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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20년 4월
평점 :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이 말로 차이가 도드라지고 구별이 일어났다.
인간에게 착취당하고 있는 농장의 모든 동물들의 상황이
동물들 사이에서의 '계급'화로 모양만 바뀌었을 뿐 전혀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더이상 인간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을 위해 일한다는 '착각'이 심어진
동물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과거도 역시 다르지 않았으며 미래에는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도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1945년에 출간된 이래, '고전' 으로 꼽히며
대중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우회적으로 질문하고 있는 이유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동물들이 상징하는 대상들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아니 '익숙하다'라고 말하기에는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인, 존재와
혹은 언제라도 그런 지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첫머리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p.7)
말도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학생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더 평등하다."
"모든 직장인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직장인들은 다른 직장인들보다 더 평등하다."
"모든 탑승객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탑승객들은 다른 탑승객들보다 더 평등하다."
이런 말들을 계속 할 수록 왠지 납득이 가는 구석이 나오지 않는가?
공부를 잘 하는 학생,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 예체능이 뛰어난 학생, 어학 능력이 뛰어난 학생.
혹은 학급이나 학생회 임원으로 다른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더 평등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더 평범함'이 '특정한' 상황을 넘어 평범한 상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와도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에 따라 맞는 '대접'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 경계가 흐려질 때, 소위 말해 '차별 대우'라는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르게 되고,
곧 스스로가 '차별 대우'의 벽을 넘을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자기검열/자아비판/반성이
이 상황을 지나가게 만든다.
직장인은 어떠한가?
같은 일을 하지만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대기업/중소기업으로 나누어
(혹은 같은 기업 안에서도 주류와 비주류, 주무부서와 지원부서로 나누어)
그곳에 속하지 못한 존재들의 차별적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물론, 입사과정에서의 절차와 단계가 달라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조건이 달랐다는
전제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 이유만으로 같은 노동을 다르게 취급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의 '지원요청'에 '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업무가 바뀌기도 한다.
탑승객은 좀 더 쉽다.
그들이 내는 돈에 따라, 혹은 지위에 따라 그들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저렴한 좌석에 탔을 때는 요구할 수 없는 일들이, 값비싼 좌석에 탔을 때는 가능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이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차이를 구별해낸다.
그리고 그 차이를 차별을 정당화 하는 데에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각자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비난받고 탄압받고 시스템에서 쫓겨나게 된다.
즉, 누구라도, 언제라도
선동/선전의 명분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하루 아침에 역할이 바뀔 수도 있다.
저자 조지 오웰은 동물들을 빌려 인간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동물들이 무능한 인간을 쫓아내기 위해서 명분을 사용하고,
그 명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동물들을 선동과 선전의 도구로 사용하고
동물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7가지 규칙을 만들어내고
'무능한 인간'처럼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규칙이 왜 생겨났는지, 왜 지켜야 하는지
숙고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없이 무조건적으로 '무능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쓰며 기꺼이 부역자의 길을 꾸역꾸역 걷는다.
착취가 일상화되고,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려고 한다면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거나
'후손들의 미래'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거나 희생하지 않는
이기주의자, 게으름뱅이, 혹은 '당해도 싼' 존재로 낙인찍어 따돌려 버린다.
어느새 사실과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고, 기득권을 쥔 누군가를 위해서
또다시 '동물농장' 속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뿐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는 언뜻 악역이 확실해 보이지만
독자는 책을 읽어가면서 악당/악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마지막은 아래와 같다.
"창문 밖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서 인간으로 왔다갔다했지만, 돼지가 사람인지, 사람이 돼지인지,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분간하기란 이미 불가능해져 있었다." (p.196)
특히 모모북스에서 나온 소설 <동물농장>은 서문과 '조지 오웰이 대하여'
그리고 '작품 줄거리 및 해설'을 통해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처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의 배경지식을 제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이 텍스트를 보다 풍부하게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담담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스토리텔링 기법은
오히려 묵직한 한 방이 있어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고
<동물농장>에서 등장하는 문구와 프로파간다는
지금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부르짖는, 듣기 좋고 뭉뚱그려져 실체가 불명확한 구호 및
본래 의미가 퇴색되어버려 사용자 누구라도 마음대로 그 뜻을 이용해버리는 단어들로
어렵지 않게 호환된다.
이래서 고전은 고전인가보다.
(이름은 아는데 읽은 적은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
그리고 읽어보면 정말 감탄하게 되고야 만다는 점에서도)
TV 프로그램을 통해, <동물농장> 제목만 읽다가 제대로 내용을 읽어보게 되었고
패널들의 해석과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이
책 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