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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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등장하는 두 개의 도시가 인간이 그리워하는 '유토피아'를 상징한다. 샹그릴라(shangrila)와 엘도라도(El Dorado)가 그것이다. 이상향이라 불리우는 가상의 도시이자, 실제 지명들이다. 샹그릴라는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1933년에 펴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란 소설에서 이상향으로 창안해 낸 도시 이름이다. 샹그릴라는 히말라야에 실제로 존재하는 어느 지역의 지명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소설 속 가상 도시다.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샹그릴라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일반 어휘로 영어사전에까지 등재되어 있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은 간행 이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제임스 힐튼은 이 작품으로 ‘호손덴문학상’까지 수상하였으며, 두 세대 이상에 걸쳐 지금까지도 계속하여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인류의 이상향 샹그릴라는 칸첸중가의 해발 4,500미터 산록, 가르왈 히말라야와 티베트 국경 지대, 라다크에 인접한 두 사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대 인도의 경전에도 이 신비한 지역이 언급된 바 있다. 중국에는 이 이름을 가진 도시가 실제하고 있으나 소설의 배경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엘도라도 역시 16세기, 갓 발견된 신대륙을 향하여 많은 남자들이 바다를 건넜다. 그들을 흥분시킨 것은 황금으로 만든 집에 살며 온몸에 사금을 칠한 인간에 대한 전설이었다. 남자들의 욕망은 절정에 달해 대지에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황금향은 욕망의 깊이에 반비례하는 것처럼 지금껏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나중에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피사로의 부관이었던 남자가 전했다는 체험담이다. 남자의 이름은 오레야나라고 한다. 그는 피사로의 지시로 부대를 이끌고 페루를 출발했지만 산속에서 부하들을 내팽개치고 단독 행동을 했다. 결국 그는 무사히 대서양 쪽으로 나올 수가 있었지만 그 도중에 만난 것이 이 도시, 즉 '황금향(黃金鄕)'이었다. 엘도라도라는 명칭의 유래는 그가 말한 '황금의 사람' 또는 '황금왕'을 의미한다.

 


 

요즘은 세계 정세가 암울하기만 하다.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뿐만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까지 더해져 전 인류가 불안 속에서 눈만 끔뻑이며 코로나의 종식만을 기대리고 있는 형국이다.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사는 세상은 언제 올까라는 인류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 것 같다. 키워드로 찾아봐도 종말, 멸망, 재난, 디스토피아 등 암울한 단어가 훨씬 많이 뜨는 시대다. 힘들고 암울한 세상을 희망과 감동을 주는 한 소설 작품이 주목을 끈다.

어두운 소재를 맑고 아름다운 필치로 산뜻하게 빚어내며 희망을 전하는 ‘어둠의 시인’ 나기라 유의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나기라 유는 2020년 서점대상을 수상한 『유랑의 달』에 이어 이 작품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로 2년 연속 서점대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고 한다. 나기라 유는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품는 어두운 면과 함께,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게 장기인 것으로 알려진 작가다. ‘관계’를 다루는 장르 BL 작가로 오랜 기간 활동하다 도전한 문예소설은 문단과 평단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2021년 일본 최대서점 키노쿠니야 서점원 선정 최고의 작품 1위에 선정되며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 소설은 ‘소혹성이 충돌해 지구 멸망’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불행한 실패자들의 삶과 엮어 새로이 탈바꿈시킨 역작이다. 이 작품에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초인적인 영웅이 등장하지도, 주인공들이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종말이 확실하기 때문에 불행 속에서 인생 처음으로 진짜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기묘한 희망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은 지구 멸망이 한 달 후로 확정된 세상의 이야기다. ‘이상향’이라는 뜻의 단어 ‘샹그릴라’는 멸망이라는 소재와 대조되어 제목에서부터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지구에 소혹성이 다가와 곧 충돌한다는 사실을 갑자기 통보받은 네 사람의 이야기가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마다 주인공이 바뀐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언뜻 보면 서로 교류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등학생, 깡패, 미혼모, 가수가 무엇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해답은 이들이 멸망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있다. 이들은 모두 갑작스러운 멸망 선언에 딱히 절망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오래 인정받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며 절망하는 데 익숙한 인생의 실패자들이기 때문이다. 저자 나기라 유는 전작들에서 유령이 된 남편과 그와 함께 사는 아내(『하느님의 비오톱』), 납치 피해자와 가해자(『유랑의 달』) 등, 관계가 아주 가까우면서도 서로 어울려 살기 힘든 인물들을 만들면서도 그런 그들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이 솜씨는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 작품은 모두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멸망 이전 한 달간의 샹그릴라를 그리고 있다. 1장 ‘샹그릴라’의 주인공 고등학생 에나 유키는 소혹성 충돌 뉴스를 듣고 나서 충격받기보다 서글픈 기쁨을 먼저 느낀다. 학교 폭력 피해자로 이미 충분히 궁지에 몰려 있기에, 자기를 괴롭히는 학생들과 한 달 후 멸망이라는 조건하에서 동등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장 ‘퍼펙트 월드’의 주인공 깡패 메지카라 신지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살인 청부까지 받아들이고 실행한 와중에 들은 지구 멸망 선언은 어이없기만 하다. 또 3장 ‘엘도라도’에서는 지구 멸망 발표를 듣고 후회를 거듭하는 미혼모가, 4장 ‘마지막 순간’에서는 거식증에 걸린 인기 가수가 등장한다. 이들, 망한 인생의 표본 같은 사람 넷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만나고 엮이며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린다.

