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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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시인들의 일상과 건강을 위한 생활체육 등을 주제로 쓴 에세이라고 해서 관심이 컸다. 지인 중 여성 시인이 한 분도 없으니 더욱 이들 시인들의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다. 또 시를 쓰는 사람들은 절제된 생활과 겸허한 태도가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렇고 더욱이 여성 시인들이기에 생활 자체가 모범적이리라 하는 독자만의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그들의 일상과 건강, 생활은 따라할 수만 있다면 코로나 팬데믹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도 이 책을 꼭 읽고 싶은 이유였다. 독자의 이 마음을 출판사 소개글은 "다친 마음에 힘을 주고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여성 시인 열 명의 생활 건강 에세이"라고 표현해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한 시인은 자신의 생활을 “일상에서 작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며 살고 싶다. 그것들엔 돈이 들지 않으니까. 아니, 값을 매길 수 없으니까.”라는 표현으로 "역시 시인의 표현은 우리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하는 독자의 감탄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요즘 선뜻 건강함을 묻기에는 조심스러운 코로나 팬데믹으로 환란의 시기다. 지금도 코로나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생활은 굴러가야 한다. 매일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발표하는 방역 당국이 '4치 유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방역 협조를 당부하는 방송마저 일상적으로 들릴 정도로 지리한 시간이다. 치열하고 감동적인 의사와 간호사들의 코로나 환자 치료의 소식도 일상이 되다보니 감동까지 줄어든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버티고 코로나 종식으로 맑은 공기를 숨쉴 때야 비로소 남의 건강도 걱정하고, 혹시 환자라도 주위에 있으면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숨막히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평소 즐기지 않던 TV도 전례없이 시청 시간이 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TV에 한 번 두 번 눈을 주다 보니 (제작진의 의도겠지만) 유명인들이 나와 우리들 대신 활발한 활동을 대신해 건강함을 선사한다. 옛날 골프선수 박세리, 개그우먼 김민경도 나와 건강함을 자랑 삼아 위로와 위안을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모습도 눈물겹다. 그러다가 어느덧 그들이 좋아지기도 하고, 따라하고 싶은 의욕도 솟는다. 이럴 즈음 펴낸 책 『나의 생활 건강』은 선물이고 격려였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 시인들의 생활 건강은 무엇일까. 현재 주목받고 있는 시인 열 분(김복희, 유계영, 김유림, 이소호, 손유미, 강혜빈, 박세미, 성다영, 주민현, 윤유나)은 코로나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삶을 살까. 우리 보통 사람보다 감수성도 짙고, 다양한 감정을 지녔을 시인들의 삶의 편린을 맛보기에 이 책은 충분하다. 이 책에서는 시인들이 저마다의 다채로운 언어와 독특한 스타일로 생활과 건강에 대해 그려낸다. 글의 사이에는 시인이 보내준 매력적인 사진 한 장씩이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물, 친구, 설화, 술, 오디, 반타블랙, 엄마, 새벽, 먹이, 방, 산책, 복숭아, 여행 가방, 고양이, 기계, 미술관, 나무토막 고구마구이, 할머니, 고백, 스트레칭, 김밥, 동남아의 겨울, 사랑, 빛, 산책, 일기, 유칼립투스 폴리안…… 이 책의 뒷표지에 낙서처럼 흩어져 있는 단어들이다. 시인들이 쓴 에세이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리라.

 


 

출판사에 따르면 “좋아하는 일에 자주 노출시켜 무기력에 대비”(p. 12)한다는 김복희는 술 마시기, 읽기, 쓰기가 주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유림은 유쾌하고 엉뚱한, 미로 같은 글에서 여행 못 갈 때 사용하는 여행 가방의 내부(‘고양이’ ‘새’ ‘밤’ ‘폐지’ ‘North Side Waterfall’)를 묘사하며 테두리가 있다는 감각의 건강함에 대해 말한다. 강혜빈은 부캐 시대를 살아가는 프로 N잡러(시인, 사진작가, 브랜드 마케터, 강사, 불문학도)로서 고군분투하는 삶을 드러낸다.

생활 건강은 아무래도 자주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 덕분에 가능할까. 세 명의 필자는 가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엄마와 할머니. “웃을 때와 울 때의 입매” “사랑을 시작하면 좋은 먹이부터 챙겨주려는 습성” 등 “엄마 자국”(p. 41)이 많은 유계영은 건강함을 주는 엄마라는 토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윤유나는 ‘새끼의 마음’에서 느끼는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을 풀어낸다. 손유미는 자신을 “살찌우다가도 드물게 체하게 하는”(p. 85) 할머니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리드미컬하게 전개해나간다.

