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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 -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 수업
신디 L. 스캐치 지음, 김내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품절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배신하는가』는 법이 해결할 수 없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 극복 대안으로 ‘시민력’을 제안한다. 저자 신디 L. 스캐치는 수십 년간 세계 각국의 헌법 초안과 개정에 참여해 왔다. 그는 법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고 시민을 법에 의존하게 만들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시민력'이란 단어를 발견하고 조금은 놀랐다. 왜냐하면 시민력이란 단어가 독저에게는 매우 낯설었기 때문이다. 낯선 정도보다는 몰랐다고 말하는 편이 정직한 표현에 가깝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은 정말 겨울날 한밤중 그야말로 '느닷없는' 일이었다. 21세기 중반 북한의 전쟁 도발을 제외한다면 비상계엄이 없을 대한민국 사회이고, 그럴 조짐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TV를 통해 대통령이 공식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 몇 개를 살펴봐도 '전쟁'이란 단어는 없었다. 이젠 정치를 좀 아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개 중 한 친구가 직접 받았다. 대뜸 왜 비상계엄이 선포됐는지 물었다. 그 친구도 이유는 모르지만 선포할 때 반국가 세력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미루어 전쟁이 아니라 국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일인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지금은 탄핵되고 내란 혐의 등으로 형사재판 중이지만 대통령이든 윤석열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가 지난 8개월 간 각종 조사와 재판 등을 통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특검이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위엄은 차치하고 수치를 모르는 듯하다. 구속과 구속 취소, 재구속 등 우여곡절 끝에 수감된 채 수사를 받고 있다. 오늘(8월 7일)도 특검이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구치소에 있는 피의자 윤석열을 인치하려 했으나 사력을 다해 버티는 피의자 인치에 실패했다. 엊그제 속옷차림으로 완강히 버틴 일은 국격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다는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의 비난에도 그는 '건강'을 이유로 버티고 있다.
아무리 전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오늘날 선진국이란 위치에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괴감은 둘째 치고라도 국격의 품위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마땅히 알아야 할 전 대통령은 이마저 묵살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계엄령 선포 이후의 정국은 아직도 후유증을 걷어내지 못하고 세계인들에 앞에서 벌거벗고 서 있는 느낌이다.

이 책은 〈한국어판 서문〉을 책의 앞에 별도로 게재하고 있다. "2024년 어느 날 밤 느닷없이 계엄령이 선포됐다. 지금은 탄핵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조치였다. 이 탄핵은 한국에서 10년 안에 발생한 두 번째 탄핵이다. 계엄령과 탄핵 등 그토록 짧은 기간에 집중된 여러 극적인 정치적 사건들은 집합적으로, 국민적 정신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대중이 가지는 회의감은 오늘날 정치와 법적 제도의 신뢰성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법치와 헌정 책임, 민주주의적 통치의 건전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최근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중앙정부(37%)보다 타인들(53%)에게 더 큰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들은 자신들, 즉 데모스(고대 그리스어로 '민중' 또는 '시민 전체'를 뜻하며, 민주주의의 어원-옮긴이)에 대한 책임감을 토대로 지도되고 통치되고 있는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던 시스템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품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찌할 것인가.(p.4~5)
이 책이 처음 영어로 출간된 것은 2024년이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유감스럽게도 이 책의 서문에 쓴 이야기와 아주 잘 들어맞는다. 서문에 따르면 지난 수 세기 동안 우리가 잘 알고 찬양하고 동경하며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해왔던, 자유롭고 용기 있는 자들을 위한 최고 통치 형태로서 그 미덕을 선포하고 연구해왔던 입헌 민주주의는 이제는 그 수명을 다한 듯하다. 모든 곳에서 말이다."
이 책은 오늘날 극우 파시즘과 공동체 해체 등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에 관한 대안으로 새로운 ‘시민 됨’의 조건과 여섯 가지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이로써 법과 지도자가 아닌 시민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직접 여러 나라의 헌법 제정 과정에 참여하며 깨달은 세계적인 헌법학자인 저자의 고발이기도 하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은 지금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 세계의 여느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역시 민주주의가 시민들에게 유의미한 것으로 남도록, 즉 공고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된다.

