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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1년 4월
평점 :
SF소설, 심리스릴러, 타임슬립. 요즘 국내소설도 무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소설이 인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일이다. 예전 범죄추리소설은 심리스릴러로 진화하고,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일컬어지던 미래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SF(Science Fiction) 소설, 타임슬립 소설로 확장됐다. 양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훨씬 풍부해진 느낌이다. 소설가들의 상상력이 소재나 배경으로 나오는 우주공간, 시간개념을 잘 인지할 수 있는 듯 자유자재로 상상력의 날개를 편다. 독자들도 게임의 영향인지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작가나 독자나 과학적 지식이 크게 높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은 인터넷이 아닐까 독자는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3D 등 작가의 상상력을 무한으로 끌어갈 수 있는 소재가 널려(?) 있어서일 것으로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소설은 어차피 픽션인데 배경이 우주로 가든 시간을 뛰어넘든 크게 저항이 없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것에 독자도 공감한다. 더욱 소설이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다만 독자가 허무맹랑하다고 저항감을 보인다면 당연히 인기를 끌지도, 유행이 되지도 않을 터이니 사회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저자와 독자의 상상력에 맡길 일이다. 이 소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도 타임슬립 소설이다. 제목처럼 과거여행을 하는 여행사가 일정한 요금을 받고 과거여행을 주선해 '캡틴', '세일러'와 함께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온다는 줄거리다. 모두 10개의 소설이 실렸으니 연작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옴니버스와는 결이 다르다. 여행사가 모두 같고, 과거로만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이라 해야 할 듯하다.
소설마다 에피소드 한 개가 있어 각각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독립적 이야기를 끌고 간다. 특별한 여행사에 과거여행을 가는 여행객도 평범하지 않다. 대부분 과거로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시절 그 곳에 가서 상황을 바꾸려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계단에 툭 떨어진 명함 한 장. 언제, 어디든 떠나고 싶다면 오늘 당장 과거로 떠날 수 있다고 말하는 여행사 명함이다. 여행을 안내하는 세일러와 고객을 쥐락펴락하는 캡틴을 만나 여행상품을 고르고, 비용을 지불하면 그것으로 과거여행 준비는 끝.
그러나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시간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강제귀환을 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행사 상품도 특별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고객들의 여행 동기도 다양하다. 엄마의 결혼을 막으려는 딸, 과거의 어떤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교수, 반백 년 전에 헤어진 동생을 만나고 싶은 오빠의 이야기까지. 이 책을 보는 순간,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자들은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하나의 팁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며 자유롭게 여행하던 평범한 일상은 사라졌지만, 인간들은 언제나 여행을 꿈꾼다. 인간 본성이 그런 것 같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이 호기심이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다는 인류학자의 연구 분석도 있다. 이 호기심으로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해온 게 사실이다. 팍팍한 현재를 벗어나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고, 또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여행도 있고, 탐험 수준으로 미지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것은 틀림없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바로 과거여행이니 더 호기심을 자극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과거로 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가기 때문에 그 당시 그곳에서는 신(神)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우리에게 미래에서 온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현재를 모두 알고 있지 않겠는가.
과거란 누군가에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찬란하게 빛났던 시절이었을 수도 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갔던 모두는, 또 우리에게는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18~20세기 근현대부터 홍콩, 프랑스, 북대서양 바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대하는 자세가 바뀔 수 있다면... 이 점 또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이다. 내게 과거여행 왕복 티켓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갈까?
이 책 제목에 등장하는 낯선 단어 '히라이스(HIRAETH)'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뜻하는 웨일스어라고 책 맨 앞부분에 밝혔다. 책 제목만 봐서는 일본어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단어다. 사실 이 여행사로 돈을 번 사람은 일본에서 재일교포라고 차별을 받는 사람임이 에필로그에서 암시된다. 그렇게 유추하다보니 핑크빛 책표지, 각 장마다 구분되는 곳에 있는 햇살무늬에도 의심이 간다. 소설에서도 일제강점기 시절로 돌아가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일본 소설이라는 유추도 지나치지 않을 터, 햇살무늬는 편집진의 실수인가, 의도인가 사뭇 의심스럽다. 물론 우리 한국사람을 비하하거나 옹졸한 사람으로 소설 속에서 표현하지 않아 지나친 억측이길 바란다.
“거기서 나오는 조명은 빛이고, 안에 하얀 가루는 소금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리고 거스른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빛과 소금처럼 필수 불가결의 요소지요. 사람들은 과거는 무조건 잊고 미래를 맹신하고자 합니다만,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때로는 과거를 통해 미래가 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미래를 위해 현재가 달라지기도 하죠. 아마 여러분들께서도 한순여 고객님께 그런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이 단체 여행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까?”(p. 320)
저자 : 고호
일꾼, 이야기꾼, 때로는 상상꾼.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재미없는 무역회사에서 평범한 밥벌이를 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등이 있으며,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녹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단법인 이효석문학선양회와 의정부전국문학상에서 수상한 바 있다. 『과거여행사 히라이스』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