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이다. 두번째 걸음이다.
신부님들, 수녀님들, 신자분들이 많이오셨다. 그리고 나같은 소속되지 않은 이들도 보인다.
성당에서 지겹기만했던 미사를 이곳에서 본다.
오르간소리와 굵은 합창소리에 눈물이 솟다가 잦아들다가 반복한다.
저기 저 전경은 무슨생각들 하고있을까.
노여워하기보다는 연민하기로 한다.
평택이다.
그 신부님들이 여기 그대로 또 있다.
오늘부터 평택에서도 매일저녁 8시에 미사를 드린다고 하신다.
손을 꼭잡고 꾸벅 인사라도 드리고싶은 심정이다. 죄송스럽고 한없이 고맙다.
신부님 몇분께서 사측입장을 대변해 회사입구를 막고있는 직원들앞에 서서
안에있는 사람들과 미사만 보고 나오겠다고... 설득하고 호소하셨다.
오고가는 말들은 들리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참지못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온다.
"한솥밥 먹던 넘들이 저러고있는겨, 인간도 아닌겨" 충청도 사투리다.
"마스크 쓰면 니 낯작 모를줄알어 이넘들아" 전라도 사투린듯하다.
어떤이들은 돌출행동에 전전긍긍한다. 신부님들이 말씀하고 계시니 우리는 조용히 지켜보자구요. 타이르신다.
한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도 또 참지 못하고 내지르신다.
참을수 있는게 이상한거지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다.
평택에서 노조를 규탄하며 정문을 막아서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속에서, 지난 노대통령 추모콘서트를 막겠다고 교문입구를 막아섰던 학교 직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이 경제대국이 되고, 국민소득 3만불에 육박하고, 아파트는 올라가고 올라가고, 기차는 빨라지고 빨라졌지만,
이게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쌍용차 직원들, 대학교의 직원들이 결국 양심을 속이고, 동료와 학생을 외면하고 지키고자 하는것은 그들의 일자리인것 같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일자리가 중요하나.
이 사회는 일자리를 잃으면 줄줄이 잃어버리는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짤리면 끝이다라는 것 때문이다.
사회보장이 취약하기 때문에 개개인이 밥벌이를 하지않으면 먹고살수 없다. 게다가 한번 해고되면 안정적인 재취업이 힘들다. 양심따위 의리따위 버리고 일자리 지킬수 있다면 그걸 선택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란 이런 것인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무서운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데 있다.
자본은 이제 철저히 그걸 이용하고 있다.
손도 안대고 코풀고 있다.
그나저나 참 불쾌했던건
신부님의 말씀을, 참지못한 고함소리를, 촛불집회의 목소리를 묻어버린건
윤도현의 타잔이었다.
타잔이 끝나고도 언젠가 내가 콘서트장에서 열광했던 그의 노래들이 연이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사측을 대변하고 있는 직원들이 틀어놓은 것이었다.
윤도현은 이 사실을 알까.
누구 윤뺀과 친한사람 있다면, 당신의 노래가 노조와 지원세력의 목소리를 막고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고 좀 전해주었으면.