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홈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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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받을지 몰랐다. 한참 SF판타지 소설에 관심을 가진 지 6개월 조금 지났는데 재미 있게 읽으려고 선택(제목만 보고 미국내 한인들의 이야기로 알았음)한 소설에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만약, 당신은 과거로 돌아간다면 독립운동을 하시겠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약간의 뜸을 들인 후 겨우 소리내 말한 답이 "선택이 없는 질문이라면... 생각 좀 해봐야겠네요."다.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없다. 독자가 어떤 상황에 있을 줄 모르는데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바짝 긴장이 되고 소설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도입부, 긴장감은 별로 없었지만 갑자기 작중 인물끼리 대화하는 도중 위의 질문을 한다.

허름한 선술집에 마주 앉은 낯선 중년 남성의 질문이 터지자 작중 주인공은 물론 읽는 독자도 숨이 턱하니 막히는 기분이다. 그것도 일왕을 죽이겠다고 호언했다니...

그러나 주인공은 분위기에 눌려 평소 기질대로 얼버무리며 가까스로 입을 연다.

"아닙니다. 독립운동하겠습니다. 독립운동... 해야지요."

주인공은 이름이 필립(친절하게 한자풀이까지 해준다)이다. 반드시 필(必), 설 립(立). 외국이름인데 한글로 옮겨 한자로 풀어보니 좋은 이름이어서 '픽' 웃음도 나온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드님의 함자가 '안필립'이라고 들었는데... 대한민국이라고 거창하게 나라 운운하며 독립운동, 일왕 암살 등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이곳은 어디이고, 시기는 언제인가. 서서히 긴장 속으로 들어간다.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 없으며, 역사는 끊임없이 돌고 돈다. 『고잉홈』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는 역사 판타지 소설이다. 독립운동가 이봉창 의사를 모티브로 1931년의 한국 역사가 재구성되어 흥미롭게 펼쳐진다. 타임슬립 판타지에 두 남녀의 로맨스가 가미된 에피소드들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강력한 흡인력이 있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숨죽이고 읽을 수 있다.

주인공 필립은 꿈인 줄 알았다. 보이는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만나게 된 낯익은 중년남성은 필립에게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1931년에 과거로 오게 된 정치부 기자인 필립과 낯선 공간 생경한 모습에 당황한 간호사 정림. 과거에서 만난 두 남녀 스마트폰이 전혀 연결이 안 되다가 이상한 것은 스마트폰이 정림과 함께 있을 때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필립과 동규 그리고 정림의 만남. 동규는 필립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며 칠가살(七可殺)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처결해야 할 7가지 매국 행위자를 죽여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첫 번째는 적의 우두머리요, 두 번째는 나라를 판 매국노, 세 번째는 형사나 고등 정탐자로 독립운동 기밀을 밀고하거나 체포하는데 동조한 일제 앞잡이요, 네 번째는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적의 군인과 경찰의 보호를 받거나, 적국으로 도주하건, 독립 자금 헌납을 권유하는 자를 밀고한 친일 부호, 다섯 번째는 적의 관리나 수하가 되어 독립운동을 훼방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저하하는 자요, 여섯 번째는 근거 없는 소문과 헛소문으로 독립 운동을 방해하고 민심을 현혹 하는 불량배요, 일곱 번째는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기를 맹세한 동지가 중도에 변절하여, 반대로 민족진영에 해를 끼친 모반자요.(P. 51~52)

밀정이 얼마나 나쁘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했는지 영화 「밀정」을 통해서도 본 바 있다. 마땅히 척결 대상자이다.

 


 

이 대목에서 1970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이 생각난다. 당시 김지하 시인은 나라 망치는 다섯 종류의 고위급과 부자들을 오적(五賊)으로 간주하고 풍자 비판했다. 1905년 을사조약 때 나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비유한 작품이다. 김지하는 1970년대에 여러 편의 담시를 창작했는데, 「오적(五賊)」은 그 첫 번째 발표작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개발독재 과정에서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대표적 인물형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비판한 정치시이자 풍자시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오적’의 구체적 정체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다. 김지하는 이들 다섯 인물 유형의 한자 표기를 ‘개견(犬)’자(字)가 들어가는 새로운 조어로 표기함으로써 그들을 동물화했다. 이 시의 구체적인 배경은 6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인데, 시인은 국민들 대다수가 가난하게 살고 있음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이들 ‘오적’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 비판하기 위해 이 시를 썼다.

