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 또 쓴다 - 문학은 문학이다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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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말 중 '3다(多)'가 가장 수명이 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3다는 문학의 기본이자 필수다.

다사(多思), 다독(多讀), 다작(多作)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문학에 왕도는 없다는 말과 함께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위의 세 가지가 선행돼야 한다.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분들에겐 너무 진부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3다는 글 쓰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잘 쓰는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이 과정 없이 지금까지 글을 쓰는 분은 없을 터.

시인이고, 평생 글을 써온 이 책의 저자도 오랜 경험을 토대로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의 글은 글쓰기의 모범이라고 평가돼 지금의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실린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나는 그의 글을 교과서에서 본 적은 없지만...

이후 쓴 그의 글은 부드러운면서 날카롭다. 깊은 생각의 결과지만 경험이 바탕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교과서적이라 할 수 있다. 글의 교과서는 물론 없지만 그의 글 솜씨보다 그의 글에 대한 열정과 사유를 높이 샀을지도 모른다.





수필과 글쓰기, 삶과 세상,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박상률의 수필집 『쓴다,,, 또 쓴다』가 출간되었다.

수십 년간 독자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내용과 더불어 지난 몇 년간 신문, 잡지, 웹진, 페이스북 등에 쓴 글을 한데 묶었다.

한국 청소년문학의 시작점이라 불리는 소설 『봄바람』과 고등학교 국어와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 등 한국 문학을 선두에서 이끄는 작가로 손꼽히는 박상률이 삶 속에서 얻은 문학의 자양분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수필집이다.

때로는 무심하지만 다정하게, 때로는 우아하지만 날카롭게 펼쳐지는 문장 문장마다 저자의 자부심과 단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법이라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일수록 작가 자신을 이야기하는 글은 언제나 환영을 받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의 창작 과정과 숨은 뒷이야기,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삶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어떤 글은 문학, 어떤 글은 그의 ‘페르소나’ 진돗개, 또 어떤 글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이야기 등 삶의 다양한 단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가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자칫 평범하게 보여도 그 경험에서 그가 이끌어낸 사유는 깊이가 있으며 단단하다.

다채로운 삶의 면면들을 ‘척’하지 않고 힘을 뺀 소탈한 어휘로,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려낸 그의 글은 읽을수록, ‘수필도 이런 깊이를 지닐 수 있다니!’ 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역시 주축이 되는 것은 바로 ‘글쓰기’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박상률의 애정과 고민이 행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문학이 위기 아닌 적이 있었나? (중략)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문학만이 아니라 문학이 놓인 생태계 전체가 위기이다. 출판 환경의 변화, 독자의 호응도, 각종 시각 매체의 등장에 따라 문학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가 되어 있다. (P. 44)

그는 ‘독자를 따라다니거나’, ‘글을 쓰기 위해 어딘가로 가야 하고’, ‘어떤 시간에만 글을 쓰는’ 작가는 볼썽사납다고 이야기하며, ‘언제고, 어디에서고, 어디에라도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른다.

아울러 참된 작가란 ‘오로지 어떤 경우에도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그냥 쓰는 사람일 뿐’이라고 당부한다.

끊임없이 전국을 누비며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을 만나온 저자는 글이란 책상 앞에 쓰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몸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여러 고민과 어려움을 전해 듣고 따뜻하게 조언하며 열린 소통을 이어 왔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주는 무게감을 얻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펴내며 고민했을 시간들과 끝이 없는 사유의 과정까지 감내했을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함께하면 어떨까.




“‘쓴다,,, 또 쓴다’라니? 수필집 제목이 뭐 이래?”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수필이라면 붓 가는 대로 쉽게 써진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데 시든 소설이든 동화든 희곡이든 쉽게 써지는 것은 없다.

수필도 마찬가지! 어떤 장르의 글이든 쉽게 써지는 것은 없다. 쓰고, 또 쓰고, 계속 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날마다 써야 손에서 열기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늘 '써져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써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잠깐 쉬었다 또 쓰자는 의미로 마침표(.) 대신 쉼표(,)를 썼다. 나는 글둠벙이 있는 이야기밭 언저리에 산다, 고 말하길 좋아한다.

그곳에서 하루가 한평생이라 여기고,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끼며, 마냥 아득하고 먼 하늘을 가끔 쳐다보며, 쓴다,,, 또 쓴다~.




언어를 골라 다듬다 보면 시인의 생각이 언어에 실린다. 시인은 생각만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게 아니라 언어로 세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를 사랑한다는 건 은유의 힘을 믿는 것이며, 언어로써 세계를 되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가 기존의 질서에 변화를 준다는 얘기. 이게 시가 지닌 은유의 힘이다.

- p. 31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작가는? 작가는 독자를 탓하지도 않고 쓰는 도구를 탓하지도 말 일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맞는 독자가 있으면 그만이다. 또 작가는 언제고 어디에서고 어디에라도 쓰는 사람일 테다.

그런데 독자를 따라다니고, 글을 쓰기 위 해 어딘가로 가야 하고, 어떤 시간에만 글을 쓰고, 도구는 어 째야 한다면?

그런 작가는 볼썽사납다. 평생 글을 쓸 준비만 하다가 생을 마칠 각오가 아니라면 피할 일이다.

- p. 46




단풍철에 단풍을 보노라면 꽃이 생각난다. 화려했던 꽃하고는 다른 아름다움!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도 단풍은 아름답다.

도저히 같은 나무라고 여겨지지 않을, 나무의 변신. 잎도 꽃도 없이 다 떨군 모습으로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자 연초록 잎을 내밀고, 여름에 붉은 꽃을 피우더니, 가을이 되자 울긋불긋한 단풍잎을 가진, 나무의 변신.

이제 그마저 다 떨구고 겨울을 맞겠지. 단풍은 장엄한 저녁노을을 닮았다. 특히 바다 속에 집을 짓듯 바다 위로 저무는 석양.

아침이나 한낮의 태양이 흉내 낼 수 없는 저녁노을.

- p. 119




사는 일도 원고 마감과 같다고 생각한다. 마냥 천년만년, 아니, 영원히 산다면 우리 삶이 절실할까?

죽음이라는 생의 마감이 있기에 살아 있는 동안 다 아등바등하는 것 아닐까? 단지 죽음은 삶의 등에 얹혀서 숨어 있다. 아니, 그림자이다.

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딱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나 그걸 알고 있다. 그러나 평소엔 죽음을 의식하지 않기에 남의 일이다.

죽음이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땐 이미 그는 죽음을 어쩌지 못한다. 삶과 한통속인 죽음! 영원히 살 것처럼 굴지 말 일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선 삶 이후의 삶인 죽음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삶만큼이나 중요하다.

오늘도 원고 몇 개를 ‘절박하게’ 써서 마감한다. 아니, 내 삶의 ‘절박한’ 하루를 마감한다.

- p. 122




가짜, 이른바 ‘짝퉁’이 설친다. 짝퉁은 자기 일에 절대 목숨을 걸지 않는다.

남 보기엔 하찮은 일일지라도 어디에든 한번이라도 목숨을 걸어본 이는 안다.

사는 게 얼마나 엄숙한 일인지……. 또 한 사람의 부음을 들었다.

- p. 127

나는 ‘사랑을 사랑이라 하면 이미 끝난 사랑’이라고 여긴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

사랑이라는 말을 한 마디도 쓰지 않으면서 사랑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게 좋은 문학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결코 사랑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터이므로!

- p. 187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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