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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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이 말로 차이가 도드라지고 구별이 일어났다.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농장의 모든 동물들의 상황이

동물들 사이에서의 '계급'화로 모양만 바뀌었을 뿐 전혀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더이상 인간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을 위해 일한다는 '착각'이 심어진

동물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과거도 역시 다르지 않았으며 미래에는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도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1945년에 출간된 이래, '고전' 으로 꼽히며

대중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우회적으로 질문하고 있는 이유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동물들이 상징하는 대상들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아니 '익숙하다'라고 말하기에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인, 존재와 

혹은 언제라도 그런 지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첫머리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p.7)


말도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학생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 평등하다."


"모든 직장인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직장인들은 다른 직장인들보다 더 평등하다."


"모든 탑승객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탑승객들은 다른 탑승객들보다 더 평등하다."


이런 말들을 계속 할 수록 왠지 납득이 가는 구석이 나오지 않는가?


공부를 잘 하는 학생,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 예체능이 뛰어난 학생, 어학 능력이 뛰어난 학생.

혹은 학급이나 학생회 임원으로 다른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더 평등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더 평범함'이 '특정한' 상황을 넘어 평범한 상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와도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에 따라 맞는 '대접'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 경계가 흐려질 때, 소위 말해 '차별 대우'라는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르게 되고,

곧 스스로가 '차별 대우'의 벽을 넘을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자기검열/자아비판/반성이

이 상황을 지나가게 만든다.


직장인은 어떠한가?

같은 일을 하지만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대기업/중소기업으로 나누어

(혹은 같은 기업 안에서도 주류와 비주류, 주무부서와 지원부서로 나누어) 

그곳에 속하지 못한 존재들의 차별적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물론, 입사과정에서의 절차와 단계가 달라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조건이 달랐다는 

전제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이유만으로 같은 노동을 다르게 취급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의 '지원요청'에 '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업무가 바뀌기도 한다.


탑승객은 좀 더 쉽다.

그들이 내는 돈에 따라, 혹은 지위에 따라 그들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저렴한 좌석에 탔을 때는 요구할 수 없는 일들이, 값비싼 좌석에 탔을 때는 가능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이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차이를 구별해낸다.

그리고 그 차이를 차별을 정당화 하는 데에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각자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비난받고 탄압받고 시스템에서 쫓겨나게 된다.

 

즉, 누구라도, 언제라도

선동/선전의 명분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하루 아침에 역할이 바뀔 수도 있다.


저자 조지 오웰은 동물들을 빌려 인간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동물들이 무능한 인간을 쫓아내기 위해서 명분을 사용하고,

그 명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동물들을 선동과 선전의 도구로 사용하고

동물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7가지 규칙을 만들어내고

'무능한 인간'처럼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규칙이 왜 생겨났는지, 왜 지켜야 하는지

숙고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없이 무조건적으로 '무능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며 기꺼이 부역자의 길을 꾸역꾸역 걷는다.

착취가 일상화되고,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려고 한다면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거나

'후손들의 미래'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이기주의자, 게으름뱅이, 혹은 '당해도 싼' 존재로 낙인찍어 따돌려 버린다.

어느새 사실과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고, 기득권을 쥔 누군가를 위해서 

또다시 '동물농장' 속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뿐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는 언뜻 악역이 확실해 보이지만 

독자는 책을 읽어가면서 악당/악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마지막은 아래와 같다.


"창문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왔다갔다했지만, 돼지가 사람인지, 사람이 돼지인지,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분간하기란 이미 불가능해져 있었다." (p.196)


특히 모모북스에서 나온 소설 <동물농장>은 서문과 '조지 오웰이 대하여' 

그리고 '작품 줄거리 및 해설'을 통해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처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의 배경지식을 제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이 텍스트를 보다 풍부하게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담담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스토리텔링 기법은

오히려 묵직한 한 방이 있어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고

<동물농장>에서 등장하는 문구와 프로파간다는 

지금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부르짖는, 듣기 좋고 뭉뚱그려져 실체가 불명확한 구호 및

본래 의미가 퇴색되어버려 사용자 누구라도 마음대로 그 뜻을 이용해버리는 단어들로

어렵지 않게 호환된다.

이래서 고전은 고전인가보다. 