제 1장 「샹그릴라」에서는 하고 싶지 않은 출근을 앞둔 직장인, 등교를 앞둔 학생들이 습관처럼 마음속으로 바라는 호출에 갑자기 신이 응답한다면 어떨까. 심지어 바로 한 달 뒤가 멸망이라면? 주인공 유키는 세계가 멸망한다고 해서 성격이 돌변하거나 큰 충격이나 깨달음을 얻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이기에 짝사랑하는 소녀 후지모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겨우 결심한다. 소심한 태도도 바뀌지 않아 죽기 전 도쿄에 가보고 싶어 하는 후지모리를 여차하면 보호할 수 있도록 집을 나온 그녀를 몰래 따라가는 게 전부다. 그러나 그 짧고 다사다난한 여행 끝에 유키는 부모에게서 독립된 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상하며 회피하던 습관을 버리고, 드디어 자기 자신을 직시할 용기를 내는 것이다.

 


 

이 작품의 네 주인공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게 어색한 사람들이다. 자기혐오와 절망이 오래된 만큼 앞으로 길게 이어져갈 미래란 거대한 절망과 짐에 불과하다. 미래란 곧 그만큼 길게 엉망인 꼴로 살고 있을 자기 자신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반짝이는 미래를 당연히 여기던 사람들이 절망하고 무너지는 것과 다르게, 지구 멸망 전 한 달 동안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 후엔 빠르게 그 삶에 적응한다. 어차피 한 달 뒤면 끝날 세상이니까. 그 결과 이들은 역설적으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행복을 즐기는 방법을 깨닫는다. 공포와 분노 속에 동요하며 혼란스러운 최후를 맞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선택한 장소인 콘서트장으로 향해 음악을 즐기며 겸허히 죽음을 맞이한다. 저자 나기라 유는 출간 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한다.

“그 인물이 되어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도무지 쉽지 않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어요. 타개책을 찾아 퍼뜩 눈앞이 트인 후엔 반나절 만에 썼죠. 거기까지 두 달이 걸렸습니다. 멸망 앞에서는 언뜻 보기에 세상이 평화로워 보일 수 있어도 사실은 그렇지 않고, 사람도 사회도 취약한 모습이 드러날 거예요. 이 소설은 2019년에 플롯을 짰는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엄청난 상황이 되자 세상의 취약성이 드러나 놀랐습니다. 멸망 얘기를 지금 내야 할지 편집진과 논의했었는데요. 그냥 지금은 꺼낼 때 꺼냈다는 마음이 더 강해요.”

 


 

저자 : 나기라 유

어두운 소재를 맑고 아름다운 필치로 산뜻하게 빚어내며 희망을 전하는 ‘어둠의 시인’ 작가. 사람이 약하기 때문에 품는 어두운 면과 함께,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2007년 데뷔 이후 10년 동안은 BL 작가로서 활동했으며, 10년차인 2017년부터 일반 문예소설을 출간하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관계’를 다루는 장르에서 다져진 섬세한 감정묘사와, ‘당사자들만이 관계의 진실을 쥐고 있다’는 인간사의 본질을 포착하는 솜씨는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결국 2019년 출간한 『유랑의 달』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한편으로 2020년 서점대상을 수상해 평단과 대중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2020년에 발표한 대표작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는 ‘소혹성 충돌로 지구 멸망’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독창적으로 다루며, 인생의 실패자들이 멸망을 계기로 혐오했던 자기 삶을 마주보는 과정을 현실적이고도 희망적으로 그려 2연속 서점대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역자 : 김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특히 일본 문학을 소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 시리즈를 비롯하여, 이사카 고타로의 ‘명랑한 갱’ 시리즈, 『종말의 바보』,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소시민’ 시리즈, 나기라 유의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외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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