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숫자를 누른다 예서의시 16
김태경 지음 / 예서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 별에서 단 하나의 인연으로 평생을 함께한 아내에 대한 헌시로 읽히는 이 시집의 대표시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가 그대로 표제어가 됐다. 그만큼 아내를 만난 감사함과 보은을 제대로 못하고 미루기만 했던 아내에 대한 사랑의 시가 담겼다 이 시집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에는 시인 김태경의 시 69편이 실렸다.

여기 실린 시가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지구에서 맺은 인연을 비밀의 숫자로 만들어 살아온 아내를 위한 시였고, 이는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요, 훗날까지 살아가면서 늘 되새겨보는 말 없는 약속의 의미를 담은 사랑의 고백이다. 이 시집은 또 가족, 고향, 여행, 삶과 죽음 등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마음을 시로 엮어낸 시인의 자서전적 시편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훈훈한 정감을 준다. 듣기만 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절절한 고향이야기도 함께 묶어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시인의 시에는 누구나 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은 공감과 건드리기만 해도 툭 터질 것 같은 애틋함이 배어 있다.



첫 시집 『별을 안은 사랑』(북허브)을 출간한 후 이번이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에 대한 첫 느낌은 시의 정갈함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시집 첫 번째로 나오는 「돼지감자」는 아마 고향에서 시인에게 가을에 채취한 돼지감자를 편으로 썰어 말린 것을 택배로 보냈나 보다. 이 작고 소소한 일상을 시인은 힘든 도시살이를 걱정하는 고향의 마음으로 읽어내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대부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랬듯이 시인의 할아버지 역시 일제강점기 시대에 수난을 겪으신 것 같다. 「대마도」라는 제목의 시 속에서 할아버지의 슬픔, 면암 최익현, 덕혜옹주,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등 한 가족의 역사에서 민족의 역사까지 나아가는 모습에서 한편의 서사시를 읽은 느낌도 준다.




아이들의 아버지요, 또 무뚝뚝한 남편으로 살아가면서 감정 표현이 서툴러 늘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일도 담아냈다. 아내가 친정을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을 시에 담고 있는데, 그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준 시가 「아버지와 딸」이다. 시인은 이 시를 독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다고 뒷부분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밝혔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삶의 애잔함을 고스란히 몸으로 보여주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아버지와 딸

어단리 정미소에서 피대를 감고

방아를 찧으며 살다가

이웃이 주는 정으로 사시다가

이제는 기침 쿨럭거리며 누워 있는 생

자식들 떠난 자리

또 쓸고 닦으며 기다리며 살다

쓸쓸함을 덮고 있는 노을만 바라봅니다

(...)

한세월 살다 보니 사는 게 다 꿈만 같으시다며

나 홀로 와 세상과 어울리다

홀로 가는 인생인데

그 좋은 술 한 잔도 마시지 못하신다며

건네주시는 한 잔의 서글픔

(...)

명절이라 찾아온 딸이

홍시 같은 아버지 곁에서

말랑말랑한 슬픔을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p.32)



시인은 또 윤동주의 「서시」를 읽을 때마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많이 자신에게 던진다고 한다. 시인이 연당(제비집)에서 매주 학생들이 우리나라 명시를 암송해서 발표하게 한 지도 어느덧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많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던 시가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였고, 그 아이들의 풍경을 시로 담아 표현했다. 그 시가 「서시를 읽다」이다. 시인은 훗날 우리 아이들이 윤동주의 ‘서시’ 한 편으로도 세상이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겨울이 다 녹고 / 제비가 날아온 이 땅 위에서 / 우리의 아이들이 당신의 서시를 노래합니다”

시인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차용하면서 학생이나 선생이나 도덕적 순결성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가를 노래한다.



특히 이 시집에는 중간 중간 노동시가 들어 있다. 지금까지 노동시들은 비교적 삶의 절망이나 비애가 많았는데, 김태경 시인의 시에서는 노동의 절망보다 희망이 많이 담겨 있다. 이는 노동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못으로」, 「크림빵」, 「만종」 등을 읽으면 노동은 슬픔이 아니라 주어진 숙명이지만 이것을 대하는 삶의 자세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노동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들도 가슴에 와 닿는다.

만종

싱그러운 땅 위에 살아도

산다는 일 아침저녁으로 다르리라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너른 들 끝없는 노동의 하루

일하다 쉴 수 있겠는가

저 아득한 곳까지 순한 기도로 가야 할 뿐

한낮 믿음으로 땀으로 심은 곡식들

이제는 그 시간이 익어

밭고랑 위에 쌓인 땀방울

이제 노동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괭이에 손을 얹어놓고 종소리 들으면서

사람은 저마다 기도를 올린다(p.98)

(...)


이밖에도 「신라의 미소」를 통해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수막새 기와를 감상하고 쓴 시나, 「유리 가가린」을 통해 이 푸른 별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우주 밖에서 조망하는 힘, 그리고 공존의 비밀을 생각하는 힘이 좋다. 특히 「백두산」을 통해 우리 민족의 아픔과 함께 우리 민족이 함께 화합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백두산의 기점으로 하여 시인의 꿈이 동서남북으로 힘차게 달려가는 것이 눈에 띈다. 이 시집에서 가장 장시에 해당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것은 시인이 던져주는 메시지나 유려한 표현에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시적 힘이 실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 김태경

1962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 태어났다. 2009년 5월 [모던포엠] 5월호에 「세탁소」 등 3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등단 10년 만에 처녀 시집인 『별을 안은 사랑』을 출간하였고, 이후 『비밀의 숫자를 누른다』를 출간했다. 제5회 박재삼 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강동 문인협회, 평창 문인협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연당국어논술교육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강의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