(이름은 아는데 읽은 적은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

 그리고 읽어보면 정말 감탄하게 되고야 만다는 점에서도)


TV 프로그램을 통해, <동물농장> 제목만 읽다가 제대로 내용을 읽어보게 되었고

패널들의 해석과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이

책 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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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SERT DAYS 디저트 데이즈 - 블렌디가 소개하는 파리의 베이킹
홍은경(BlenD) 지음 / 책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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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데코처럼 깔끔한 표지!

프랑스 현지에서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빵, 과자, 잼, 젤리, 마카롱들이

눈으로만 보아도 식감이 느껴질 정도로 실감나게 사진으로 펼쳐지고,

'초보자'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력자'들도 즐겁게 도전해 볼만한 

일반인에게 익숙한 디저트부터 전문가들이 알 법한 디저트까지 소개되는 책이

<디저트 데이즈> 입니다.




지금같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시기에, 프랑스로 여행 가기는 커녕,

우리나라 곳곳에 맛집이나 핫플레이스도 가기가 머뭇거려지는 게 현실인데

이 책을 보면 대리만족이라고 해야할까요?

파리 곳곳의 디저트숍을 탐방하는 기분을 물씬- 느껴볼 수 있답니다.

QR코드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달까요? ㅎㅎㅎ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것은 더 좋아하고, 먹을 것을 맛있게 만드는 데

탁월함이 있는 프랑스 파리 사람들이 실제로 찾아서 먹곤 하는

유명 셰프들의 역사적인 디저트 숍들부터, 새롭게 도전하는 디저트가 나오는 트렌디 숍까지.

파리의 풍경과 숍, 디저트를 엽서처럼 담은 사진은 맛에다 '갬성'까지 더해줍니다.


프랑스어와 한국어가 함께 적힌 메뉴판을 보는 기분으로 책을 펴보면,

이런 것도 있었구나~ 싶은 신세계가 펼쳐집니다. 


머랭 디저트, 패블로바, 마카롱, 키슈, 슈, 에끌레어, 타르트, 피낭시에, 카늘레 처럼

발음도 어려운 디저트들이 소개되고 재료와 만드는 레시피까지 잘 나와 있답니다.

베이킹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집콕의 시간을 달달하게 보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저트인가 식사인가!!

화과자처럼(!) 네모 반듯해서 아보카도+연어를 올려놓은 것. 

뷔페에서 이 비슷한 것을 먹어본 것 같아요.

사진을 보며 맛을 상상하고, 재료를 읽으며 구체적으로 맛을 하나하나 음미하다보면

만들기는 곰손인 저는, 리스트만 짜놓게 되더라구요.

이걸 어디 가서 언제 사먹나~ 하고요. ^^



그러다가, 출퇴근길에 종종 만나는 '익숙한' 마카롱을 보면 반갑기도 합니다. ㅎ

바닐라 위에 과일, 꼬끄의 달달하고도 쫀득한 맛이 마구마구 상상되지 않나요?

색깔의 조합도 정말 예쁘죠?

마카롱은 눈으로 80%를 먹는다고 생각하는 1인으로서, 책만 봐도 행복해집니다. :)





빵에 가까운 디저트 뿐 아니라 잼이나 과일 젤리, 그리고 진짜 '초코 우유'까지

40여 가지에 달하는 디저트를 본인의 취향과 입맛대로 골라서 만들어 볼 수 있는,

베이킹클래스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노하우가 듬뿍 들어간 레시피 북이랍니다.


아까도 말한 것 같지만 사실 만들지 않아도, 사진만 봐도 좋아요.

정성껏 좋은 재료를 골라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읽으며

고소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냄새가 공간에 가득 퍼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달달구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책이었어요.



저자 홍은경(BlenD)님은 처음에는 프랑스 디자인 브랜드를 수입하는 일을 하셨다고 해요.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감각이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변했을까요?

프랑스 디저트에 대한 관심을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매년 프랑스로 단기연수를 다녀오며

현재는 서울 도곡동에 본인의 이름을 건 블렌디스튜디오에서 베이킹 클래스도 진행하시며

프랑스식 디저트를 한국에서 맛 볼 수 있도록 + 직접 가서 배우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베이킹을 책을 보고 따라해 볼 수 있도록 친절하고 유용한 설명을 더해 이 책을 출판하셨습니다.


