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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 따뜻하게 놓아주는 법을 배웠다
전우주 지음 / 프로방스 / 2021년 7월
평점 :
가을이다. 한가위가 지나자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바람이 인다. 가을은 시와 가까이 하기 좋은 계절이다. 생각하기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주는 풍요 속에서 다른 계절과 달리 셍각의 범위와 깊이가 가장 넓고 깊다. '생각의 계절'이란 말도 이런 의미에서 생겼나 보다. 예전에는 '고독의 계절'이라고 했지만 고독이 주는 한계성을 벗어나기 위해 독자는 생각의 계절이란 말을 쓴다. 이 시집은 시인 전우주가 수많은 번민과 노력으로 마음 깊은 곳의 상처로부터 길어낸 응축된 고백이다.
계절을 노래하는 시도 있지만 계절과는 상관 없는 시들이 많다. 어쩌면 이 시집은 독자가 스스로의 번뇌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했기 때문에 가을에 읽기 좋은 시집이란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들어가는 말」 '가엾은 그리움은 낡은 서랍에 넣어 주시오'(p.4~5)에서,
시는 아름다운 공기인 것 같아요.
때론 살짝 기울어진 나무 같기도 하고
너무 무거워 보이는 꽃잎 같기도 하고
쓸쓸한 바람 같습니다
고 적는다. 그만큼 좋다는 표시라 한다.
시란 무엇인가? 시인의 말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때론 비겁하게
때론 이기적으로
때론 궁상맞게 잘 모르는 단어들을 숨긴 채
고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은근하게 써내려가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 그 마음은 시다 라고 쓸 수 있는
아마도 그러할 게다
시는
이라고 써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인은 이 시집의 표제어가 된 시 「우린 서로 따뜻하게 놓아주는 법을 배웠다」(p. 180~181)에서,
그랬다 우린 서로 기다렸고
그 기다림에 사랑보다는 배려라는
감정이 생겼던 것이다
(중략)
그리고 배려의 화살표가 언제부터인가
상대방이 아니라 내게로 돌려져 있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창한 배려에서
언제까지 나만 이라는 합리적인 이유가 들었던 것이다
그해 2년ㄴ의 겨울 우린 서로
춥지 않을 정도로 놓아주는 배려를 배운 것이다.
라고 적었다. 서로의 배려 속에 맞은 이별은 그렇게 따뜻했다는 시인의 가슴에 온기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앞서 시인은 제1장 〈애간장이 다 녹은 봄의 그리움을 감사할 수 있을까〉 중 「그리워서 서둘렀습니다」(p.16~17)란 시를 통해,
꽃을 아느라 봄은 늦게 알게 되면
뒤늦게라도 미안하다 말해주자
봄이 오기 전 미루어진 결제는 설렘으로 정산하자
봄이 오는 날 맛있게 먹어줄 수 있도록 입안을 씻어내자
사랑한다, 좋아한다, 행복하다 단것들만 가득 메운 예쁜 말로
봄을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
고 봄을 맞이했다.
여름, 바다를 찾은 시인은 「우리가 만든 바다이름은 사랑이었어요」(p.40~41)에서,
당신 나를 그렇게
사랑했구나 하고 이해가 될 겁니다
그래서 제가 누누이 말했던 거죠
내가 만든 바다를 살짝 꺼내보라고
아직도 내 바다엔 당신과 만든 노을이 예쁘게 서 있답니다
라며 기억을 되새긴다. 그리고 가을 따뜻한 배려 속에서 이별을 나눈 채 겨울을 기다리고...
출판사 측에서 내놓은 「작가의 말」을 통해 시인은, "잠시 어두운 시간을 만나는 것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어두운 시간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큰 세계를 만나 비상하는 기회가 되고 또 어떤 사람들에는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 들어가 헤어나지 못하는 시간이 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람들의 거리두기가 되어 혼돈의 시간 혼란한 사회가 되어갑니다.
어려운 시간을 만나면 가장 먼저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혼란한 시간에 중심잡기가 필요할 때 알아야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입니다.
시인은 오랫동안 사물과 사람의 작은 움직임에도 마음 쓰이고 고민하고 속내를 알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글로 그들의 모습을 적어냈기에 흔들림 하나하나의 모습들이 글 속에 행간에 살아있습니다.
지금 마음을 알고 싶거나 친구가 필요하다면 마음으로 하는 여행에 초대합니다. 마음을 알게 되면 자신을 알게 되고 번뇌나 후회에 자유로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응원자입니다."
시인의 삶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말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마치 코로나 팬데믹의 혼돈 속에서 희망처럼 곳곳에서 삶의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듯이.
저자 : 전우주
여리여리한 문구는 없지만
메말라 가는 가슴에
꽃이 되어 주는
씨앗을 숨겨 놓았습니다
원컨데
이 책 안에 좋아하는 계절이
있으면 담아두세요
한동안
지켜줄겁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