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
민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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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에세이(essay)는 중수필(formal essay), 미셀러니(miscellany)는 경수필(informal essay)이라 한다.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 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수필을 말하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의미의 수필을 말한다. 요즈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에세이로 불리우는 것 같다. 중수필의 부재 탓인지, 경수필의 확장 탓인지 모르지만.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 그 기원을 둔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 또는 '시험'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exiger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essai'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이다. 몽테뉴는 원래 법률을 전공한 법률가였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보르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는 법관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법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지신의 성(城)에 은거하여 사색과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이때 그는 유명한 『수상록(隨想錄)』을 저술하였는데, 바로 이 '수상록'이 불어로 'Les Essais'인 것이다. 그리고 이 'Les Essais'가 이 세상에 처음 나온 때는 1580년이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1597년에 를 초판 발행하는데, 이 후 1612년과 1625년에 각각 수필 작품들을 추가로 수록하여 발행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10편이었던 수필 작품수가 1625년에는 다시 배 이상으로 늘어난 58편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추고(推敲)도 거듭하였다. 베이컨의 에세이는 중수필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사전 분류에 따른다면 이 책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는 미셀러니에 속할 터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떠나 수필의 의미는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다. 좀 의역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의 마음에 얼마나 와 닿느냐는 것일 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잘 쓴 수필임에 틀림없다.

'잘 쓴 수필' 하면 20세기 세대는 피천득의 '인연'을 꼽는다. 아사코(일본 여성)에 대한 추억을 담담히 써내려가 독자들의 가슴속에 명작으로 남아 있으니. 이처럼 오늘날 에세이는 경중의 구별 없이 작가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을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모두 그렇다. 마음이 통한다면 무슨 내용을 담든 글은 매력적이고 궁극적으로 잘 쓴 수필로 남을 터이다.

이 책은 출판사 수필 공모에서 선정돼 출간된 책이다. 당시 심사위원은 심사평을 "우리 관용구 가운데 ‘한 방 먹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소 속된 표현으로 ‘말 따위로 상대방에게 충격을 주다.’라는 뜻이다. 이 관용구에 나오는 ‘한 방’이라는 낱말을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에 끌어들이고 싶다. 여기의 ‘한 방’을 대체할 적절한 낱말이 안 떠오기 때문이다. 이 수필집 모든 작품에는 ‘한 방’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민혜 수필집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는 해드림출판사에서 수필집으로는 처음으로 공모를 통해 기획한 수필집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50여 권 분량의 작품이 들어왔는데, 민혜 수필가는 곧바로 응모를 하여, 다른 이의 작품보다 제일 먼저 읽게 되었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발굴’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어쩌면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될지 모른다는 예상을 하였다.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이 들어올까 싶을 만큼 공모 의도에 흡족하였기 때문이다. 응모한 작품을 모두 검토한 결과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민혜 수필가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고급스럽다. 사유와 표현력이 뛰어나고, 문장들을 맛깔스럽게 구사한다. 수필이 이처럼 멋진 문학이구나 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여담이지만 수필가로 등단한 작가의 수필집이 출간되면 몇 권이나 팔릴까는 독자로서도 당연한 의문이다. 비교적 오프라인 판매가 많다는 수필(에세이)은 여린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은 게 현실이다. 또 마음의 스트레스 등 상처를 입을 경우 읽으면 심리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힐링'으로서의 책이 많이 나와 있다.

20여 년 출판 관계 일을 한 분이 밝힌 바는 일반 독자가 구매하는 수필집은 1년 동안 채 열 권도 안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혹독한 현실이다. 수필이 얼마나 멋진 문학인지 보여주고 싶어 출판을 기획하고 공모를 통해 책을 펴냈다는 출판사의 고충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독자에게든 특별히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수필집이 필요하였다.

냉정한 독자의 시선과 마음을 유혹해 수필 독자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는 한 출판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책이다.





"삭막해져 가는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데는 수필만 한 문학이 없다는 생각이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독서’ 하면 수필이라는 신념에도 변함이 없다. 수필이 국민문학이 될 때 대한민국은 행복지수 1위 국가가 된다는 것을 자신한다.

『떠난 그대 서랍을 열고』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인연, 문단의 연륜이나 지위 등은 냉정하게 외면한 채 오로지 작품만 보았다. 따라서 이번 도전이, 독자들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며 수필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독자의 지성과 감성을 오지게 자극하며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살가운 동반자가 될 줄 안다."

판매를 자극하는 출판사 측의 말이라 감안해도 수필문학에 대한 자신감과 사명감, 그리고 우리 출판업계의 앞날에 희망적이라는 점에서 독자도 적극 공감한다.

가곡 ‘아마릴리’는 사랑을 호소하는 노래로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 마음속 소망의 여인이여…

내 가슴을 열면 심장에 쓰인 것을 볼 수 있으리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내 가슴이 작은 나뭇잎처럼 떨린다. 작곡자 카치니와 그 노래를 영원으로 승화시킨 베냐미노 질리에게 선망을 느끼며 나도 같은 호소를 올리려 한다.