뒷면까지 맛있는 책 <디저트 데이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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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레르 플라워 클래스 - 플로리스트 메이의 사계절을 담은 리스 & 갈란드, 공간 장식
김예진 지음 / 시대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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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봐도 피곤해서 뾰족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진.선.미.는 통한다고 하던데, 진짜다.


아름다운 꽃과 동화같은 포즈가 파스텔톤 표지 위에 말갛게 올라와 있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며 얼른 예쁜 꽃들을 구경하고 싶어진다.


플로리스트 메이가 리스, 갈란드, 공간 장식으로 아름다운 꽃들을

우리의 일상으로 초대하는 방법을 책으로 펴냈다.


<메이플레르 플라워 클래스>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봄의 들판과도 같은 느낌의 책일 것 같다.

꽃 하나하나의 매력을 있는 그대로 살려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식법을 만날 수 있다.



원데이 클래스를 두드려볼까? 하는 초보자가 알아두면 좋을

꽃을 고르는 방법, 구입하기 좋은 날, 꽃을 다룰 때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들 부터

꽃꽂이를 좀 배워봐서 다양한 기법을 알고 있는 경험자들이

'튜닝의 끝은 순정' 같은 ^^ 마음으로 배워볼 수 있는 

내추럴한 스타일링과 색감 배치팁, 큰 작품을 만들고 남은 꽃들을 활용하는 법까지

부드러운 바람처럼 무겁지 않게, 향기롭게 실려 있다.




이 책이 인상깊었던 점은, '플로리스트의 QnA' 였다.

사람들이 플로리스트에 대해 갖는 막연한 상상과 환상(?)에 대해서

작가 역시 취미로 꽃을 배웠던 시절을 거쳐 꽃 주문 제작, 기업 출강, 공간 스타일링 및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전문 플로리스트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름다운 꽃들을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내기까지의 노동과 고통(!), 부상의 위험 등

현실적인 어려움과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링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노력까지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진솔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특정 업계마다 밖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인사이더'의 정보 공유는

그 업계와 분야를 보다 현실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플로리스트를 꿈꾸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공방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부분이었다.


꽃의 형태에 따라 폼플라워, 매스플라워, 필러플라워, 라인플라워, 그린플라워로 

리스, 갈란드, 부케, 다발 등을 만들 때 쓰일 공간과 용도를 정하는 방법과

가장 어려운 색감의 배치공식을 알려주어 코로나19로 클래스 수강을 잘 못해도

이 책을 보며 하나하나 따라하다 보면,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착각일까?) 용기가 생기고 도전의식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기본이 되는 리스틀 만들기, 스파이럴 기법으로 꽃다발 만들기를

단계별로 하나하나 큰 사진을 통해 알려주는 친절한 플라워 클래스 책.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해서 선생님의 지도-와 손길-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집에 와서 다시 만들려면 "이 다음에 뭐였지?" 하고 아리송했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의 친절함에 새삼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에는 자연스러움을 한껏 살린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화려하고 강렬한 원색의 꽃들보다는 초록색이 싱그러운 식물과

한 종류의 꽃만으로도 충만함을 보여주는 리스, 갈란드가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편안하고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요즘 유행하는 다른 수공예 작품과 원래 하나인 듯 잘 어우러지는 

때와 장소, 모임의 성격에 맞는 작품들이 화사한 색감으로 실려 있어

책을 넘길 때마다 감탄이 나오고 행복감이 차오른다.



특히, 벽에 직접 꽃을 배치하고 설치해서 집의 공간이

미술관이나 전시관 처럼 변신하는 공간 장식 파트는 

하우스 파티나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조촐한 집 안에서의 모임을

잊지 못할 아름답고 환상적인 기억이 되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플라워 스타일링의 범위를 확장시켜주는 멋진 기획이었다.  




생화 뿐 아니라 작품을 하고 남은 자투리꽃, 드라이플라워, 다른 생활 소품을 활용한

스페셜 아이템을 만드는 방법은 화관, 크리스마스 장식, 플라워 장식으로 

일상 속에 꽃을 초대하여 향기롭고 생생한 에너지를 원할 때마다 즐길 수 있는 

심플하고 파워풀한 팁이 된다. 




