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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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개는 늠름한 자세로 수하 개들을 향해 엄한 표정을 짓는 뒤를 돌아보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개의 모습은 우리가 얼핏 본 모습과는 다르다. 슬퍼 보이기도 하고, 허무한 눈빛이기도 하다. 많은 사연을 가진 인간을로 보면 한많은 생을 되돌아보는 노인의 모습과 닮았다.

독자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아 개들의 모습에서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개를 그린 사람은 인간이고 어떤 모습을 그렸는지 파악할 수만 있다면 지금 표지의 개가 투견도 아니고, 방안에서 키우는 애완견 수준은 아니다. 자세는 늠름해 보이지만 뒤돌아보는 표정엔 회한과 수심이 가득차 있다. 이 책 『소년과 개』의 저자가 작품 안에서 보여주는 주인공 개 '다몬'의 모습은 결코 생기발랄한, 사랑 받는 모습은 아니다.

저자는 책 맨 앞에 「한국어 출간을 축하하며」라는 발문을 통해 자신의 오만했던 삶을 반성하면서 자신과 개와의 인연, 개의 은유성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개는 우리에게 늘 가르쳐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인간적인 계산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영혼과 영혼의 소통이야말로 인류라는 어리석은 종을 구원해 줄것이라고." 밝힌다.

 


 

저자의 이력이 다채롭다. 필명이지만 이름 역시 특이하다. 원래의 이름(반도 토시히토)이 아닌 필명이 홍콩 영화스타 주성치의 이름을 거꾸로 쓴 하세 세이슈(馳星周)이다. 좋아해서 그렇다고. 일본 문단에선 '괴짜'로 통한다고 한다. 대학 문리학부를 졸업했지만 바텐더로 일하면서 작가들과 교류하다가 편집자, 서평가로 활동도 했다. 주로 뒷골목의 잔혹함을 그린 하드보일드 누아르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자신의 경험이 한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죽음을 앞둔 반려견을 위해 도쿄 생활을 접고 시골로 이사를 하며 두 마리의 애견과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개를 위한 헌사 같은 책이 된다.

옴니버스 형태로 소설이 진행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저자에겐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사람과 개와 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암흑가를 무대로 폭력과 배신이 난무하는 소설을 여러 작품 썼다. 그 때문인지 개에 대한 소설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부정기적으로 문예지 이곳 저곳에 형편대로 게재했다.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일본 문단에선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 책으로 저자에게 그 유명한 '나오키 상'을 수여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개를 무척 좋아했나보다.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인생도 바뀐 것이다. 이사할 때도, 수상할 때도..

 


 

이 소설은 지진과 쓰나미로 파괴되어 버린 도시에서 살아가는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거리는 아직 회복되지 못했고 일자리마저 없는 상황. 우연히 편의점 앞에서 만난 개의 목줄에는 '다몬'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아마도 대참사 때 주인을 잃고 떠도는 길개인 듯 싶다.

남자는 다몬을 데리고 치매인 엄마와 엄마를 돌보는 누나에게로 향한다. 오래 전 길렀던 개를 떠올린 엄마는 활기를 찾았고 남자는 그런 가족을 위해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므로.

수상한 남자 무리들이 도시를 약탈하고 그들의 도주를 돕는 일을 하게 된 남자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남자 무리 중의 한 명인 미겔이 다몬을 거두게 된다. 어려서 빈민굴에서 태어나 자란 미겔은 '쇼군'이라는 개를 키웠던 적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누나는 몸을 팔았고 미겔은 소매치기와 절도를 저지르곤 했다.

 

“미겔에게 쇼군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고독을 치유해 주고 지루한 나날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쇼군은 가족과 마찬가지였다. 쇼군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 「도둑과 개」 중에서

 


 

그러다 만난 다몬에게서 쇼군의 기억을 더듬는다. 하지만 미겔 역시 다몬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다몬은 다시 등산을 하던 남자에게 발견되어 그의 집으로 향한다. 사랑했지만 무능한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그의 아내. 착하지만 집안 일에 무심한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는 어릴 적 할아버지가 키웠던 개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몬에게 그 개의 이름을 붙여준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 나름대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다몬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부부의 모습에서 이미 파경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부부도 다몬과 함께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할아버지. 이미 췌장암 말기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마치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싶어온 개라고 생각했다. 앞서 간 아내를 만나기 위해 항암치료를 포기했다.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아니었던, 언제나 산에서 사냥감을 쫓던 늙은 사냥꾼 야이치. 아내를 췌장암으로 잃고, 마지막 사냥개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을 받아들이는 야이치의 앞에 다몬이 나타나는데. 외로움은 익숙해지는 게 아닌 버티는 것임을 깨달은 그는 다몬이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주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을 직감하는데…….

