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수능 시험이 있다. 그리고 그 시험이 다가올수록 이제 고3들이 한 놈씩 학원을 떠나갈 게다.올해는 유난히 고3이 많았다. 40여 명 학원을 거쳐갔으니까..

유난히 사람을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니까 이제라도 한명씩 놈들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야겠다 싶다.

오늘은 김정규.. 브니엘고 3학년 문과..

첫 만남은 고1. 캐나다에서 중학교 3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의 입시지옥으로 들어선 만용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는 최근에 풀렸다. 암튼, 그 뒤로 쭉 학원을 떠나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엔 수학 수업을 듣게 해달라면서, 안 된다는 수학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답지 않은 문자 애교까지 부려가며, 결국 수강 허락을 받고, 학원에 아주 자리를 깔았다.

심심하면 게임방과 오락실과 학원 사이에서 동선을 그어대고, 교실에 에어컨 켜놓고 오래 자리 비우기, 독서대 불 켜놓고 사라지기, 학원 문 활짝 열어놓고 집에 가버리기, 교실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놓기 등등으로, 괜히 수학샘한테 눈치 보이게 만드는 골칫덩어리.

집에 갈 땐 몇 발짝 안 되는 집을 코 앞에 두고는 다른 애들 데려다주는 차에 타서-그것도 이미 정원초과인 나의 소형차 뒷자리에 구겨져서- 끝까지 안 내리고 버티기. 옆에 있는 E모 영어 학원에서 인스턴트 커피와 녹차를 한 움큼 들고와서는 "잘 했죠? 네??"를 연발해서 당황하게 만들기. 캐나다에서 배워온 담배질로 -그것도 붉은색 말보로만 핀다는..- 사귀게 된 친구 안지현을 학원에 데리고 오는, 이상한 충성심 보이기.

하지만 그에겐 미워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아무리 구박해도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나이답지 않은 해맑음은, 정규 말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그래서 철 없음이 가끔은 낙천성으로, 생각 없음이 속 깊음으로 보일 때가 있다. 얼마 전, 밤 12시 반, 분명히 집앞에 내려다 주고 내일 보자며 헤어졌는데, 불과 몇 시간 뒤에 그놈 아버님의 부고를 들어야 했을 땐 정말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40여일 지났고 여전히 생글생글하다. 가끔 내 마음만 짠해진다.

대학은 죽어도 서울로 가겠다는 정규.. 너의 밝음이 네 주변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줘.. 그 대신 (신중+배려+절제) 요걸 조금만 키운다면 멋진 사람이 될 거야~ 학원에 있는 시간 중에 노는 시간이 훨~씬 많은 정규야! 그래도 끝날 때까지 열심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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