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헨
임야비 지음 / 델피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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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단순하지만 이 소설은 독자를 무척 당황하게 한다. 저자가 의학을 전공한 덕분인지 생물의 진화, 멸종은 물론 생태계와 돌연변이 등 과학이나 의학에서나 등장하는 용어가 버젓이, 수시로 나온다. 자칫 과학 용어을 보면 머리 아픈 감성적 독자들이나 시대 정신이나 사회 부조리 등에 관심이 큰 독자들은 몇 페이지 안 읽고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또 소설로는 적잖은 분량에 전문용어뿐만 아니라 보고서, 젼문 연구서 같은 수많은 분량의 문서 내용이 활자체를 달리하거나 박스로 처리되기도 한다. 비리 연구기관에 대한 수사관으로서의 경험 없이는 읽기 어려운 내용들도 가득 들어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읽기를 거부하거나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거침없이 써내려감으로써 소설의 전부를 이해하고 즐겁게 읽을 독자가 한 명도 없다하더라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작가처럼 끝까지 끌고가는 저력을 보인다.



주제에 알맞은 것은 세상 모든 작가나 화가, 음악가 등도 거침없이 소환한다. 이뿐만 아니다. 소설 속에는 클래식 음악가나 그들이 쓴 곡명(曲名), 클래식 기법, 클래식음악 용어도 수시로 나오고 세계적 유명 화가와 작가를 넘나들며

독자의 이해를 요구한다. 희곡 형식으로 쓴 대본도 여러 번 모습을 보이며 '무식한' 독자는 읽지 않아도 좋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화가들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등장시켜 그들의 역할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연출가 솜씨도 뽐내고 있다. '클락헨'이라는 검은 암탉 한 마리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해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해박한 예술적 소양과 지식이 놀랍고 질투도 난다. 이렇게 이 '실험적 소설'은 묵직한 무게를 갖고 독자를 기다린다. 소설을 좋아하고 시대(코로나 팬데믹)를 진심으로 위하고 인간에게 동정심을 발휘할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소설 읽기는 필수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소설의 시작은 단순하다. 내용도 해독 불가능한 암호문으로 씌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철학, 신(神)을 섬기는 종교 소설도 아니다.

구체적 현상이나 원리를 밝히는 과학이라도 결국은 인간의 삶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대개의 작가들은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형상화시켜 표현해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것을 보람으로 삼는다. 전문 연구자의 연구 보고서나 그들의 연구 내용에 대해 토의하는 것을 직접 읽는 사람들은 전문가들이지 일반 독자는 그럴 필요도 없다. 왜 이렇게 어렵게 썼을까? 그것은 책을 읽기 전 독자의선입견에서 비롯됐음을 고백한다. 독자는 과학이나 수학 등 치밀함을 요하는 학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과학과 의학 등은 어렸을 때부터 이미 독자와 무관한 학문이었다. 그때는 그런 사실도 몰랐지만 결과가 그렇다.



작가가 의학이나 과학 지식이 해박한 것은 아마 그가 의학을 공부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의학도 과학과 맥락이 같은 학문이다. 과학을 하던 작가가 왜 소설을 썼을까. 그것은 작가의 영역이라 독자가 관여할 바도 못 되고; 오롯이 작품(소설)으로만 작가를 대해야 한다. 과학 지식이나 의학적 소양이 없는 독자의 선입견이 이 소설 읽기에 방해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읽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는 사실은 이 소설을 한참 읽은 후에 비로소 알게 됐다.

소설의 주제나 내용은 한마디로 인간의 멸종인가, 신(神)으로 진화하고 다른 종들이 지구에 살 것인가를 다룬다고 보면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

원인 불명의 팬데믹(PANDEMIC) 이후 유일하게 남겨진 책 『클락헨(CLOCK-HEN)』. 이 아름다운 미완성을 쓴 사람은 누구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쓴 것일까? 그리고 최후의 인간은 결국 신(神)이 되었을까? 이름이 불리지 않을 수수께끼의 저자는 영원히 읽히지 않을 책을 쓸쓸히 적어 내려간다.