 


 

또 월간 『SPACE』에서 일하는 건축 전문 기자이기도 한 박세미는 방을 소재로 잡았다. 빛과 그림자, 점, 선, 면, 무게, 밀도, 온도, 질감…… 방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을 차분하게 짚어낸다. 주민현이 좋아하는 공간은 미술관이다. 일상을 리프레시할 수 있는 미술관에서 그는 “좋아하는 그림을 보며 사랑의 풍경을 모은다”(p. 173).

물론 건강함에 대해 다소 심상하지만, 저마다의 이채로운 활기를 말하는 시인도 있다. “건강하지 않음을 밝힘으로써, 그것이 건강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p. 66) 알리기 위해 쓴다는 이소호는 언택트 시대에 혼자 노는 하루를 콘셉트 삼는다. 그는 기록하고 고백하는 게 불행을 예방한다고 밝힌다. “건강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p. 143)는 성다영이지만, 그가 건강한 이유는 동거견 오디 덕분이다. 하루에 두 번 산책을 하기에.

이렇듯 『나의 생활 건강』에서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시인들이 흥미로운 일상을 풀어놓는다. 이 생활과 건강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섬세한 안부가 될 것이다.

 


 

시인들이라 해서 특별한 코로나 팬데믹 극복 방법은 없다는 점은 확인됐다. 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확인된다. 또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겸허한 자세로 절제된 생활을 하는 점이 거의 대부분 우리와 같다. 다만 감정과 느낌을 글로, 시(詩)로 표현한다는 점이 우리와 다른 점일 뿐이다. 그 점은 독자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말할 수 없는 아우성이 나올 때 글로 표현하는 것도 자신을 더 단단히 하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점이다.

시인들은 감정 표현을 글로 한다. 격한 느낌을 시로 쓴다. 감출 수 없는 희로애락을 자신을 위해서는 절제하고 남을 위해서는 더할 수 없는 날카로운 칼도 휘두른다. 그래서 그들은 시인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사는 생활인이다. 그리고도 남을 위해서는 사력을 다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려운 시대의 시인이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물리적인 이동 없이 갈 수 있다. 활자를 읽고 쓰는 순간, 그걸 읽고 쓰는 나는 쉽게 이동할 수 있다. 마시는 것은 뭐 마셔보면 알 것이다. 중력이 사라지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김복희)

거울 앞에 서면 알게 된다. 나를 사람 구실하게 만들어준 멀쩡한 육체는, 타인의 정성과 수고가 만든 것이다!(유계영)

끝이 있다는 느낌, 막다른 벽에 부딪힐 거라는 느낌은 좋다. 그 또한 나의 생활이고 나의 건강이다. 끝이 있다는 감각은 건강하다. 테두리에 대한 감각도 건강하다. 테두리 혹은 사방의 벽을 감각하며 가방을 걸어서 여행을 가지 않기.(김유림)

‘참으면 병이 된다’는 말씀을 지키지 않고, 나는 병이 되기 전에 꼭 어딘가에 쓰고 남겼다. 영원히 박제된다는 생각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아픔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이소호)

이 사랑이 나의 살과 기립근을 이뤄 날 일으키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을 때에도 아주 혼자는 아니게 한다는 것. 그러므로 아주 먼 길을 걷는 데에도 끄떡없게 한다는 것을, 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랑이, 나의 생활과 건강을.(손유미)

 


 

우리는 다름으로부터 타협을 배울 수 있다. 퍼즐을 맞추어가듯이. 각자 좋은 거 하면서 살면 된다. 만약 좋아하는 게 같다면? 호들갑 떨면서 같이 좋아하면 된다.(강혜빈)

나는 침대에 누웠을 때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아주 간단하게 생긴 모빌을 달아놓고, 내가 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나는 거의 죽어 있지만 나의 방은 건강히 살아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박세미)

혼자 산책을 하면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는데, 오디와 산책하면 오디의 기분에 집중하게 되면서 생각이 사라지곤 한다. 가끔씩 오디를 보면 내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성다영)

일상에서 작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며 살고 싶다. 그것들엔 돈이 들지 않으니까. 아니, 값을 매길 수 없으니까.(주민현)

볼수록 짙어지는 밤을 보면서, 블랙을 몇 번 발음했다. 이상하지, 블랙이 눈에 보이는 게. 밤이 보이고 교통신호가 보인다. 눈을 깜빡였다. 내 몸이 몹시 하얗게 느껴졌다. 내 몸이 몹시 하얗다.(윤유나)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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