20세기와 21세기를 거쳐 여러 나라의 목표는 정치 제도와 권리를 문서상에 제대로 정립하고,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규칙이 자국에 존재하는 유일한 규칙이 되도록 확실히 만들고, 모든 참여자가 이를 다르고 존중하게 함으로써 권리와 자유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 나라에게 민주주의 게임은 시장 중심의 경쟁과 이윤 추구 등 다른 관행들에 밀려났다. 이것이 민주주의 가 존속하기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불가피한 현실이자 불편한 잡음인지는 아직은 불분명하다. 다만 입헌 민주주의를 이상적인 종착점으로 여기던 우리의 일상적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노늘날 부패와 정치 스캔들, 소수자 권리 침해와 여성혐오적 전회(轉回)가 만연한(이를 방지하는 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느 민주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 책은 계엄과 두 번의 탄핵 후 새로운 민주주의를 시작한 한국 시민을 위해서도 꽤 의미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표제어 밑에 써 있는 부제 '우리가 법을 믿지 못할 때 필요한 시민 수업'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시민 수업이란 이 책에 등장하는 용어 '시민력'과 매우 연관이 깊다.
우리나라의 시민성, 시민들의 저력이라는 말로도 대체될 수 있는 시민력은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다. 이 에너지는 사회가 답답할수록 지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일상의 공간에서, 슬픔, 분노, 기쁨을 함께 나누며 표현하고 나누고 놀아야 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사회 전체의 힘을 키워내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가진 역동적 에너지를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보여주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 시민들의 촛불 시위, 광우병 파동 때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때 촛불 시위는 국민 역량이 총집결된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굉장한 힘으로 발현되었다.
이제는 시민 복종의 시대가 왔다. 권력이나 국가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 대한 복종이다.(p.248)

이 책은 1,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법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2부 〈법에 현혹되지 않기 위한 시민의 수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는 「방식1: 법은 책임지지 않는다」, 「방식2: 법은 시민을 죄 없는 방관자로 만든다」 등 2개의 장(章)으로 나눠 설명한다. 또 2부에는 6개의 수칙과 결론 등 7개의 장으로 나뉘어 논지를 펼쳐 보인다. 「수칙1: 지도자를 따라가지 말 것」「수칙2: 권리를 누리되 책임질 것」「수칙3: 광장에서 계속해서 교류할 것」「수칙4: 지속 가능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 것」「수칙5: 법보다 먼저 타문화를 포용할 것」「수칙6: 다음 세대를 방관자가 아닌 시민으로 키울 것」「결론: 스스로에게 복종할 것」 등이다.
법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는가? 책에 따르면 법은 시민을 법에만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써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체제다. 그러나 법과 제도, 그리고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 가려 우리는 늘 그 사실을 망각한다. 우리 사회를 통치하는 진짜 주인은 시민인 ‘우리’다. 저자 신디 L. 스캐치는 우리가 이 당연한 사실을 잊는 이유가 법에 지나치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의 새로운 ‘시민 됨’을 제안한다.
더 나은 규칙이나 새로운 법, 혹은 다른 지도자가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위기의 시대를 건널 유일하고 지속 가능한 해법은 시민, 곧 우리 자신에게 있다. 저자는 ‘시민력’을 키우기 위해 핵심적으로 육성해야 할 여섯 가지 영역을 제시한다. 그것은 리더십, 기본권, 공공 공간, 식량 안보와 환경, 사회적 다양성, 교육이다. 이 책은 각각의 영역에서 시민이 실천할 수 있는 행동 수칙을 제안하며, 새로운 시민성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이 수칙들은 공통적으로, 질서란 위에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협력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준법’ 그 이상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민력이 필요하다.
이 책이 말하는 ‘시민성’의 핵심은 바로 그 회복력과 유대감에 있다. 질서가 무너졌을 때, 시민은 서로 연결되고 연대함으로써 다시 민주주의를 세운다. 시민이란, 무력하게 무너진 질서 속에서 방관자가 아닌 ‘스스로 선한 질서를 만드는 존재’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2025년 상반기에 직접 경험한 감각이다.

