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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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프로' 작가의 글은 다르다. 이 소설을 읽고 느낀 독자의 감정은 부러운 글솜씨다. 사실 권여선 작가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 무거운 주제다. 더욱이 과거 힘들고 괴로운 기억들을 무거운 글과 어두운 분위기의 언어가 아닌 우리 시대 오늘의 언어로 형상화해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하고 감동 받을 수 있는 글로 만든 것은 역시 '프로'답다고 느낀다.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다. 밝고 명랑한 미래를 위한 힘 있는 성장소설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과거를 오늘에 되살리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가장 객관적으로 환부를 들여다보고 소설을 읽음으로써 치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프로'다. 그렇다고 다른 작가들이 쓴 글이 '프로'답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혹시 오해할까 조심스럽게 사족을 붙인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토우의 집』은 권여선 소설가가 이룬 가장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장독 뒤에 숨어서’라는 제목으로 계간 『자음과모음』을 통해 2014년 봄부터 가을까지 연재된 작품으로, 우리가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고통과 상실의 현장을 다루고 있다.

『토우의 집』의 주 배경은 큰 길 곁으로 골목마다 채국채국 집을 지어 머리를 치켜든 다족류 벌레처럼 보이는 삼벌레고개이다. 소설은 ‘어린아이들의 눈을 통해’ 이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에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펼쳐낸다. 주인공 ‘안 원’에게는 언니 ‘영’과 동생 ‘희’가 있다. 이 세 자매는 주인집에 세들어 살고 있으며, 주인집 아들 ‘은철’과 마을의 비밀을 조사하는 스파이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원이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남긴 채, 세 아이들의 이름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인혁당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토우가 되어 묻힌’ 사람들의 자리, ‘토우의 집’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 “누구나 그것을 상실하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뭔가가 있는데,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들이 겪는 상처에는 무한한 사과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마음이 집필 동기가 됐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삼벌레고개 어린 스파이들의 긴긴 성장통과 함께 써내려간, 고통에 관한 고백이다.

 

 

산꼭대기에 바위 세 덩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 ‘삼악산’이다. 그 남쪽 면은 경사도 완만하고 바위도 적어서 산복도로를 냈다. 그리고 애벌레처럼 그 도로 옆으로 집들을 지었다. 우물집 둘째아들인 은철이네 집에 새댁네 식구가 이사를 온다. 새댁네 가족은 ‘안 영’ ‘안 원’ 두 딸까지 넷이다.

‘은철’과 새댁의 둘째딸 ‘영’의 직업은 ‘스파이’. 마을 우물에 빠져 죽은 처녀들의 수가 왜 ‘구십삼’인지 밝혀내고, 벽돌을 갈아 만든 독약으로 누군가를 벌하기도 하며, ‘새댁’ 혹은 ‘누구 엄마’로 부르고 불리던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낸다. 하지만 ‘개발기술’과 ‘귀밝이술’의 발음이 똑같은데 어떻게 어른들은 그걸 구분해내는지, 어른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 투성이이다. 이 소설에는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가 많이 등장한다. 물론 조금만 나이 먹었다면 뜻은 대충 아는 우리말들이다. '토우'라는 우리 선조들이 빚어냈던 흙으로 만들어 구운 여러 형상물이다. 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토우(土偶)는 흙으로 만든 물상 또는 동물상(動物相). 장식적(裝飾的)인 용도(用途) 외(外)에도 풍요(?饒)와 다산(多産)을 기원(祈願)하는 주술적(呪術的)인 의미(意味)도 지닌 것으로 풀이돼 있다. 토우는 단어 자체도 한자어지만 굳이 우리말을 찾아 쓰지 않아도 뜻을 다 아는 고유어화돼 있다. 토우로 형상화된 사람들은 지난 역사에서 피해자가 된 많은 사람들, 민초들을 의미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된다.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 (「작가의 말」 중에서)

 

 

이처럼 저자는 그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성장통에 담아 오늘의 우리 시대에 토우로 형상화시켜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위한 행동들의 장당화를 추구한다.

