 않은 불행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빚진 게 없다.” 그러니 “바다로 나가라. 두려워 말고.” “난파를 당해보는 것만이 바다의 거대함을 알 수 있는 방법이라면, 어떤 희망인들 못 가져보랴.” 실망스러운 크리스마스를 겪어본 아이만이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알 수 있다. “나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긴 한가···” 아무런 확신도 없지만 행복을 향한 고통의 항해는 계속된다. “꿈꾸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행복이 될 테니. 부딪치고 깨지고 애쓰는 “모습이 우습긴 하겠지만, 그냥 상관 않기로 했다.” “늘 숨기만 하고 결국은 떠나가버리는 사랑”이라 해도, 그것을 지키려는 분투야말로 우리를 살게 만드는 ‘진짜’ 힘의 원천일지도 모르니. 미련한 사랑인 것을 알면서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으니제오의 엄마 누크는 으니제오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정신적인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물질적인 것들을 채워가려는 심리일까? 원하는 동물을 키우게 하고 원하는 곳들을 데려가보지만 아이에게 정성의 마음이 닿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으니제오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데려온 카나리아 한 마리는 죽고 만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엄마를 향한 마음의 일정 부문이 으니제오의 마음속에서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누크가 아들 으제니오와 전 남편이 함께 있는 것을 바라보며 삶의 잿빛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누크는 자신에게 남은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아들 으제니오를 전 남편에게 뺏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한다. '똑같은 잿빛을 그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누크의 마지막 독백은 쓸쓸하게 혼자가 되어버린 그녀의 우울과 불안 슬픔이라는 감정의 깊이를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거실 벽난로 앞에선 으제니오와 아이 아빠가 나이팅게일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실에선 기쁨도 결국은 슬픔을 낳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생겨난다.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작은 녹색 그림, 아담, 우리 카펫에 가위로 새겨넣은 미로, 우리가 맞춘 퍼즐들, 그리고 붉은 커튼, 영원히 잃고 마는 것인가. 이제 더 이상 길을 그린 그림도, 길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p.271)

 


 

크리스마스 전전날 엄마와 아들은 뭔가 신나거나 예쁜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듯한 대화를 나누지만 결국 크리스마스 다음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되뇌인다. 늘 기대와 현실은 딱 맞아 떨어지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삶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마는 동물들 중에 뭐가 제일 좋아?" 길을 걸어가면서 으제니오가 물었다. 크리스마스 전전날 밤이었다. "코알라, 다람쥐 그리고 수달.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나뭇가지에 네 발로 매달려 있는 게 귀엽고, 캥거루랑 가까이 산다는 점도 좋아. 다람쥐는 도토리 때문에 좋고. 맨날 하는 이야기지만, 도토리 먹는 모양이 정말 귀엽잖니. 수달은··· 글쎄, 멋대가리 없으면서도 처량하게 들리는 이름 때문인가, 물이 생각나기도 하고."(p.9)

"해변으로 내려갔다. 오래된 길을 따라 물을 향해 걸었다. 주머니에 조약돌을 주워 넣고서. '주머니에 조약돌을 주워 넣고서' 이 표현을 누가 썼더라? 모든 게 다 바보 같은 이야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은 없다. 정말로 없다. 물이 이토록 잿빛인 적이 없다. 똑같은 잿빛을 그린다는 건 불가능하다."(p.272)

 

저자 : 쥬느비에브 브리삭

1951년 10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센생드니에서 육 년 동안 교사로 일하다가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편집자가 되었다. 1988년 첫 소설 『소녀』로 아카데미프랑세즈상을, 1996년 『엄마의 크리스마스』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다수의 소설과 『올가는 괴로워』 『올가는 학교가 싫다』 『마법의 분필』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등 어린이 및 청소년 도서들을 출간했다.

 

역자 : 조현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뫼르소, 살인 사건』 『몸의 일기』 『뚱보, 내 인생』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