암탉은 하루에 한 개의 달걀을 낳는다. 무정란은 숫처녀 암탉이 ‘매일’ 하는 ‘생리’다. 어떻게 닭이라는 조류는 매일 출산(유정란)과 생리(무정란)를 하게 되었을까? 4000년 전 인간의 가축이 되기 전에도 닭은 배란 주기가 하루인 조류였을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던 이 질문에 미래의 닭이 대답한다.

검은 돌연변이 닭, 클락헨(CLOCK-HEN). 클락헨이 낳은 달걀 껍질에는 산란일자 6자리가 또렷이 표기되어 있었다. 인간은 우연히 발견된 이 매력적인 돌연변이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닭은 진화의 보편 법칙인 ‘자연 선택’이 아닌 ‘인간 선택’을 받아 진화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관점에서 ‘적자(適者) 닭’은 고기와 달걀을 최대한 많이 얻으려는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클락헨은 욕망의 효율을 극대화해줄 닭이었다.

점점 출산율이 감소하는 인류와 거의 무한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닭. DNA 복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빠르게 도태 중인 생물이다. 그리고 클락헨의 출현으로 멸종과 번성의 그래프는 완전히 역전된다.



지금 지구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시대다. 코로나와 페스트 같은 위협은 의외로 눈에 보이는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다. 지구상 가장 위협적인 생태계 교란종은 다름 아닌 인류다. 모든 생물은 ‘자연 선택’을 받아 진화하지만, 가축인 닭은 ‘인간 선택’을 받는다. 닭은 4000년간 철저하게 인간의 욕심에 맞춰진 선택적 진화를 거듭했다. 품종 개량은 더 많은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 하는 닭의 욕망과 더 많은 달걀과 닭고기를 얻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맞아떨어지는 교차점에서 이뤄졌다. 만약 산란일자가 새겨진 달걀을 낳는 닭, 하루에 2개 이상의 알을 낳는 돌연변이 닭이 나타난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까? 소설에서 인간은 ‘자연 선택’이 아닌 ‘인간 선택’을 이용해 기존의 닭을 멸종시키고, 클락헨을 끊임없이 품종 개량한다.

너무 싸고 흔해서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고 있는 가축 ‘닭’과 ‘달걀’. 작가는 무리한 품종 개량으로 기형적 진화를 거듭해온 닭(클락헨)을 통해 욕망과 진화, 인류와 신을 새로운 각도로 재조명했다. 독자는 인문학과 예술의 절묘한 결합으로 담아낸 진화와 윤리의 진수를 맛볼 것이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4번 C# MINOR’,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백조의 노래’. 라벨의 피아노 연탄곡 ‘어미 거위’,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 바그너의 악극, 모차르트의 ‘레퀴엠’. 그리고 바흐의 ‘푸가의 기법’과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 여기에 반 고흐, 드 툴루즈-로트렉, 클림트, 하르트만, 에곤 실레 그리고 로댕.

작가들이 빠질 리 없다. 셰익스피어, 헤세, 버지니아 울프, T.S. 엘리엇, 도스토예프스키, 오스카 와일드, 카뮈, 샤를 페로, 오마르 하이염, 단테, 괴델, 들뢰즈, 보들레르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 앤, 피터, 리처드 그리고 저자. 소설 속의 네 명이 마지막 현악 사중주를 연주한다.

클락헨의 시대로 규정하고 작가는 독자가 없는 책을 쓰고 있다. 야심차게 소설, 희곡, 시, 수필의 형식으로 인류가 남긴 예술, 종교, 역사, 문학, 철학, 수학, 과학을 4성(聲) 푸가(FUGA)와 총체극으로 남겨놓는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에는 소설, 희곡, 시, 수필 등이 공존한다. 그 외에 칙릿, 로맨스, 동화, 음란물, 추리 등도 포함됐다. 문학 장르의 혼합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과 그림(전시회)의 구조를 텍스트화하는 시도도 접목했다. 저자 임야비는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한 편의 총체 예술을 구현한다. 독자들이 음악과 그림을 모르더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치밀한 설계로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서술 구조가 독특하다. 책은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이중 서술 구조다. 픽션의 자유로움을 한껏 활용한 『클락헨』은 다양한 즐거움과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피가 데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배꼽 아래가 살짝 아팠지만, 통증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간지러움이었다. 이 간지럼은 공명에 흔들리는 북 가죽처럼 내 몸 전체를 연주했고 먼지 낀 내 자궁을 스위트룸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설명 못 할 감정의 근원지는 내가 2살 때 작별한 난소였다. 처음 느껴본 이 어색한 달콤함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치마를 살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얼룩은 끈적끈적했지만 거의 티 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얼룩을 훔치고,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입술로 빨았다.(p.132)