“내 마음속 소망의 독자여, 벗이여, 제 책을 열면 제 심장에 쓰인 것을 볼 수 있어요. 저와 함께 웃고 울지 않으실래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살아온 흔적들을 돌아보며 새삼 울컥했다.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듯 작품에 투영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만나 함께 울고 웃는 시간들이었다.

삶이란 결국 저마다의 위치에서 웃고 우는 일이 아니던가. 눈물이란 슬퍼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감사해도 감격해도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나는 눈물이 난다.

출간 문제를 놓고 십여 년 넘는 세월을 고심했다. 작품은 넘치는데 갖은 이유들이 태클을 걸어왔다. 만인이 작가인, 수필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내 작품을 내놔야 하는 명분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나는 자기 글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약한 편이다.

이는 작가로서의 겸손일 수도 있고 보다 높은 고지에 닿고 싶은 갈망일 수도 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누군가 손 내밀며 출판해 주겠다면 모를까 자비출판은 안 하고 싶다는 거였다. 정 섭섭하면 몇 부만 인쇄해 자신에게 헌정할 생각이었다.

그럴 때, 그 절묘한 시점에, 제1회 기획수필집 원고 공모 메일이 날아왔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 낭보가 들려왔다.

그 소식에 십여 년 앓던 통증이 다 사라졌다. 이 출판사가 내겐 의사였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기회를 안겨준 것이다.

한 권의 수필집이 작가의 마음을 활자에 담아 오롯이 전해질 독자들에게 작가는 간절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나는 지금 알약을 손에 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나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유난했기에 왠지 남편의 혼백이 아직 내 곁을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들통 난 비밀에 민망해 할까 봐 보이지도 않는 그를 향해 짐짓 웃음을 보낸다. 내 마음을 못 읽을까 소리 내어 농도 건넨다.

“당신, 나한테 딱 걸렸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 놀랍거나 불쾌하진 않았거든. 되레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있지.

근데, 난 이 약의 용도가 날 의식한 건 아니었을 것 같네. 그건 육감이자 심증 같은 거지만 뭐, 그래도 상관은 없어.”

비아그라 두 알, 이 작은 알약이 주는 파장이 크다. 오만 상념의 발기가 도무지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일련의 음습하고 통속적 연상은 새털처럼 날아가는데 한 존재의 가슴에 드리웠을 내밀한 욕망과 외로움의 무게만은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색정이란 삶의 본령이자 에너지 같은 것, 그는 꺼져가는 자기 육신을 이 마법의 알약을 통해 되살리고 싶었던 걸까. 비아그라, 비아그라, 헌 물건 내줄 테니 새 물건 내어다오. 그런 주문이라도 토하며 자신의 남성성이 아직 살아 있음을 어떻게든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무릇 생명 지닌 존재는 그 생명성(生命性)으로 소멸의 과정이 이렇듯 애처로운가 보다.

그 욕망의 간절함과 순수함이라니, 대상이 누구이든 그게 무슨 대수랴.

서산에 어둑발이 내리고 있다. 그와 나는 한 지붕 아래의 작은 두 섬이었나보다. 이제 섬 하나는 사라졌다. 서산 너머,

자춤거리던 잔광마저 집어삼킨 아득한 몽리(夢裏)의 저편 세계로 그는 가버렸다. 남편의 영정 사진을 다시 가슴에 품는다. 명치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 「비아그라 두 알」 중에서





저자 : 민혜


서울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네 살 때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고,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년 대표로 교내 미술대회에 나가봤고, 교지에 내 작문도 실렸다. 4학년 때는 학교 합주부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며 클래식에 맛 들였다. 그 세계가 내 삶의 기저를 이룬 셈이라 전 생애를 그 안에서 헤엄치며 살아간다.

1992년 〈창작수필〉로 등단. 초기엔 〈한국 문학〉지를 비롯해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학의 현실 참여를 위해 1990년대엔 재소자들에게 편지쓰기 봉사를 했고, 1995년~2002년까지 신경정신과 환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인 ‘문예치료’ 담당자로 일했으며 디지털 조선일보에 〈힐링 에세이〉를 연재하기도 했다.

수상경력으론, 2013년 목포문학상 수필 본상 수상. 2014년, 2015년에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2회 수상. 2018년 〈가톨릭출판사〉 신앙서적 독후감 공모 우수상 수상. 2020년 월간 〈좋은 생각〉 문예공모 금상 수상. 2020년 〈해드림 출판사〉 제1회 기획 수필 원고 공모 당선. 저서로는 2002년에 개인 수필집 『장미와 미꾸라지』를 상재했고, 5인~12인이 함께한 공저 『꿈꾸는 역마살』 『내가 지나가는 소리』 『우리 기도할까요』 등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에세이스트 문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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