특히 이 시에는 ‘오적’ 이외에도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임무를 맡은 포도대장이 등장한다. 경찰이나 사법당국을 상징하는 포도대장은, 그러나 시에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오적에게 매수되어 죄 없는 국민들을 투옥하는 권력의 앞잡이로 등장한다. 결국 포도대장은 날벼락을 맞고 갑작스럽게 죽는데, 이는 고전소설의 권선징악을 차용하여 경찰과 사법당국을 비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김지하의 이 작품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사상계》는 폐간되었고, 작가와 편집인 등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오적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현대문학, 2013. 11.]

 


 

한편 사진사 서해원은 필립에게 시간 여행을 온 게 당신의 선택이듯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도 당신의 몫이라고 말하고, 중년 남자는 세 가지 임무를 주면서 임무를 완수하면 돌아갈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그 첫번째 임무로 독립운동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일제에 빼돌린 밀정을 찾아 처단하라고 말한다. 임무를 하나씩 완수해 나가는 과정과 일왕 처단이라는 거사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일왕이 관병식에 참석할지 모른다는 소식과 함께 관병식 초대권을 운좋게 얻은 필립은 드디어 일왕을 처단할 기회를 잡게 된다. 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기회에 빼앗긴 나라를 위해 목숨과 가족 등 모든 것을 바친 순국선열 및 독립지사 등 독립운동 애국자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끝없는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과연 필립과 정림은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에 실감이 간다. 독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하고 싶은 일을 그 당시로 돌아갈 수 없으니 소설 공간으로 자신을 데려가 멋지게 독립운동하는 모습을 연출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가들은 종종 현실에서 하지 못할 일을 소설 공간으로 자신을 끌고 가 어려운 일을 해냄으로써 카타르시스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서 추측해 본 것이다. 자료 조사와 충분한 취재를 거쳐 소설을 완성한 느낌이 곳곳에 강하게 배어 있다. 또 일부는 저자 자신의 대역이 현재에는 별 주목 받지 못한 상태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라와 사회를 위해 뜻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무의식의 발로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실제로 이 소설 속 현재 주인공은 한심하게 묘사되고 있음을 독자는 주목한다.

 


 

"이봐, 알베르토. 당신이 말한 대한민국, 이 조그마한 나라가 훗날 세계인의 선망받는 나라가 될 테니 똑똑히 두고 봐. IT 강국이란 타이틀도 모자라 문화강국이 될 거거든. 우월한 나라의 국민이라 자부하는 당신이 머지않아 한국 전자제품을 사고, 한국 아이돌 가수가 빌보드차트 1위를 하고, 한국 영화가 오스카상을 휩쓸고, 세계를 대공항으로 빠뜨린 바이러스도 가장 먼저 물리치는 나라가 될 거거든."

- 「아무도 믿어선 안 돼」 중에서

 

저자 : 김정금

 

어릴 적부터 소설가를 꿈꿔왔지만, 삶에 쫓겨 꿈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 속에도 항상 가슴속엔 언젠가는 이룰 꿈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 2014년 봄, 이제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왔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아무도 읽지 않는 습작을 혼자서 묵묵히 써오다 2021년 봄, 마침내 꿈을 이뤘다.

장편소설 『고잉홈』은 2018년 봄, 문득 ‘과거로 간다면’을 상상하며 시작됐다. 어느 시대로 떠나볼까 하고 A4용지에 조선왕조실록부터 1945년까지 연도별로 사건을 정리해서 들여다봤다. 그중 1931년 9월부터 1932년 4월 사이에 적혀있는 일들이 운명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역사에 ‘역’ 자도 모르는 내가 소설을 쓰기 위해 역사를 공부했다. 공부할수록 역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만약 과거로 간다면, 당신은 독립운동을 하시겠습니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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