- 「노인과 개」 중에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묘하게 다몬을 만나는 사람마다 죽음을 맞는다. 마치 잘 가라는 인사를 하려고 찾아든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에 만난 가족에게서 오랜 전 다몬과의 인연이 밝혀진다. 다몬이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에 만났던 아이. 그 아이와의 해후를 위해 늘 그렇게 어디론가 향했던 것일까.

앞에서 저자 자신이 개를 키우면서 오만했던 삶을 바꾸게 되었다고 고백한 것처럼 개에 대한 사랑은 지고지순이다.

"한없이 어리석어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인간을 위해 신이 내려 준 선물이 바로 개다."

다몬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에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아픔들을 독자들은 만날 수 있다. 저자는 개를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개를 의인화하는 흔한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전지적 시점의 기법을 택하고 있다. 객관적인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누군가 동물은 영혼이 없다고 했다지만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눈은 누구보다 밝다고 저자는 믿고 있는 듯하다.

 

5년 전 동일본대지진으로 집과 배를 모두 잃고 내륙으로 이사한 가족. 그날의 트라우마로 말도 웃음도 모두 잃은 아들 히카루를 보살피던 부부 앞에 나타난 개, 다몬. 우연한 만남인 줄 알았으나 마침내 밝혀진 엄청난 진실에, 부부는 놀라고 마는데. 말과 웃음을 잃어버린 소년 히카루와 다몬은 과연 어떤 인연이었을까?

- 「소년과 개」 중에서

 


 

저자 : 하세 세이슈

 

1965년 홋카이도 우라카와 초(浦河町) 태생. 홋카이도 도마코마이 히가시 고등학교, 요코하마 시립 대학 문리학부 졸업. 본명은 반도 토시히토(坂東齡人). 펜네임인 하세 세이슈는 좋아하는 홍콩 영화스타 주성치의 이름을 거꾸로 읽은 것이다. 대학 시절, 나이토 란(內藤陳. 코미디언.배우.서평가)이 경영하는 신주쿠 골든 가의 바 ‘심야 플러스’에서 바텐더로 아르바이트 하면서 작가들과 접한다. 이후, 편집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다가 1996년 『불야성』으로 소설가로 데뷔하였다.

데뷔작인 『불야성』으로 1996년 제1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과 제15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일본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16회 나오키 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후 『야광충夜光?』(120회), 『M』(122회), 『생탄제生誕祭』(130회), 『약속의 땅에서約束の地で』(138회) 등으로 수차례 나오키 상 후보에 올랐으며, 『진혼가?魂歌 - 불야성Ⅱ』로 1998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장편부문 수상, 1999년에는 『표류가漂流街』로 제1회 오야부 하루히코 상을 수상하였다. 세계 각국의 암흑사회를 살아가는 아시아인을 주인공으로 한 범죄 소설을 주로 쓰면서, 주인공을 비롯한 뒷세계의 주민에 의한 사기와 모략전을 스토리의 주요 축으로 삼았다. 또한, 인간 안에 잠재된 콤플렉스라든가 성 충동, 폭력성, 무대가 되는 시대나 나라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병리를 묘사하는 점도 특징이다.

반도 토시히토 명의로 『책의 잡지本の?誌』 등에 추리소설, 모험소설을 중심으로 문예활동가로 활동한 적이 있다. 존경하는 작가로 야마다 후타로, 오야부 하루히코를 언급한 적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제임스 엘로이의 『화이트 재즈』. 잡지 『플레이보이』에 시가 코너를 연재하던 무렵 시가광임을 고백하며 스스로를 ‘시가 바보’라 칭했다. 애견 마지를 위해 카루이자와에 별장을 구입하였고, 마지가 죽은 후에는 카루이자와로 주거지를 옮기고 블로그(http://www.hase-seisyu.com/)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로 인터넷에 투고도 하며, 펑크록과 축구 광팬이기도 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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