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뒤 맑음 - 하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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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의 즉흥여행의 위기는 사실 레이나 부모처럼 집안의 걱정과 함께 짐작된다. 아무리 동화 같은 나라라고 어린아이들이 여행을 하기에는 너무 큰 나라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이어서 더욱 불안하다. 예를 들어 돈을 분실하거나 혹은 신분증을 잃어버려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그런 상황이라면 두 어린 여행자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나라 아닐까.

시카고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와서 표를 사려할 때 비로소 카드 정지 사실을 알게 된다. 막막해진 순간 패터슨 할머니의 손녀 헤일리가 자신이 사는 내슈빌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비를 모으라고 제안한다. 길에서 자전거 충돌로 쓰러진 패터슨 할머니를 도와준 인연으로 알게 된 헤일리의 도움이 아니면 당장 뉴욕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 헤일리의 제안은 단순한 제안이 아닌, 구세주였으리라. 그렇게 내슈빌에서 돈을 벌기로 한 이후 이츠카는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신 없이 일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14세 소녀 레이나는 동네를 산책하거나 아이들과 어울려 보기도 하지만 무료함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레이나는 여행이 갑자기 멈추면서 기운이 빠져버렸지만 이츠카는 경제적으로 독립해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돈을 모아 다시 여행을 계속한다. 서부 뉴멕시코까지 남은 여정도 부모들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큰 탈 없이 마무리된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떠날 때와는 또 다른 긴장과 설렘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며 오랜만에 여행의 감흥을 떠올려 보았다. 떠날 때만큼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기쁨도 있었다는 것을. 장기간 학교를 결석한 레이나는 유급 걱정을 하고, 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건너왔던 이츠카는 과연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갈지 궁금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대학을 다닐 것으로 독자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작가의 암시적 표현이 있다.

책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이츠카와 레이나의 양가 부모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린다. 소심한 성격의 이츠카의 부모는 오히려 아이의 이런 모험과 새로운 경험을 지지하고, 낯선 사람과도 잘 어울리며 두려움이 없는 레이나의 부모는 아이가 속히 돌아오기만을 바란다. 게다가 이 일로 부부의 갈등까지 생긴다. 레이나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도 이 부부의 갈등은 해소될 것 같지 않을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미국을 직접 보고 싶다던 이츠카와 레이나는 이번 여행으로 다양한 사람과 풍경을 만나다. 이 여행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특히 미국이 낯설고 두려웠을 이츠카에게 여행은 분명 미국을 가깝게 느끼는 기회가 되었을 것 같다. 혼자였다면 두려움이 컸을 텐데 서로를 의지하며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미국을 책으로나마 여행한 기분이 꽤 괜찮다. 그것이 작가의 세밀하고 정제된 문장의 영향도 컸으리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고 부인할 생각도 없다. 어린 아이에 불과한 두 소녀의 거칠 것 없는 모험심과 행동, 난관에 부닥칠 때 문제 해결을 몸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해나가려는 생각 등도 그들이 거둔 여행의 성과였을 것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 여행은 그들에겐 단순한 추억거리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큰 힘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 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1992), 『나의 작은 새』로 로보노이시 문학상(1999),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2003), 『잡동사니』로 시마세 연애문학상(2007), 『한낮인데 어두운 방』으로 중앙공론문예상(2010)을 받았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 1·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벌거숭이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개와 하모니카』, 『별사탕 내리는 밤』 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역자 : 신유희

동덕여대를 졸업하고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호텔 선인장』, 『도쿄 타워』, 『마미야 형제』,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벌거숭이들』, 『별사탕 내리는 밤』, 츠지 히토나리의 『안녕, 언젠가』, 노자와 히사시의 『연애시대 1ㆍ2』, 가쿠다 미쓰요의 『그녀의 메뉴첩』, 『가족 방랑기』, 오기와라 히로시의 『내일의 기억』, 『벽장 속의 치요』, 가와이 간지의 『단델라이언』 등이 있으며

그 외에 『112일간의 엄마』, 『밥 빵 면』, 『은하 식당의 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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