물론, 금손인 메이님처럼 작품을 뚝딱뚝딱 만들진 못하겠지만

책에 나온 아름다운 꽃들을 보니 꽃 시장에 방문하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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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도구의 세계 - 행복하고 효율적인 요리 생활을 위한 콤팩트 가이드
이용재 지음, 정이용 그림 / 반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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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조리도구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것을 이렇게 -집요할 정도로?ㅎ- 잘 정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요즘은 '덕후'들이 자기의 덕력을 뽐내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취미생활'이나 '취향'을 넘어 '전문가의 포스'까지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막 이 세계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행운이다.


돈과 시간을 많이 쓰지 않고도 (즉 실패를 조금 덜 하면서)^^, 

나보다 앞서서 공들여 세계를 구축해 온 저자의 '조리 도구'에 들인 노력과 경험을

<조리 도구의 세계>를 통해 만나보자.


'행복하고 효율적인 요리 생활을 위한 콤팩트 가이드'라는 말은

책을 펴기 전까지는 '좀, 과장이 심한 거 아냐?' 싶었다.


285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방대하게 뿜는 지식은 어마어마하며,

밥 숟가락 하나로 양념도 덜고, 밥도 비벼 먹으며 설거지거리를 최소화하는 사람은

"뭘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비효율적이게" 라고 충분히 말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들여다보면 그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책의 저자 이용재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다.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정갈하게 구조화하는 건축을 공부한 사람의 느낌이

책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은 그래서 너무 당연하다.

책에서 요리로 관심이 옮겨간 그는 15년 동안 요리의 도구를 사들이고

그 쓸모와 활용법을 정리하며 서랍과 찬장을 차곡차곡 채워왔다.


그냥 허기를 면하는 음식을 재빠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나를 좀 더 대접해주는 행복한 음식을 맛있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요리를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도구들을 소개하고

그 중에서도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어 꼭 필요한 조리도구를 고르는 요령,

조리도구의 작동 원리와 유지 및 관리방법을 잘 익혀두어서

내 손에 오래동안 길들이며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까지 

집이나 간단한 음식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조리도구 대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시작은 '손'이다.

음식을 하는 손.

모든 조리 도구는 이 손의 연장이라는 저자의 한 마디가 굉장히 설득력있다.


요리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열, 단단함, 섬세함, 자극적인 식재료 등 때문에 

손의 사용이 한정적일 때, 초능력자처럼 필요한 요소에 따라 사용할 수 있게

인간의 지혜와 경험으로 만들어낸 것이 '조리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조리도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정이용님의 일러스트.

정갈한 푸른색은 깔끔함과 유명 브랜드의 브로셔같은 느낌을 준다.


흔히 보고 방금도 사용했던 조리도구가 어디까지 그 쓰임새를 확장할 수 있을 지,

그리고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구별없이 사용하는 것이 왜 '비효율'적인지

꼭 갖추어 두기를 권장하는 비슷한 조리 도구의 갯수까지

'상품평'처럼 이미 써본 사람들의 생활력 묻어나는 조언은 

'콤팩트 가이드'라는 말을 무색하지 않게 한다. 




종류 뿐만 아니라, 그 '항목' 중에서도 추천하는 브랜드를 깨알같이 수록해 둔 점도,

-막상 검색해보면 그 가격에 놀랄 지언정- 초보자에서 전문가로 넘어가는 단계인

독자들에게는 시행착오를 줄여주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없거나, 여러 개의 조리도구를 갖춰 놓기 어려운 경우

대체하거나 두루두루 쓸 수 있는 조리 도구를 골라주는 섬세함은 고맙기까지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하나만 고르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

조금씩 차이를 두고 있는 조리 도구 각각의 장단점과 그 도구를 사용한 결과물,

-즉 식재료가 그 도구를 거치면 어떤 모양과 상태가 되는지를- 매우 자세히 알려주고,

조리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과 그 이유를 초보자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며,

한 가지 조리 도구를 다각적으로 활용하는 훌륭한 노하우도 아낌없이 방출한다.

