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 수용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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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들어온 자여, 희망은 버려라!


소설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악플러 수용소'에 갇힌 사람과 아무 것도 모르는 예비독자들에겐 강렬한 충격을 준다.

폐쇄 공간에서 희망을 버리란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전국 각지에서 남녀 열한 명이 동시에 증발하는 일이 생긴다. 약에서 깨어난 듯 의식을 차린 그들이 갇힌 곳은 ‘온라인 범죄행위자 교정수용소’, 곧 악플러 수용소다. 이곳에서는 토끼 마스크를 쓴 사내의 소름 끼치는 관리가 시작되고, 도망치려 했거나 수용소 규정에 반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은 여지없이 하나둘 죽음을 맞는다. 한편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주에 한 번씩 상호평가 댓글을 통해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조기 퇴소를 위한 게임을 시작한다.

조기 퇴소를 하는 족족 그들 앞에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사건들. 그리고 수용소 소장과 자살한 여배우와의 베일에 싸인 관계 등 독자를 사로잡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소설은 악플러들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독자들의 의문도 풀린다.

여배우의 비밀도 조금씩 밝혀지면서 독자에게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풀어간다. 저자는 이를 위해 재미와 복선으로 시선을 잡고, 반전 및 여운으로 감동을 준다.





악플에 시달리며 소중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악플’을 주제로 하는 모 방송프로그램의 MC로 등장해 담담하게 자신을 이야기했던 여배우이자 가수를 기억할 것이다. 또한 두 아이의 엄마로 화려하게 드라마에 복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던 국민 여배우도 생각날 것이다. 이 두 사람 말고도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져간 연예인과, 더 많은 수의 보통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 책에서 그들은 10대 학생, 20대 청년, 중년 여성ㆍ남성에 이르기까지 악플 이외에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자 우리 주변의 이웃이다.

작가는 이들의 민낯을 ‘수용소 수감’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사회적 심각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수용소 안에서는 복수성이 짙은 단순 ‘처벌’이 아닌, 피해자가 생전에 겪었던 용서와 응징 사이의 고뇌도 조명한다. 단순 고발성 풍자소설이 아니라 익플러에 대한 분명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그럴 수도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실 누군가는 손가락 하나로 한 생명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책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 저자는 2차세계대전 때 수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 아이히만의 예를 든다.

책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나는 잘못이 없다. 내 손으로 죽인 게 아니니까.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악플러 범죄자들을 가려내기 위해 네이버에서는 문장 맥락까지 고려해 모욕적인 표현을 가려내는 AI 클린봇을 구축했다. 이렇게 악성 댓글 노출을 막는 다양한 시도가 전개되는 가운데, 이 소설은 악플로 오염된 우리 사회를 정화시키는 하나의 촉매제로 자리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저자에 공감할 것이다. 가상 공간에 숨어서 연예인이나 공인에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비난하는 악플러들. 이들은 정보화 사회를 통과해 4차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사회의 그늘에서 댓글로 선량한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행위는 당연히 범죄행위임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변화하는 사회의 그늘을 지우는 법적 시스템을 미처 갖추지 못한 채 법은 악의 그늘에서 허우적대는 양상이다.





찰칵 찰칵 찰칵, 미친 듯이 눌러대는 셔터에 다소 까무잡잡하기로 소문난 유 대통령의 얼굴이 하얗게 분을 칠한 것처럼 번뜩였다.

환갑을 코앞에 둔 대통령은 백내장 초기에 노안까지 겹친 것치고는 제법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아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정면 카메라를 또렷이 응시했다.

찰칵 찰칵 찰칵….

“정부는 오늘 2024년 1월 1일 12시를 기점으로 인터넷 악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 p.16


“일찍 집에 가고 싶으신 분은 레드볼을 획득해야겠죠? 또 그러려면 함께 방을 쓰는 수감자들에게 상호평가에서 많은 공감지수를 얻으시면 되겠고요. 한마디로 추천수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이 해 안 되시는 분 계십니까? 없으시면….”

“저기요! 여기서 즉결처리라는 게 뭐죠?”

한 남자가 손을 들고 질문하자, 모여 앉은 죄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즈, 즉결 처리라는 게 뭔지 알고 싶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즉시 처리한다는 거죠. 그것은…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 pp.60~61





어떻게 촬영을 마쳤는지도 모른다. 눈부신 조명 앞에서 디렉터가 원하는 대로 또 그동안 몸이 기억하는 대로 포즈를 잡으며 촬영을 한 것이 무려 네 시간이었고, 입은 옷은 총 열아홉 벌이었다. 그러는 동안 딱히 특정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언제나 염두에는 오늘 뜬 기사에 달린 악플들이었다. 선배 연기자인 황민아는 아역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20년 차 배우였지만, 자신 역시 16살 때부터 연예계 물을 먹어 와서 십수 년 차인데 모를 리가 없다. 아까 본 악플들은 단지 자신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시기해서 단 게 아니라, 비난하기 위해 달았다는 것을.