결국 우리 일상의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법도, 국가도 아닌, 광장의 시민이었다. “이제는 시민 복종의 시대가 왔다. 권력이나 국가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복종이다.”(p.248) 「결론」에서 저자가 강조하듯, 시민의 힘 없이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런데 왜 헌법학자인 저자가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까? 저자는 오늘날 법치주의가 시민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을 억누르고, 모든 결정을 법에 위임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존하는 그 법은 실제 삶의 복잡한 문제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예컨대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했지만, 2022년 ‘돕스 대 잭슨’ 판결에서는 이를 다시 헌법에서 배제했다. 같은 헌법 아래에서 정반대의 판결이 가능했던 이유는, 법이 본질적으로 ‘해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법을 만들 권리뿐 아니라 해석의 권한까지 판사에게 넘겨버렸다는 데 있다.
특히 한국은 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국가다. 2022년 말 기준, 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는 약 616만 7000건으로, 우리보다 인구가 2.4배 많은 일본(약 337만 5000건)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체적 해법을 찾기보다, 모든 분쟁을 법정에서 해결하려는 문화가 굳어진 것이다. 그 결과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판단하고 행사하는 주체가 아니라, ‘처벌받지 않는 선’에만 머무는 수동적 존재, 곧 ‘죄 없는 방관자’로 전락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을 비판한다.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은 법 자체가 아니라, 법을 절대적 해결책으로 여겨온 우리의 태도다.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고 협의하며 집단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까지 법이라는 권위에 맡기는 순간, 민주주의는 본질적인 힘을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힘, 곧 ‘시민력’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시민력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민주주의 행동 수칙을 제안한다. “지도자를 따라가지 말 것(수칙1)”, “권리를 누리되 책임질 것(수칙2)”, “광장에서 계속해서 교류할 것(수칙3)”, “지속 가능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 것(수칙4)”, “법보다 먼저 타문화를 포용할 것(수칙5)”, “다음 세대를 방관자가 아닌 시민으로 키울 것(수칙6)”. 이 수칙들은 공통적으로 시민이 자발적으로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예를 들어 “지도자를 따라가지 말 것(수칙1)”에서는,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지도자의 결정이나 행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사례를 통해,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쳐 등장한 지도자라 해도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선거를 통해 당선된 법조인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이에 순응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 스스로 질서를 회복한 시민들의 행동은 이 수칙의 의미를 강하게 되새기게 한다. 이처럼 익숙한 수칙이 있는 반면, “법보다 먼저 타문화를 포용할 것(수칙5)”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이색적이다.
저자는 타문화를 포용하는 방법으로 ‘이국적 음식’을 먹어보는 것을 제안한다. 단순한 관용이나 허울뿐인 다문화주의를 넘어, 타인의 문화를 입 안으로 들이는 행위를 통해 무의식적 혐오와 배제를 허물고, 타문화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섯 가지 행동 수칙은 우리가 시민으로서 능동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마주해야 할 ‘민주주의의 생활 과제’다.
저자 : 신디 L. 스캐치(Cindy L. Skach)
볼로냐대학교 정치학 교수.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킹스칼리지런 던 헌법학 교수, 옥스퍼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하버드대학교 행정학 교수,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 하버드대학교 중동 연구소 및 유럽연구소 운영위원회 이사를 역임했다. 수십 년간 헌법과 기타 법적 체계에 대해 연구하고 저술하며, 헌법을 개정하거나 초안을 작성하는 정부에 자문을 했다. 그 과정에서 법에 대한 우리의 경직된 집착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미국정치학협회와 프랑스정치학회가 공동으로 수여하는 조르주라보우상Georges Lavau Dissertation Award을 받은 《헌법 설계의 차용Borrowing Constitutional Designs》과 《무법자Outlaw》 등이 있다. 법학자이지만, 민주주의에서 법의 역할에 대해 회의를 품고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역자 : 김내훈
1992년생. 작곡을 공부하다가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그만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영화이론을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통해 세상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영상·문화·사회·정치·철학을 두루 배우고 익힐 방법을 궁리하다가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입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정치 유튜브, 밈과 커뮤니케이션, 인터넷에서의 위악과 트롤링 문화 등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프로보커터: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2021)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