 

 





손에 익고 정이 가게 된 조리 도구를 오래오래 아끼면서 길들이는 

최애템을 다루는 사람의 '사랑과 관심'까지 느껴지는 <조리 도구의 세계>

장비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욕구가 대리 충족될 정도로

-아닌가, 하나하나 지워가며 이 도구들을 다 사들이게 되려나;;- 

멋지고 스마트하며 아름다운 조리 도구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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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 영화를, 고상함 따위 1도 없이 세상을, 적당히 삐딱하게 바라보는
거의없다(백재욱) 지음 / 왼쪽주머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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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고 반가웠다.

즐겨 보는 영화관련 TV 프로그램에서 종종 만났던 그 '거의없다'님의 책이구나! ^^

영화를 보러갈 때는 영화 예고편도 긴 것은 피하고, 

좋아하는 영화 잡지에서도 '특집'으로 다룬 부분은 영화 보기 전에는 스킵할 정도로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영화관 가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유투브 영화채널은 잘 보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없다'님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책을 읽기 전에는 잘 몰랐었다.


대학에서 법 공부를 하고 고시 공부까지 했지만 결국 '이 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영화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뒤

'거의없다'로 영화유투브를 시작한 저자는

<영화걸작선>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도 본인은 정말 쓰기 싫지만 출판사의 요청에 억지로 썼다고 한다. 성격 나온다. ㅋ-



인생을 달래주고, 지루함을 없애주고, 볼 수록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영화를

자기의 시각으로 마련하고 다듬어서 전달하는 그가 '거의없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책과 유투브 전반에 걸쳐 감지되는

-그리고 스스로도 말하는- 삐딱함과 거침없음, 시니컬함까지 

출판사도 저자의 '입담'을 살려내기 위해서 표현을 고대로 살려 책을 내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데 '거의없다'님의 목소리가 자동재생되는 착각이 든다. (재밌다!)

총 9장에서 19개에 해당하는 영화가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각 장에서 조금씩 감질나게 카메오처럼 출연하는 영화까지 합하면

왜 저자의 유투브가 인기가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고, 대사와 상황을 고대로 암기하기까지 몇 번이고 돌려 본 

내공과 공력에서 나오는 영화-영화의 연결고리 찾기나, 숨은 의미 찾기는

같은 영화를 본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해와 해석의 폭과 양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고,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다른 영화까지 소환해서 훨씬 더 풍부하게 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주제와 소재에 따라 영화들을 엮어 내는 솜씨도 훌륭하지만

GV 진행 및 부국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등 영화관련 행사 진행을 맡는

전문가이자 관계자(!?)급의 노하우와 배경지식 뿐만 아니라

영화팬이 가지고 있는 영화배우, 감독, 시대별 영화의 감성에 대한 애정과 애잔함까지

<거의없다의 방구석 영화관> 책 속 글에서 숨김없이 표현된다.


또한 영화 속에 포함되어 있는 그 시대를 바라보는 가치관, 자본, 산업의 흐름에서

시대와 사회의 담론을 담겨 있음을 배우, 주제, 소품, 미술 등의 영역을 통해 이야기 한다.

댓글로 정치색을 보이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내적 비명을 지를 지언정,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의 모습과 감독/배우/스태프가 표현하고 싶은 의미를

'상업'영화라는 큰 색깔로 덮어버리고 밋밋하게 만들지 말자고 한다.

완전 공감하고 동의하는 바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걸작선>으로 망한 영화를 리뷰할 정도로 

영화 좀 볼 줄 알고 취향과 근성이 확실히 있는 동네 친구랑 

각자 먹을 것을 옆에 끼고 앉아서 영화를 보며 이러니- 저러니- 자기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서로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며 침 튀기며 내 영화를 옹호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 사람은 그 영화를 저렇게 봤구나- 하고 새삼 새로움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무한한 매력을 새삼 느끼며

이 책에서 소개된 영화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 확률도 상당히 높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늘 보던 영화 속에서 새로움을 찾기도 하고

영화 속 인물의 상황과 마음에 나를 대입하여 함께 위로받고 성장하기도 하며

힘들었던 하루의 끝에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2시간 동안 현실도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하는 영화들.

코로나19로 영화관에 가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갑고, 책을 읽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새 영화들이 극장에 선 보이게 될 때, 영화를 보고 나서 '거의없다'유투브를 방문하게 될 것 같다.

이 사람은 그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해지는 랜선친구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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