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로서의 인권을 말하는 어려움
신영복 선생은 동양사상의 핵심 개념으로 인(仁)을 꼽고, "인(仁)은 기본적으로 인(人)+인(人), 즉 이인(二人)의 의미"이며 "인간관계" 자체 또는 "관계들의 총화"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이 인권의 개념에 대해서도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인권은 항상 ‘관계의 문제'이고, 중첩적인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특히 ‘권력관계'를 포착해 드러내는 노력이다. 인권은 권력관계 속에 놓여 있는 약자들의 자리를 파악하는 언어다.
강 씨의 얼굴공개 논쟁은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 가족의 인권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얼굴공개를 찬성하는 주장은, 피해자 가족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게 인권은 사치라고도 했다. 그러나 연쇄살인범의 얼굴 공개 여부가 인권의 문제인 것은 ‘가해자-피해자' 관계의 맥락이 아니다.
관계는 일면적이지 않고 총체적이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해간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여성들만을 골라 살해한 용의자 강 씨는 연쇄살인이라는 범죄의 맥락(가해자-피해자 관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강자였다. 그러나 그가 체포되어 형사절차로 들어온 이상, 그는 형벌권을 행사하는 국가에 대하여, 그리고 선정적 소재를 사냥하는 언론에 대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려운 관계의 약자다. ‘가해자 인권'이 아니라, ‘피의자 인권'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언론에 의한 얼굴 공개는 기본적으로 ‘언론권력과 개인'의 관계 문제이고, ‘국가 대 피의자'라는 맥락과 상황의 문제인 것이다. 분노의 표적이 된 무력한 ‘개인'에게 언론권력이 남용된 것은 아닌지를 질문하고, 확인하는 것이 이러한 상황에 부합하는 인권의 문제의식이다. 피의자 강 씨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살인범 강 씨에 대한 분노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인권을 말하면서도 충분히 그에 대해 분노할 수 있고, 분노해야 한다.
그래서 피의자 인권을 말하는 것에 대하여 피해자(가족)의 인권을 대립시키는 것은 ‘관계'로서 인권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피해자 가족들의 깊은 상처와 시민들의 분노를 헤아리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분노와 보복감정이 용의자의 얼굴을 공개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피해자 가족의 분노를 치유하기 위해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에 형벌권을 주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해자(가족)의 인권은 다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흉악범 얼굴이 공개되어 논쟁이 되는 맥락과 상황이라면, 피해자(가족)의 인권 역시 언론에 의해 함부로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프라이버시의 주체임을 명확히 하고,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보도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국가에 대하여는, 초동단계에서의 수사 실패가 비극적 결과를 확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점검하고, 군포지역 치안 부재의 구조적 원인을 캐물어야 한다. 또 재판 절차 참여권이나 양형에 관한 의견 진술 제도 등 공적인 제도를 통해서 피해자 가족의 분노와 상처가 고려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문제다. 피해자 인권도 국가나 언론과의 관계에서 바라보아야 할 문제다.
(정정훈변호사, '얼굴공개 논쟁, 인권이라는 불편한 노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