“다리가 새로 생긴 것 같아.”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뒤뚱거렸지만, 그 흔들림에는 점점 고조되는 밝은 율동이 있었다. “잘됐네. 그 새로운 다리로 내일 당장 피터를 만나러 가.” A4 용지를 가방에 챙기며 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앤은 오늘 지시한 모든 것을 차질 없이 수행한 후 즉각 보고하라고 명했다. 마지막으로 전원주택으로 리허설 갈 때 제발 철 지난 옷 좀 입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아까 읽던 책의 결말은 뭐야?”

앤이 흰색 레이스 팬티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 내가 말을 끊었다. 지금 끊지 않으면 잔소리가 끝없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뻔하지. 둘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p.168)



로댕. 지옥의 문. 거대한 예술 작품의 고귀한 중력(重力)이 전시실 공간을 순식간에 뒤틀어 버렸다. 뇌세포들은 일체의 장력(張力)을 상실한 채 작품 쪽으로 쏠렸다. 과하게 쏠려버린 뇌세포들은 두개골 안쪽에 둔중한 압력(壓力)을 가했다. 청동의 육중한 질량이 하찮은 것들에게 행사하는 강력한 인력(引力) 때문에 관람객 모두 지옥의 문 앞으로 좀비처럼 끌려왔고 이내 청동상처럼 굳어 버렸다.(p. 253)


자로 잰 듯한 간격을 두고 당당히 도열해 있는 옥수수들은 대나무처럼 꼿꼿했고, 놀라울 정도로 키가 똑같았다. 어찌나 단단하게 고정이 되어 있는지,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미동조차 없었다. 밭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옥수수의 고요함은 클락헨의 침묵과 닮아 있었다. 이 3m짜리 식물은 클락헨 사체가 묻힌 땅에 단단히 빨대를 꽂은 후, 그 즙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올려서 성장하는 듯했다. 탐욕스러운 GMO 옥수수는 침묵을 거름 삼아 더 큰 침묵을 맺어냈다. 이 식물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옥수수의 조상 테오신테(teosinte)는 알갱이가 10개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강아지풀이었다.

500개의 알갱이가 열리는 지금의 옥수수가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낯섦과 낯익음이 엉겼다. 머릿속에서 테오신테와 GMO 옥수수 그리고 닭과 클락헨이 2×2로 교차했다. 바로 그때 리처드 소장과 마주쳤다.(p. 309)



믿어줄 뇌가 없는데 신은 존재하는가? 리처드의 2×2표도 마지막 칸을 채울 수 없는 영원한 미완성이었다. 읽어줄 뇌가 없는데 언어가 존재하는가? 언어는 체계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을 구현한다. 신이 만든 세계 역시 한 권의 책이 되기 위해 존재했었다. 이 책을 완성된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게 참이라고 한들 누가 읽을 것인가? 읽어줄 주체가 없는 책은 완성될 수 없다.(p. 452)


수학. 가장 신에 가까운 체계였다. 진화와 확률 그리고 무한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신(神)은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무한의 구(救)다. 그 거대한 구의 곡률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한 적이 있다. ?(중략) 질식의 끝자락에서 의식이 혼미해질 때, 공간이 왜곡되면서 신의 곡률을 느꼈다. 부피는 순식간에 뭉그러지더니 한 점으로 수렴됐다. 괴사 직전에 허혈이 풀리면서, 점은 단번에 팽창해서 원래의 부피가 되었다. 신의 곡률이 다시 무한대가 되면서 세상이 현현(顯現)했다. 숨 가쁜 팽창 때문에 공간이 전율했는데, 그 떨림이 바로 음악이었다. 4가 모이자, 14가 노래했고, 42가 날아올랐다.(p.48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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