마을 사람들의 고민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고, 다른 듯하지만 비슷하다. 커가는 아이들, 남편의 월급, 새로 이사 온 새댁의 가족사 등. 마을 여인들의 하루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가 인생의 큰 고비가 되었다가 운수패를 두고 나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는 남자들이 한 명씩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번번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삼벌레고개는 작게 진동한다.

원이네는 막내딸 ‘희’가 태어나면서 다섯 가족이 된다. 딸들의 이름을 이어붙이면 ‘영원희’. 하지만 가족의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김밥을 몇 줄 살뜰히 챙겨 산에 오르려던 어느 날, 덕규는 처음 보는 사내들의 부름을 받고 따라가 원이가 교복 입을 나이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시종일관 큰 요동 없이 차분하게 진행되는 이 소설은, 삼벌레고개 마을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 아래를 고요히 흐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위태롭다. 밥을 먹는 것, 학교를 가고 출근을 하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 내부의 균열과도 같은 고통을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덕규가 양복 입은 사내를 따라간 것처럼.

 

 

저자는 이 소설로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김동리를 기념하기 위한 상, 동리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욕심 없이 평온하게 이어가는 우리 선조들의 삶(이 작품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정도)이 '가장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순수한 심정, 같이 어울려 사는 삶을 바라는 한국적인 삶을 우리의 언어로 빚어냈기에 수여된 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故) 김동리 선생의 작품 세계와 잘 맞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장독 뒤에 숨어서’라는 제목으로 계간 <자음과 모음>을 통해 2014년 봄부터 가을까지 연재된 작품으로 고통과 상실의 현장을 다루고 있다. 토우의 집 배경은 삼악동이다. 삼악산 남쪽 면을 복개해 산복도로를 만들면서 생겨난 동네였다. 큰 길 곁으로 골목마다 채국채국 집을 지어 머리를 치켜든 다족류 벌레처럼 보인다고 해서 삼벌레 고개라고 불린다.

소설은 1970년대 일곱 살 동갑내기인 은철과 원의 시선을 통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펼쳐낸다. 김순분이 주인인 우물집엔 네 가구가 살았는데 도합 열세 식구나 되었다. 어느 날 새댁과 남편, 딸 둘(영과원)이 이사를 오게 되었다. 새댁은 펜에 펜촉을 끼워 남성적인 글씨체로 한문을 휘갈기는 걸 보고 복덕방장이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쏟아놓는다. 순분네 아들 금철은 동생 귀에 껌을 구겨 넣는 장난을 하고 병원에 다녀 온 뒤로 매타작은 종적을 감추었다.

 

 

 

역사의 아픈 기억 속에서 우리는 성장해 나간다. 이 책에 나오는 유신정권은 1972년도 유신헌법이 발효되면서 출범한 정권이다. 실질적인 영구 집권을 목표로 발효된 유신헌법에 격렬한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하였지만, 결국 많은 희생을 냈고, 몇 년 뒤 유신 체제도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유신 체제를 지탱하기 위한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붙잡아 가두고 심지어는 사형으로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입을 막으려 했다. 정부의 눈밖에 날 경우 죄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뒤집어씌울 때다. 이 중 한 사건이 소위 '인혁당 사건'이다.

인민혁명당 사건을 말한다. 유신정권 당시 정치권력에 종속된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불법이 낳은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으로, 시기에 따라 1차 인혁당 사건(1964년)과 2차 인혁당 사건(1974년)으로 구분된다. 1974년 4월,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수사하면서 이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을 말한다. 중앙정보부는 1974년 4월 25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도예종 등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국방부는 판결 18시간 만에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 소설은 ‘토우가 되어 묻힌’ 사람들의 자리, 역사적 비극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 긴긴 성장통과 함께 써내려간 고통에 관한 고백이다. 직접 책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고통'의 본질은 '인혁당 사건'에 있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그 시절 암울한 분위기의 사회와 그 속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낸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 그려져 토우의 집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토우의 집은 깜깜한 무덤

 

저자 : 귄여선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상처와 일상의 균열을 해부하는 개성있는 작품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2007년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도 제3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사랑을 믿다'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감정과 그 기복을 두 겹의 이야기 속에 감추어 묘사하여 호평을 얻었다. 저서로는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안녕 주정뱅이』, 『아직 멀었다는 말』,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 『레몬』, 산문집 『오늘 뭐 먹지?』가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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