- p.165


“악플 속에서 저는 창녀가 되었다가, 불효녀가 되었다가, 돈독에 오른 년이 되었다가, 가증스러운 광대가 되었다가,

관심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관종이 되기도 하죠.”

- p.311





“농담이고요. 사람들은 참 이상해요. 왜 별보다 별똥별을 좋아할까요? 평소에 머리 위에 별들이 저렇게 지천으로 빛나는데 거들떠도 안 봐요. 그런데 별똥별이 떨어진다 하면 그렇게들 좋아해요. 나쁘죠.”

“뭐가 나쁩니까.”

“그 별은 죽으러 가는데. 사람들은 왜 죽으러 가는 별한테 소원을 빌어요? 명복을 빌어야지.”

- pp.339~340


“저기요. 아저씨? 저 청소년이에요. 모르셨어요? 나 아직 생일 안 지났는데.”

- p.350


저자 : 고호


일꾼, 이야기꾼, 때로는 상상꾼.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재미없는 무역회사에서 밥벌이를 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자음과 모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평소 지론.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세계로는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와 『악플러 수용소』 등이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또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소설 일부 내용과 독자들의 이해를 위한 게재는 독자들 입장에서 쓴 것이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다음은 저자 입장에서 이 소설을 소개해 본다.

악플러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게 된 인기 여배우 고혜나가 자살하기 전까지의 고뇌가 고스란히 작가의 손을 거쳐 독자들에게 느껴진다.

고혜나가 악플로 인해 서서히 멘탈이 무너져내리고 결국 죽음으로 비극적 생을 마감한다. 그 과정을 피해자 입장에서 절실하고 고통스럽게 묘사한 저자의 고충도 읽힌다. 저자의 마음도 충분히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적가는 법에도 없는 '악플러 수용서'를 고안해 냈을까. 쉽게 쓰이지 않았을 작가의 열정에도 응원을 보낸다.

악플러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은 10대에서 50대까지 평범한 소시민들로 친근한 이면에 드러나게 되는 그들의 속마음이 여지없이 악플을 통해 표출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데 반성도 없이 당당한 모습에 더 화가 난다. 현실과 비슷해 더 공감할 수 있다.

악플러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남여 세 명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이제 남은 생존자들은 무직 박기성, 간호조무사 오수정, 사법고시 준비생 장민환, 전업주부 신영자, 인테리어 자영업자 김광덕, 중학생 윤설. 이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고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하는데 상호평가를 통해 박기성이 레드볼을 가장 먼저 취득하게 된다. 전자팔찌 30년 부착하는 조건으로 퇴소를 하지만 또 다시 악플로 인해 결국 전자팔찌가 폭발해 죽는다. 전자팔찌도 무시무시한 장치였구나... 저자의 철두철미한 구상에 박수가 나온다.





레드볼을 받게 된 수감자들은 조기 퇴소를 하지만 끔찍한 사건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더이상 레드볼은 구명볼이 아닌 시한폭탄으로 이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이 대목에선 작가는 왜 법적으로 구현되지 않을 이 같은 보복을 범죄자들에게 가하는가. 독자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 법전의 형벌제도 취지를 떠올린다. 공감하는 독자들은 법적 당위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한 법 체계가 문제라는 비난을 얹어 저자와 공감할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지, '죽어 마땅한 죄'라고 인식하고 고대법까지 소환하며 저자와 독자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가운데 수용소 소장과 자살한 여배우 고혜나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반전이다. 이야기가 재미를 더해준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악플러들. 평범한 이웃이었던 이들이 한 사람을 벼랑끝으로 몰아 결국 죽음을 선택하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으로 아직까지도 악플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악플러 수용소를 보면서 악플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음 좋겠다는 점을 독자들은 이제 확실하게 인지한다.

고혜나에 대한 악플을 보면서도 당사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충격은 보통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쉽게 지나칠 수 없을 정도란 생각이 비로소 들면서 악플로 인해 스러져간 많은 연예인들에게 미안한 느낌도 든다.

차제에 악플이 아닌 선플만 남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보며 읽은 잘 빚어진 도자기 한 점을 감상한 기분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에서 진행하는

체험단,리뷰단에서 제공 받아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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