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 편지 - 할머니가 손자에게 손자가 할머니께
김초혜.조재면 지음 / 해냄 / 2017년 12월
평점 :

할머니가 손자에게
손자가 할머니께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이라 저자도 김초혜, 조재면 2인이다.
할머니 김초혜님은 196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인이다.
시집도 여러 권 내시고 상도 여러 번 타시고 한국현대시박물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구상솟대문학상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손자 조재면군은 청심국제중학교를 졸업하고 용인외고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여기서, 솔직히 조금 시새움이 생기고 비딱한 생각이 들었다.
집안도 빵빵(?)하고 문학인인 할머님과 국제중-외고로 탄탄한 라인을 걷는 학생이
책을 내어 스펙을 쌓는건가, 싶은 생각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갈 수록 그런 시새움은 누그러지고 따스함이 올라왔다.
2008년 한 해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손자를 위해 쓴 편지글책 [행복이]
그 시작은 이렇다.
사랑하는 손자 재면에게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매일매일 일기를 쓰듯이 써서
할머니가
네게 주는 편지다.
늘 새해가 되면
다시 되풀이해 읽으며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 바란다.
2008년 1월 1일
김초혜
할머니께
할머니, 할머니가 써 주신 글을, 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매일매일 읽는다 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못 읽고 지나가는 날이 많이 있습니다.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금방 지나갑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글을 읽고 나면 새로운 꿈도 꿀 수 있고, 마음도 새롭게 다지게 되고는 합니다.
한 가지 일을 매일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가장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네요.
그러나 할머니께서 평생에 걸쳐서 되풀이해 가며 읽으라 하셨으니
그 습관이 몸에 익도록 하겠습니다.
....
할머니, 할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습니다.
2014년 1월 1일
손자 재면 올림
문학을 좋아하고 편지글에서 그 인품을 유추해보자면 취향이 확실하신 할머니가
매일같이 사랑하는 손자를 위해 때로는 격려를, 때로는 타이름을, 때로는 염려를,
그러나 늘 빼놓지 않고 사랑을 담뿍 담아 남긴 글에
시간의 텀을 두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성장하는 손자가
도란도란 자기 일상을 얘기하고, 할머니의 사랑에 감사하고, 생각의 성장을 보여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는 글을 쓴 손자의 마음과
그런 손자에게 인연이 만나 가족이 되어 할머니와 손자로 만난 운명에 놀라워하고
진정한 사랑과 착한 마음이 깃들기를 바라며 혹시 당신은 보지 못할 결혼에 대해 말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담뿍 묻어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한참 지날 청소년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의젓하고 점잖은 손자의 편지글들 ^^
이런 학생이 있단 말인가!!! 싶다가도 ㅎㅎ
가족과의 여행에 설레어 하는 모습, 할머니의 걱정을 누그러뜨리려 재미있는 말을 하는 모습
그리고 할머니의 기대만큼 성실하지 못한 것을 죄송스러워 하지만 솔직히 '어렵다'고 말하는 모습들에서 지극한 사랑을 받는 십대 청소년이, '어른'에게 그 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마냥 가볍고 팔랑거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든다.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가 더 늙지 않기를 바라고, 오래오래 함께 곁에 있길 원하는 애틋한 마음은
읽는 나에게도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할 정도로 진심으로 느껴졌다.

'어른'의 말과 모범, 가르침을 진득하니 받기가 어려운 요즘이다.
가족모임이 있어도 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매한가지다.
말과 문자는 흩어지고 파묻혀도
종이에 꾹꾹 눌러쓴 편지글은 내가 놓아둔 곳에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똑같은 편지임에도 펼쳐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질 것이라는 걸
[행복편지]를 읽으며 절실히 느꼈다.
할머니의 편지에 긴 터울을 두고 답장하는 손자의 모습을 보니 참 부럽다.
김초혜님의 당부는 오로지 편지 받을 손자 한 사람에게 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할머님도 이런 말씀들을 하셨지만 다만 글로 남지 않았을 뿐이지. ^^
다시 고쳐 생각해보니 김초혜님은 할머님 대표로
모든 손자들에게 '늘 곁에 두고 읽어보렴'하는 편지를 책으로 써내어 주신 것 같다.
나도 생각으로만, 말로만 하지 말고 나의 글을 써서 모아주고 싶은 사람에게 답을 해야겠다.
올해 내가 하고 싶고, 해야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